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 의해 위탁 · 운영되는 창작공간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연달아 문을 연 지 3년차에 접어들었다. 이들 공공기관 창작공간이 등장, 전개되어온 과정을 정리하고, 이들이 내세웠던 새로운 예술창작지원의 형태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 향후 과제 등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연재순서: ① 창작공간의 전개와 흐름
지난해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전국창작스튜디오 네트워크 포럼'에서 최근 서울시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는 생활친화형 창작스튜디오를 '창작스튜디오 2.0버전'이라고 불렀는데, 필자가 '2세대 창작스튜디오'라고 분류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창작스튜디오들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갖추고 창작 공간을 지원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형을 일컫는다.

창작공간 지원정책의 시작

- 농어촌 지역 유휴공간 활용

후용공연예술센터

후용공연예술센터

한국의 공공영역에서 창작공간 지원정책이 시작된 시기는 농어촌 공동체의 붕괴와 함께 1995년 폐교와 같은 유휴공간들이 생겨나면서 부터이다. 이 정책은 1971년 뉴욕의 한 초등학교를 개조해 국제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PS.1과 같은 사례를 참조하게 된 것으로 도심의 공동화 현상으로 생겨난 뉴욕시의 경우와는 매우 다른 상황이었지만 1997년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논산과 강화에 폐교를 활용한 미술창작실을 조성하였다. 이후 1999년 제정된 ‘폐교 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 하에 2004년까지 29개소가 생겨나게 되는데, 폐교의 매각이나 대부를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폐교를 활용한 지역의 문화시설을 확충하자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정책이었다. 이렇게 해서 조성된 공간들은 1998년 김해 1곳, 1999년 달성, 양평, 평창, 단양, 무주, 구미, 성주에 7곳, 2000년 강릉, 청원, 진안, 김제, 김천 5곳, 2001년 광주북구, 안성, 제천, 담양, 상주, 남해 6곳, 2002년 함평, 해남, 산청, 정선 4곳, 2003년 장수 합천 2곳, 2004년 동해, 정읍, 진해, 거창 4곳 등이었다.

하지만, 폐교를 활용한 창작스튜디오의 경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기면서 문을 닫게 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첫째, 도심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입지적 조건으로 인해서 예술가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운영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둘째, 정부의 지원이 지속적이지 않아 교육부와의 임대료 등을 내지 못해 운영을 포기하기도 했으며, 셋째, 지역적 정서를 고려하지 못한 예술가들이 주민들과 마찰로 인해 공간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농어촌 지역의 폐교창작스튜디오들은 지역주민들의 오해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외롭게 싸워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넷째로는 시설이 노후 되어 수리와 보수에 따르는 경비, 절차 등의 문제로 운영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주민들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며 지금까지 잘 운영하고 있는 원주 문막의 후용공연예술센터, 화성의 창문아트센터, 오궁리 예술촌 등의 공간들도 많이 생겨났다. 폐교 창작스튜디오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 지자체가 운영예산을 들여 설립하고 민간에 위탁하는 경우와 예술가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임대 운영을 하는 경우로 나뉜다. 이 공간들은 지역창작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문화공간이 전무한 농어촌 지역의 문화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공간들이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지원을 받지 못하고 농어촌사업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마을 공동체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에서는 당분간 폐교를 창작공간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공공과 민간영역에서 지속될 전망이다.

 팔각정 스튜디오
고양창작스튜디오

▲▲ 팔각정 스튜디오
▲ 고양창작스튜디오

1세대 창작스튜디오

- 미술관 운영의 작업공간 지원


앞서 살펴본 폐교활용 창작스튜디오들은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면, 도심을 중심으로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창작스튜디오를 건립하는 사례들도 생겨났다. 제일 먼저,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서 전 세계 예술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광주광역시는 비엔날레가 열리는 중외공원의 팔각정을 개조해 팔각정 스튜디오(1997)를 오픈하였으며, 양산동의 근로자 아파트를 개조하여 양산동 스튜디오(2004)를 오픈한다. 서울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농협창고를 개조해 창동스튜디오(2002)를, 이후에 고양창작스튜디오(2004)를 건립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난지도의 침출수 처리장을 개조하여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06), 청주시가 청주창작스튜디오(2007)를 오픈하기까지 창작스튜디오들은 공간지원 중심의 스튜디오 운영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미술관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부속기관 정도로 유지되면서 미술관의 담당학예사가 행정업무를 관할했다. 2004년 프로그램 매니저를 별도로 두면서 레지던시 업무 전문가를 상주시킨 것은 창동스튜디오가 처음이었다. 이러한 공간지원 중심형 창작스튜디오들은 작업실이 필요했던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 대안공간을 중심으로 발굴된 다양한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지원 토대를 마련하였다.

프로젝트형 레지던시

- 지역 기반의 협력 프로그램


다른 한편으로는 2003년 참여정부의 출범과 함께 공표된 ‘새예술정책’과 ‘창의한국21’은 기초예술과 생활문화를 조율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정책이 공공미술정책이었다. 2006년 공공미술추진위원회가 다양한 지역사업들을 내놓으면서 사업의 주요 거점은 지역의 예술가 공동체를 토대로 하게 되었으며, 그동안 예술가들이 협업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시민사회단체 및 지역운동가들과의 만남이 지역프로젝트 안에서 성사되기 시작했다. 그중 2006년 의재미술관이 운영한 의재창작스튜디오는 지역의 문인화와 공공미술을 연결한 프로젝트형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광주에서는 의재창작스튜디오를 통해서 팔각정, 양산동 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들과 연합전시 및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공간위주의 지원보다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광주의 예술가들이 만든 자발적인 매개공간 미나리(2008)가 주관하는 대인예술시장 레지던시(2008, 2009)는 프로젝트형 레지던시이자 생활친화형 예술공간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공공미술 지원사업과는 별도로 프로젝트형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는데, 흥미롭게도 1990년대 후반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대안공간이 아닌, 2000년 이후 지역을 기반으로 시작한 대안공간들이 지역기반의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안양의 스톤앤워터(2002), 인천의 스페이스 빔(2002), 부산의 오픈스페이스 배(2006), 안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2007)등 지역적 성격을 바탕으로 제안된 프로젝트형 레지던시들은 특정한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지역과 결합된 다양한 사회연구 프로그램들을 내세우면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10년부터 지원사업의 주요부분을(레지던시 지원사업 포함) 지역문화재단에 이관하면서 지역문화재단이 매칭으로 지원하는 프로젝트형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폐교를 중심으로 하는 창작공간, 재래시장, 마을 공동체, 시민사회 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주축이 되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세대 창작스튜디오

- 생활친화형 문화시설

신당창작아케이드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 금천예술공장

서울시 창작공간 추진단장을 지낸 김윤환은 지난해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전국창작스튜디오 네트워크 포럼’ 본지 92호 ‘창작스튜디오 네트워크 포럼’ 리뷰 보기에서 최근 서울시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는 생활친화형 창작스튜디오를 ‘창작스튜디오 2.0 버전’이라고 불렀는데, 필자가 ‘2세대 창작스튜디오’라고 분류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창작스튜디오들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갖추고 창작공간을 지원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형을 일컫는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의 취임과 함께 ‘서울 컬처노믹스 정책’을 내놓는다. 이 안에는 구로공단 지역의 인쇄공장을 개조한 금천예술공장(2009), 지하상가를 공예인들의 창작공간으로 전환한 신당창작아케이드(2009), 문학인들을 위한 연희문학창작촌(2009), 동사무소를 개조한 서교예술실험센터(2009), 철조공장 밀집지역의 공연예술가들을 위한 문래예술공장(2010), 예술을 통한 치유와 나눔을 표방한 성북예술창작센터(2010), 관악어린이 창작놀이터(2011), 홍은예술창작센터(2011), 장애인창작스튜디오(2011) 등 총 9개소에 이른다. 이 공간들은 예술가들의 창작지원 중심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지역주민들과 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생활문화시설에 가깝다.


인천아트플랫폼
인천아트플랫폼

서울시의 야심찬 프로젝트에 뒤를 이어 수도권에서는 경기도미술관이 주축이 되어 문화 소외지역인 안산시 선감도의 (구)도립직업학교를 개조하여 경기창작센터(2009)를 오픈한다. 대규모 시설에 창작환경을 갖춘 이 센터에서는 다양한 국제교류 프로그램 및 지역과 함께하는 예술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인천 중구 구도심의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인천아트플랫폼(2009)은 근대문화시설을 중심으로 창작공간을 구축하였다.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유형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은 전국의 지자체들의 구도심 공동화 현상을 푸는 문화적 열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로는 KT&G의 연초창을 개조한 대구예술창조발전소(2011), 수원시가 추진하는 행궁동 레지던시(2011)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각 지방자치 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창작스튜디오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장르 융·복합형 창작공간의 등장

최근에는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시작한 창작스튜디오들이 단일 예술장르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산업, 예술시장과 결합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부가 양평의 남한강 연수원을 개조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갤러리들의 양평군 예술창작스튜디오(2013년 예정), 지역의 채석산업과 연관한 포천 아트밸리(2010), 유원지 내의 모텔 유휴공간을 활용한 양주군청의 장흥아트밸리(2006), 김해의 도예산업단지에 자리 잡고 있는 클레이아크미술관(2009), 패션디자이너들을 위한 동대문패션창작스튜디오(2009)와 대구패션창작스튜디오(2011), 전주 무형문화의전당(2013) 등 장르 융복합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최근 레지던시 열풍 현상의 중심에는 예술을 통한 지역사회 개발 혹은 낭만주의적 예술가 상에 대한 기대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사회의 문화적 인식은 아직도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예술지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고 예술가들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뜻하지 않았던 요구들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혹자들은 우려의 시선으로 최근의 현상들을 바라보고 있다.


[특집] ‘공공기관 창작공간의 현황과 운영’ 다른기사 보기
② 프로그램과 운영구조 ③ 좌담(예정)




백기영 필자소개
백기영은 1969년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예술을 전공하였다. 영상미디어 작가로 정원&이주 프로젝트(2002), 생명의 땅 프로젝트(2004), 파프리카 프로젝트(2008) 등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또한, 2004년 2기 창동스튜디오 입주 작가를 거쳐 광주비엔날레(2004, 2008), 공주자연미술비엔날레(2004),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APAP(2005)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2006년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디렉터를 걸쳐, 안산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의 디렉터를 역임하였고, 현재 경기창작센터 개관 시부터 학예 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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