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치유)’이 그야말로 대유행이다. 이번 특집은 힐링이 사회적 용어로 확대재생산되는 현상을 예술경영인들에게 음미할 기회를 드리고자 기획되었다. 마지막 순서로 예술경영인 6인을 모시고 직접 ‘힐링’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연재순서 ① 힐링에 대한 고찰 ② 모두를 위한 힐링 1: 예술치료의 현황 ③ 모두를 위한 힐링2: 예술을 통한 치유 ④ 당신을 위한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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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squo;프로듀서 힐링캠프&rsquo;는 아시아나우(AsiaNow)와 공연창작집단<뛰다>가 2012년 7월 26일(목)~29(일)까지 기획자를 대상으로 화천에서 진행한 행사이다.

힐링을 대하는 자세

사회 각기 나이대도 다르고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섯 명이지만 &lsquo;힐링&rsquo;이라는 주제에 대해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주제에 대한 좌담을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수진 공연기획 쪽 일을 시작한 것이 8년 차에 접어들었고, 매너리즘도 적지 않았던 차에 &lsquo;프로듀서 힐링캠프1)&rsquo; 가 열려서 어떨지 궁금했었다. 공연장이다 보니 반복 패턴이 생기게 되고, 또 감정 노동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걸 어디에도 풀지 못하고 자신을 소모하기만 하는듯한 느낌에서 매너리즘이 오는 것 같다. 관객들은 공연 등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한다지만 정작 우리들은 무엇으로 스트레스 등을 푸는지 혹은 어떤 것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채영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서, 또 관객들은 그 결과물들을 가지고 스스로를 치유하는데 그 사이에 있는 미술기획자의 입장은 굉장히 애매하다. 두 주체의 사이에서 소외될 수도 있는 딜레마는 분명 있다고 생각된다. 첫 직장이 환기 미술관이고 2002년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다른 분들은 다양한 여건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신 것과는 달리 계속 같은 환경이어서 어쩌면 자각을 못하고 있는 상태 일지도 모르겠다.

김수진

김종길 힐링이란 단어가 워낙 유행어이다 보니 사실 더 무관심해지기도 하고, 제의를 받았을 때 이런 대중적인 이슈에 동참하러 가야하는가 싶었는데 명단을 보니까 호기심이 들어서 왔다(웃음). 사실 이런 단어들이 유행하는 것은 사회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떠오르는 말이 아닌가 싶어서 개인의 힐링보다는 그것이 필요한 공간들, 대추리나 용산, 강정과 같은 장소들을 많이 다니게 되는 것 같다.

최근 투쟁이 2000일을 맞은 콜트-콜텍을 다녀왔다. 7월말까지 예술가들이 그곳을 점거해서(스쾃) 전시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 미술치료사이기도 한 성효숙 작가는 그런 현장들을 찾아다니고 그들과 함께함으로써 힐링 작업을 하는 작가인데, 마침 인터뷰하러 갔다가 그간의 긴 이야기를 듣고 뭉클했다. 우리 사회가 힐링이 필요하다면 개인의 차원에서도 필요하지만 이런 장소/공간들을 위해서도 힐링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현장이 있고, 이곳을 지키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프레시안에 기고 중이기도 하고, 그게 나한테는 힐링 작업이 되는 것 같다.

김종길

텅 빈 공장을 몇 년째 노동자들만이 지키고 있는 곳도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공장의 재가동이지만 사실상 그것이 불가능하고 이런 공간에 예술가들이 들어가곤 한다. 그들의 전시는 현실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데, 예전처럼 투쟁 언어를 덧붙이는 것과는 다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린다든지, 축제를 열어 공연을 하는 식의 &lsquo;치유 작업&rsquo;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예술가들이 노동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준다기보다는 결국 자기 작업을 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박다솔 사실 이런저런 고민이 생겨도 내가 아직 어리고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터놓기가 민망한 적이 많았다. ';프로듀서 힐링 캠프';에 참가하면서 위안이 되었던 것은 선배님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고, 그런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공연 단체가 1년에 2~3개 작품 이상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극단 일 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도 같이 진행 중인데, 여러 작품을 진행하다보면 스스로 소진되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공연을 계속 하며 방전되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걸 채우는 것은 공연 끝난 후 느끼는 보람이 전부이다. 그런 부분들이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 것 같다.

박다솔

스스로를 구출하되 우리를 구할 방법은 함께 만들어야

사회 이 분야의 경우 하나가 끝나서 멈추고 싶어도 이미 다음 것들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잠시 잠깐이라도 사라질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멈추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대부분 건강이 안 좋아진 뒤에나 멈추거나 많은 적신호를 확인하고서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해결책이 있어야할 것 같은가?

강준혁 일반인들이 예술을 통해서 에너지를 순화시킨다지만, 직접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힐링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있다. 나의 경우에 가장 큰 어택은 에너지가 방전되는 것이다. 그것은 병처럼, 쇼크처럼 온다. 그 것을 예방하는 방법이 힐링에 포함되는데, 아웃풋에 쫓기지 않고 방전되지 않도록 인풋을 늘려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한다. 조급한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인풋을 어떠한 기술이나 정보같은 외향적인 것으로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치가 쌓이면 정보들이 모두 같아 보이고,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해도 에너지가 충전이 안 된다. 때문에 딜레마가 점점 더 깊어지는데 이를 다른 방식으로 끌고 가는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강준혁&#13;&#10;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내가 부속품처럼 움직이고 있구나, 하루하루를 기계처럼 살아야만 하는구나, 싶었을 때이다.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창조적인 것에 대한 환희와 함께 일을 시작하고 그것에서 보람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그 것을 느낄 수 없을 때의 불편함이 가장 큰 병의 씨앗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연차가 늘어날수록 거창해보이는 것에서의 창의성만을 쫓게 된다. 하지만 사실 아주 사소한 창의적인 느낌이나 이런 것들도 일상생활에서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습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를 스스로 구출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채워나갈 수 있는 방법.

채영 최근 영천마을미술프로젝트를 기획하신 박수진 선생님과 함께 영천을 다녀왔다. 그 프로젝트는 이미 다 끝났는데, 다시 내려가신다고 해서 왜 가시냐 했더니 프로젝트 때 현지에서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이 복숭아 수확 시기로 한창 바쁠 때라서 밥과 새참을 만들어드리고, 밤에는 복숭아 포장을 하고 온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A/S가 충실하다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이내 박수진 선생님께서 그 프로젝트를 단순히 지나간 소모품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원동력, 스스로의 장치가 꼭 필요하다.

강준혁 같이 가신 분이 계산적인 생각이 아닌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옆에서 본 사람도 편한 마음이 된 것 같다. 요즘 사람들에게 속 다 터놓고 얘기 한 적이 언제였냐고 물으면 고등학교 때 이후로는 없는 경우도 많다.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계산하면서 얘기하고, 얘기 듣고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얘기를 해도 힐링과는 거리가 멀다.

_채영

김종길 나한테는 대학의 연극반에서 연극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던 것 같다. 뭘 하는 지도 몰랐지만 그게 정말 좋았다. 선배들한테 혼나기도 하고 무대를 망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때의 기억이 나에겐 엄청난 에너지로 남아서 지금까지 큰 힘이 된 것 같다. 20대에는 많이 채우고, 30대에는 실험을 하고 깨져보기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하자마자 IMF가 터졌는데, 대학로에 들어가진 못하겠고, 아버지는 평생 개척교회를 일구신 분이라 목사가 되라고 하시고(웃음). 3년 정도는 노숙자에 가까운 생활이었고, 너무 힘들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희곡, 시 습작만 하면서 그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니 연극이고 뭐고 생활이 돌변하더라. 결국 미술 쪽의 기획자가 되었지만, 연극 작업을 했던 경험들이 독특한 평론을 쓰는 것으로 알려지게 된 뿌리인 것 같다. 연극 작업을 통해서 배운 것들이 많다.

김수진 결혼 후 양육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이 패턴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결혼하고 아이 있는 여자가 공연계에서 일하는 건 힘들다고들 하는데, 나는 셋 다 해당된다. 이런 경우에는 많은 갈등이 생기고, 실제로 그 때문에 그만둔 분들도 많다. 지금도 편하진 않지만, 아이들과 남편한테 미안하고 동료들에게도 내가 할 일이 지연 되는 것에 양해를 구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_김의숙&#13;&#10;

김종길 일개 개인의 치유보다는 더 큰 차원에서 이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알고 보면 개인을 둘러싼 환경/조직 등의 문제로 시작되는 것이지 않나. 개인에게 스스로 알아서 잘 이겨내라고 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이를 해결할 장치를 같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박다솔 스스로에게 어떠한 점이 가장 큰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을 지닌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 지금 이 자리에서 저의 경우 힐링을 받고 있다. (웃음)

사회 쉬우면서도 어려울 수 있는 주제인데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주셔서 감사하다.(웃음) 멈춰서 있는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다. 멈춰서 자기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결코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시작할 것에 대한 걱정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 안 될 것 같다. 스스로 구하는 것 이상으로 제도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지속적으로 멈추고 고민해볼 주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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