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LAR Signs Andy Warhol, 1981
DOLLAR Signs Andy Warhol, 1981

어, 춥다! 마치 큰 냉장고 속에 들어온 것 같다. 갈수록 물가는 팍팍 오르고 삶도 그만큼 팍팍해진다. 내야 할 돈은 소리 없이 뭉텅뭉텅 나가는데 들어올 돈은 왜 그리 사연이 많아 찔끔찔끔 들어오는지. 수금이 완전 요실금이다. 거기에 몇 십 년만의 추위까지. 얼른 퇴근해서 소녀시대와 카라, 아니 샤이니도 좋고 투애니원을 봐야겠다. 작년 말부터 아이돌들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물론 가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열심히 그들의 이름을 외우고, 연말 모임에서 마치 대중문화비평가가 된 양,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떠든다. 그들은 듣기에 부담 없으며 보기에도 좋다. 아이돌은 그들 자신은 물론 우리들에게도 즐거운 한 때이고 요즘과 같은 시기를 견디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런 시기 문화예술계는 분주하다. 연말정산으로 바쁘고, 또 공공기관은 감사를 받느라 바쁘다. 연초는 연초대로 올해 누가, 그리고 어느 공간이 좋은 활동을 할지 예측하느라 바쁘다. 예술경영계는 여전히 국공립미술기관들의 법인화가 화두이다. 법인화가 되면 경영권과 기획권이 과거보다 분명 독립적이 될 거라 예상하면서도, 결국 경영의 가시적 효과 즉, 수익(돈)이 문제가 된다는 시각이 많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보다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으면서 수익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경영과 기획이 구조화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보다는 이미 잘 알려져서 관객동원력이 입증된 중견이나 원로 또는 블록버스터급 수입 작품으로 채워진다는 얘기다. 법인화가 국회를 통과하면 매년 또는 분기별로 수익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경영계획을 세우는 문화가 일상풍경이 될 수도 있다. 알다시피 우리 문화예술계는 유럽식보다는 영미식, 특히 미국을 모범으로 삼는데, 사실 미국은 철저한 자본과 시장사회이지 결코 복지국가는 아니지 않은가.

한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소녀시대라는 아이돌그룹을 하나 키우는 데 기획사들이 4~5년간 20억 내외를 쓰고 그 수익으로 수 십배를 벌어들인단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이런 류의 기사를 보면서 문화예술계도 아이돌과 같은 스타마케팅, 그러니까 철저한 시장논리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미 대중들의 눈이 철저한 시장문화에 길들어있다는 전제를 아무 이견 없이 받아들인다면, 예술경영자들, 기획자들은 창의적이고 실험적이라는 뜻을 새롭게 정립할 때다. 그러니 이렇게 한가하게 원고를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디 아이돌 같은 참한 작가 없나 주위를 둘러본다. 그래 돈은 모두 양화(good money)지, 악화(bad money)가 어디 있어?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에서 문성근(그는 여기서 영화과 교수로 나온다)은 후배 이선균을 앉혀 놓고 절규한다. &ldquo;돈이 영화계를 망치고 있어, 언제나 돈이 문제야! 돈! 돈!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 책밖에 없어! 책으로 돌아가야 해!&rdquo; 공감 100%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온다. 뭐, 카드 값이 밀렸고, 또 몇 년 전 소득세 고지서가 날라 왔다고? 나는 손에 들었던 책을 다시 덮는다.


김노암 필자소개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를 운영하며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이자 본지 편집위원.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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