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간보다 중요한 것이 좋은 경영인 · 매개자를 세우는 일이다. 전국에 산재한 문화공간들이 제 기능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프로그래머 · 큐레이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전문인력의 부재나 결핍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지역 간 연대가 있다. 각 지역의 에술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넘치는 것을 나누고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한 시대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공미술은 10년 전만 해도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공공미술보다는 ‘환경조형물’이라는 이름이 공공장소에서의 미술을 대변했다. 1986년 이래 ‘건축물 미술장식품’으로 대한민국 도처에 자리 잡은 미술작품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정작 시민사회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을 찾아보기는 드물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 공공미술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한 세미나에서 공공미술 논의에 대해 부분적으로 반대한 적이 있다. ‘건축물 미술장식품 제도’를 공공미술제도로 바꾸자는 데는 완전하게 찬성이었지만 전국 각 지역에 공공미술위원회를 설치하여 이 제도를 운영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즈음에 영리법인에서 공공미술, 정확히 말하면 건축물 미술장식품 컨설팅을 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각 도시의 특성들을 잘 알고 있었다.




지역 공공미술위원회를 반대했던 이유

최정화 작 <과일나무> 경기오산 아파트 단지 내 설치 모습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건축물 미술장식품은 좋은 작품을 세우기보다는 각 도시에서 힘자랑, 돈자랑 하는 각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복마전이었다. 지역성이나 전문성은 안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한 도시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열심히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백방에 수소문해서 가능성이 높은 젊은 작가 몇 명과 인터뷰를 마친 상태였는데, 본부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그 도시의 유력자 모씨와 통화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이러한 작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고 설명했지만 그 유력자의 답변은 단호했다. 뜻밖의 일을 당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중진작가를 만나 일을 치르고 말았지만, 지금까지도 당시 공공기관의 장이었던 그의 행동을 잊을 수가 없다.

각 지역 단위에 공공미술위원회를 설치하고 공공기금을 조성해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뻔한 일이었다. 각 지역의 예술가 혹은 기획자들이 지역 전문가와, 주민, 건축가 등과 협업의 차원에서 대화하고 타협해서 공공영역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역부족인 상황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다. 물론 그 사이에 한국사회는 공공미술 부문의 좋은 경험들을 많이 축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어난 공공미술 담론, 2006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문화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각 지역 자치단체와 문화재단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들은 이전의 양상과는 사뭇 다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지역별 편차는 극심하다. 전문성에 입각한 일처리보다는 정치나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예술경영∙매개 분야의 현실은 여전히 희뿌연 안개속이다.






전문성을 질식시키는 학연, 지연, 인맥으로 얽힌 난맥상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합리성이 절실하다. 한국의 지방도시들은 아직 체계적인 영역분할을 통한 예술계 생태의 성립을 이루지 못했다. 인구 1백만이 넘는 거대도시가 다섯 개나 되는데도 서울을 제외한 지역 거점도시에서 예술생산과 매개가 자생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예술경영∙매개자 인력의 전문성 문제는 더 심각하다. 각 도시별로 예술 영역의 전문인력 양산 시스템은 이미 수요를 초과할 정도로 공급 과잉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예술생산을 소비로 연결할 매개 전문인력을 양산하는 시스템은 태부족이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예술 매개자를 길러내는 교육 시스템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예술 관련 대학의 학부나 대학원에서 매개자를 길러내는 데 매우 인색한 형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실기 관련 교수들의 자리를 줄이고 이론∙경영 부분의 학제를 만드는 일이니, 문제제기는 있으되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매개자들을 수용할 만한 기관이 없다는 게 악순환의 연속을 만드는 이유이다. 물론 매개자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인력의 지위와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전문 인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전문가의 영역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실력을 갖춘 인재를 채용해서 제대로 일을 풀어나가기보다는 학연과 지연, 인맥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지방도시의 예술 관련 매개인력들의 전문성은 그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예술매개자 전문인력이 일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는 강력한 중심주의 프레임 속에 있다. 물론 개발경제의 추진에 필요한 몇몇 지역은 경제적으로 수혜를 누린 사례도 있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제반 영역에 있어 결핍과 부재의 상황이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난 10여 년 전부터 도시 간 소통의 활성화,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른 제도의 정비 등에 따라 지역 간 편차가 줄어들 기미가 보인다. 이러한 조짐이 확고하게 자리 잡으려면 개별 주체들뿐만 아니라 공론의 장 차원의 각성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경영∙매개 관련 전문가들이 제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예술가(단체)들이 기획 · 참여하는 마을미술프로젝트(2009)



지역에 천착하고 지역을 넘어 연대하다

앞서 제기한 바와 같이 각 지역의 예술경영 전문인력이 부재하거나 부족하다는 인식은 다양한 문제해결 방식을 모색하게 한다. 아직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사례를 일반적인 관행으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역활동가로서의 예술인들을 들 수 있다. 각 지역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대안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예술가, 예술매개자들이 해당 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또는 국제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례들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고 있는 이런 공간들만 해도 인천과 서울, 안양, 안산, 수원, 원주, 청주, 청송, 부산, 광주, 진안, 대전, 공주 등 전국 각지에 분포해있다. 오히려 이들 공간은 벌써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한 공간들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공간과 개인들이 각 지역을 기반으로 커뮤니티 아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서울이라는 단일한 중심을 벗어나서 각 지역의 다양한 거점을 중심으로 국내외를 오가며 지역 간 교류 활동을 벌이고 있다.


<A4Demo> 전 이미지
지역의 예술을 얘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이 인프라의 부재이다. 하지만 물리적 인프라보다 중요한 것인 인적 인프라이다. 좋은 공간보다 중요한 것이 좋은 경영인∙매개자를 세우는 일이다. 전국에 산재한 문화공간들이 제 기능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프로그래머∙큐레이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전문인력의 부재나 결핍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지역 간 연대가 있다. 각 지역의 예술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넘치는 것을 나누고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것이다. 디지털과 인터넷, 그리고 영상이 매개하는 정보양식의 비약적인 발전은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는 데 큰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더 이상 지역의 경계가 치명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정보양식 아래의 예술경영∙매개자들은 서로의 부재와 결핍을 보충하고 대리하는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 열린 《A4Demo》전은 각 지역의 작은 힘이 열배 이상의 확산을 만들어냈다. 각 지역에서 섭외한 예술작품들을 함께 나눔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경우이다. 아트포액트(www.art4act.net) 주최로 열린 이 전시는 전국의 13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는데, 오프라인 전시공간을 기반으로 디지털 데이터를 공유한 온라인 네트워크 프로젝트로까지 확장됐다. 서울의 Lab39, 청주의 톡톡, 광주의 미나리, 부산의 아지트, 수원의 대안공간 눈 등 익히 알려진 공간도 있지만, 각 도시의 풀뿌리 문화지형을 이루는 새로운 공간들도 대거 참여해 변화 양상을 실감하게 했다. 의정부의 문화살롱 공과 대구의 작은공간 이소, 제주의 이디가갤러리, 대전의 카페이데, 춘천의 스페이스 공 등 새로운 매개공간∙매개자들의 활동이 눈에 띄었다. 안산의 스푼빌, 전주의 남부시장하늘정원 등과 같은 커뮤니티 스페이스도 있다.





소수의 운동을 넘어 관행과 제도가 되려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퍼져나가고 있다. 예술 영역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변화의 양상이다. 각 지역에서 나고 자란 예술인 또는 예술경영∙매개자가 그 지역의 전문가로서 도시나 공동체 차원의 예술적 소통을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주의(localism)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지역의 예술 전문가들이 다른 지역과의 네트워킹을 통해서 사유와 실천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을 상호지역주의(inter-localism)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소수의 운동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관행과 제도의 차원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교육과 시장, 개인, 기관, 관료사회가 예술분야의 지역 전문가들과 협업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전 지구화가 개인에게 내리꽂는 보편언어가 횡횡하는 시대이다. 지역성과 전문성의 동행은 지역적 사유와 지역적 실천에서 나온다. 그것이 전 지구적 보편언어 속에서 지역 공동체의 지방언어를 살리는 길이다.


[특집]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다른 기사 보기
① 메가프로젝트 ② 인프라 네트워크 ④ 현안과 제언1 ④ 현안과 제언2좌담


김준기

필자소개
김준기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가나아트] 기자와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 2006 부산비엔날레 전시팀장, 공공미술추진위원회 팀장, 경희대 겸임교수,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현재는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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