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로부터의 독립!

변길현 _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지방선거가 끝나고 전국적으로 지방정부가 교체되면서 인수위원회의 제1타깃이 되고 있는 곳은 아마 지자체가 설립한 지역 문화기관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이제 누구나 다 안다. 중앙정부가 바뀌면서 우리가 몸으로 배운 것들이다.

관에서 지원을 받는 예술기관이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니, 당연히 공공영역에서의 예술경영이라는 협의로 생각하여 ① 해당 기관의 내적 운영, ② 외적 프로그램의 효율적 운영이라는 두 측면에서 고찰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문화예술단체장을 포함한 투명하고 공정한 인력관리 및 프로그램 운영이 관건이다.

광주문화예술진흥위원회 전경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는 지역예술경영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무지막지하게 지하철공사와 지역예술단체를 싸잡아서 적자를 내는 곳이라는 기사를 내보낸다. 비교 대상이 아닌데 시 산하단체라는 그 실오라기 같은 공통점 하나만을 가지고 다 같은 적자단체이니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물론 그들의 목적은 그 단체의 기능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존문화예술단체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동시에 기존 단체는 무능하니까 새로운 커다란 조직으로 통폐합하자! 이러고 있는 중이다. 방향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지난 정부 때에는 왜 아무 말도 못했는가? 낙하산 인사나 불투명했던 업무에 대해 왜 아무 말도 못했는가. 4년 후, 8년 후에도 이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지역에서의 예술경영은 지역의 권력들에게서 독립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간섭하고, 통제하고, 청탁하고, 압력을 넣고, 뜯어내려는 무지막지한 괴물들에게서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상식과 자연스런 문화가 되는 것이 지역예술경영의 요체이다.





변길현

필자소개
변길현은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2001년부터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 중이다. 감동이 있는 전시기획을 추구하며 문화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2010년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수여하는 제1회 올해의 젊은 큐레이터 상을 수상한 바 있다.






행정 부재와 왜곡이 문화예술을 질식시킨다


박정구 _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지방자치단체 중에 ‘예향’이니 ‘문화예술도시’니 하는 구호를 내걸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이 그들이 제시하는 ‘잘 살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구호를 내건 일련의 사업들이 과연 문화예술적이라거나, 혹은 지방자치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포항시립미술관 전시실문화예술행정의 부재와 왜곡은 국가의 문화예술, 또는 지역문화예술을 질식시키고 고사시키는 가장 큰 요인의 하나이다. 담당기관은 모든 문화예술활동을, 뻔한 ‘향토음식’과 ‘향토주’가 질펀하고 고막이 터질 듯한 앰프소리가 난무하는 시민큰잔치와 동질화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수치적 결과’를 문화, 관광, 체육을 하나로 삼는 시스템의 여과를 거쳐 문화예술도시의 치적으로 재포장하기에 급급하다.

전문행정의 부재는 다른 한편 관변 ‘유사 문화예술인’과 행정인·정치인의 공생을 낳음으로써, 지역문화예술을 육성하기는커녕 획일화, 하향평준화하며 여러 가능성의 맹아들을 좌절시킨다. 의당 자유롭고 다양해야 할 문화예술은 조제되고 제한되어 소비자에게 전달됨으로써,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의 이해나 진지하고 다양한 접근과 향수를 어렵게 한다. 끈적하게 살을 비벼가며 블록버스터 전시나 떠밀려 보고 나와 흡족해하는 ‘서울특별시민’이나, 시민큰잔치에 동원되는 지역주민이나 그다지 다를 바 없다. 다만 서울은 인구가 많고, 문화예술 관련자들이 많이 모인 만큼 다양성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소비자에게 문화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폭넓게 이해하고 즐기게 하도록 생산자를 연결하고 생산자의 창작을 고무하는 예술경영의 근본적인 의의와 그 전제인 문화예술의 의미가 먼저 고려되고 실현될 수 있는 토양이 절실하다. 서울과 지역을 막론한 우리의 현실이다.





박정구

필자소개
박정구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를 받고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거쳐 현재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관행을 뚫는 창조적 균열과 혼돈

백종옥 _ 아트스페이스 알렙 대표


나는 지난해 목포시와 문화원으로부터 문광부에서 공모한 문전성시프로젝트 사업 추진을 위한 프로젝트매니저로 위촉되었다. 그러나 온갖 갈등 속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두 달만에 사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사건의 전말은 목포시의 일방적인 사업정지와 50퍼센트가 넘는 터무니없는 사업내용 변경 요구에 대한 프로젝트매니저의 항의성 사임이었다. 그런데 그 배면에는 예산 집행이 불투명하고 사업예산의 일정부분이 리베이트로 거래되는 오랜 관행이 놓여 있다는 것이 주위에서 내게 전해준 이야기다.

아트스페이스 알렙 <연습-청춘불패> 전 인구 약 25만의 목포라는 지역사회는 너무나 좁다. 정말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선후배고 친인척이고 아는 사람 천지다. 이런 곳에서는 부정부패 앞에서 방관하거나 관대해지면서 공범이 되기 쉽다.

눈에 드러나는 사업만 좋아하는 지자체장이 루미나리에, 인공폭포, 해양분수 등에 수백억의 예산을 사용하는 곳, 그에 비해 예술활동 지원예산은 코딱지 만한 곳, 관이 만든 외관이 번지르르한 미술관들엔 제대로 된 큐레이터 하나 없이 퇴직한 늙은 공무원들만 앉아서 알바를 하는 곳, 청년작가들의 씨가 말라가는 곳, 그러면서도 예향이 아니라고 비판하면 격하게 반응하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곳이 목포다.

특히 지역에서 힘 있는 미술단체들은 상당히 정치적이다. 이권사업엔 어김없이 관과 밀착하여 기득권을 챙긴다. 또한 지역의 몇몇 유능한 &lsquo;선수&rsquo;와 &lsquo;업자&rsquo;들은 예산이 큰 사업엔 카멜레온 같은 모습으로 물밑작업을 열심히 하여 자신들이 지역의 실세임을 과시하기도 한다. 나는 이들을 일명 &lsquo;토호세력&rsquo;이라 칭한다!

나는 애증이 교차하는 고향 목포에서 지금 실험을 하고 있다. 관의 형식적인 지원금도 받기 싫어서 순수하게 개미후원금으로만 대안공간을 자유롭게 운영해보는 중이다! 목포에서 대안공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기존의 보수적인 토호세력들의 관행과는 다른 활동으로 지역문화에 창조적인 균열과 혼돈을 일으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미시적인 실상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거시적인 예술정책이나 비전도 공허한 서류뭉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백종옥

필자소개
백종옥은 홍대 회화과와 베를린 종합예술대학교의 조형예술 마이스터쉴러 과정을 마쳤다. 기획자로서 물만골프로젝트 등 다양한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경기문화재단의 「창작촌 활성화사업 연구보고서」집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책포럼 코디네이터로서 문화예술생태계의 정책적 고민을 수렴하는 일을 하였다. 현재 목포에서 &lsquo;아트스페이스 알렙&rsquo;을 운영하며 블로그 &lsquo;미술생태연구소&rsquo;를 통해 발언하고 작가로서의 활동도 조용히 해나가고 있다.






견고한 유리벽에 갇히다

김해곤 _ 바람예술제, 섬아트문화연구소 연구소장


나는 제주가 고향이 아니다. 아니 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는 8년 전부터 제주에 정착해서 전시기획과 창작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결코 쉽지는 않다. 제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제주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8년 동안 제주의 타인으로 살고 있다.

<Peace 희망> 김승영 작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사업 공모에 선정된 &lsquo;Wind Art Festival-결7호 작전&rsquo; 사업을 진행할 때다. 공모는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진행했지만 예산은 중앙과 지역이 매칭하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중앙에서 협조를 구해도 지역에서 매칭 예산을 따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사업비의 부족으로 규모를 줄이고 대상지를 옮기고 자비를 털어 넣어야 했다. 5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 단위의 공모사업마저도 이러하니 지역의 기금 사업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지방정부와 정치적으로 협력관계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지역예술계와 돈독한 인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역 예술계와 인맥을 가지고 있더라도 견고한 서열에 순응해야 한다. 지역에는 이렇게 견고한 유리벽이 있다.

물론 이러한 폐쇄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들이 공론화되지 못한다. 예술(경영)계의 신진들은 견고한 유리벽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지방정부나 공공기관의 담당자들은 암묵적인 정치적 결정에 무기력하다.

제도가 필요하다. &lsquo;순수예술창작지원&rsquo;과 같이 뭉뚱그리지 말고 좀 더 다양한 가치,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진작할 수 있는 제도 말이다. 지원대상도 중견과 신진을 구분하는 등 좀 더 세분화가 필요하다. 사업의 내용도 세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최근 공공지원에서 지역으로 이관되는 사업이 적지 않은데, 우려가 크다. 중앙단위의 지원이 정체된 지역예술계에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하나, 최근의 정책의 변화가 지역의 폐쇄성을 더 강화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김해곤

필자소개
김해곤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1998년~2003년 (사)21세기청년작가협회를 결성해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강깃발미술전》(1998)을 시작으로 ';탄광촌미술관';(2000)과 ';한일월드컵공식문화행사-Flag Art Festival';(2002)을 기획하였다. 2003년 제주에 내려와 Wind Art Festival(바람예술제)을 만들어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는 설치미술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도시재생, 상업적 흐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응 필요


김병수 _ 사회적기업 이음 대표

전주 비빔사운드페스타 2010 문광부 컨텐츠융합형 관광협력사업
한옥마을과 전주 구도심은 택지개발로 상징되는 외곽 집중 개발로 차별받아 왔지만, 지금은 한 해 방문객 300만 시대를 실감하는 전주의 문화명소로 성장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문화시설이 들어서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상업적 기능과 결합되어 새로운 문화적 수요를 불러들이고 있다. 주거, 상업, 공장, 업무 등 도시계획상 용도용적제도의 규율로부터 해방된 열정과 흥미를 발견한 사람들은 전통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이 새로움은 지역 문화 전략의 독자적 성격을 특징짓는다.


물론, 아트폴리스사업, 도시재생사업단 등 행정 중심의 일 시스템은 컨텐츠 부족, 추진방식의 경직성, 예산경직성, 문화 전문 인력 소외, 가시적 성과 위주의 사업추진, 비현장성, 공급자 중심 등 고질적 문제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현실도 만만치 않다. 한옥마을은 낙후된 주거지역에서 매력적인 상업지역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지만, 마을이라는 정체성(문화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변화를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상업적 현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대응이 필요하다. 싫든 좋든, 상업적 흐름을 현실로 놓고, 한옥마을이 도시 내 문화산업지대로 성장하는 것에 대한 전망을 가다듬고, 좀 더 현실적이고, 독자적인 길 찾기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낡은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시선, 기능을 잃고 생애를 마감하는 공간에 대한 해석의 힘, 지난 시간과 현재적 상황을 결합한 사유, 사람들의 활동과 역할을 고려하는 관계지향적 일들이 창조적인 에너지를 만든다. 문화와 도시를 접목한 활동은 기존의 국가계약법, 발주시스템, 사업추진체계 등의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으며, 문화예술의 장르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열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김병수

필자소개
김병수는 1997년부터 만 4년간, 경실련에서 건설부조리 이슈 파이팅, 도시정책모니터, 도시아카데미, 연구사업 등에 관여했다. 2002년 &lsquo;공공작업소 심심&rsquo;을 만들고 도시와 문화의 경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2004년부터 전주한옥생활체험관 관장, 사회적기업 이음의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도시공동체의 자기 전망


신동호 _ 리서치21 대표, (사)인문사회연구소장


왜 도심재생 등과 관련된 사업들은 가로경관 디자인 등 물리적 인프라 조성사업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을까? 도심의 자원, 장소성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해석하고, 주민, 상인, 도심을 이용하는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이들과 함께 하는 도시공동체의 비전을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물리적 인프라 조성사업을 하기 이전에 도심의 근현대적 자원을 해석하고, 주민을 이해하고 욕구를 파악하고, 도심의 콘텐츠와 주민의 일상이 만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대구도심재생계획도도시공동체를 지향하는 다양하고 가치 있는 실험들을 가로막는 다양한 기제(제도, 정책 등)들 때문일까? 프로그램 실행주체들의 내면화된 관습, 도시공동체에 대한 자기 전망의 부재 때문이지는 않을까?


대구 원도심인 종로, 진골목, 장관동 일대에서 도심재생사업의 일환(국토부 지원, 살고싶은도시만들기)으로 가로환경 개선과 더불어 주민과 함께 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간 가로환경 개선 및 프로그램과 관련된 사업 계획과 실행에서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고 조직하지 못하고 일부 학자들의 탁상계획과 실행으로 인해 다소간 몸살을 앓고 있으나 2차년도 사업을 맡은 &lsquo;살고싶은도시만들기지원센터 2기&rsquo;에서 현실적인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몇몇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lsquo;지루한 일상에 부는 바람, &lsquo;점심의 인문학&rsquo;, &lsquo;근대건축물 오픈하우스&rsquo; &lsquo;인물로 보는 대구근현대사&rsquo; &lsquo;어르신들의 다방의 숨결, 종로카페&rsquo; &lsquo;주민과 예술가가 만나는 즐거운 상상, 레지던시 기획단&rsquo; 등 지금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어떠한 결실을 맺을지, 10월 &lsquo;종로, 진골목, 장관동 마을잔치&rsquo;가 기다려진다.


신동호

필자소개
신동호는 각종 평가와 컨설팅을 하는 리서치21의 대표이며, 인문학적 가치를 실현하는 프로젝트들을 만들고 실행하는 (사)인문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문화위원을 지낸 바 있으며, 지역현장을 다니느라 &lsquo;길 위의 인생&rsquo;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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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메가프로젝트 ② 인프라 네트워크 ③ 전문성과 지역성 ④ 현안과 제언2 ⑤ 좌담(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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