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봄이었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부산대학교 앞 거리축제 관련해서 할 얘기가 있다고. 바로 현재 [보일라] 발행인인 강선제 씨였다. 그리고 독립문화 기획집단인 재미난복수의 첫 모임이 시작됐다. 그 후 줄곧 강선제 씨와 같이 다니며 지역에서의 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색깔로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무모하리만큼 큰 가능성을 제안하고, 실행에 옮겼다. [보일라]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격주로 잡지를 만들고 재미난복수는 한 달에 한 번 축제를 만들었다.

“나는 대학생활을 하며 부산대 일대에 문화예술인들을 발굴하고 소개할 수 있는 잡지와 그들이 거리로 나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할 수 있는 정기적인 축제를 늘 꿈꿔왔어. 그렇게 하면 뭔가가 바뀔 수 있을 거야”던 강선제 씨의 말이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보일라]는, 특히 발행인 강선제 씨와 편집장 서진 씨는 내게 그런 발상과 에너지를 배울 수 있게 한 선배였고 누나, 형이었다.

거기와 여기에서

어떻게 보면 [보일라]와 재미난복수를 시작할 즈음 우리의 가장 큰 힘은 ‘분노’였다.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문화를 창작한다는 것은 분노하고 싸워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재정적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주류문화의 폭력에도 민감하게 대응해서 싸워야 했다. “너희가 하려는 것들은 취지는 좋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빨리 정신 차리고 먹고 살 걱정이나 하라”시던 ‘어르신’들의 조언에 ‘더욱’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십 년이 지나도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그것도 즐겁고 행복하게 말이다.

부산이라는 지역만 놓고 보더라도 [보일라]의 존재는 독립문화의 상징적인 진행형의 역사이다. 나에게도 [보일라]는 독립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였고 시작점이었다. [보일라] 사무실에서 만난 수많은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을 지면을 통해 발굴하고 소개할 수 있는 독립문화 기반의 유일한 매체였다. 더구나 거처가 일정치 않았던 나에게 언제나 편하게 ‘삐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준 [보일라]는 지금 그 역할과 기능을 보다 넓혀가고 있다.

거기와 여기에서
거기와 여기에서 거기와 여기에서

올해는 재미난복수가 거리로 나선지도 십 년 째가 되는 해이다. 아직 ‘용케’ 살아남아서 ‘재미난복수’라는 이름으로 [보일라]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 얼마 전 재미난복수가 운영하는 독립문화 공간인 아지트(AGIT)에 입주해 있던 양자주 작가와 선제 누나, 서진 형을 만났다. 이때 서울에서 온 어떤 작가가 [보일라]를 만난다기에 취재 요청인가 생각했는데, 그는 양자주 작가를 발굴하고, 작가로 등단할 수 있게 힘을 줬던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이렇게, 나와 [보일라]도 꽤 먼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이야기들을 다시 들춰 떠올리려니 가물가물한 것도 많아서 예전 [보일라] 기자한테 몇 번이나 전화를 했었다. 하지만 그 가물가물한 사이의 시간 동안 [보일라]는 거기 있었고, 재미난복수는 여기 있었다. 독립문화 창작자로서 혹은 [보일라]를 아끼는 독자로서 이러한 확인은 언제나 힘이 된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그저 곁에 있어줌으로써 힘을 주는 것처럼.

올해 [보일라] 100호 발행 기념과 창간 10주년을, 그리고 재미난복수 창단 10주년을 맞이해서 지난 10년을 같이 돌아보고 또 앞으로 서로가 그리는 길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 지길 바란다. 10년 전, 오토바이에 잡지를 가득 싣고 클럽을 돌아다니며 [보일라] 배포를 도왔던 내 모습과, 비 맞으며 ‘아시바’(무대장비)를 들고 무대 설치를 도와주던 선제 누나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부산 음악가인 김일두의 노랫말처럼 ‘따로, 또 같이’ 2012년을 다시금 그릴 수 있는 그림을 생각해 본다.
건우 필자소개
건우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재미난복수의 감독으로 일하고 있으며, 2008년 대안문화공간 아지트(AGIT)를 설립해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funny-stre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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