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B급 작가' 강홍구 씨의 발제는 씁쓸한 자기 고백으로 채워져 있었다.

“작가로 살아남는 것은 좋은 작품을 해서 그것을 남긴다기보다는 삶 자체를 견디
는 것에 가깝다”
“24년 동안 작가로서 철들면서 깨달은 것은 미술의 무력함이었
다. ‥‥‥ 진짜 남은 것은 시스템뿐이다.”

자칭 ‘B급 작가’인 강홍구 씨의 발제는 씁쓸한 자기 고백으로 채워져 있었다. “결국 견디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라는 결론에 공감했지만, 글 곳곳에 드러난 작가의 고통스런 내면을 복기하는 것은 적잖이 괴로운 일이었다. 호황을 앞세워 밀어닥친 미술시장의 습격 앞에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다시 엄습한 불황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작가들의 혼란상이 비치는 듯도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 극장에서 열린 심포지엄 "백 투 더 베이직 : 한국미술 어디쯤 가고 있나"란 제목으로 열린 일주학술문화재단의 심포지엄은 강 씨의 고백 같은 미술현장의 생생한 문제 의식들을 접할 수 있는 자리였다. 강홍구 씨를 비롯해 비평가, 미술사가, 저널리스트(필자도 질의자로 나갔다)들이 청중들과 같이 현재 미술동네에 얽힌 민감한 현안들에 대해 날 것 그대로 소신들을 털어놓았고, 대안에 대해서도 격의 없는 담론들을 펼쳤다.

국립현대미술관 개혁, 미술비평 활성화, 미술사와 미술시장의 갈래 나누기 등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필자에게 가장 절실하게 와 닿은 것은 시장의 논리가 활개치는 지금 시대에 이 땅의 미술과 작가의 정체성을 어디에 자리매김시킬 것인가에 대한 참가자들의 진단이었다. 실제로 2000년대 이래 메이저 화랑을 위시한 거대 자본에 의해 우리 미술판은 젊은 작가들의 팝적이고 실험적인 작품까지 상품으로 포장되고 있다. 작가는 사업가처럼 약삭 빠르게 영리와 인간 관계를 챙겨야 인정받고 생존한다는 현실을 괴롭게 절감해왔다. 과연 이 시대 올바른 작가의 역할 모델은 무엇이고, 미술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미술의 상업화, 시장화의 대세를 인정하는 쪽이었지만, 기존의 권위와 제도에 무언가 비판하고 딴지를 거는 미술의 본질적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물론 미세한 견해의 차이들은 있었지만.

비평가 강수미 씨는 “미술 시장 활성화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미술판에서 자본주의 시장화를 당연히 선험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상상력이 세계인 미술은 자본주의 시장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때 좋은 문화판, 좋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미술사가인 김영나 서울대 교수도 “미술시장의 상품은 주식과 달리 취미, 취향이 굉장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측면에서 취미, 취향 측면의 좋은 가치들을 살려 양질의 작품들을 유통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발제했던 강홍구 씨는 좀더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지적들을 작가들에게 던졌다. 그는 “미술에 대한 환상은 깨졌다. 시각적 오락, 산업화한 미술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글로벌한 미술에 얽매이지 말고, 작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했다. 지역에서, 구체적인 현장에서 작가 스스로의 모습과 작업을 생각하라는 것, 바닥에서 존재 자체를 “딥 씽킹”하라는 것이었다.

원론적이긴 하지만 새삼스럽게 와닿는 이들의 지적들을 들으면서, 갑작스런 불황으로 나락에 빠져든 요즘 미술시장의 작가들을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금융위기로 미술시장이 얼어붙이면서 작가들의 전시가 취소되고, 그렇게 모셨던 작가들 앞에서 표정을 바꾸는 화상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화상들의 주문에 따라 열심히 잘 팔리는 스타일을 공장제로 생산했던 어린 작가들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는 말도 들린다.

경기 불황의 파고 속에서 시장의 거품을 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업 방향을 재점검하고, 확고한 주제의식을 벼리는 호기가 될 수 있다. 시장에 휘둘리고 자의반 타의반 식으로 부풀려지고, 허공에 떴던 작가 의식의 거품 빼기도 필요하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누군가는 역할 모델을 찾기 전에 작가들 스스로 자기 자신만의 일하는 시스템과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화상이나 선배 작가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기 전에, 시장의 부침에 가슴을 치기 전에, 작가로서 자기 의식과 역량을 투명하게 직시하면서 작업반경을 리모델링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작가는 본질적으로 자본과 시장의 부속물이 아니다. 시장의 눈치를 보고 쓸려갈 수도 있지만, 문예비평가 아도르노의 말처럼 ';쓸모 없는 것';을 만들어 현실에 딴지를 걸고 비판적 각성을 이끄는 촉매제로도 얼마든지 구실할 수 있는 존재다. 역시 문제는 시대 의식과 상상력이다. 극도의 정치 경제적 혼란기였던 1920년대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혼돈의 시대상을 바탕 삼아 표현주의, 바우하우스 디자인 같은 기념비적 예술 사조를 일궈낸 문제적 작가들이 쏟아젔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형석 필자 소개
노형석 편집위원은 홍익대 대학원(미술사)를 수료했고,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시사주간지 한겨레21 문화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겨레신문 문화부 대중문화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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