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퍼잡스키의 드로잉 댄 퍼잡스키의 드로잉 댄 퍼잡스키의 드로잉

댄 퍼잡스키의 드로잉

2011년 토탈미술관의 핫이슈 중 하나는 댄 퍼잡스키의 《The News after the News》였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티켓을 사려 줄을 서던 사람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미술관과 전시에 대한 문의전화, 지금도 사람들은 블록버스터급도 아닌 이 전시에 왜 그렇게 관객들이 몰렸는지 궁금해 한다.

관객들이 몰리는 전시는 대체로 블록버스터급 전시들이다. 샤갈을 필두로 피카소, 인상파 기타 등등. 이들의 전시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하지만 정작 미술계 안에서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지 오래다. 많은 관객이 온 전시가 곧장 훌륭한 전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관객이 오지 않는 전시가 훌륭한 전시를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니다. 좋은 전시의 판단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다.

다시 블록버스터급 전시로 돌아가 보자. 유럽에 비해서 명화와 원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우리 사정을 본다면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관객들이 책에서만 보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누구누구와 그의 친구들’과 같은 기획처럼 거장의 이름을 미끼로 친구들의 작품들만 나열하면서 관객을 낚는 전시들이 만연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물론 전시로 수익을 내는 그들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문제는 이런 블록버스터급과 함께 다양한 전시들이 기획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작품 감상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너무 미비하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여전히 전시할 곳 없어 방황하는 40~50대 중견작가들을 위한 국·공립미술관의 노력이 아쉬운 것이고, 각 기관의 큐레이터들이 연구하고 시간을 쏟아 만들어지는 전시가 아니라 구매해 들여오는 수입형 전시가 만연하는데 씁쓸할 뿐이다.

퍼잡스키의 개인전은 물론 블록버스터급과 겨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물론 퍼잡스키가 뉴욕의 구겐하임과 테이트모던 등 굵직한 미술관에서 전시도 했고, 베니스비엔날레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고 한들, 일반 관객들에게 피카소나 샤갈과 겨눌만한 작가는 아니다. 그런 그의 작업이 무려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평창동 언덕길에 귀퉁이에 있는 미술관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전시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퍼잡스키 전시는 한 주도 주간 관람객수가 줄었던 적이 없다. 게다가 관객은 흔쾌히 구천 원이라는 나름 비싼 입장료를 내었고, 그만큼 꼼꼼하게 작품을 보고 갔다.

미술관계자들조차 퍼잡스키 전시의 흥행을 궁금해 했다. 철저하게 계산해서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분명히 있다. 우선 퍼잡스키의 작업 스타일이 일반 관객들의 취향에 맞아 떨어졌다. 그의 드로잉은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엄숙하게만 느껴지던 미술관에 낙서 같은 스타일은 관객들로 하여금 미술관에 대한 거리감을 깨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신이 작업하는 과정을 공개하고, 작업 중 작가와 대화했던 경험을 한 관객들은 번개같이 블로그에 그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전시가 오픈하기도 전에 퍼잡스키는 블로그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종 간과되지만, 퍼잡스키의 전시는 홍보를 전문으로 하는 ‘모그 인터렉티브’라는 곳과 협업으로 진행하였다. 필자를 비롯한 미술관 팀은 전시를 만드는 일에 주력했고, 홍보담당이었던 모그 인터렉티브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전시를 알려 나갔다. 모그 인터렉티브의 홍보 타깃은 일반인이었다.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젊은 층과 중·고등학생을 타깃으로 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주로 보는 학습지를 위주로 한 홍보는 기존의 미술관 홍보에서 놓쳤던 부분이었다.

블록버스터도 아닌, 잘 알지 못했던 한 루마니아 작가의 개인전이 예상 외로 선전을 보이고,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과 교감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사실 그동안 전시를 만들면서 관람객에 연연하지 않았다. 좋은 전시라는 의미가 관객을 많이 동원했다는 것과 등가는 아니므로, 유의미한 전시를 성실하게 만들었다면 관객수야 좀 적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 우리관객들은 현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블록버스터만 좋아한다는 편견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수차례 전화를 해가며 위치를 확인하고, 숨을 헉헉대면서 마침내 미술관을 찾아오는 관객들, 두 시간이 넘도록 작품 하나하나에 마음을 주며 감상하는 관객들을 보고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관객들은 절대 블록버스터급만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조금만 친절하게 자신들에게 말을 걸고, 자신들의 일상과 닿아 있는 작품으로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 했다. 그저 도대체 알 수 없는 난수표와 같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자신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을 기다렸던 것이다.

매일매일 전시장에 관객을 불러 모았던 퍼잡스키의 전시는 끝났다. 그의 드로잉은 지워졌다. 아니 미술관 벽 안에 영구 소장되었다. 하얀 벽을 볼 때마다 그 안에 있던 유머러스한 퍼잡스키의 드로잉이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만드는 전시마다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이야기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또 다른 어떤 협업의 가능성이 있을지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앞으로 전시를 만들 때 마다 블록버스터가 아니어도 전시장을 찾아 진지하게 작품과 이야기하려던 그들이 계속 생각날 것 같다.


신보슬 필자소개
신보슬은 이화여대 철학과, 홍익대 미학과 석사를 거쳐 현재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7년부터 전시기획을 시작해, 아트센터 나비의 창립멤버(2000-2002),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미디어시티서울) 전시팀장(2003-5), 의정부디지털아트페스티벌 큐레이터(2005), 대안공간 루프 책임큐레이터 등을 역임했으며, 2007년부터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nathalie.boseul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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