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서울예술지원박람회의 일자리존 제공 서울문화재단
2011 서울예술지원박람회의 일자리존
제공 서울문화재단

10년 정도 대학에서 예술경영을 가르쳐왔다.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는 학부와 대학원 과정에 예술경영과가 모두 있다. 대학원은 흔하지만 학부에 예술경영과가 있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국내도 그렇고 해외도 마찬가지다. 대학원 예술경영과는 많든 적든 현장을 경험한 사람들이 진학하는 것이 보통이다. 학부에서의 전공은 다양하다. 예술분야도 있지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경영학, 법학 등은 물론 이공계 출신도 드물지 않다.

예술경영 분야가 새로운 영역인데다가 통합적(혹은 간학문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예술경영과 관련된 전공 공부를 하지 않아도 시장에 진입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그래서 예술경영 현장에는 다양한 경력과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북적인다. 대개는 예술 또는 예술경영에 대한 꿈을 가지고 뛰어드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대개 현장에서 얻은 화두를 가지고 학교로 온다. 화두는 지금 일하고 있는 또는 일했던 현장과 직접 닿아있다. 학부는 좀 다르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진학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대학원에 비해 많이 열려있는 편이다. 예술경영 분야가 넓기는 또 좀 넓은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아 그만큼 꿈도 크다.

학생은 공부를 마치면 사회로 진출해야 한다. 정원이 적은 학과라 졸업생들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 졸업생들도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넓은 예술경영 분야에서 띄엄띄엄 흩어져서 일하고 있다. 좋은 일꾼을 소개해달라는 요청도 드물지 않다. 청탁에 가까운 요청도 있다. 그걸 보면 예술경영을 공부한 사람들이 일할 자리가 많이 는 것은 확실하다. 가르친 학생들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진작 현장과 인연이 있는 대학원 졸업생들에 비해 학부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신경이 쓰인다.

문제는 일자리의 질이다. 예술현장이 영세한 탓이기도 하지만 고용이 안정되고 자기의 뜻을 펼칠 일자리는 드물다. 일자리 창출이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안정된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새로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게는 점점 그 문이 좁아진다. 이른바 심각한 청년실업의 문제다. 전체적으로 예술경영 인력에 대한 수요는 커지면서 소위 ‘계약직’이 주종을 이룬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계약직의 계약기간을 2년 미만으로 한정해버렸다. 2년이 넘으면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당장 공공기관부터 소위 ‘무기계약직’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트랙을 완전히 구분하는 ‘무기계약직’이라고 해서 크게 나을 것은 없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다. 민간부문의 고용은 더욱 ‘유연’해지고 조직은 청년 예술경영 노동자를 소모하면서 지탱한다는 한탄을 듣는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더해 예술경영인을 포함하여 예술계의 상시고용이 상당 부분 정부의 정책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점 때문에 일은 더욱 꼬이게 된다. 예술경영 분야도 청년인턴사업이나 전문인력양성사업과 같은 공공부문의 일자리 사업 덕을 많이 보았다. 사회적기업 일자리 창출사업도 그 중의 하나다. 그 덕분에 예술계에 상시고용이 대폭 늘었다. 문제는 이런 사업들에 힘입어 창출한 일자리가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대부분 연간 단위로, 사업 단위로 성사되는 고용관계에서 정책의 추이가 최대의 변수인 것이 현실이다.

어떤 시기가 되면, 예를 들어 회계연도가 끝날 무렵이면 이 동네의 젊은 일꾼들이 눈에 띄게 동요한다. 연말연시가 낀 요즘이 그런 때다. 정부지원으로 고용이 유지된 자리가 많은 터에 계약이 한꺼번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상당수는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없는 형편이고 상당수는 다시 비슷한 성격의 고용관계를 찾아 자리를 옮기게 된다. 1~2년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만연하는 것이다. 평범한 예술경영인들이 미래를 설계하기에 현실은 너무 팍팍하다. 예술경영 분야에서 일자리의 질은 적정한 보수와 고용의 안정성 못지않게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중요한 잣대가 된다. 소모적이고 기약 없는 고용관계가 더욱 심각한 것은 자기실현의 비전을 갖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한 번에 치유하는 단방약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예술경영 현장만의 문제도 아니고 명백하게 어떤 한 고리가 잘못된 탓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예술시장을 선도하는 공공부문에서 먼저 고민하는 것이 좋겠다. 공공부문의 정책당국은 물론 각 기관들도 ‘사람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기본적인 전제에서 출발했으면 한다. 예술경영의 기본덕목인 경영효율과 존중받는 노동환경을 조화시키는 것이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본다.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의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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