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미술시장의 규모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양상들이 드러나고 있다. 아트-비즈니스맨으로서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 작가 발굴에서 스타 생산으로 변화하는 갤러리의 역할, 랜드마크로 문화관광자원으로서의 미술관, 블록버스터 전시의 등장, 아트페어와 경매 활성화 등은 시장 규모의 확대를 넘어 미술시장의 구조에 현격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집 '미술시장은 미술산업으로 진화할까'는 각 분야별 변화가 미술시장의 구조에서 갖는 의미를 분석하고 미술시장의 산업화 가능성을 진단한다. 연재순서: ④ 좌담



지난 10년간 미술시장의 팽창 속에서 이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의견이 제출되어 왔다. 시장에 대한 전망, 시장 확대의 당위성, 시장 확대를 위한 여러 분석과 제언부터 그에 따른 부정적 양상에 대한 우려까지 시장에 대한 담론 역시 급속히 팽창했다. 특집 “미술시장은 미술산업으로 진화할까”는 그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지금 전개되고 있는 변화를 긍정과 부정이라는 가치판단을 넘어 미술계 전반의 변화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위해 마련되었다. 아직은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는 ‘미술산업’을 제안했던 것도 시장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정돈해보자는 취지이다.



앞서 게재된 세편의 기고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미술시장에도 산업화의 징후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산업화’를 논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부터 이러한 징후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언까지, 그런가 하면 이미 ‘산업화’의 폐해가 노출되고 있다는 진단까지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고 있다. 금융위기와 함께 지난 10년간의 시장 팽창이 일정한 조정기를 맞이한 지금이야 말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기이다. 미술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토론자들의 다양한 견해에 대한 일독을 권한다.

일시 | 2010년 8월 19일
장소 | 대학로 카페 장
참석 | 심상용 _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
윤태건 _ THE TON 대표, 본지 편집위원
홍호진 _ UNC갤러리 대표
임근혜 _ 전 경기도미술관 큐레이터
사회 | 양현미 _ 상명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본지 편집위원



시장 확대의 음영을 어찌할 것인가




양현미(이하 사회) 문화정책에서 미술은 창조산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미술을 산업이라 부르는 데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부감도 큰 것 같다. 하지만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미술시장의 확대와 함께 창작, 유통, 소비의 가치사슬 체계에 이전과 다른 구조적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지난 10년의 변화를 짚어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홍호진(이하 홍) 2년간 시장조사를 거쳐 4년 전 갤러리를 오픈했다. 6년 정도 지켜봤다. 내 경험이 스탠더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매매시장은 확대되었는데 갤러리, 미술관, 작가 등 시장 구성 요소들 간에 불신의 벽이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컬렉터들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은, 5~6년 동안 컬렉션 했는데 뭔가 발전하는 느낌이 안 든다는 것이다. 작품을 사는 데에는 투자 목적도 있지만, 안목을 기른다든가 하는 다른 부가가치를 얻고 싶은 목적도 있는데 그런 걸 해결해주는 곳이 없다고 한다. 또 갤러리와 작가 등 시장 주체들의 역할이 무분별해지면서 많이 방황하게 된다. 그런 세세한 것들을 간과하고 시장 확대 일변도로 가다보니, 챙기지 못하는 것이 생기고 구성원 간에 불신의 벽이 점점 커간다고 느낀다.



임근혜(이하 임) 시장이 확대되고 그에 따라 경제 인프라가 탄탄해지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런데 시장친화적인 작품이 강조되고 취향이 편향되는 것에는 문제가 많다. 이런 현상에서 공공기관이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이 중요한데,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역할이 미약하다. 공공기관마저 시장논리에 덩달아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실험적인 작업을 지원하거나 미술사적 의미를 담은 기획전보다 상업적인 블록버스터 전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공공미술관 스스로의 위상을 실추시킨다. 한창 전속제도가 시도될 2007년 무렵 시장 활황기에는 미술관에서 작가에게 전시 참여의뢰를 했을 때 소속갤러리에서 미술관의 기획서를 심사하고 거절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최근에는 큐레이터나 평론이 아니라 증권 애널리스트 같은 역할을 하는 미술시장 전문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공공미술관 큐레이터들이 계약직화 되면서 계약기간 만료 후 옥션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볼 수 있다. 반대로 상업화랑 출신이 공공기관에 영입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영역을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의 등장으로 봐야 할지 공공과 시장의 경계 붕괴로 인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올해 LA현대미술관(MoCA)에서 상업화랑 출신인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를 관장으로 영입했는데 상징적인 사건이 아닌가 한다. 미술의 전 부분이 상업영역의 영향 하에 있다.



윤태건(이하 윤) 지금 문제로 지적되는 것들은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하는 판단에 앞서 산업화의 징후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전까지는 예술을 ‘향유’했다면, 지금은 투자, 상품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면서 예술을 ‘소비’하는 형태로 변화됐다고 바라볼 수 있지 않나. 예전에는 작품의 선택 기준이 인맥과 향수가 근거였다면 지금은 어떤 작품이 잘 팔리느냐, 어떤 작가가 더 많이 추천되냐 등의 정보를 토대로 한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이다. 또 영국이나 미국 등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갤러리의 전속작가 시스템에서는 미술관의 기획을 갤러리에서 검토하는 것이 당연하다. 갤러리가 작가를 쥐고 흔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갤러리의 역할이라는 것이 작가라는 상품의 가치를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을지 검토하는 것이기에 개입이 들어간다. 지금보다 더 시장이 확대되면 그런 양상은 더 보편화될 거다.



심상용(이하 심) 먼저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 시장과 산업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시장은 동굴벽화시대부터 존재했던 교환시스템이다. 산업은 사전적 정의를 보자면 물건을 효과적으로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산업화된다는 것은 짧은 시간에 최소한의 노동과 비용으로 최대의 부가가치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효율성, 과도한 경쟁, 생산지상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지금 주제가 ‘산업화가 될 것이냐’ 인데 도리어 지금 충분히 산업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미술계도 박지성과 김연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담론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런 파격적 사건이 없다면 발전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국가 정책도 그렇다. 공공미술관장직에 CEO를 임명하고, 한꺼번에 열 개씩 창작센터를 짓는 것도 효율적으로 인큐베이팅 하자는 것 아닌가.

어떤 부분은 첨단과 전근대가 혼재되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단은 그런 서구의 모델을 최대한으로 추구해보자, 그런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측면에서는 거기까지 안 간 게 다행일 수도 있다. 뻔히 문제가 보이는데 그걸 다 겪고 돌아올 필요는 없다._심상용



그런데 시장은 충분히 커졌나



사회 미술시장 확대의 부작용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시장이 부양하는 작가수가 많아지지 않았나. 관람시장의 경우 미술관이 대중과 소원한 입장에 있다가 블록버스터 전시로 대중이 미술관에 오게 되었다. 우리 미술시장이 충분히 산업화 되었다고 하지만, 미술시장 입장에서는 컬렉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산업화라기보다는 미술품을 사거나 관람하는 시장이 너무 작다가 시장 팽창으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오는 긍정성은 없는지, 시장은 과연 충분히 커졌는지 등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쉬운 질문은 아니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많은 작가를 부양하게 되지 않았나 했는데, 거기에는 착시현상이 있다. 내가 아는 통계로는 부가가치가 증가해온 것에 비해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졌다. 스타마케팅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소수만 살아남는 구조다. 거기다가 후기 시장의 특징이 호황불황의 경제 사이클에 굉장히 취약한 것인데, 미술시장은 금융자본에 완전히 개방되어있기 때문에 전혀 저항력이 없다. 금융위기 이후 데미안 허스트 같은 블루칩 작가의 작품 가격도 6~70% 다운되었다. 어제까지 금덩어리가 오늘은 돌덩이가 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미술시장에서 아무리 불황을 견뎌보려 해도 불황이 오면 어디까지 꺼지는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겪은 것만 두 번이다. IMF 위기와 최근의 금융위기. 7~80년대 일본 오일쇼크까지 합치면 3~40년 사이 세 번이나 왔다. 그러한 과정이 되풀이될 때마다 미술시장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되어 왔다. 금융시장으로 보면 신용팽창이 낳는 부작용과 비슷한 현상이다. 안에 들어가 보면 시장이 생각만큼 많은 작가 부양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부양하는 작가가 많아졌다는 것이 착시현상이라는 것에 동감한다. 전체 총량은 늘었지만 1/n로 나누었을 때 과연 증가했는가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전공자, 작가는 많이 늘었지만 혜택 보는 작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소수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도 조금이라도 혜택이 늘어났다고는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상대적 격차는 오히려 더 커진 상태이다. 승자독식 현상이 적나라하다. 그런데 부가 소수에 집중되는 것은 미술시장뿐 아니라 모든 문화시장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모든 문화예술의 공통된 과제라면, 시스템을 더 투명화 시켜서 그런 혜택을 볼 수 있는 작가를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스템을 붕괴시킬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내 미술시장은 투명성이 많이 떨어진다. 시장 통계도 투명하지 않고, 미술 시장규모도 작기 때문에 전체적인 파이가 커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필요하다.

산업화의 여러 징후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좋든 나쁘든, 크다. 그런 점들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발빠르게 움직여야 그런 부분을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스템의 변화가 보이고 있고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이다._-윤태건



거시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리먼브라더스처럼 누가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모순 때문에 내파되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더블딥을 예측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용자본주의라는 말이 제일 정확할 텐데, 신용자본주의의 성격상 서로가 신뢰하는 메커니즘이 깨지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그런데 버블경제가 지난 3~40년 지속되면서 신용이 과장되고, 팽창되어 왔던 것이다. 일례로 yBa(young British artist)의 작가들, 데미언 허스트, 마크 퀸, 트레이시 예민 등에 대한 평가는 일종의 버블, 즉 시장의 신용팽창과 흡사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럴 만큼 미적으로 가치 있느냐, 대단히 흥미롭긴 하지만 사상 최고의 가격으로 경매될 만큼 최고냐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건 버블이다. 이런 식의 버블을 만들어내고, 그런 신화에 의해 젊은 작가들이 나도 그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그것이 목적이 되는 시스템이 과연 항구적일 수 있겠는가. 회의가 많다. 이게 지속가능한 것이냐는 의구심이 있다.



개인적으로 갤러리 오픈 전 전략을 짰고, 시장분석을 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전술로 나가야 할지 CEO 입장에서 바라봤다. 블루오션은 없는 시장을 만드는 게 아니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가려졌던 틈새시장을 찾아내는 것도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처음 사설갤러리를 시작할 때 그런 시장의 허점이 많이 보였다. 아직 시장이 충분히 확대되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지켜본 미술시장의 현상을 말하자면 시장 참여자들 생각이 조금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질서를 정비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들이 많이 보였다.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기 보다는 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작품을 컬렉터에게 다른 갤러리보다 더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는 제살 깎아먹기식이다. 사회적 책무보다는 수익을 더 내고 싶어 하는 일부 몰지각한 행동으로 인해 시장의 발전이 저해되는 것 같다.


징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근대적인

전반적으로 미술시장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술시장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미술시장은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술비평, 공공적 미술관문화, 식견 높은 관람객, 그리고 이들을 길러내는 교육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비로소 지속가능한 시장, 지속가능한 산업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_양현미



사회 미술시장이 확대되면서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으로는 오히려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몇 분은 미술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은데 이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은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지금의 갤러리 시스템의 10년간 변화양상을 보면 위험한 것이, 작가처럼 갤러리도 승자독식 추세다. 대형갤러리에 자본이 집중되고, 다국적화되고, 외국이나 국내에 지점을 내는 등 기업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큰 갤러리도 작가를 발굴해 지원하는 시스템이라면, 지금은 작은 갤러리나 대안공간에서 발굴해서 조금 키워놓으면 큰 갤러리에서 스카웃 해가는 형태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상 그 작가를 더 상품화할 수 있는 시스템, 자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갤러리로 이동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성장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자기작업 역량이 축적되면서 훌륭한 작가로 커가는 형태에서 트렌드에 민감한 아이디어를 통해 반짝 등장했다 금방 사라지는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 스타 또는 예비스타로 떠오르는 작가의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마치 연예산업의 아이돌 연령이 계속 어려지는 것처럼.



어떤 점에서 보면 갤러리의 작가발굴 시스템이 연예인 매니지먼트보다 더 낙후되어 있다. 연예인매니지먼트는 연예인을 발굴해서, 성형시키고 연기수업 시키고, 투자를 한다. 그 다음에 스타가 되면 배분하는데, 여기는 투자는 안 하고 가져가려고 한다. 그런 점부터 참 희한한 동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시장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작가는 조금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시장의 파이가 커져야만 시장의 혜택을 받는 작가 많아진다. 자본주의는 어차피 승자독식이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견제의 기능을 얼마만큼 강화를 시키느냐, 이것을 만드는 것이 제일 시급하다.



이미 후기자본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방임했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가 내파되는 데까지 온 것이다. 시장의 문제는 오로지 시장이 해결할 수 있다거나 해결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시장근본주의 이다. 그 점을 반성하자는 것이 금융위기 이후 요즘 분위기 아닌가. 미술시장도 큰 맥락 안에 같이 있다.

파이를 키우자고 하는데 파이가 크면 잘라 나눠가져야 되지 않나. 그럼 자르는 사람과 순서정하는 사람이 달라야 한다. 자르는 사람과 순서 정하는 사람이 일치하면 크게 자르고 먼저 가져가려고 할 것이다. 자르는 사람과 순서 정하는 사람이 다른 것, 그것이 건전한 경제다. 자기가 자르는 입장이면서 혜택을 다 결정하면 안 된다. 현재의 미술시장 메커니즘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게 이런 부분이다. 사실 나는 이론가이고 가격, 시장의 문제는 내가 건드리지 않아야 할 문제다. 하지만 가격, 시장은 창작, 예술, 가치평가와 연동된 문제가 되었다. 시장에서 좋은 작품이 미적으로 훌륭한 가치를 갖는 것처럼 되는 간섭효과가 심각하게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매회사가 일종의 가격 평가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비평도 조사하고 레퍼런스도 조사하고, 그래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데 그 평가를 통해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당사자도 경매회사이다. 이러한 시스템, 그 자체가 불안한 거다. 경매회사건 갤러리스트건 가격을 정하면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으로 조정 작용을 거쳐야 하는데, 지금은 그 작용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레이몽 물랭이 이야기한 대로라면, 일반적으로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이 비평이요, 다양한 이론적 잣대들이다. 사회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에는 비평과 이론을 통한 많은 길항작용이 있어야 한다. 고슴도치 효과처럼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아니다, 기다 하면서 합리적인 가격, 사회적 가치가 형성되는데, 지금은 가치를 평가하고 형성하는 주체가 그 평가치로 인해 혜택을 보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이러한 맥락이 우리시장에 신용경색을 가져오는 것 아니냐 하는 의견이 미술시장 연구자들 사이에 있다.

블루오션은 없는 시장을 만드는 게 아니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가려졌던 틈새시장을 찾아내는 것도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처음 사설갤러리를 시작할 때 그런 시장의 허점이 많이 보였다. 아직 시장이 충분히 확대되었다고 보이지 않는다.-홍호진


산업화를 통한 시장의 고도화냐,
정점을 지난 시스템의 내파內破냐



사회 예전에는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가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공공성이 높은 미술관과 미술비평이 예술적 가치의 인증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시장을 견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견제역할을 해야 할 장치들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이 커지면서 시장의 지배력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비평을 통해 가치판단의 잣대를 제시하는 것은 맞는 얘기다. 그런데 시장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비평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것이 일반적 모습이다, 어쩔 수 없이. 내 고민은 시장 확대에 따른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 미술시장이 전근대적인 요소도 많이 남아있고 그런 점에서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다. 이미 산업화됐다고 하지만 산업화를 논하기 부끄러운 모습도 많다. 시장은 다양한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산업화되어 가고 있지만 매매과정은 전근대적으로, 인맥으로만 움직이는 형태이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작품들과 미술관 거래되는 작품의 간극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크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의 경향을 봐도, 외국과는 굉장히 다르다. 독특하다고 해야 할지, 좋은지 어쩐지 모르겠다. 아직도 풍경화 중심으로 판매된다든지, 팝아트나 리얼리즘 위주라든지 하는 현상은 좀 더 시장시스템 자체가 덜 작동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산업화 이전의, 시장시스템도 작동을 안 하고 있는 단계가 아닌가.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떤 부분은 첨단과 전근대가 혼재되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단은 그런 서구의 모델을 최대한으로 추구해보자, 그런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쪽에도 이미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거기까지 안 간 게 다행일 수도 있다. 뻔히 문제가 보이는데 그걸 다 겪고 돌아올 필요는 없다.

국제아트페어 1회 참가비가 프랑스의 예로 보자면 평균 4천만원 정도이다. 바젤, 마이애미, 시카고 등 모두 비슷하다. 이 말은 들고 갔던 것들 중 4천만원 정도 못 팔면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반드시 팔릴 것만 가지고 나간다. 갤러리들이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작가도 자기 하고 싶은 것 못한다. 갤러리스트나 작가 개인의 모럴을 의심해봤자 소용이 없다. 그건 매우 국부적인 문제다. 큰 국제아트페어에서 통용될 언어들만 골라 들고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소통의 각 지점들에서 델리게이트한 검열로 작용한다. 그래서 자유롭지 못하다고들 호소하는 것이다. 다들 어려워하고 있다. 작가들은 괜찮은데 갤러리스트가 문제라거나, 시스템은 열심히 하는데 작가가 바보라거나 하고 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내가 보기엔 우리가 얘기하는 미술시장과는 이미 다른 시스템인 것 같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그야말로 소비자를 타깃으로 놓고 타깃에 맞춰 최대한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술을 제외한 다른 문화산업은 다 그런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미술에서 블록버스터 전시만 분리해서 공연이나 음반 시장으로 보내면 그쪽 시스템과 더 잘 맞을 것이다. 기획하는 사람들도 미술계 사람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기획사에서 하고 있다.



상업 기획사에 의존하는 경향은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강하다. 이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의 블록버스터 전시는 미술관 기획자들이 연구에 충실한 전시를 할 수 있는 시스템과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 한 작가와 그의 대표작을 충분히 연구하고, 심지어 소장품을 가진 주요 컬렉터뿐 아니라 각 미술관과 파트너십으로 연계해서 전시하고 뉴욕-런던-유럽을 순회하면서 예산을 맞춘다. 연구 인력과 질 높은 소장품 등 기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자산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 우리와는 소비자 성향도 다르다. 관람시장 소비자인 관람객의 미술사적 지식이 우리는 기껏해야 인상주의에 머물러 있다. 반면에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아쉴 고르키 같은 전시도 뉴욕, 런던에서는 인기가 높다. 일반 관람객 수준에서 미술사에 대한 이해와 심미안을 통해 특정 작가를 미술사적으로 재맥락화하는 것이 포용이 된다. 이러한 일반 대중의 미술감상 수준은 결국 교육의 문제와 연결된다.

시장영역의 발전이 미술계를 풍요롭게 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공공영역에 대한 질적인 발전이 같이 가야 한다. 미술시장을 확장하고 힘을 키우는 동시에 미술교육과 미술관 등 공공기관의 기초적인 역할이 공고해져야 한다.-임근혜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판단할 수 없지만,
변화에 대한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사회 ‘미술시장, 미술산업으로 진화할까’라는 매우 논쟁적인 제목 하에 지난 10년간 일어난 미술시장의 변화를 짚어 보았다. 전반적으로 미술시장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근대적 유통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한 상태에서 승자독식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미술시장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미술시장은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진지한 미술비평, 공공적 미술관 문화, 식견 높은 관람객, 그리고 이들을 길러내는 교육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비로소 지속가능한 시장, 지속가능한 산업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망과 제언 부탁드린다.



전망이야 밝은 전망이면 좋겠다. 시장 활성화, 산업화, 진화냐 아니냐 등 한국 현재 미술시장의 현주소를 논하자면 몇 날 며칠 이야기해도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어디가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분분하다. 하지만 시장과 산업화의 전망을 봤을 때 진화하고 산업화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업에는 제조, 패션, IT 등 여러 분야가 있다. 미술계에 부족했던 것이 타 산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좋은 방식을 가져와서 미술계화 시키는 노력이다. 이것은 미술이다, 예술이다, 하는 입장만 고집하다가 다른 영역들은 발전하는데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는 느낌이 있다. 좋은 건 배워서 빨리 이쪽에 적용하고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경쟁력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돈 있는 사람들의 취미를 위한 들러리로 남는다.



산업과 시장의 개념 혼란, 양적/질적 성장에 대한 판단의 어려움 등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것들이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고도의 압축성장으로 이루어졌던 데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을 미술계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술시장을 확장하고 힘을 키우는 동시에, 미술교육과 미술관 등 공공기관의 기초적인 역할이 공고해져야 한다.

일부 소수 대학의 경우 영국 골드스미스를 벤치마킹한다며 스타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골드스미스가 데미안 허스트 이후 스타작가를 줄줄이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1970년대 초부터 진보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전통적 장르를 무너뜨리고 이론과도 교류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정치적인 논리로 진보적인 커리큘럼을 지원해주는 예산을 갑자기 없앤다든지, 때로는 시장에서 요구하는 형태로 바꾸라는 압박도 있다. 제도가 뒷받침을 못할망정 걸림돌 되는 현상을 종종 만나게 된다.

또한, 공공영역의 자생력,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국공립미술관에 관람객 수, 입장료 수입 등 시장논리를 평가기준에 적용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이는 미술시장과 공공기관의 균형점 찾기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양적 평가기준 말고 미술전문가들을 참여시킨 질적 평가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들을 공공미술관 큐레이터들은 많이 하고 있다. 시장영역의 발전이 미술계를 풍요롭게 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공공영역에 대한 질적인 발전이 같이 가야 한다.



이번 기획을 하면서 제목을 정할 때 ‘진화’라는 표현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나도 진화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변화의 모습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보자는 의도다. 산업화의 여러 징후, 그것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많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좋든 나쁘든 시장주의적으로 가는 것은 대세이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산업적 요소, 시장중심적 요소들의 권력이 커지는 것도 하나의 사실이다. 어떻게 순기능을 살리고 역기능을 최소화하느냐가 지금의 숙제다.

미술시장에 자본이 집적되고, 제작방식이 변화하고, 예술성이 아니라 상품성이나 소비자 중심의 기획이 힘을 갖는 등의 양상은 계속 될 것이다. 제프리 다이츠가 LA 모카 관장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미술관 관장이 작가→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경영자로 변화되어 왔다면 이제는 시장의 딜러가 등장한 것이다. 이것이 과연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미래의 징후인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좋든 나쁘든, 크다. 그런 점들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야 그런 부분을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스템의 변화가 보이고 있고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이다.



“미술시장은 미술산업으로 진화할까” 흥미로운 문장이다. ‘진화’라는 개념은 인문학에서는 잘 안 쓴다. 기계주의적인 맥락이 있다. 어떤 경우이든 진화라고 이야기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떤 패러다임이든 오류와 공과가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진화라는 개념이 다른 중요한 요인들을 누락시킬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최근에 트위터 얘기하지 않나. 소통도 소통산업이 되었다. 소통산업의 파이가 커지는 거다. 트위터처럼 대기업들이 뛰어들고. 그렇다고 소통이 잘 되는 사회라고 할 수 없지 않나.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멀리 있는 친구와 트위터 하느라 오히려 가족하고는 얘기를 더 안한다. 양면성이 있다. 시장의 문제를 양날의 칼처럼 다루지 않으면 베일 수도 있다.

좌담을 나누고 있는 심상용, 윤태건, 홍호진, 임근혜, 양현미


[특집] "미술시장은 미술산업으로 진화할까" 다른 기사 보기
① 제작시스템의 변화 ② 매매시장의 변화 ③ 관람시장의 변화



정리
김소연 편집장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