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 ‘예술인 복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이 법에 근거한 구체적인 시행령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예술인들의 근로환경과 창작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제도 마련을 위해 예술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요구되는 지금, 예술인 복지법의 내용 및 후속 조치에 대한 추진 과정 및 방안을 짚어본다.

예술인의 법적 지위, 초석을 다져

일시 : 2011년 11월 22일(화) 오전 10시 장소 : 대학로 카페 장 패널 : 김미경 _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 사무관 오세곤 _ 연출가, 순천향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홍경한 _ 미술평론가 사회 : 박영정 _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연구실 연구위원

박영정 오늘 이 자리는 예술인 복지법 제정의 의미, 이후 전개될 후속조치의 내용과 준비일정, 공연예술 및 시각예술 현장의 반응과 과제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예술인 복지법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과 소감을 들어봤으면 한다.

오세곤 매스컴에서는 올해 초 최고은 씨와 관련된 안타까운 사건을 연관시켜 예술인 복지법 논의과정을 보도했다. 하지만 예술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에 대한 논의를 해왔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 복지법이 통과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국가가 예술인의 가치와 지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물론 기대했던 주요 사안들이 이번 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아 실망감도 있다. 어쨌든 선언적 의미에서라도 통과가 되었다는 것 자체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정부와 예술계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면에서 큰 방향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박영정 국회에서 제정된 법안의 주요 내용을 김미경 사무관께서 간단하게 소개해 줬으면 한다.

김미경 예술인의 업무상 재해에 대해 산재보험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고, 표준계약서의 개발과 보급, 예술인 경력 증명에 대한 별도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또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예술인 복지증진에 관한 시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복지재단)을 설립하여 복지지원 사업을 추진하도록 되어 있는데 주요 사업으로 예술인의 직업안정과 고용창출, 직업전환 지원, 복지금고와 공제사업 운영, 개인 창작자나 원로 예술인 등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지원 등이 있다.

박영정 복지재단이 설립되면, 이를 통해 다양한 예술인 복지 프로그램이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입법 과정을 되짚어 보면, 처음 발의된 네 개의 법안에 있던 주요 내용 가운데 이번 법안에서 제외된 부분은 무엇인가.

오세곤 예술가의 근로자 의제를 통해 고용보험에 편입시키는 부분으로, 이를 근거로 해서 예술가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이었다. 이 부분은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가 처음부터 난색을 표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안다. 4대 보험 중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은 일반적으로 가입되어 있는 데 비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미가입자가 많은 상황이었다. 특히 원안의 핵심은 예술가의 산재보험, 고용보험이 가능한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었는데 고용보험 관련 조항이 삭제되었다. 또 하나 ‘예술인복지기금’ 설치 관련 조항이 빠졌다. 이번 법안에 예술인복지기금을 대체할 만한 방안이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김미경 예술인복지기금에 대한 조항은 공적 기금 설치 요건에 맞지 않아 추진할 수 없었다. 새로운 기금을 신설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것은 문화부 소관이 아니다. 부처합의나 국회 다른 위원회와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기금 대신 복지재단 사업의 하나로 ‘예술인복지금고’ 운영 방안이 포함되었다.

박영정 언론에서는 이 법을 ‘최고은법’이라고 불렀는데 정작 시나리오작가, 화가, 창작예술가는 오히려 이 법에서 배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선이 있다. 이 법에 대한 시각예술분야의 반응과 입장은 어떠한가.

복지금고, 공제, 원로예술인 지원사업 등도 장르 구분 없이 모든 예술인들이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산재와 표준계약서 부분이 부각되어 나오다 보니 창작예술가는 제외가 된다는 오해를 일으킬 만하다. _ 김미경

홍경한 시각 분야에서는 이 법이 자신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예술인의 지위에 대해 고민하고 그 위상과 복지에 대한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그렇다고 큰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다. 사실 산재보험의 경우 고용관계가 있는 쪽에서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닌가. 하지만 시각 쪽은 거의 프리랜서, 작가 등 고용관계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본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술계는 4대 보험을 가장 원했지만 어느 하나조차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에 실망감을 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각예술분야가 서자 취급을 받는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근본적으로 시각예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수입이 없거나 매우 적기에 보험, 공제 등 복지를 위한 정부차원에서의 여러 플랜이 마련된다 해도 동참하기 힘든 구조다. 생활안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선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어쨌든 미술계는 예술인 복지에 관한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와 관련한 뚜렷한 시그널은 다소 미미한 편이라는 건 확실하다. 복지재단이 기금을 어떻게, 얼마나 마련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물음을 갖는 등 일단 추진과정을 지켜보자는 여론이 크다.

일 년 후 바로 가동, 할 일이 많다

박영정 현재까지 예술계에서는 이번 법 제정으로 예술인 복지 정책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것 같다. 문제는 앞으로 이 법이 어떠한 방향으로 구체화되느냐 하는 것이다. 법 시행을 위한 시행령의 제정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법이 언제부터 발효되며, 이와 관련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생각하고 있는 후속조치의 내용과 일정은 어떠한가.

김미경 지난 17일 법안이 공포되었고 내년 11월 18일부터 시행이 된다. 앞으로 일 년동안 시행령, 시행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시행령 등에는 예술인의 정의, 표준계약서의 내용과 보급방법, 예술인의 경력 증명에 대한 별도 조치 등이 포함된다. 시행령, 시행규칙 초안을 4월까지 마련하고, 7월까지 예술계의 의견 수렴과 법률 자문을 거쳐 8월에 부처간 협의, 10월에 국무회의 상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11월에 시행령, 시행규칙이 공포된다. 시행령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더 많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간을 두고 각 분야, 장르별로 연구를 하고, 다양한 예술인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려고 한다. 산재보험 적용과 관련해서는 고용부와 협력하여 2월까지 예술인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그 후, 고용부에서 제도설계, 산재보험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표준계약서의 보급, 경력 증명 조치 마련 등은 시행령과 같이 해야 하는 부분이라 4월까지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시행령, 시행규칙 일정에 맞춰서 준비할 계획이다. 복지재단도 그 기간 중에 설립을 추진하여 2012년 11월에 법이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할 것이다.

박영정 예술계 일각에서는 이 법이 공연예술가들에 치우친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산재보험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고 보는데 앞으로의 준비과정에서 복지재단 사업 등 창작예술가와 관련된 복지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게 있는가.

김미경 예술인 복지법 후속조치에 대한 언론 브리핑 후 산재보험에 대한 언론보도 기사가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사회보장 확대지원은 단체에 소속되어 있거나 어느 정도 고용관계가 있는 예술인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직업안정, 고용창출, 직업전환 지원은 어떤 장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복지금고, 공제, 원로예술인 지원사업 등도 장르 구분 없이 모든 예술인들이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산재와 표준계약서 부분이 부각되어 나오다 보니 창작예술가는 제외가 된다는 오해를 일으킬 만하다.

예술인 경력 증명이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도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따라서 직업으로 예술인의 기준은 마련되어야 한다._ 박영정

홍경한 어떤 제도를 새롭게 도입한다고 해도 엄밀히 말해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과 병행되지 않는다면 크게 부응할 수 없을 것 같다. 시각분야에도 훗날 산재보험이 적용된다고 할 때 환경적인 영향을 받는 조각 등, 소위 혜택이란 것을 받는 작가들은 소수에 머무를 것이며 회화 쪽은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미술계는 ‘생활안정대책’이나 ‘창작활성화 대책’ ‘고용창출 대책’의 일환에서 세세하게 접근하고,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을 상기해 사회보장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가동 가능한 프로그램에 무게를 두길 원한다. 이는 현실적인 부분이고 현장의 얘기다. 고용관계가 드물거나 없기에 오히려 기본적인 생활기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예술가들의 그러한 실태적인 내용들이 간과된다면, 해당 제도의 의의에 적절히 부합하지 못함은 물론 그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이러한 측면들이 반영되었으면 한다.

오세곤 ‘고용창출이 최고의 복지’라는 이야기를 어제 다른 회의에서 말했다. 일각에서는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면서 예술인 역시 일반 복지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노인은 노인복지법으로 하는 것처럼 일반 복지로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어제 토론회에서 매년 1만명의 예술인을 고용하는 어찌보면 황당한 설계를 주장했는데, 생활예술 활성화를 기치로 내걸고 예술인이나 공연예술단체들이 전 국민의 예술 체험을 도와준다는 전제 아래 전국의 300개 기초 단체가 공연예술단체를 5개씩 운영하고 각 단체가 40명씩 고용을 한다면 6만 명, 20년간을 순환주기로 하면 매년 3천명의 신규인력이 생겨난다. 시각 분야 역시 기초단체와 그 하위의 읍면동 연고예술인 제도로 역시 같은 규모의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 또 학교의 경우를 보면 5천개 학교에 예술인 강사가 나가고 있는데, 약 1만1천여 개에 이르는 모든 초중고에 학교마다 최소 5개 장르 예술강사를 파견한다면 5만5천명의 강사채용이 가능하고, 역시 매년 거의 3천명 정도의 신규 고용창출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예술전문인력 대학 캠퍼스 상주제도를 통해 예술인이 작품발표도 하고 전공생들의 실기 훈련에도 참여한다면 역시 상당한 규모의 고용 창출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예술인의 고용창출과 소득관계가 확실해진다면 일반 복지로도 해결할 수 있다.

예술계의 당면과제, 표준계약서와 경력 증명의 현실화

박영정 표준계약서, 복지금고 등 실질적인 사업들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김미경 예술계 계약에 대해서는 그 동안 진행된 연구들이 있다. 개인 창작자는 업무상 계약관계나 고용관계가 별로 없는 편이지만 공연 분야를 보면 서면계약은 18%, 구두계약은 30% 정도라고 한다. 그 나머지는 무계약인 것이다. 실제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다보니 임금체불 등의 경우 근로자로 인정받는 사례가 드물다고 한다. 표준계약서는 개인 창작자보다는 고용관계가 있는 분야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복지재단사업으로 공제나 금고가 있는데, 공제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이미 연구가 선행되었다. 복지금고는 정부의 지원 등을 기반으로 금고가 조성이 되면 생활자금대출, 주택대출 등 다른 금고 사례를 참고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금고나 공제를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 것인지는 좀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박영정 경력증명과 관련해서 프리랜서 작가들의 어려움은 예전부터 많이 얘기되었던 부분이다. 과거 시각예술분야의 구본주 작가 사건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부터야말로 예술계가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정보를 주고 설명하고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수렴하면서 거리를 좁혀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_ 오세곤

홍경한 미술계에선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는 일도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고, 예술인 경력 증명에 대한 부분 역시 난감한 부분이다. 예술가의 정의나 예술가들의 근로자 규정 못지않게 어려운 문제다. 정당한 복지 수혜 산출의 근거가 되는 경력 증명서의 경우 어느 선까지가 예술인이고 또한 그것에 합당한 경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와 맞물려 명확한 의견 도출이 쉽지 않다. 물론 미술계에도 굵직한 단체가 있으나 경력 증명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담보할 만큼의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 보기 어렵고, 설사 가능하다 해도 예술이 가치적 평가로서 정량적으로 수치화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무시하기 힘들다. 만약 대형 비엔날레에 참가한 것이 인정된다면 이에 대한 기준과 유사한 비엔날레 등에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등등 계속된 물음표가 따라붙게 된다. 또한 3년 이내와 같이 특정한 기간에 개인전을 몇 회 했냐는 것이 공식적인 경력으로 인정된다면 질적인 것에 대한 변별력도 동시에 요구된다. 이는 예술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한 고민의 연장이며 현재로선 실질적 적용이 어렵다고 본다. 미술계 전문가들과 작가들, 그리고 행정 주체가 서로 머릴 맞대고 연구해야할 대목이다.

박영정 예술의 본성이라는 측면에서 예술인 경력 증명이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도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따라서 직업으로 예술인의 기준은 마련되어야 한다. 이후 예술인 복지법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 부분이 제일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객관적인 규정을 만들 수는 없지만 예술계 내에서 합의할 수 있는 집단적, 잠정적 규정이 필요하다.

오세곤 일종의 ‘필요악’이라 하겠지만 어쨌든 규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술계 스스로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근본 속성으로는 예술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예술계 스스로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홍경한 결국 예술인의 정의와 범위부터 해결해야 할 개념들이다.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술가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근접한 기준으로서, 예술활동을 통해 재원이 발생하고 그것으로 생활고를 전적으로 해결하는 예술가들을 그 범주 안에 넣으면 일단 기초적인 기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작물이나 창작물에 대한 전문적 평가지표를 만들고 밀도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면 어느 정도 필요악일 지라도 규정은 만들어질 수 있다. 초기엔 그 정도 테두리 내에서 기반을 다지고 정부가 이를 참고해서 만든다면 아쉬운 대로 형태면에서는 일정한 완성이 가능하리라 예상한다. 물론 그것엔 예술가나 단체의 경력사항을 포함한 평단의 평가, 대중적 평판도 반영할 수 있다.

큰 틀에서 차근차근, 비판과 의견수렴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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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정 몇 가지 후속조치에 관한 과제를 알아보았다. 예술인의 정의, 기준에 대해 예술계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우리 예술계 입장에서도 이 법안에 대해 2012년부터는 좀 더 적극적인 관심과 활발한 논의를 가져야 할 것이다.

홍경한 일단은 생활안정과 고용창출에 대한 부분에 있어 보다 실질적이며 친절한 연구를 해주었으면 한다. 또한 그것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생활안정 면에서 정책결정자들은 흔히 일반적인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생각을 하고, 예술에 대해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인식의 문제, 즉 예술의 특수성을 먼저 인정해줘야 그 다음의 화두를 불러 올 수 있는 데 그게 잘 안 되는 듯하다. 나아가 고용창출적인 측면, 다시 말해 일할 수 있는 사회적 근간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일례로 고용보험만 해도 시각분야에서는 적용 가능한 산업 자체가 거의 없고, 공제회의 운영이나 보험이 시행된다 해도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여건을 지닌 사람이 10%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예술가의 실업급여나 고용보험이 적용되려면 그만한 시스템이 구동되어야 하기에 그러려면 그와 관련한 부분의 개척과 사회적 배경이 존재해야 한다. 물론 생활안정과 고용창출이라는 앞서 언급한 당면 과제들이 복지법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복지법과 관계가 있든 없든 확고히 해야 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에 생계가 어려운 예술인들은 대통령령으로 명시하여 국가가 생계를 책임지는 방법도 궁리해 볼 필요가 있으며, 예술가가 다른 직업으로 이직을 하려고 할 경우엔 재단에서 다리 역할도 해주면 좋을 것이다. 이밖에도 창작예술가들을 위한 공간 등 하드웨어 지원 확대를 비롯한 저작물에 대한 지원, 예술인 공공 대관료 무료 혜택, 아카이브 구축 지원, 예술인 협회 가입자 공공시설 입장료 무료와 같은 작지만 중요한 것들도 챙겨주면 바람직할 것이다.

박영정 그간 연극인복지재단은 예술인 복지 영역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예술인 복지법이 시행되어 예술인 복지재단이 설립되면 연극인복지재단은 어떻게 되는가.

오세곤 그동안 연극인복지재단에서 한 많은 노력들은 앞으로 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해야 하는 다양한 일들의 단서를 제공했다고 본다. 예술인복지재단이야말로 예술인 복지에 대해 고민하고 고용창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아픈 이가 있으면 보호자를 대신해 아픈 이를 찾아가 돌보는 연극인복지재단처럼 예술인복지재단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아직 연극인복지재단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한다는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정관상에 동일한 성격의 기관이나 재단이 생겨날 경우 발전적인 해체나 통합이 가능하다는 것이 명기되어 있다.

박영정 이제 입법기관을 통해서 예술인 복지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예술계 입장에서 예술인 복지법은 남의 일은 아닌 상황이 되었다. 예술계 내부의 인식 문제나 세부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 반영 등 법안의 후속 조치와 관련 예술계 내부의 노력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오세곤 일단 이 법안 자체를 알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연극계는 연극인복지재단을 통해서 비교적 ‘복지’라는 단어에 대해 친근한 편이다. 장르별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질 수 있다. 예술인 정의 역시 장르의 특성을 살피되 큰 틀에서 보고 수준을 맞추어야 한다. 이제부터야말로 예술계가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정보를 주고 설명하고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수렴하면서 거리를 좁혀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박영정 예를 들면 설명회 같은 것을 기초적으로 하고 세부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도 장르별로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서울에 예술가가 많이 살고 있지만, 지역단위에서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기본적인 생활 기반조차 부족한 예술가들의 현실적인 부분들이 간과됨은 제도의 의의에 적절히 부합하지 못함은 물론 그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_ 홍경한

김미경 예술인 복지법 시행과 관련하여 복지재단 지부 등에 관해 지자체에서 문의가 오고 있으나, 법에는 지부에 대한 내용이 없다. 우리나라 예술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니 이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예술인 복지 지원을 위해 지자체 상황에 맞게 시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향후 정부와 지자체와의 역할과 예산 배분 등을 고려해 봐야 한다.

오세곤 이해관계에 따라 지방, 장르 별로 입장이 다 달라진다. 이것 역시 위험요소 중 하나이다. 처음부터 피라미드식으로 지자체도 함께 같은 구조로 시작한다면 위험하다고 본다. 처음에는 국가의 단일구조로 시작하고 시스템이 확립되면 점차 파트너를 만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초의 법안, 첫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

박영정 이 법안이 앞으로 실효성을 가지려면 유념해야 할 과제, 그리고 예술인 복지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한다.

홍경한 예술인들의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예술인의 복지 지원을 통해 창작활동 증진과 예술발전에 이바지하는데 주안점이 있는데다, 예술활동 성과에 상응하는 정신적, 물질적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또한 최초로 한 직업군에 관심을 가지고 법안을 발의한 것은 기념비적이며 그 의의 또한 좋다. 그러나 앞서도 밝혔듯 미술계 입장에서는 이 법안이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는 오해가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시행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술계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어 현재의 소외감을 해소시키는 절차와 결과적 가시성이 드러났으면 한다. 나아가 현재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미술저널이나 미술계를 움직이는 평론가협회, 작가 등에 법안에 관한 홍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부분이나 관계가 없어보였던 것들이 도출될 수 있으며, 그래야 작금 일각에서 말하는 ';절름발이 복지법';이라는 레테르를 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다음 기회엔 이보다 발전된 내용으로 얘기를 나눌수가 있을 것이다.

김미경 예술인 복지법이 앞으로 담아야하는 내용들은 예술계의 의견들을 모아서 함께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소통, 공감, 신뢰를 전제로 해야 한다. 복지법에 대해서 예술인들이 모르는 이들도 많고 반기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판을 벌려야하는 상황이다. 내년 4월 초안을 만들기까지 정말 시간이 빠듯하다. 탁상공론으로 만들지 않고 첫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서는 예술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야할 것이다.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 예술계의 적극적 지지와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특정 직종에 대한 복지법이 마련된 것이 처음인데, 예술인들이 이 법을 통해서 진정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시행령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정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 복지 정책에 대한 많은 기대를 갖게 하는 동시에 정부나 예술계에 만만치 않은 숙제를 남긴 것 같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법의 실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 힘을 합쳐서 좋은 결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정리 _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연구실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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