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지난 시간을 털고 새롭게 출발하는 이때, [weekly@예술경영]은 공연시각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10인에게 '2011년 내가 주목하는 이것'을 물었다. 작가, 작품, 시장, 정책은 물론 사회문화현상까지 폭넓은 10인의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도 한해 힘찬 출발을 다짐하시길 바란다.

스테판울프 극장 전경
스테판울프 극장 전경
서울 대학로에 밀집된 120여 개의 중소공연장들 (출처 hsong.egloos.com)
출처 hsong.egloos.com
FEN(Far East Network) 연주장면 @ artcenter nabi
FEN(Far East Network) 연주장면 @ artcenter nabi

똑똑한 극장들이 우후죽순 자라나서

강석란 _ 두산아트센터 예술감독

2011년 내가 주목하는 것은 역시 ‘똑똑한 극장’이다. 똑똑한 극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 서로 자극받고 제각기의 ‘컨셉 겨루기’를 하는 2011년이길 바란다.

2010년 2월, 토니상을 수상한 지역극장을 순례를 위해 미국 출장을 간 경험이 있다. 미국 극장 중 탁월한 성과를 나타낸 극장에 주는 토니상. 도대체 뭘 얼마나 잘 했기에 그런 상을 받았을까, 궁금해서 떠난 출장길에서 느낀 것은 부러움과 질투와 부끄러움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질투와 경외의 대상은 시카고의 스테판울프 극장(Steppenwolf Theater). 1974년 창단한 스테판울프 극단의 전용극장으로 1980년대부터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개발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인큐베이팅 극장이다. 연극의 다양성과 역동성 향상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1985년 토니 지역극장상(Regional Theatre Tony Award) 외에 1998년 미국 예술 훈장(National Medal of Arts)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수상경력을 떠나 이 극장이 부러웠던 것은 똑똑한 극장의 힘이다. 새로운 예술을 지향하는 기획력, 그 기획력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제작 능력, 35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 있는 극단 소속의 배우 등 모든 것이 부러웠다. 그리고 극장은 사회적 문제를 토론하는 장소라는 브레히트의 말처럼 극의 소재를 현대인의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찾아내어 공연으로 잘 승화시켜 무대에 올리는, 시대를 읽어내는 감각도 솜씨 있었다. 그 도시, 그 동네에 맞는 똑똑한 프로그래밍, 관객을 위한 좋은 교육프로그램, 그 혜택을 즐기는 관객.

2011년 나는 기대한다. 나는 주목한다. 극장의 힘, 똑똑한 극장의 힘을. 극장마다 개성 있는 그리고 가치 있는 컨셉에 맞는 프로그램과 예술가로 관객과의 소통에 앞서길 바란다. 극장마다 다른 매력을 발산할 때 관객은 얼마나 기쁠 것이며, 그에 앞서 만드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강석란 필자소개
강석란은 광고대행사 오리콤에서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일을 했다. 2006년 연강홀로 자리를 옮겨 극장 리노베이션, 두산아트센터 오픈과 함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홈페이지


착한예술 붐과 예술의 가치ㆍ가격 논쟁

김해보 _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팀장

문화체육관광부는 2011년 문화분야 주요 트렌드의 하나로 ‘착한예술’을 꼽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서울시를 비롯한 거의 모든 문화정책에서 ‘그물망 문화복지’ ‘찾아가는 문화예술’처럼 예술의 착한 기능을 지향하는 프로젝트들이 붐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재능기부와 사회 공헌 요구에 부응하는 ‘착한예술가’들도 붐을 이룬다. 이러다가 자원봉사를 많이 해야 창작지원금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술의 착한 가치를 찾아가는 모습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성과주의 공공정책이 부추기는 착한예술 붐 속에서 그동안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자원봉사를 해오거나 자기 색깔의 예술을 지켜오던 ‘보통 예술’ 단체들이 공공이 선정한 ‘착한 예술단체 풀(pool)';에 속해서 마지못해 ‘착한 가격’의 예술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형편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거래’되지 못하고 ‘기부’된 착한예술 재능에 적절한 금액으로 기부영수증을 끊어줄 방법이 없다. 반면, 감사원에서는 착한예술 활동에 참여한 ‘그냥 예술단체’들에게 지불된 보조금이 적절한지 항상 의심한다.

사실 2010년부터 몰아친 문화예술분야 국가보조금에 대한 엄격한 관리에 앞서, 예술의 가치와 적정 가격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을 법도 했다. 모 사회적기업 예술단원이 항상 의심 받고 있는 보조금이 본인들의 예술노동에 적절한 규모의 보상인지를 알고 싶어 예술노동의 가치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예술서비스의 가치가 정당한 가격으로 환산되지 못하고 대부분 공공보조금에 의존해서 유통되는 상황에서, 공공정책이 주도하는 ‘착한예술’ 신드롬은 예술단체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콤플렉스를 가져다 줄 것이다. 어떤 예술이 더 착한지, 또는 어떤 예술의 사회적 기여가 더 큰지를 결정하는 것, 선의의 상호부조 거래에 공공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견의 여지가 없는 ‘공정사회’ 정책기조와 여러 악재들이 겹쳐 정작 당사자인 예술계의 목소리를 잠재워 버린 듯하다.

2011년도에는 기왕에 시작된 착한예술 신드롬이 공공지원을 받는 예술은 서비스의 가격이나 사회공헌활동의 수준에서, 도대체 얼마나 착해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번져서, 예술의 가치와 가격, 그리고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의 당위성까지 새삼스럽게 들추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누군가가 시켜서 착한 척 하지 않고 진실로 세상을 바꾸는 착한 예술이 튼튼히 뿌리내리는 길은 그런 생산적인 논의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공공정책이 계량화하려고 들지만 않는다면 예술은 원래 대체로 착한 것이 아니겠나?

김해보 필자소개
김해보는 축제극단 무천, 사물놀이 한울림, 한국과학문화재단을 거치며 과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문화사업들을 기획했고, 2004년부터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조직 중장기 발전전략 개발, 서울시 창작공간 조성, 4계절 축제제작, 서울연극센터 운영 등 다양한 업무를 거쳐 현재는 예술지원팀을 담당하고 있다. sea@sfc.or.kr


우리는 우리가 하고자 했던 예술을 하고 있는가

최영 _ 전 연희단거리패ㆍ밀양연극촌 사무국장

지난해 우리 극단의 작품 말고는 공연을 본 적이 거의 없던 나는 지난 한해 공연예술계의 이슈가 무엇이었었는지, 그리고 올 한해에 어떤 이슈가 기대되는지 생각이 미친 적이 없어 원고청탁을 받고 한동안 난감했었다. 그렇게 생각이 흐르다 문득 떠오른 것은 우리가 어느새 뉴밀레니엄의 첫 10년을 지나왔다는 사실이었다. 2000년 첫 아침에 매서운 찬바람을 뚫고 열띠게 해맞이 공연을 한 뒤로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줄기차게 달려왔다.

IMF를 지나온 한국사회는 점점 심해져 가는 양극화와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꾸준히 양적인 성장을 해왔고, 불과 1년 반 전에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언제 겪었냐는 듯 새해 벽두부터 증권시장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세상이 다시 거꾸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상황을 접할 때도 있지만 군사정권시절에는 없던 인터넷이라는 매체 덕에 그나마 위안을 삼기도 한다.

공연예술분야는 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진행되었던 변화가 양질전화를 겪은 것 마냥 지금 보면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달라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복잡한 입시제도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지원제도는 제법 다양해졌다. 10년 전 작품제작에 한정되었던 지원금은 단체지원, 공간지원, 인력지원, 프로그램지원 등으로 지원영역도 넓어졌다. 전국적으로 늘어난 공연장 및 문화예술 관련 기관들, 그리고 서울 대학로에 밀집된 120여 개의 중소공연장들과 서울시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중대형공연장들, 예매사이트의 연극과 뮤지컬 메인페이지를 오밀조밀 나눠 차지하고 있는 50여 개의 작품들과 메인에 끼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또 다른 50여 개의 작품들이 오늘도 막을 올린다. 전국 80여 개에 육박한다는 연극, 연기 관련학과에서는 매년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이제 영화, 뮤지컬을 넘어 연극에까지 뛰어들 준비를 마친 자본이 새로운 10년에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까.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이렇게 풍족해진 인적, 물적, 제도적 환경 속에서 과연 그들이 하고자 하는, 그리고 해야 할 예술을 하고 있을까? 좀 잔인한 결론이지만 이제 공은 다시 예술가에게로 넘어간 것 같다.

최영은 필자소개
최영은 배우로 출발해 연희단거리패의 기획실장으로 연극 및 뮤지컬 제작, 공연장 운영 등 극단의 살림살이를 맡아왔다. 예술창작촌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밀양연극촌을 태생부터 함께하며 지역문화컨텐츠 제작, 공연예술축제 기획과 운영, 문화체험 및 예술교육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지역문화프로젝트를 운영해왔다. 2011년에는 무대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furyoung@hanmail.net


젊은 작가들은 어디로 ‘튈’ 것인가?

바이홍 _ 갤러리킹 디렉터

풍비박산. 너무 처참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2010년 미술계 현장에서 지켜본 젊은 작가들의 심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현장에서 만난 그야말로 작가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늘 앞으로의 생계에 대한 고민들이 화제의 한 꼭지를 차지하였다. 지난날 좋았던 미술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낡아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젊은 작가들은 어디로 ‘튈’ 것인가?

2011년은 그 어느 때 보다 젊은 작가들에게 여러모로 힘겨운 시기가 될 것이다. 작품 유통에 대해서 살펴보자. 젊은 작가들을 시장으로 적극 이끌었던 상업화랑, 옥션 등은 보다 안정적인 작가와 작품을 찾을 것이다. 과잉됐던 수요가 수그러들고 학습된 컬렉터들은 보다 안정적인 투자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 공간은 어떤가. 대안공간이나 그와 유사한 공간들은 호황기의 시장 시스템으로부터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앞선 상업공간은 물론,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했던 공간들마저 젊은 작가에게 기회의 폭을 열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창작 환경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시 이외에, 창작 활동에 대한 작업실 지원과 같은 제도들은 동일한 작가들 혹은 기득권 작가들에게 빈번히 승낙되고 있다. 또한 창작지원금은 매해 수혜자가 될 수 없는 일인지라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돕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유통, 전시공간, 창작지원이라는 고리들이 헐거워진 지금 젊은 작가들은 어디로 ‘튈’ 것인가? 불행히도 앞으로 상당 기간은 재정비의 시간이 될 것이다. 생계에 있어서는 뚜렷한 작품활동을 영위해 가는 작가들은 물론 보다 진전된 성과들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상당수의 젊은 작가들이 붓을 꺾는 일 또한 지켜보게 될 것이다. 다만 모색되어야 할 것은 기득권을 보존하는 일만큼 새로운 창조적 활동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홍 필자소개
바이홍(본명 최홍규)은 한양대 국문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를 수료했다. 현재 갤러리킹 디렉터로 내외부의 다양한 전시 기획과 프로젝트에 참여 하고 있다. 미술과 그 주변의 문화들이 교류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galleryking@paran.com


단호한 실험과 대안 예술활동의 국제적 연대

예술공간 돈키호테

컨템포러리 아트를 주로 고민하는 예술공간 돈키호테가 가지고 있는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대안적 예술가들은 어떻게 자립과 자생의 문제를 풀어나가는가? 둘째, 동시대 예술가들은 어떤 이슈를 채택하고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셋째, 중소지역에서의 예술활동은 어떤 지역적 전략을 채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근 10년 정도 그 윤곽이 드러나고 크러스트가 형성된 다양한 대안적 공간들과 커뮤니티들에 1차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활동이 있다면, 출판을 통해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연구하는 ‘미디어버스’(Mediabus)와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책방 북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 류한길의 메커니즘사운드(mechanism sound)와 홍철기의 노이즈플레이(noise play) 등 국내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거나 오해되고 있는 국내 비음악적 실험예술가들의 작업이다.

이들의 작업은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으로는 90년대 이후의) 기성 예술개념과 미디어,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태도이다. 이들은 기성예술에서 더 이상 창조적 영감을 받을 수 없음과 그렇게 때문에 그 단절-상호참조적이지 않은 단호한 ‘끊기’-로부터 새로운 실험들을 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마치 새로운 예술적 언어와 미디어를 개발하는 연구자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편집자적 플레이어(editorial player)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그들의 작업을 명쾌하게 해석할 만한 언어와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이 미디어버스, 류한길, 홍철기를 주목하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들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링크되는 국제적 대안 예술활동들과의 연대감이다. 비주류적인 활동들이 세계 도처를 돌며 서로의 창조적 영감을 교류하는 장을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국제교류의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에게도 세계 예술 여행자들을 위한 소박한 플랫폼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국제적’( international)이라고 하면 우선, 특히 공무원들의 머릿속에는, 거창하고 거대한 무엇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보다는 간소하면서도 실용적인 관점에서 교류를 위한 공간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돈키호테 필자소개
돈키호테는 박혜강(전 다원예술매개공간 디렉터)과 이명훈(독립큐레이터)이 함께 운영하는 전남 순천에 자리한 예술공간이다. 홈페이지

[신년특집] "2011년, 내가 주목하는 이것" 다른 기사 보기
① 시장의 출렁임과 예술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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