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레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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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레이시

수잔 레이시(Suzanne Lasy)가 방한했다.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는 공공미술 활동을 개척해온 그녀는 현재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일환인 <우리들의 방 : 안양여성들의 수다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수잔 레이시는 8월 9일부터 20일, 그리고 8월 30일부터 9월 5일에 걸쳐 두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weekly@예술경영]은 8월 16일, 안양에서 수잔 레이시를 만나 공공미술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한국에서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편집자 주

&ldquo;협업관계, 끊임없는 권력의 타협을 통해 이루어진다&rdquo;

2010 APAP의 일환으로 <우리들의 방: 안양여성들의 수다>라는 작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당신의 작품은 새장르 공공미술로서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소통을 중요시하는데 다른 언어, 다른 문화권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는가.

나는 30년 동안 다양한 작업을 해왔는데, 이들을 관통하는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추상적 개념주의(conceptualism)와 구체적 행동주의(activism)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Arts)에서 알란 카프로, 주디 시카고 같은 작가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개념미술에서 출발했으나, 페미니즘, 맑시즘, 정체성의 정치 등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개념미술에 행동주의를 결합하게 되었다. 안양에서 지금 하고 있는 <우리들의 방> 역시 이러한 내 작품의 성격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당신 말대로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여기에 오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언어나 문화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작품세계가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팀 덕분에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여기 함께 있는 손경년 선생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팀원들은 나와 고용관계가 아니라 협업관계에 있다.

전문가의 협력과 시민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의 경우, 그것이 당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들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좋은 질문이다. 팀원들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권한과 자율성을 갖고 활동한다. 때로는 내가 하자고 하는 방향과 다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은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어떤 굉장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프로젝트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은 그들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업관계는 여성들에게 특유한 것이며 그것은 끊임없는 권력의 타협을 통해 형성된다.

안양 지역 여성과의 대화모임에서 그들의 경험, 감정, 삶의 이야기 등을 끄집어내고 정리하는 것은 내 영역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장을 만들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것은 내 몫이다. 하지만 나는 서양문화권에서 왔기 때문에 내가 좋다고 여기는 이미지가 한국 여성에게는 끔찍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적 이슈를 시각화하는 과정에서도 권력의 타협이 작동한다. 모든 것은 타협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새장르 공공미술은 기존 공공미술과 달리 유형적 결과물이 적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지원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정부나 의회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미국도 그러한가. 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사실 공무원들은 공공미술뿐 아니라 예술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문화가 없다거나 문화를 감상할 능력이 없다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양성평등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을 만난 적이 있는데, 내가 만나본 공무원 중에 가장 문화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있는 유형의 공공미술 작업은 조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공미술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의 경계를 넘어가게 되고 이로 인해 그러한 경계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전이 된다. 그래도 서구사회에서는 공공미술의 경험이 2~30년이 되기 때문에 공공장소의 오브제에서 공공장소의 활동으로 이행하기가 더 쉬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왜 이런 예술을 해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정치가들과 협상을 해야만 한다. 이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전략은 시민의 참여를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여성적 관점에서 발견한 일상의 작은 불편들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 안양의 한 여성시의원이 의원뱃지를 달다가 옷이 상해 속상했다는 얘기를 했다. 남성양복에 달 것만 감안해서 뱃지를 만들다보니 여성들의 블라우스에는 구멍이 나는 것이다. 의원뱃지 하나에도 남성중심적인 구조가 배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우리는 이러한 여성의 관점을 통해 우리 문화에 스며들어있는 가부장적 형식들을 드러낼 수 있다.

&ldquo;대상과의 관계에 책임을 지는 윤리적 태도가 중요하다&rdquo;

당신은 새장르 공공미술을 이론화하는 데 있어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1995년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 지형그리기』(Mapping the Terrain: New Genre Public Art)를 발간했는데, 왜 새로운 미술이 아니라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이라고 했는지 궁금하다.

새로운 장르란 1980년대 후반 등장한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사진, 대중매체 등 시간을 기반으로 한 미술을 통칭하는 것이다. 공공미술에는 조각 공공미술, 회화 공공미술 같은 기존 장르의 공공미술이 있고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여성 미술가인 김수자도 새로운 장르의 미술가이다.

새장르 공공미술을 주창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처음 이 책을 출간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 공공미술의 지형이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가. 현재의 주요 이슈는 무엇인가.

지난 15년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미술 장르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등 새로운 장르는 지금 시대에는 더 이상 생소한 장르가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미술가들은 스케일이 큰 사진, 질 좋은 프린트, 스펙터클한 영화 등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미술가들은 별로 어렵지 않게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들을 기용하여 35밀리 영화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미술가들은 이전보다 훨씬 풍부한 자원들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이쑤시개 같은 조각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또 다른 변화는 1970년대만 하더라도 나처럼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는 미술가들은 미술계의 변방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회적 이슈가 미술계의 중심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으나 이것도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변화이다.

이러한 두 가지 변화가 결합되면서 이제 미술가는 사회적 이슈를 보다 스펙터클하게 다룬 작품을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관계이다. 어떤 작가가 교도소에 있는 여성에 대한 비디오와 사진을 전시한다고 했을 때 그 작품은 시각적으로 매우 화려하고 드라마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작품은 실제 교도소 여성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 있다. 그냥 이미지만 뚝 떼어다 갖다놓은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작품이 사회적 이슈를 제대로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나는 미술가가 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 작품과 그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과의 관계에 책임을 지는 윤리적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ldquo;미술을 위한 퍼센트법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사회기관에서 재원 조성한다&rdquo;

새장르 공공미술은 주로 어디에서 재원을 조달하는가. 미술을 위한 퍼센트법(percent for art ordinance)은 공공미술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이 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공미술은 대부분 조각과 같은 유형의 오브제들이다. 당신의 작품은 오브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제도에 의한 재원조성이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떤가.

미술을 위한 퍼센트법은 거의 그리고 항상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를 지원한다. 일부 자치단체에서 이 제도를 통해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한시적인 퍼포먼스도 지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나는 미술을 위한 퍼센트법이 나름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고 종종 좋은 작품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종류의 공공미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미술을 위한 퍼센트법이 아니라 내 작업이 다루는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사회기관으로부터 재원을 조성하고 있다.

&ldquo;참여를 이끌어내고 협업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rdquo;

새장르 공공미술은 새로운 미술가, 새로운 기획자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당신은 2007년부터 오티스 대학에 새장르 공공미술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원 과정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 이름이 ';';Graduate Public Practice일반적으로 공공미술대학원으로 번역되어 사용됨';';이라고 되어 있다. 왜 공공미술(public art)이 아니라 공공실천(public practi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가.

공공실천(public practice)이라는 용어는 사실 내가 만든 것은 아니고 시카고미술대학의 공공미술 큐레이터인 매리 제인 제이콥(Mary Jane Jacob)이 만든 것이다. 공공미술은 너무도 광장의 조각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브제가 아니라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공공실천에서 공공은 공적 권리(public right)를, 실천은 활동(activity)를 의미한다. 공공실천은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 공동체 미술(community art), 관계미술(relational art), 시간기반 미술(time-based art) 등 다르게 부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약간씩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 나는 새로운 용어가 주는 뉘앙스의 차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통념을 뚫고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과정에서 주안점을 두는 것은 미술가나 기획자가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협업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권한을 부여하고 조율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사회적 이슈를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데 있어서 자기 나름의 스타일도 발견해야 한다. 나는 공공실천을 하는 미술가나 기획자의 경우 무엇보다 윤리적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지만 학생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윤리적 포지션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방 : 안양여성들의 수다> 작업 모습

<우리들의 방 : 안양여성들의 수다> 작업 모습
제공 안양공공예술재단

마지막으로 한국의 공공미술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나는 한국에 이미 공공실천으로서 공공미술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김수자, 민영순, 박경 등. 단지 이들의 활동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이번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또 더 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한 작가들에게 공공미술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현미

필자소개
양현미는 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하였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을 거쳐 현재 상명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예술경영학회 이사, 디자인코리아 국회포럼 연구위원, [문화정책논총](등재후보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개선과제」「공공디자인 품질관리를 위한 평가방안 연구」「문화예술 기획경영 전문인력 양성사업 발전방안 연구」등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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