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지난 시간을 털고 새롭게 출발하는 이때, [weekly@예술경영]은 공연시각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10인에게 '2011년 내가 주목하는 이것'을 물었다. 작가, 작품, 시장, 정책은 물론 사회문화현상까지 폭넓은 10인의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도 한해 힘찬 출발을 다짐하시길 바란다.

답십리 고미술 거리
답십리 고미술 거리
©KIAF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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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고통을 수반하는 예술의 본질적 여유

김석만 _ 연극연출가

지금 우리는 과속으로 이룬 고도성장과 빠른 변화에 몹시 지쳐있다. 대학로 공연현장도 마찬가지로 피로가 쌓여 있다. 세상의 변화에 공연예술도 맞춰가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끊이지 않고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은 반가운 현상이지만, 마치 제품을 찍어내듯 공연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희곡 한편을 쓰거나, 한 작품을 연출하거나, 비중 있는 역할을 소화해내는 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로의 공연계는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가고 있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공연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다.

‘인큐베이팅’이란 이름을 붙인 많은 프로젝트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작품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기 쉽다. 허나 인큐베이팅의 진정한 의미와는 무관하게 단기간에 적은 예산으로 우수한 결과를 미리 짐작해보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오랜 동안,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고 자기긍정으로 동기부여를 갖게 해주고 부모의 보살핌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에 내보내듯이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극진한 보살핌과 제 스스로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여유가 함께 있어야 성공하는 사업이다.

예술이 언제부터 돈벌이 수단이 되었는지, 이제는 공공예술기관의 평가에서마저도 재정자립도나 수익률을 따지고 있다. 예술과 문화에 무지한 인사들이 마치 제조회사를 경영하듯이 공공예술기관을 사업대상으로 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술가들이 제 역할을 진중하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여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시장과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제작현장도, 경영평가와 수익률에 목을 걸고 있는 공공단체의 제작주체도 예술창작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창조적 고통을 수반하는 예술의 본질적인 여유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김석만 필자소개
김석만은 연극연출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이다. 1980년대 연우무대에서 <한씨연대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을, 국립극단에서 <꿈하늘> <무의도 기행> 등을 연출했으며 근래에는 전통공연예술을 현재화하는 작업에 몰두하여 <아름다운 사랑, 춘향이> <선가자 황진이>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 등을 연출했다. 저서로는『스타니슬라브스키 연극론』『연기의 첫걸음』『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연기의 세계』 등이 있다. 지난 2년 동안 서울시극단 단장을 지냈다.


방치되는 고미술품, 판매 개방 논의 시작해야

윤철규 _ koreanart21.com 대표

일본 문화청은 기막힌 유권 해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의 폐기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설마’라고 하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다만 조금 보충 설명을 하면 이렇다. 엄격히 말해 이들은 국보, 보물급 문화재는 아니다. 발굴 조사에서 나온 출토 유물들이다. 그렇지만 엄연히 문화재 보호법의 대상이 되는 매장 문화재인 것이다.

일본은 1999년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하면서 소유권을 국가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로 넘겼다.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등으로 심각한 예산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일 년 내내 아무도 찾지 않는 ‘사금파리’의 보관료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다. 그래서 문화청이 일찌감치 나서 버려도 좋다는 ‘폐기 가능’의 유권 해석을 내려준 것이다.

실제 일본 문화청 통계에 따르면 2009년에 보관중인 매장문화재 출토품은 가로 60센티, 세로 40센티, 높이 15센티의 정리박스로 763만 상자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매년 9천여 건의 발굴 조사가 이뤄지고 곁들여서 10만 상자씩 출토품이 늘어난다고 한다. 한 예로 후쿠오카현 구루메시의 매장문화센터는 약 1만5천 상자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보관비용으로 매년 500만 엔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재미있는 해외 토픽처럼 들리지만 전적으로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견주면 한국 전통미술의 현장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인사동, 장안평 그리고 특히 대구 고미술거리의 화랑들에를 가보면 가야 토기나 신라 토기가 수두룩하다. 대략 1천5백 년 전쯤에 만들어진 토기들인데 값은커녕 일 년 내내 찾는 사람 하나 없다. 한마디로 문화재이긴 하지만 철저하게 방치되어 있다.

토기만 그런 게 아니다. 청자, 백자 중에도 한푼 두푼에 거래되는 저가(低價)가 허다하다. 이런 토기, 청자, 백자에 간혹 외국인들이 여행기념 삼아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이들에게는 절대 팔 수 없다. 100년 이상 된 문화재는 해외 반출이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고여 있는 물이 썩든지 말든지. 언젠가 한국 문화재청에서도 ‘땅속에 다시 파묻어라’라는 유권 해석을 내릴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연초에 무언가를 바라도 된다면, 진정 문화재 보호하는 길이 무엇인지, 홀대받는 저가의 백자, 청자, 토기가 해외에서라도 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외 판매 개방을 논의하는 ‘토론의 장’이 정식으로 열렸으면 한다.

윤철규 필자소개
윤철규는 [중앙일보] 문화부 미술전문기자, 서울옥션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현재 koreanart21.com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일본의 불교대학 대학원에서 석사를, 학습원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역서로 『교양으로 읽어야할 일본지식』(이다), 『천지가 다정하니 풍월은 끝이 없네』(학고재) 등이 있다. ygado2@naver.com


종합편성채널, 공연예술에도 영향 미칠 것

설도윤 _ 설앤컴퍼니 대표

2010년 마지막 날, 드디어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사업자가 발표되었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미디어 기업, 미디어 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는 정부 및 여권의 주장과 신문사가 방송까지 장악하면서 여론을 독점한다는 야권의 주장이 오랫동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사업자가 발표되면서 다시 논란이 불붙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제 종편 시대가 곧 시작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랜 동안의 논란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논란이 말해주듯이 종편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80년대 언론통폐합이 언론사의 재편은 물론 전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쳤듯이 종편 역시 비단 미디어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연산업,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그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다음 두 가지가 주목된다. 하나는 광고시장의 변화다. 몇 년 전부터 사회 전체적으로 광고시장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작년 한해에만 7천억 원이 줄었다는 발표도 있었다. 대기업 위주, 수출 위주의 경제상황에서 내수는 한계에 와 있고 당연히 국내 시장에 대한 광고는 의미가 없다. 거기에 4개의 종편 사업자가 선정되면서 방송사들끼리의 광고 유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물론 광고단가는 하락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채널이 다양화된 만큼 소비자들에게 노출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광고를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 단가가 내려간다 해도 물량을 더 크게 늘려야 하는 상황이니 홍보비의 압박이 더 커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채널이 많아지는 만큼 컨텐츠 확보 경쟁 역시 치열해질 것이다. 특히 종편에서는 ‘예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서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더 좋은 조건으로 일 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스타들의 몸값은 오를 것이고 스타들을 키우고 있는 연예기획사들의 주가도 오를 것이다.

그런데 그 후폭풍이 고스란히 공연계로 전가된다는 점이다. 지금도 뮤지컬 배우들은 텔레비전, 영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점점 그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올 연말부터 종편이 시작된다고 할 때 내년부터는 큰 인력난에 시달릴 것이다.

홍보비의 상승, 인건비의 상승, 인력난 등 제작비의 압박과 그에 따른 작품의 전반적 퀄리티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효율적 마케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인력을 어떻게 수급하고 육성할 것인지, 실력 있는 배우들이 공연계에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설도윤 필자소개
설도윤은 설앤컴퍼니와 유니버설심포니오케스트라의 대표이다. <오페라의 유령> 한국초연 공연을 비롯해 다수의 뮤지컬을 제작했다. 저서로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오페라의 유령 감동은 이렇게 완성된다』『오페라의 유령 가면을 벗다』『뮤지컬 프로덕션 실무』(공저) 등이 있다. dy_seol@naver.com


세계화와 공연산업화의 급진전

정재옥 _ 크레디아 대표,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부회장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는 진정한 유비쿼터스를 실현시켜 주었고, 그 결과로 지구촌은 작은 마을이 되었다. 실시간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지는 공연계 상황들을 국내에서도 동시에 접하고 있으며, 마케팅은 광고가 아닌 선 체험자의 리뷰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으로 성패가 좌우되고 있다.

때문에 승자독식은 더욱 거세져, 한 회사가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전 세계 소비자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문화산업 역시 공급자의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영화, 게임, 출판, 방송에 비해 공연은 이동이나 확대재생산의 한계가 있어 변화에 늦게 반응했지만, 최근 세계무대를 겨냥한 공연 기획이 급속히 늘고 있다.

<난타> 제작사인 PMC는 2010년 80만 명의 관람객 중 65만 명이 해외관객이었다고 밝혔다. 인바운드만이 아니다. CJ는 CJ엔터테인먼트 등 6개 계열사를 하나로 통합해 자산 규모만 1조7천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미디어ㆍ콘텐츠 기업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를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것이다. 드라마, 게임에 이어 K-POP이 해외에서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시점에,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뿐만 아니라 음반산업의 붕괴로 탈출구를 찾는 글로벌 음반사들, 인터파크 등 공연 관련사, 원소스멀티유스(OSMU)를 통한 시너지의 극대화를 노리는 종편 참여사 및 기존 연예 엔터테인먼트사들까지 공연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 때문에 전용관 등 인프라 구축은 가속화 될 것이며, 중국과 일본을 겨냥한 신규 공연 제작은 당분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는 아직 본연의 업만으로 소규모 프로덕션이 대기업으로 도약하지는 못했다. 오직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연예인 매니지먼트사들만이 산업화의 초기단계에 진입했을 뿐이다. 글로벌 무대를 겨냥한 대기업 중심의 공연 산업 체제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또 <난타>의 PMC나 <영웅>의 에이콤이 얼마나 도약할 수 있을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실험정신과 열정으로 뭉쳐진 음악, 무용, 연극 등 순수예술단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 역시 절실할 때이다. 수학, 물리, 문학, 미술의 기초학문 없는 IT나 영화, 모바일 산업은 사상누각이기 때문이다.

정재옥 필자소개
정재옥은 중앙일보사 문화센터, 문화사업국 10년 근무 후 1994년 공연기획사 크레디아(CREDIA)를 설립, 올해로 17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2002년부터 호암아트홀을 위탁 경영하고 있으며, 초청공연 외에 앙상블 디토 프로젝트나 포스코 로비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chung@credia.co.kr


불황기, 평론의 역할을 생각하다

이동재 _ 아트사이드 대표

사상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던 국내 미술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위축되어 있다. 그리고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해 연말 양도세 시행 유예가 결정되었지만 당분간 그 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그럼 지금 이시기에 무엇을 해야 할까. 미술시장의 구조를 생각해 보았다. 좋은 시절에는 잊고 있거나 쫓겨서 고민하지 않게 마련이므로.

중국의 화랑들도 요즘 고민이 많다.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작가들이 부각되고 이슈를 만들고 시장이 커졌다. 중국은 우리처럼 오랜 시간 동안 체계와 구조를 갖추어온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뭔가 체계와 구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미술시장은 작가, 화랑, 컬렉터로 이루어져 있다. 화랑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화랑의 가장 큰 자산은 작가이다. 그런데 작가들은 항상 전시할 화랑이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화랑들은 전시할 작가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화랑의 전시를 보면 겹치는 작가가 많다. 중국에서 전시장을 운영하면서 본 중국미술시장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왜 항상 물고 물리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나.

화랑들, 화상들은 좀 더 많은 작가를 접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작업, 모든 작가를 다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작가들의 경우, 특히 젊은 작가들은 최근 활동 영역이 커졌지만, 불합리한 점도 있다. 화단에 일찍 나오고,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그래서 일찍 거래되는 것이 작가들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쉽게 빨리 드러내기 위해서는 전시보다는 경매에 내놓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작가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거래’가 작가가 성장하는 전부가 아니다.

작가는 시간을 통해 성장한다. 시간 속에서 평가받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작가를 선별하는 기준이 열악해졌다. 전체적인 시장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간다. 여전히 좋은 컬렉터들도 많지만, 쉽게 사고 쉽게 내놓고 그래서 빨리 이익을 취하려는 컬렉터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금 이러한 상황들, 문제들은 모두 좋은 평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화상들이나 컬렉터들은 밀도 있는 작가를 접할 수 있고, 작가는 비평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 평론을 발표하는 기회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노력도 노력이지만, 협회간의 연계라든가 어떤 구조적 틀이 필요하다. 모두의 분발이 필요하다.

이동재 필자소개
이동재는 현재 아트사이드 갤러리의 대표이자 (사)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홈페이지

[신년특집] "2011년, 내가 주목하는 이것" 다른 기사 보기
② 예술의 가치, 예술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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