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네트워크와 세상의 종말
출처 www.neilpeterson.com

며칠 전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죽었다. 물론 소셜네트워크 상 그렇다는 거다. 당장 급한 약속부터 처리해야 해서 사무실 전화를 썼는데, 계속 받지를 않는 것이다. 몇 번 더 하다, 메일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컴퓨터로 핸드폰에 문자를 보내는 기능을 알지 못한다. 땀이 삐질삐질 난다. 나중에 들어보니 모르는 전화라 받지를 않았다고 한다. 매번 핸드폰으로 연락했더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틀간 정신을 못 차리다 며칠 후 스마트폰으로 바꾸자, 나는 멋지게 부활한다. 그러나 그 후유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앞서 잃어버린 휴대폰 구입비의 상당한 액수가 남아 있었고, 10여 년간 사용했던 정든 전화번호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엇보다 나를 절망에 빠뜨렸던 것은 저장되어있던 전화번호, 일정관리내용 등을 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핸드폰을 분실했다는 것은 나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소셜네트워크를 함께 공유하고 있던 이들에게도 불편함이 생기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하루에 내게 걸려오는 전화의 절반은 금융권 또는 제2금융권(소위 대부업체)들로부터 밀려오는 아주 친절한 서비스이용정보들이다. 돈 빌려 쓰란 소리와 빌린 돈의 이자 또는 원금을 갚으란 소리들로 시끌시끌하다. 나머지 절반 통화량의 또 그 절반은 자동차 보험이나 인터넷이용과 관련된 또 친절한 정보들이다. 그리고 그 절반의 또 절반의 통화들이 비로소 내 분야와 관련된 업무들로 이루어진다. 물론 그 업무의 많은 부분은 나와 소셜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동시에 전화를 건 이들과 연결된 작가나 평론가, 기획자 등 관계자의 전화번호를 묻는 통화로 이루어진다. 소위 미술계의 114라고 부를 만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많던 핫라인들이 증발해버렸다. 핸드폰에 예쁘게 저장 되어있던 전화번호 1000여 개가 그렇게 사라지자 나와 동료들은 문명에서 야만으로 직행한다.

천공의 성좌를 연결하는 연락선처럼 우주적인

알다시피 미술관이나 갤러리 현장 큐레이터나 코디네이터의 기본 업무 가운데 하나가 책임 맡은 전시나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 파트너들의 전화번호표를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면 담당 큐레이터나 코디네이터는 물론 테크니션이나 도슨트 또는 전시관리자들의 연락처와 그밖에 작품운송업체, 보험업체, 플랜카드 제작업체, 홍보물 인쇄와 관련된 디자인 업체 등의 연락처를 정리하는 것이다.

어째든 마치 몇몇 스마트폰들의 제품명처럼 핸드폰은 더 이상 통화를 위한 기계가 아닌 천공의 성좌를 연결하는 연락선처럼 우주적이다. 그러니 과장하면 핸드폰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단지 기계장치를 하나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세계와의 단절과 고립, 세상의 종말에 버금가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차라리 자동차를 잃어버리는 것이 전시업계에서는 덜 충격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곧 개봉한다는 영화 <소셜네트워크> 광고가 수시로 내 가슴을 콕콕 찌른다.

이제 새로 마련한 스마트폰으로 또 성공적인 업무를 포함해 이 분야에서 생존하기 위한 소셜네트워크를 다시 구축해야한다. 그런데 전에 받아둔 명함들이 다 어디로 갔지?

김노암 필자소개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를 운영하며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이자 본지 편집위원.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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