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 요한나 봉제르
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한국화가 박생광

고흐와 동생 테오는 가장 이상적인 예술가의 형제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형제애는 한 편의 신화가 되었다. 테오는 형 고흐가 죽은 지 1년 후 죽었고 형제의 연이은 죽음은 미술사를 장식하는 신화의 완성이었다. 그런데 뜬금없는 ‘고흐와 그의 제수씨’는 무슨 일인가? 마치 19금 애로영화의 제목 같은. 고흐하면 테오, 테오하면 고흐라는 완전한 한 쌍은 신화이기에 다른 관계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내러티브에서 고흐의 제수씨는 완전한 타자이다.

그런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테오의 부인 요한나에 의해 우리가 고흐를 또 고흐와 테오의 우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화로 각색된 고흐의 예술과 테오의 헌신적 후원은 테오의 처 요한나의 공헌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만 고흐와 테오의 형제애에서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요한나 봉제르는 테오가 죽은 후 남편을 기억하기 위해 테오와 고흐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과정에 고흐의 예술세계를 최초로 인식한 관객이자 후원인이 된 것이다.

후에 재혼한 요한나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고흐의 작품을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여러 차례의 유작전과 함께 편지를 모은 서간집을 출간하였다. 그녀의 그런 헌신적 노력이 고흐의 작품을 재조명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활동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고흐와 테오의 형제애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 줄수록 고흐의 제수씨는 잊혀진 것이다. 더욱이 그녀와 고흐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리 주목하지 않았고 실제로 요한나가 고흐를 만난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일 뿐이었다. 또 고흐를 다룬 책들이나 영화에서도 그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거나 인색하게 다루었다.

고흐의 예술세계를 최초로 인식한 관객이자 후원인

어쨌든 마치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했던 것처럼 만일 고흐의 제수씨가 체계적으로 시아주버니의 작품과 편지에 헌신하지 않았다면 고흐의 신화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니체의 여동생 또한 니체의 저술을 그녀가 의도적으로 왜곡하였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예술가들의 가족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예술가를 신화화하는 과정에 필요 이상으로 나쁘게 그려지곤 한다.

한 예술가의 삶과 예술이 사적 세계에서 공적 세계의 것으로 되었을 때에는 그만큼의 많은 이들의 숨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그것은 인식론적인 또는 몇몇 예술이론에 기댄 선호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을 통해 체험을 공유하는 관계에서 성장한 무한한 애정에 의해 가능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가 동시대를 숨 쉬며 함께하는 예술가들과 예술작품에 대해 얼마나 헌신하는가? 아마도 이와 유사한 예는 한국화가 박생광과 그를 후원한 이영 미술관을 떠올릴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인식은 신화의 형태로 수용되고 소통되니 신화가 된 미술, 미술가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경쟁우위에 있게 된다. 신화는 상징들의 복합체인 까닭에 해석과 의미의 과잉 또는 초과상태를 특징으로 한다. 은유적이며 암유적인 형태로 우회로를 통해 전하고자하는 바를 전달한다. 그러니 신화가 된 고흐의 이야기나 고흐와 테오 형제의 이야기는 한 시대의 또는 역사를 관통하는 상징이나 지표가 된다.

취향으로서의 선호를 넘어선 사랑과 헌신

무엇이든 자본으로 교환가능해지는 세계에서 예술조차 거래품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예술가들의 실존은 대단히 낭비적이며 고비용이 드는 셈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실존주의자일 텐데 그들의 가족은 이 실존주의자들로 인해 평생을 골치아파하다가 그 사후에도 곤란에 빠져버리곤 한다. 우리 미술계에도 이미 알려진 소수의 미술가를 제외하고 이미 고인이 된 한국의 많은 근현대미술가들의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작가의 사후 작품과 자료를 떠안고 힘들어한다. 그들의 작품과 관련 자료는 한국미술사 기술의 1차 자료임에도 공공의 문화적 자산으로서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시각예술자료들이 망실되거나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취향으로서 예술을 선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흐와 제수씨 사이의 그러한 사랑과 헌신이어야 한다.

오늘날 예술경영은 한국 미술의 현실과 예술이 지닌 고유한 특징을 잘 이해하고 나아가 예측하고 경영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고흐의 제수씨가 고흐를 재구성하고 재평가하는데 공헌한 이야기는 미술이 어떻게 신화가 되느냐에 머물지 않고 우리 미술계에도 성공적인 예술경영을 위한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필자소개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를 운영하며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이자 본지 편집위원.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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