행정단위를 바탕으로 설치, 설립되고 있는 문화재단, 문예회관 등이 지역문화를 대표하면서 '지역'이라는 개념이 어떤 균질한 단위들로 이해되고 작동한다. 그리고 행정단위로 지역이 균질화되면서 지역이라는 현장의 특성과 구체성이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예술의 영역이 전문화되어가는 만큼 역으로 그 역할 또한 제한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점이다.


전국의 문예회관이 2008년 말 현재 167개로 조사되었다. 이밖에 전시장, 박물관, 도서관까지 포함하면 지역 문화예술 시설은 만만치 않은 수치에 이른다. 근래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창작공간 설립은 기존의 인프라 구축이 일정 정도 포화에 다다랐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보인다. 이러한 시설들만이 아니라 문화재단 등 문화예술 기관의 설립도 활발하다. 이와 함께 예술정책이나 예술경영을 비롯한 전문인력들이 곳곳에 확충되면서 자연스러운 필요에 의해 기관, 시설, 사업 등 다양한 분야와 형태의 네트워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10 해비치아트페스티벌 아트마켓 쇼케이스 사진제공 한국문예회관연합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에서 주관하고 있는 ‘전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는 광역 단위의 문화재단 및 문화예술기관의 협의체로 정례적인 워크숍과 연수활동을 벌이고 있다. 공모 지원사업, 공연장 상주단체 지원사업,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사업 등 지원제도의 실행에서도 지역재단 및 지자체의 문화(예술) 담당부서와 예술위의 협업이 진행되고 있다. 문예회관의 경우 서울아트마켓, 한국문예회관연합회의 아트마켓 등이 작품정보 외에 활발한 교류의 장이 되고 있으며 서울이나 경기도 내의 문예회관 운영자들은 별도로 모여 공동제작을 추진하거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협업을 시도한다. 최근에는 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 실무자 모임이 결성되어 얼마 전 성남문화재단에서 모임을 가졌다. 70년대부터 시작된 예술지원이 90년대 후반 이후 문화정책이라는 전략적 진행과 합류하면서 만들어낸 결실이다. 문화예술 인프라의 확충에 집중하던 시기를 넘어 전문적인 운영이라는 소프트웨어로 관점이 이동하면서 많은 전문인력이 지역에서 일하게 되고 다양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행정 단위로 균질화된 지역

‘지역’은 쉽게 행정구역과 동일시된다. 이는 이제까지 예술경영, 예술정책에서 지역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지역문화에 관한 조사나 연구작업은 늘 행정구역상의 광역 또는 기초 자치단체가 단위가 되어 진행되어 왔다. 문예회관을 짓거나 도서관을 건립할 때에도 국가 단위의 예산보조나 통계는 항상 행정 단위로 이루어진다. 이는 지자체라는 단위가 예산 투여나 행정귀속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상식적으로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경기도 수원 화성 행궁 일대
이러한 일련의 양상에서 드러나는 흥미로운 점은 행정단위를 바탕으로 설치·설립되고 있는 문화재단, 문예회관 등이 지역문화를 대표하면서 ‘지역’이라는 개념이 균질한 단위들로 이해되고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정 단위로 지역이 균질화되면서 지역이라는 현장의 특성과 구체성이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예술 영역이 전문화 되어가는 만큼 역으로 그 역할 또한 제한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기존의 문화인프라나 예술정책의 전문성은 역설적으로 해당 지역의 역사, 전통, 개발, 지리적 특성, 정신적 유산이 축적되어 있는 지역성을 사고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경기 북부의 연천군은 대표적인 문화소외지역으로 자주 거론된다. 정기적인 공모사업 신청건수는 매년 열 건이 채 안되며 전형적인 군사지역으로 인식되어 있는 곳이다. 예술정책의 흐름대로 이곳에 많은 예술단체가 생겨나고 공연장과 미술관이 생겨나는 것이 지역문화 활성화일까. 아니면 어차피 사람도 많지 살지 않으니 내버려두는 것이 적당한 조치일까. 최근 이곳에 다목적댐 건립으로 수몰지역이 생겨난다고 한다. 주민들은 주거 이전 문제와 함께 보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삶의 근거를 박탈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문화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연장에 이들을 초대해 위로하고 빨리 기운 내라는 다분히 관성적인 격려로 충분한 것일까. 문화정책이 이런 일에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다행히도 한 예술단체가 수십 년 간 그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생활사와 공동체의 기억을 채집하고 자료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견 덧없어 보이는 시간과 기억의 퇴적물을 모아 보려는 이들의 작업은 예술경영, 예술정책의 안정된 구획을 벗어나 ‘지역’ 또는 ‘지역성’의 구체적 층위 하나를 겨냥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 조성되고 있는 광교 신도시 조감도
대도시는 어떤가. 수원시 동쪽에 자리한 구도심의 중심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이 있다. 수원시는 ';수원화성운영재단';을 설립하고 이 지역의 복원과 보존을 위해 구도심을 정비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약 200년 전 조선시대 도시 재현을 위해 낡은 성곽은 보수되고, 근대 이후 생겨난 성곽 주변의 건물들은 단계적으로 철거되고 있다. 반면 도심 반대쪽의 양상은 상당히 다르다. 수원시 서쪽 영통 지구나 이의동 지구(광교)는 지금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다. 얼핏 보면 서로 모순적인 보존정책과 개발정책이 한 도시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것을 신구의 조화라고 하는 걸까?

이는 관광자원과 부가가치를 목적으로 작동되는 국내 도시개발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지방의 도시는 ‘차별적 이미지 확보’를 위해 자원을 투자하며 문화적 관점은 부분적 고려대상이 된다. 과거의 유산은 시민의 삶속에서 융화되기보다는 관광자원으로 착출되어 엄격하게 보존되고, 그 반대편은 과거 거주민의 역사적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도시가 들어선다. 이는 예술정책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와 거의 비슷한 전략이다. ‘상품’이 될 만한 것은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나머지 얼룩들은 지워버리는 식이다.



여전히 작동하는 ‘격차’의 논리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지역의 문화 현황에 대한 조사는 행정구역을 단위로 균질한 항목들에 대해 이루어져왔다. 그러한 조사에는 문화예술 인프라라 일컬어지는 공연장, 미술관, 문화재단 등의 활동은 잡히지만 위와 같은 지역적 맥락들은 그물망에서 빠져 나간다. 즉 현재의 예술정책은 지역문화를 이야기하며 문화재단, 공연장, 전시장의 활성화 정도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문화예술 인프라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동기는 비용 절감과 같은 효율성의 추구, 정보 교류 등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성격의 네트워크는 일정 시간이 지나 각 단위의 경험이 축적되면 그 효용을 다하게 마련이다.

정작 지역문화에서 필요한 네트워크는 비슷한 기능을 지닌 단위들 간의 정보교환 통로라기보다는 지역이라는 통합적인 현장을 넓고 깊게 보기 위한 동기와 역할을 부여해주는 네트워크라고 보인다. 예를 들어 최근에 기초문화재단이 문화시설 운영이라는 주어진 역할을 벗어나 지역커뮤니티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생각해보자. 이런 시도는 시민의 문화향유권 확대라는 소극적 기능을 넘어 시민의 자발적인 문화적 욕구를 구체화하고 숙성시키려는 헌신적인 시도로 변질(?)되고 있다. 이런 노력 속에서 지역은 고유한 문화를 생산하고 발산하기 시작할 것이다. 앞서 얘기한 네트워크 모임에 가면 주로 정보교류 차원의 대화를 하게 되지만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역할을 확장하려는 열정이 빈번히 목격되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우리의 문화예술정책은 서구의 문화적 역량의 위력을 체감하고 국내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해보자는 문화적 ‘격차해소’의 시각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서구와의 외형적인 간격이 좁아지고 있다고 여겨지자 이 시각은 내부로 눈을 돌려 ‘지역 균등 발전’이라는 경향으로 전이되었다. 문제는 이 장치가 중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지역에서는 수신감도가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데 있다. 우선 정책의 대상이 불분명하다. 지역의 예술가군은 한정적이고 공연장과 미술관의 수도 제한적이다. 시민의 자발적 문화예술활동도 충분한 개체수가 확보되지 않는다. 이런 제한된 대상에서 예술정책의 ‘선택적 배제’라는 작동기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예술을 생산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인구는 사실 수도권과 도시주변으로 집중되어 있고 따라서 현재의 예술정책의 방향은 마땅한 대상을 지정하지 못한 채 중앙-지방 간 격차해소라는 논리만 반복해서 강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결국 지역 문화예술네트워크는 수도권에서 검증된 문화생산물의 수동적인 유통망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분화의 전문성을 넘어 통합의 비판적 사고를

(왼쪽부터) 지하철역, 지방도시 공터, 시골집 -일본 무용그룹 AAPA의 '극장 밖' 공연

공연장의 공연기획자는 평판 좋은 작품의 정보를 빨리 얻어내고 경제적인 가격에 구입하여 지역에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 반면에 지역의 정체성과 특이성을 발견해내고 접근해내야 하는 것도 이들 문화기획자와 예술경영인들의 미래에 주어질 역할일 수밖에 없다. 지역의 다층적인 문맥과 흐름, 축적된 기억들을 살려내고 이를 동시대 문화로 번역하는 것이 현재 구축되어 가고 있는 네트워크들의 잠재적인 방향이 아닐까. 지역에서는 중앙과 달리 문화, 예술, 복지, 교육, 전통이 혼합되어 분리해내기 힘들고, 따라서 전문화되고 기능적인 분화된 지식보다는 통합적이고 관용적인 마인드와 꾸준한 의지를 지닌 문화운동 같은 것이 점점 더 필요하게 될 것이다. 공연장, 미술관, 문화재단이라는 인프라에서 늘 표방하는 창조적 역할이라는 것은 ';더 전문적';인 것이 아니라 ';더 지역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을 근거로 한 일본의 한 공연단체를 소개한다. AAPA(Away At Performing Arts)는 젊은 무용그룹이다. 이들은 몇 십 년을 도쿄에서 떨어진 변방에 살다보니 항상 B급 공연과 작품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최고의 공연들은 늘 도쿄에서 벌어지고 풍문으로만 전해질 따름이었다. 그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예술가로 성장할 때까지 늘 변방의 인생이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고 한다. 그리고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니 일본 또한 유럽의 변방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내친김에 좀 더 생각을 전개시켜보니 아시아의 도시들은 독특한 풍경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같이 전통과 서구 영향의 혼합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발견과 깨달음 속에서 그들은 공연장이라는 안정된 장치를 벗어나 새로운 작업을 벌이게 된다. 해변, 빌딩지붕, 건물지하의 공조기, 식당 등을 찾아다니며 장소특정적인 작업을 구상하고, 해당지역의 사람들을 관객으로 춤을 추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역적 삶이라는 문맥을 통해 사고하고 바로 그 곳에서 예술적 자아를 체현해낸다. 여기에 기존 공연장이라는 제도장치는 역으로 소외되고 만다. 즉 지역의 구체적 삶에서 출발한 예술이 제도성과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관념적으로 표상하는 ‘지역’을 구체적 감성으로 자각하고 발견하는 이들이 아닐까. 어쩌면 지역은 체계화의 관성에 장악당한 우리의 시선 밑에서 유유히 흐르는 무엇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예술정책적으로 낙후된 지역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지역’을 보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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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형

필자소개
오세형은 연극분야에서 연출, 기획, 제작에 참여하였고, 2005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만남과 자극을 위한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 젊은예술가 집중육성 등에 관심이 많고 독일의 탄츠하우스같은 현장과 제도와의 흥미로운 만남을 주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08년 창간시부터 본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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