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weekly@예술경영]은 창간 3주년을 맞아 예술경영의 최신 이슈와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세계예술경영의 이슈'를 마련했다. 웹진 국내외 편집위원들의 분석을 통해 지금 세계 예술경영이 고민하고 있는 키워드를 권역별, 이슈별로 구성하고 이를 통해 각국의 현황과 대응을 살펴보고자 한다. ④ 비영리전시공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경제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예산이 삭감되는 곳은 문화예술계이다. 그렇다고 모두 손 놓고 불만만 토로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문화예술의 생존을 걸고, 지금 바로 대안의 가능성들을 찾아야 한다.

기로에 선 비영리전시공간

댄 퍼잡스키의 드로잉

댄 퍼잡스키의 드로잉

요즘 토탈미술관 전시장에는 루마니아 작가 댄 퍼잡스키의 드로잉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를 기획한 입장에서 이 중 마음에 걸리는 작업이 하나 있는데, 바로 평창동 언덕길을 그린 것이다. 늘 그렇듯 단순하게 그려 넣은 언덕길, 그 가장 아래엔 가장 크게 (서울)옥션하우스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는 (가나아트)갤러리가 옥션하우스 보다 조금 작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갤러리 옆에 아주 작게 (토탈)미술관이 그려져 있다. 물론 우연이었다. 옥션하우스를 지나, 갤러리를 지나서야 미술관에 도착하게 되는 그 길의 구성은 말이다. 하지만, 외국 작가의 눈에 비친 이 배치도는 오늘날 전 세계 현대미술의 판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황으로 보였던 것이다.

큐레이터를 업으로 삼은 지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다. 독립큐레이터에서, 기업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서울시립미술관을 거쳐 대안공간으로, 그리고 다시 대안공간에서 사립미술관으로. 공교롭게도 상업적인 전시공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형의 비영리전시공간에서만 일을 해온 별난 경력이다. 별난 이력 덕분에 사실 비영리전시공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가을 초입, 바로 지금 비영리전시공간의 이슈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비영리전시공간은 지금 변화하거나 대안을 찾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누군가는 언제나 비영리공간은 힘들었다며 그것이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절박하고 절실하다. 이것은 지금, 현재의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 10년, 20년 후를 바라보는 절절함이다. 물론 지금 현재 상황만 보자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좋은 작가들과 좋은 큐레이터들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넘나들며 열심히 활동하고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이 경쟁력이 바로 지난 십 수 년 간 다양한 비영리전시공간들이 공들여왔던 시간과 노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자투리 공간이라도 운영하며 비영리전시공간은 젊은 작가들을 지원해 왔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곳에서 젊은 기획자들과 작가들이 함께 나눈 시간의 결과로 그들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비영리전시공간들이 재정난에 허덕이며 하나둘 사라져가거나 그 성격이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 틈새로 아트페어나 옥션들이 끼어들면서 돈이 되는 작업/전시와 돈이 안 되는 작업/전시 사이의 간극은 점점 심해지고, 많은 작가들이, 많은 애호가들이 옥션이나 아트페어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다고 미술시장이 문제라며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업적인 행사와 상업적인 공간들이 있다면, 그에 견줄 수 있을 만큼의 비영리전시공간들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서로를 견제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종종 비영리전시공간에서는 돈을 벌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오해이다. 오히려 비영리전시공간이야말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그 돈으로 작가들에게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북돋우며, 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현대예술 본연의 역할을 좀 더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서로 없는 처지에 이해하자며, 무료로 빌린 공간에서 무료로 작업해주고, 무료로 전시를 관람하는 시스템은 서로를 지치게만 할 뿐이다. 어떤 대안들이 가능할지 더 늦게 전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가장 단순하게는 적정한 수준의 도록판매나 입장수입도 있을 수 있고, 흔히 볼 수 있는 후원전시 형태, 혹은 멤버십제도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형식들은 이미 시험해 보았고, 그렇게 장기적인 성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어쩌면 독일의 쿤스트페어라인의 시스템과 같은 어소시에이션 형태의 해외 사례들이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 불어 닥치고 있는 경제적 난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경제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예산이 삭감되는 곳은 문화예술계이다. 그렇다고 모두 손 놓고 불만만 토로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문화예술의 생존을 걸고, 지금 바로 대안의 가능성들을 찾아야 한다.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시장 개척의 의미

아이 트래커 홈페이지
윈도우팜 홈페이지

▲▲ 《아이 트래커》 홈페이지
▲윈도우팜 홈페이지

돌이켜 보면, 미디어아트 분야는 늘 시장에 초연했다. 어떤 작가의 말처럼, 한 번도 호황인 적이 없었으니, 불황에도 대범했다고나 할까. 미술시장에서 그들을 환대한 적도 없었을 뿐더러, 그들이 미술시장 언저리에서 끼어 달라고 애걸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도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미디어작가들의 생존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미술시장의 스타작가들처럼 큰 성공을 얻지는 못했지만, 테크놀로지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와 바람 덕택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미디어랩이나 미디어학과, 그리고 미디어아트센터와 같은 곳들에서 테크니션으로 혹은 초청작가로 나름 대접받으며 지냈던 작가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조금 달랐는데, 각 대학에서 경쟁처럼 BK21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미디어랩을 만들기 전까지 많은 작가들은 작업실에서 수공으로 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테크놀로지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미디어아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아무리 시장과 경제적 상황에 초연했다고 하더라도, 세계경제의 흐름으로부터 미디어아트가 안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일본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경제가 어려워지자 속속 미디어아트센터의 문을 닫고, 예산을 삭감했다. 좋았던 적도 없었지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경제적인 지원축소가 오히려 미디어아트에는 약이 되었다. 그리고 미디어아트 본연의 출발점, 기술자체에 맹목적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기술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 하는 내용적인 측면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에서 수상하는 작품들을 보면 기술은 사실 내용의 뒤에 숨겨진다. 피에이티(F.A.T, Free Art&Technology) 랩을 비롯해 오픈프레임워크스(OpenFrameworks), 그래피티리서치 랩 등 미디어아트 그룹의 작가들이 함께 만든 《아이 트래커》(eye tracker)는 루게릭병에 걸려 사지가 마비된 그래피티 아티스트 템트(Tempt)를 위해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난 몇 년간 전 세계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의 상을 휩쓸 정도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일반적으로 의료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아이트래킹장치는 고가의 장비이지만, 이들 작가들은 플레이스테이션 등 기존 게임 장비에서 따온 부품과 같은 오픈소스장비들을 사용해서 저가로 장치를 개발했다. 덕분에 침대에 누워서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었던 템트는 다시 그래피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장치들을 상업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지만, 세계 곳곳을 누비며 워크숍을 진행하고 기술을 사람들과 나누면서 그들은 적지만 자신들의 작업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하여 활동하고 있다.

윈도우팜 링크 역시 새로운 유형의 미디어아트 그룹이라 할 수 있다. 환경문제와 닿아 있는 윈도우팜은 버려진 플라스틱 페트병을 사용하여 사람들이 각자의 창에서 정원을 가꾸듯 필요한 야채를 재배하여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디자이너, 공학자, 미디어작가들이 함께 작업을 하고 사람들과 공유한다. 이들의 작업은 미디어아트 전시나 페스티벌을 통해서도 소개되지만, 웹사이트를 통해서 더 많이 알려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디자인의 조립세트를 소개하고, 직접 찾아가 워크숍을 하는가 하면, 온라인으로도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개발한 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전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워크숍을 개발하여 전시와 연계된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자신들의 작업을 함께 소개하는 것은 최근 미디어작가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게다가 자신의 작업을 조립세트나 상품으로 제작하여 판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량생산까지는 아니지만, 온라인을 통해서 전 세계 고객들을 대상으로 판매가 가능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워크숍을 개발하고 전략적인 실행계획을 세우고 구성하여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직접 알리고 판매까지 하는, 최근 미디어작가들의 이러한 활동은 미디어아트가 기존의 순수예술과는 다른 지점에 대해 작가들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미디어아트의 오리지널리티는 아이디어인 것이지 작품으로 나오게 되는 오브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아이디어는 전시장에 박제화 되는 것보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함께 숨 쉴 때 더 의의가 있기도 하다. 아마도 미디어작가들은 그들만의 마이크로 시장을 계속해서 개척해 나갈 것이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작품으로 숨쉬기 위해서 말이다.



세계예술경영의 이슈 다른기사 보기
① 아시아 ② 북미 ③ 유럽 ⑤ 전문인력수급 ⑥ 예술경영인의 지위 ⑦ 민간예술기관 ⑧ 좌담

신보슬 필자소개
신보슬은 이화여대 철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석사를 마쳤으며 현재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7년부터 전시기획을 시작해,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아트센터 나비의 창립멤버로 일했고,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미디어시티서울) 전시팀장(2003~5), 의정부디지털아트페스티벌 큐레이터(2005), 대안공간 루프 책임큐레이터 등을 역임했으며, 2007년부터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nathalie.boseulshin@gmail.com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