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이미지 -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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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직업별 평균소득의 랭킹을 다룬 기사가 일제히 보도되었다. 이 글을 쓰는 12월 21일자다. 한국고용연구원이 ‘2009 산업·직업별 고용구조 조사’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모양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디자인·영상 관련 관리자’가 월평균 소득이 533만3,000원으로 무려 4위란다. 알고 보니 이 직군은 작년 조사에서도 당당히 4위를 차지했다. 월평균 소득만 좀 줄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좀 대단한 것이 전체 426개의 직업분류 중에서 기록한 성적이기 때문이다. 조사의 신뢰도가 어쩌고 하는 얘기는 제쳐두고도 놀라운 수치다. 참고로 취업자의 평균 소득은 200만원을 조금 웃돈다. ‘문화·예술·디자인·영상 관련 관리자’는 예술경영자의 다른 이름인 것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예술경영자들의 급여수준이 우리 사회 최고 수준이라는 것인가? 물론 그럴 리가 없다. ‘관리자’라는 단어가 함정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예술경영분야 중에서도 최상위의 의사결정권자들이라는 얘기다. 문화예술분야의 예외적 그룹이다.

문화예술분야의 물질적 보상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화예술분야의 작업 환경은 몇 가지 특징과 경향을 보인다. 첫 번째는 단속적 노동이다. 안정된 고용관계가 없는 사람의 비중이 높다. 프로젝트에 따라 고용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일은 있다가 없다가 한다. 이 불안정한 고용상태는 예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근본적인 한계이자 제약으로 작용하다. 기본적인 복지체계로부터 소외되기 일쑤다. 다수가 스스로 사회의 저소득층이라고 답한다. 두 번째는 소수의 슈퍼스타가 존재하는 저임금시장이다. 전체적으로 보상수준은 낮지만 이와 비교할 수 없이 큰돈과 높은 명성을 한 손에 쥔 슈퍼스타가 존재한다.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슈퍼스타는 질시의 대상이자 환타지다. 세 번째는 사회적 보상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투자비용이다. 대표적인 것이 학력이다. 예술인은 우리 사회의 어느 직종보다 높은 학력을 가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매우 긴 학습기간을 거치고 창작현장에서도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없다. 예술경영인도 예외가 아니다. 영세하고 불안정한 사업구조와 고용관계는 물론이고 불안정한 노동환경, 합당한 보상체제 없음, 강한 노동 강도, 긴 교육기간 등 대충 비슷하다.

문제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이 일을 하는가이다. 나는 보통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로 나눠서 설명한다. 외적 동기는 물질적 보상을 포함해서 눈에 보이는 성과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성과다. 내적 동기는 일종의 자아성취다. 예술에 대한 열정과 진리에 대한 천착과 같이 사실상 물질적 보상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좋아서 (또는 숙명적으로) 하는 것이다. 내적 동기는 주로 자신으로부터 발현된다. 자기희생적이며 자아도취적이다.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는 서로 보완적이지만 모두 확보되는 행복한 때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듯이 우리 사회는 주로 내적 동기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 예술인의 상대적 (절대적이지는 않다) 빈곤은 더 깊어지고 예술의 종다양성은 위협받고 양극화현상은 더해진다. 예술인이나 예술경영인의 동기 에너지를 그들 내부에서 찾아야 하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없지 않다. 올바른 방향이다. 몇 년 전부터 진행 중인 예술인 지위, 복지와 관련한 논의가 그 예다. 이들 이슈들이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어제 내가 재직하는 학교의 연극원 총동문회가 열렸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 꽤 좋은 학교다. 그런데도 현장에 나간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배고프고 고달프다. 이 자리에서 모교의 은사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졸업생들이 자랑스럽다’고 치사를 하자 장내가 짠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범하고 건조한 멘트가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내던진 젊은 예술인의 마음을 건드린 것이다. 예술경영에 대한 급격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별로 나아지지 않는 예술경영인들의 고달픈 현장에도 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의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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