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지금 변화하는 일들이 그런 명분과 목적을 쌓은 것일까? 지금 혼란스러운 것은 '사건의 다양함'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해 줄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 때문이다.

작년 5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 정부 예술정책의 방향’에 대한 토론을 부탁받고 내가 첫 번째 제기했던 것은 예술정책의 목표, 최종소비자가 과연 누구여야 하냐는 것이었다. 난 그 질문에 당연히 국민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예술정책은 예술가를 매개로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문화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바로 국민들에게 그 효과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야 이런 주장이 전혀 틀릴 게 없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술정책의 목표는 종종, 아니 분명 국민이 아닌 ‘예술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술에 대한 지원을 보라. 대부분 예술가의 어려운 생계와 현실 얘기를 통해 예술지원의 당위성을 진단하고, 예술인의 창작지원을 위해 다양한 사업-목적별로 되어 있으나 실제론 장르별인-을 펼친다. 그 사업 중 실제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 사업이 얼마나 있을까?

혹자는 단기적으로 보지 말고 예술발전이라는 장기적 시각으로 보자고 말할지 모른다. 예술이 발전하면, 그 효과는 국민들의 편익으로 돌아갈 것이고, 문화적 이미지를 높여 국가의 브랜드를 제고할 것이라고. 당연히 맞는 얘기다. 그러나 그렇다면 예술정책은 예술발전을 목표로 해야 하나 현재의 정책을 보면 그다지 예술발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 같다. 1973년 문예진흥기금이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지원해 온 것이 어언 35년! 누구나 동의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전과 생활은 똑같고, 예술시장은 지원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히도 정부에 의존하도록 변해버린 예술시장의 생태! 때문에 예술시장은 꿀맛처럼 강한 ‘독’으로 오염되어 버렸다.

혼란은 변화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문화예술위원회의 제2기가 시작되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원제도를 바꾸려 노력하고 있고, 새로운 예술위원회는 이에 맞춰 시스템을 새롭게 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새 정부 예술정책의 방향’, 제2기 문화예술위 구성, 사무처장 변경 등. 그러나 그 모든 일들에서 여러 가지 잡음으로 들려온다. 좋은 방향, 혹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보단 시끄러움을 지탄하는 목소리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난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분’과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명분’은 배경과 이유를 말해준다. 현재 이러니까 이런 것은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학술적’(이론적)논의와 광범위한 동의체계! 그게 명분이다. 반면 ‘목적’은 그 명분을 설명해 주는 ‘충분조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쪽으로 가야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이걸 이걸 시행해야 한다.’는 정책항목과 목표체계를 말해준다. 때문에 우린 정책을 수행하기에 앞서 항상 명분을 쌓고,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 변화하는 일들이 그런 명분과 목적을 쌓은 것일까? 지금 혼란스러운 것은 ‘사건의 다양함’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해 줄 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명분’은 현재와 같은 과거의 답습적 형태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예술가 (생활)구호 중심의 지원정책이 과연 무슨 희망이 있을까?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명분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란 ‘목적’에 대해선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혹자는 구호중심이 아닌 스타(희망)중심의 시스템을 만들자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혹자는 관객개발로 시장을 넓혀나가자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시장 창출로 생태 복원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난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그 하나는 시장의 체계, 질서를 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장하면 ‘돈’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면 ‘상업주의자’, ‘시장주의자’로 치부한다. 하지만 그 치부가 우리의 예술시장을 이토록 정부개입시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예술이 ‘돈’과 관계없다는 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다. 더구나 이 시장이란 용어는 단지 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를 얘기할 때 종종 쓰는 표현이다. 즉,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가는 생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지원에 의존하는 시장을 점점 줄이고, 생태에 의존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예술정책의 방향이자 현재적 목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문제는 지원형태나 방식이 아니라 예술시장의 생태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두 번째 제안은 시스템의 문제, 사람의 문제다. 이것은 좀 더 현명하고 적합한 방향으로 이루어졌음 한다. 구조를 바꾸는 일은 조직과 사람이 관련된 일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구조적인’, 기본적으로 안정을 희구하는 조직과 사람의 일이다. 때문에 여러 가지 잡음이 날 수밖에 없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명분’과 ‘목적’이다. 이것이 불충분할 경우 어떻게 될까?

급한 것은 늘 사람을 더디게 만든다. 빨리 가려고 간 길은 어느 덧 잘못된 결정과 엉켜진 실타래로 더 먼 길을 되돌아가도록 만들고, 바쁜 시간만큼 우릴 더 급하게 만들어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연시간 1시간을 1.5내지 2시간으로 만든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 말!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경구가 되는가 보다.


라도삼필자소개
라도삼은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부터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으로서 문화정책과 도시문화 등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다. 저서로 『인터넷과 커뮤니케이션』(한울출판사, 2000), 『블랙인터넷』(자우출판사, 2002) 등이 있다.



[@예술경영 NO.11_2009.1.8],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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