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미술시장의 규모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양상들이 드러나고 있다. 아트-비즈니스맨으로서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 작가 발굴에서 스타 생산으로 변화하는 갤러리의 역할, 랜드마크로 문화관광자원으로서의 미술관, 블록버스터 전시의 등장, 아트페어와 경매 활성화 등은 시장 규모의 확대를 넘어 미술시장의 구조에 현격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집 '미술시장은 미술산업으로 진화할까'는 각 분야별 변화가 미술시장의 구조에서 갖는 의미를 분석하고 미술시장의 산업화 가능성을 진단한다. 연재순서: ① 제작시스템의 변화미술작가들은 더 이상 '고뇌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주식회사 예술가'의 CEO가 된다. 직원들은 CEO의 아이디어를 상품(작품)으로 제작, 홍보, 관리, 판매하거나, 이미 명성을 얻은 작품의 유형을 반복 재생산하는 단순(그러나 반복을 통해 고도의 테크닉을 갖춘) 노동자일 뿐이다. 때때로 CEO와 함께 새로운 작품의 기획안을 제출할 수도 있다. 이 경우 CEO는 아이디어의 채택 여부와 제작 점검, 그리고 완성된 작품에 최종 승인의 행위인 사인을 할 뿐이다. CEO로서 예술가의 사인은 그 자체로 신화화되는 과정을 거쳐 '제품'은




“미술(Fine Art)은 산업화 되었는가? 또는 산업화가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명쾌하지 않다. 문화산업의 정의와 영역에 대체로 미술을 포함시키고 있지만 영화산업, 스포츠산업, 공연산업, 음악산업처럼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산업’이라는 용어가 유독 ‘미술’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기피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술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한국의 미술시장이 산업화를 언급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고, 유통구조가 너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외형적 특성보다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미술이 갖고 있는 본질적 특성 때문이다. 사실 미술은 산업화의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재생산’이 어려운 장르다.

특히 대량생산을 전제로 한 복제와는 거리가 먼 고가의 원본(Original) 거래가 생명이다. 문화산업의 생산자가 미디어를 통한 대량 복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미술시장의 생산자는 ‘단일 품종에 의한 제한 생산’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둘 간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미술시장이 “상대적으로 소수인 지배계층의 높은 지불의사에 의해 유지”되는 반면, 문화산업은 “상대적으로 다수인 대중의 낮은 지불의사의 합에 의해 유지”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다. 이처럼 미술시장의 근본적인 특성은 산업화의 진척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술품과 문화상품의 특성은 상당 부분 중첩되기도 한다. 특히 문화산업에서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스타가 활용되는 현상은 동시대 미술시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마치 헐리웃 영화산업처럼 ‘비용 발생→불확실성 증가→위험 회피 수단으로 스타작가 활용→비용증가…’라는 스타시스템 순환구조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미술관의 운영 형태는 점차 소장품 수집, 보관, 전시, 교육이라는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도시와 국가의 문화관광산업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다국적화, 기업화 되어가고 있는 갤러리들은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대신 스타작가를 ‘생산’하고 ‘스카우트’한다. 경매의 경우는 부언할 필요도 없이 그 자체로 산업적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창작’에서 ‘상품 제작’으로

최근 생산자로서의 예술가 또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예술가로서의 문학가와 제작자로서의 출판사, 예술가로서의 뮤지션과 제작사로서의 음반사가 구분되는 것과 달리 미술에서는 생산자는 곧 예술가이다. 그러나 전 세대의 예술가들이 ‘작품을 창작’했다면,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은 ‘상품을 제작’하면서 제작방식에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로 어쩌면 다소간의 구조조정이 있었겠지만 제프 쿤스(Jeff Koons)라는 미국 현대미술 작가의 스튜디오에는 1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그중에는 개인비서부터 재정, 홍보, 마케팅, 고객관리파트 등이 있으며 대부분의 직원들은 작품의 기획, 제작, 설치를 담당하고 있다. 사업가적인 감각과 키치적 대중문화를 차용한 작품 덕택에 앤디 워홀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는 제프 쿤스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아이디어맨이자 아트-비즈니스맨으로 간주된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를 미술계의 선구자는 아니지만 ';슈퍼스타';라고 인정하고 있다.

Jeff Koons <Hanging Heart>그의 작품은 현재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생존 작가 중에서 거의 최고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한 예로 고작 2.7미터 크기의 <매달린 심장>(Hanging Heart)은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 23.6밀리언달러(한화 약 270억 원)에 낙찰됐다. 하이크롬 스테인리스스틸에 마젠타로 칠해진 이 작품의 실제 제작비는 아마 넉넉하게 잡아도 2억 원이 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술시장에서 이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작품은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제프 쿤스의 작품은 작가가 단지 아이디어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예술가와 차이가 있다. 상품(작품)의 제작(창작)은 아마도 많은 부분 작가가 아이디어를 낼 것이고, 때때로 스튜디오에 있는 직원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이제 제프 쿤스는 1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제작비 대비 수천배의 이익을 창출하는, 최고가의 문화상품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의 CEO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미술작가들은 더 이상 &lsquo;고뇌하는 예술가&rsquo;가 아니라 &lsquo;주식회사 예술가&rsquo;의 CEO가 된다. 직원들은 CEO의 아이디어를 상품(작품)으로 제작, 홍보, 관리, 판매하거나, 이미 명성을 얻은 작품의 유형을 반복 재생산하는 단순 (그러나 반복을 통해 고도의 테크닉을 갖춘) 노동자일 뿐이다. 때때로 CEO와 함께 새로운 작품의 기획안을 제출할 수도 있다. 이 경우 CEO는 아이디어의 채택 여부와 제작 점검, 그리고 완성된 작품에 최종 승인의 행위인 사인을 할 뿐이다. CEO로서 예술가의 사인은 그 자체로 신화화 되는 과정을 거쳐 &lsquo;제품&rsquo;은 &lsquo;작품&rsquo;으로 공인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이재효 작가의 설치작품현대미술시장에서 스타작가들의 작품은 이처럼 &lsquo;수공업적 창작예술품&rsquo;에서 &lsquo;공장에서 제조되는 생산품&rsquo;으로 변화되었으며, 이러한 제작방식의 변화는 미술이 산업화되는 징후를 생산자의 측면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물론 아직 99%의 예술가들은 여전히 전통적이고, 수공업적인 창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아직 스타시스템의 자장 안에 있지 않다. 이 말은 전통적인 창작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스타작가가 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꾸로 국제적인 스타작가가 되는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공장제작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부족한 공급을 해결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제프 쿤스를 예로 들었지만 이 같은 공장제식 생산 방식은 비단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스타작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작가 중에서도 수요가 어느 정도 되는 작가들의 경우 대부분 적게는 수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의 조수들과 함께 작품을 제작한다. 이같은 방식은 이재효나 홍경택 등 의외로 많은 작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가치사슬의 확장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선 일본작가 다카시 무라카미아시아의 앤디 워홀로 불리우는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는 한발 더 나아가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라는 공장형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그는 미술에도 연예기획사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설립한 카이카이 키키를 통해 재능 있는 작가를 지원해주고, 젊은 작가들의 분출하는 에너지를 튜닝해준다.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24시간 교대로 제작하는 것은 물론, 작품에서 끌어온 콘텐츠를 문화상품으로 확장한다. 열쇠고리, 스티커, 티셔츠 등 다양한 아트상품 뿐만 아니라 마스코트 개발과 제작, 출판, 큐레이팅까지 미술분야의 종합연예기획사의 형태로 진화한다.

미술이 콘텐츠산업으로 가치사슬을 확장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문화산업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클림트의 저 유명한 <키스>를 인쇄한 아트포스터와는 다르다. 피카소, 마티스, 고흐처럼 미술사에 올라간 거장의 작품을 미술시장 밖에서 아트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작품의 제작 단계에서부터 아트상품으로 만들어질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방식과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권기수가 적절한 사례가 될 것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작품 캐릭터인 &lsquo;동구리&rsquo;로 열쇠고리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시작했던 권기수는 현대백화점, 뭉클, 소너비 등과 함께 아트상품을 본격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권기수 작가의 아트상품애니메이션, 만화, 게임과 같은 일본의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오타쿠 1세대 작가인 무라카미는 2003년 S/S 시즌에 마크 제이콥스와 손잡고 루이비통 컬러모노그램 시리즈를 기획,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루이비통은 종종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하는데, 2008년 S/S 런웨이를 간호사 복장을 하고 망사로 입을 가린 모델들이 장식했다. 이 괴기스럽고 섹시한 이미지는 소더비 및 크리스티 경매에서 연신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의 <간호사 시리즈>(Nurse Joke Series)와 협업한 결과다. 국내에서도 루이비통 부티크를 디스플레이한 김홍석이나 에르메스 쇼윈도를 제작한 배영환 등 명품 브랜드와 협업하는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스타작가가 되기 위한 지름길 중 하나가 명품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이 되었다. 무라카미는 노골적으로 스타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명품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루이비통 패션쇼에 선 리처드 프린스의 <간호사 시리즈>


미술은 산업화되고 있는가?


생산자로서의 예술가가 산업화되는 현상들은 기본적으로 스타시스템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20세기 이후 가장 중요한 예술운동이 ';명성';이라고 할 만큼 이제는 예술이 아니라 명성이 중요해졌다. &ldquo;명성이 예술의 일부라고 생각&rdquo;하고, &ldquo;유명해지고자 하는 욕망은 예술에서는 아주 근본적인 욕망&rdquo;이라고 얘기하는 데미안 허스트나 급진적인 현대미술가로 명성을 일단 획득하게 되자 국제적인 명성, 부, 여성들의 숭배가 뒤따랐다고 평가되는 피카소, 자기파괴적인 죽음으로 신화화를 완성한 바스키아나 고흐, 그리고 현대적 개념의 스타작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앤디 워홀에서 볼 수 있듯이 명성의 핵심은 곧 상업적 가치다. 사실 미술이야말로 &ldquo;생산자의 명성이 곧 생산품인 작품의 경제적 가치와 직결&rdquo;되기 때문에 미술시장은 문화산업의 생존전략으로서의 스타와 스타시스템의 영향력과 파급력이 가장 크고 직접적인 분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명성이 예술을 대체하고 스타가 거장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ldquo;스타를 만들어 내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작업,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경제적 이윤을 노리는 일련의 메커니즘&rdquo;인 스타시스템이 미술시장에서도 나타나는지의 여부는 조금 다른 문제다. 미술시장에서 분명 스타작가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시스템으로서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진전된 논의를 찾기 힘들다. 이처럼 미술시장의 생산자로서의 예술가에게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산업적 징후들을 확실히 동시대 예술과 예술가들을 구분짓게 한다.

그러나 생산 방식의 변화와 스타시스템으로 편입되어가는 현상 등이 예술가들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으로 전환되고 있는지, 아니면 몇몇의 단편적이고 특수한 현상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lsquo;미술을 산업으로 볼 것인가&rsquo;, 또는 &lsquo;산업화가 진척되고 있는가&rsquo; 하는 질문은 미술의 내재적, 전통적, 근본적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하는지 아니면 문화산업과 스타시스템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하는지의 가치판단과 맞물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집] "미술시장은 미술산업으로 진화할까" 다른 기사 보기
② 매매시장의 변화 ③ 관람시장의 변화 ④ 좌담


윤태건

필자소개
윤태건은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삼성문화재단 환경미술팀과 카이스갤러리 디렉터, 아르코주빈국조직위원회 사무국장, 바다미술제 전시팀장, 미술은행 운영위원, 국립현대미술관 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THE TON의 대표이자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경희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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