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술경영에 대한 직업적 관심과 수요는 증대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교육환경이 갖춰지고, 직업적으로도 분화, 전문화 등의 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집

21세기 직분, 예술경영

필자가 주장해놓고 스스로 그럴 듯하다고 뿌듯해 하는 말 중에 “연출이 20세기 직분이면 예술경영은 21세기 직분이다”는 주장이 있다. 공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연출이라는 직분이 19세기 후반에 등장하여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진 점을 빗대어 예술경영의 현주소를 표현한 말이다. 공연기획으로 대표되는 예술경영은 역할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독립된 직분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공연예술계의 보편적 구성원이 되어 있지만 그 역사는 짧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예술경영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본다.(필자가 이 동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1990년대 중반에 대학원을 중심으로 예술경영을 가르치는 학교가 늘기 시작한다. 여러 정부를 거치며 문화와 예술의 편익이 새롭게 조명되고 중요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시장은 확장과 세분화의 두 방향으로 내달리며 매개자의 대표적 직분인 예술경영의 역할과 중요성이 대두된다. 불과 20여년 사이에 예술현장에는 예술경영하는 이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경영③ 예술경영의 직업적 발전을 위한 방안

예술경영인의 범주

예술경영인의 범주는 넓다. 시각예술은 젖혀두고 공연 쪽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예술경영인을 나눠보려면 변수가 필요한데 필자는 그 변수를 다섯 가지 정도로 꼽아보았다. 변수의 첫 번째는 일의 수준이다. 교과서식으로 말하면 현장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중간 관리자, 전략적 경영을 하는 사람 등 3개의 수준으로 나눈다. 실무자, 팀장, CEO 정도다. 수준에 맞는 스탠스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예술경영인이 소속된 사업장의 규모와 성격이다. 소속이 없거나 본인 위주의 사업체라 할 수 있는 프리랜스부터 국가기관에 준하는 공공기관까지 폭넓다. 공공기관에 속한 사람은 공무원이거나 공무원에 가깝다.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예술경영인과는 다른 환경일 수밖에 없다. 무엇을 주로 하는 곳인가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가도 관건이다. 세 번째는 고용형태다.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에 해당되는 사람부터 파견직, 비정규직, 정규직, 공무원 등 다양한 고용형태를 보인다. 사용자 또는 사용자편에 있는 예술경영인도 많다. 네 번째는 영역이다. 공연부문은 영리와 비영리가 공존하는 시장이다. 비영리적 성격이 강하다고 하지만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주체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두 가지가 한 조직에 공생하기도 한다. 다섯 번째는 다양한 역할이다. 기획이나 홍보, 마케팅부터 시작하여 재원조성, 예술정책, 공간운영, 인사와 회계에 이르기까지 예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다양한 일이 있다.

고민!

다양한 범주의 예술경영인을 열거할 수 있는 것처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처지와 고민거리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으로 이 일을 택한 사람들의 대체적인 고민거리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보상의 문제다. 보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직업인으로서 노동에 대한 물질적 대가다. 급여나 복지 측면에서의 보상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노동시간은 길고 노동 강도는 강한데 급여는 이에 미치지 않는다. 보상의 또 다른 측면은 보람이라는 반대급부다. 예술경영인들이 기대하는 보상에서 성취와 보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두 번째는 고용의 안정성 문제다. 공연부문에서 일하는 예술경영인의 고용은 대체로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다. 소수의 정규직(정년이 보장되는)을 제외한 대부분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계약직 형태의 고용관계를 맺는다.(그런데 사실은 이 고용관계에서 사용자도 예술경영인일 경우가 많다) 고용기간은 짧게는 두어 달에서 길면 1년 정도다.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라 고용이 보장되는 2년 이상을 계약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예술경영인 중에는 자유로운 활동을 선호하여 프로젝트에 따라 활동하는 프리랜스 기획자도 있지만 비율로 따지면 소수다. 대부분은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전문성과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전망에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고용은 불안정하고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전문가가 되는 과정이라고 믿기 어려울 때 불안은 가중된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경영③ 예술경영의 직업적 발전을 위한 방안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무엇보다 예술경영이라는 직분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정착 과정의 과도기라는 얘기다. 새로운 직분이기 때문에 누적된 좋은 관행이나 사례들이 부족하다. 이에 비해 예술부문의 영세성은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공업적인 작업방식과 초라한 수익구조는 예술경영의 활동 전반을 제약한다. 인력 수요 탄력성이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공연부문은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는 것이 보통이어서 프로젝트의 과정에 따라 필요한 인력의 규모가 달라진다. 축제의 경우를 보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축제는 극소수의 상근인력과 다수의 임시 스태프로 운영된다. 임시 스태프의 고용기간은 길게는 네댓 달이고 짧으면 채 한 달에 미치지 못한다.

고민은 현장에서 여러 형태로 표출된다. 불길한 첫 번째 징조는 ‘조로현상’이다. 현장에서 2, 3년 일하고 나면 세상 다 산 것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시들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가장 창의적이라는 동네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들면 회의가 밀려들고 급기야 현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전망을 찾지 못하게 되면 헤어날 방법이 없다. 그것이 자신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지 조직 때문인지 또는 그 모두의 복합적인 이유인지 파악도 하지 못하고 체념하거나 방황하게 된다.

자격증 도입, 전문직으로서의 위세 강화 필요

예술경영의 직업적 발전을 위해서는 공연부문의 영세성을 극복하는 것이 묘수 중의 묘수다. 하지만 그 길이 만만치 않은 것이 문제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고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영세하고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부문의 영세성을 극복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새로운 직업으로서의 영역을 정착시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예술경영이라는 영역을 직업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실태와 수요를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예술경영 직군에 대한 여러 차원의 접근이 이루어져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표적인 것이 2008년의 「공연예술분야 기획경영 전문인력 수요 및 공급 실태조사」와 금년으로 다섯 번째 조사를 앞두고 있는 「공연예술실태조사」다. 그 외에도 문화예술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조사 대부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필자로서는 역동적인 우리 사회에서 예술경영인과 그 환경의 변화를 담는 데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음은, 좀 거창하지만, 직업적 위세를 높이는 일이다. 예술경영은 이미 하나의 붐이고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미래에 유망한 직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러한 정서적 붐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가 ‘공인자격증제도’다. 예술경영 분야의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다. 공무원들에게 예술행정과 관련된 직렬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반적인 업무와 다를 바 없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이 예술경영의 직업적 위세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예술경영은 진입은 어렵지 않지만 전문성을 담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트랙을 제도화하여 자격증으로 증명함으로써 객관화하자는 것이다. 공연예술부문에는 무대기술 스태프를 대상으로 한 무대예술전문인 자격증 제도가 10여 년 전에 도입되어 제도화되었다. 예술경영부문도 필요가 제기된 지 제법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시도해볼 일이다.

요구할 권리, 당당히

직업으로서의 예술경영③ 예술경영의 직업적 발전을 위한 방안

예술경영 현장 노동자들의 권익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대부분의 예술경영 종사자들은 영세한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거나 단속적 노동을 하게 되어 노동자로서의 권익을 챙기는데 어려움이 많다. 노조 가입율도 극히 저조하다. 형태가 노조가 될지 협회가 될지 모르지만 이들의 자주적 결사조직이 필요하다. 현재는 주로 예술경영 부문의 사용자에 해당하는 이들이 이끌고 있는 (사)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와 (사)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가 있다. 직종별로는 하우스매니저들의 모임과 공연장에서 일하는 홍보마케팅부문 스태프들의 모임이 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도 컨설팅 등을 통해 지원한다. 그렇지만 예술경영 현장 노동자의 집단적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의 한 축은 산별노조나 이해집단 위주로 나아갈 것이다. 자연스럽게 예술경영인들도 이해당사자로서의 자주조직을 형성해야할 것이다. 다양한 자주조직을 중심으로 주장할 것은 주장하고 구성원 내부적으로 도모할 것은 도모하게 될 것이다. 서구의 경우 세분화된 직능별 조합의 형태로 예술인 또는 예술경영인의 권익을 놓고 다툰다는 점이 참고가 된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 접점을 찾게 되겠지만 그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수준의 갈등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지속고용 최우선, 여전히 큰 과제

정책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고용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IMF를 거치며 평생고용의 개념이 깨지면서이다. 그 후 상당수 정책의 최우선 효과 중의 하나가 고용으로 등장했다. 몇 년 전부터 예술경영 부문도 고용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의 대상이 되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8년부터 시작한 사회적기업과 사회적일자리사업이다. 사회적기업은 그 자체가 고용창출을 중요 목적 중의 하나로 삼는 사업이다. 이 정책의 대상에 문화예술부문이 포함됨으로써 예술현장도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방도로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문인력양성사업이나 청년인턴사업 등도 비슷하다. 이들 사업들 덕에 상근 인력이 대폭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안정적 고용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인력들이 주기적인 좌절을 되풀이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지속고용을 중요한 성과와 목표로 관리하고 진행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의 목표와 방향성을 조정해야 한다. 공공지원에 있어서도 예술경영이라는 일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지원방식을 프로젝트 위주에서 단체지원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미 이 정부 들어 공연장 상주단체 지원제도와 같이 중장기 단위의 단체지원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결국, 사람이다

예술경영인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프로그램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예술경영을 가르치는 대학(특히 대학원)의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전문성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현장과 대학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데 먼저 대학들이 노력해야 한다. 대학은 차별적으로 운영하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협업해야 한다. 재교육을 비롯해서 분야별 전문성을 차별화 하는 것이 한 예다. 협업의 대상은 현장과 다른 대학이 될 것이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현업중심의 교육사업도 그 대상이다.

예술기관이나 조직은 많은 한계를 가진다. 안정적인 기관은 정부나 공공의 통제 아래 있기 쉽고 민간부문이나 영리부문은 사업의 성과에 휩쓸리기 쉽다. 예술경영인에 대한 처우는 이런 한계 속에 이루어진다. 정원을 늘릴 수 없는 형편에 고용의 안정성을 요구하기 어렵다. 빠듯한 수익구조를 훌쩍 넘어선 보상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스태프들이 자신이 소모품으로 쓰인다고 느끼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인 인력운용에서 비롯된다.

스스로 목소리 내기

예술경영인들의 자체적인 전문성 제고 노력도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의 핵심을 호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기회에 달리 다루는 게 좋겠다. 다만 예술경영인들이 동료의식(동업자 정신이라고 하자)을 갖고 공동의 문제를 대응하는 데도 시간과 품을 팔 필요가 있다. 형편없는 보상에도 불구하고 일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이라고들 한다. 그것이 사명감을 원료로 자신을 불태우는 자기희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충만한 내적 동기 못지않게 합당한 노동조건과 외적 보상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군데서 보아 알고 있다. 결국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주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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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을 겸하고 있으며 본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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