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5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빛고을 광주다. 연재순서 광주 (‘12년 9월) - 대구 (‘12년 11월) - 대전 (‘13년 1월) - 부산 (‘13년 3월) - 인천 (‘13년 5월)

핫&이슈 ②현안과 제언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수시로 프로젝트들이 가동되기는 하지만 아직 지역에서는 그 실체를 피부로 느끼기가 쉽지 않다. 조성 사업은 오는 2020년에 마무리되지만 일단 핵심 시설인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 2014년이나 2015년께 문을 열게 되면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들도 그려질 것이다.

광주가 아시아문화허브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결국 이 그림은 광주 저변에 깔려 있는 여러 빛깔의 문화가 어우러졌을 때 완성된다. 2012년 광주문화예술현장의 현재를 진단해봤다.

예술시장, 대인시장

지난 2008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었던 오쿠이 엔위저가 대인시장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쓸쓸하던 재래시장에 '예술'이 얹히기 시작했고, 비엔날레가 끝난 뒤에는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거기에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진행하는 아시아문화예술활성화 거점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면서 지금은 국내외 예술계 인사들이 광주를 찾을 때면 꼭 들르는 장소가 됐다. 한창 진행 중인 2012 광주비엔날레도 역시 대인시장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직 '완성형'은 아니지만 대인시장은 광주 대표 아이콘으로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대인시장이라는 공간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대를 갖고 있는 이들은 무엇보다 대인시장의 자생력에 주목한다. 현재 대인시장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약 35명 정도다. 이들 대부분은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기금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잠시 '들른' 작가들이 아니라 제 발로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다.

기금이 끊기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들이 아니기에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개별 작업은 물론이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등 네트워킹도 활발해 자생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여기에 2012대인예술시장프로젝트 느티나무숲의 대인예술야시장 등 일반 시민들도 참여 가능한 다양한 이벤트와 합류하면서 문화향유자들과의 접점도 마련하고 있다.

광주의 대표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른 대인시장에서 열린 예술야시장의 풍경
광주의 대표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른 대인시장에서 열린 예술야시장의 풍경


대인시장에서 대안 공간 미테 우그로를 운영하고 있는 조승기 대표는 기존 작업실의 임대료가 갑자기 오르는 바람에 2009년 대인시장으로 들어왔다. 자비로 갤러리와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해왔고, 성과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장을 찾아온 각 지역의 문화재단, 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수차례 인터뷰를 하는 게 그의 일이 됐다. 미테 우그로를 찾는 외국인들은 1년이면 50명에 육박한다. 네트워킹이 자연스레 형성되면서 방문하는 이들의 폭도 넓어지고 있는 10월에는 태국과 필리핀 대학생과 작가·기획자 등 10여명이 방문할 예정이다.

"시장을 찾아오는 많은 예술가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돼 있는 게 아쉽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만으로는 벅차죠. 여관 등 시장 안에 공간을 활용해 게스트하우스나 커뮤니티 공간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공간만 확보되면 이곳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가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궁무진합니다. 누구나 와서 창작하고, 어울리고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게 필요합니다. 대인시장은 미술 뿐 아니라 음악 등 다양한 자원들을 잘 엮어 특화시키면 문화관광벨트로 충분히 활용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조 대표는 "빈 점포들이 거의 없어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조금 범위를 넓혀서 시장과 연결된 계림동 지역을 창작촌 형태로 만드는 방안"도 조심스레 제안했다.

"대인시장을 방문하는 외부인들은 모두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공간이라고 흥미를 보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광주지역의 젊은 기획자나 예비 작가들은 대인시장을 비롯한 '광주'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아직도 서울로만 가려고 합니다. 이들 젊은 예술인들이 애착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애물단지 아트페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광주에서도 수많은 문화 행사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광주비엔날레처럼 광주 대표 브랜드로 탄탄히 자리 잡은 경우도 있지만, 그냥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행사들도 많다.

3회째를 맞은 국제미술장터 '아트광주'는 올해 행사 후 '존폐' 문제까지 제기된 케이스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예산 부족, 인력 부재 타령만 되풀이하면서 구색 맞추기용 행사로 치를 바에는 차라리 폐지해야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

'아트광주'는 출발 당시부터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라는 당위성에만 매몰돼 체계적인 준비 없이 행사를 시작했고,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지만 이에 대한 보완책 등은 전혀 마련하지 않은 채 운영주체만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문화재단으로 넘겨버리면서 결국 갤러리, 컬렉터, 관람객들에게 모두 외면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올해 존폐 위기까지 거론된 광주아트페어 현장 모습 올해 존폐 위기까지 거론된 광주아트페어 현장 모습
올해 존폐 위기까지 거론된 광주아트페어 현장 모습

광주 지역 한 갤러리 관계자는 "광주시가 일정 예산만 주고 할일 다했다는 식으로 나몰라라 할 바에는 폐지시키는 게 낫다""미술 시장이 열악한 광주에서는 제 궤도에 오를 때까지 광주시를 포함한 자치 단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아트페어에 나온 작품을 선별해 구입하는 등 정책을 마련해 미술시장을 키우는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사 주체인 광주문화재단이 지난 9월28일 진행한 광주아트페어 평가회의에서는 다양한 제안들이 나왔다. 특히 전문성도 떨어지고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는 광주문화재단이 행사를 계속 꾸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화랑협회 등으로 행사 주최를 변경하는 방안,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의 특성에 맞게 아시아 젊은 작가들을 위주로 한 차별화된 컨셉의 행사 개최 등이 제안됐다. 또 비엔날레와 연계한 전시 일정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 보다는 오히려 아트페어의 관람을 방해하고,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KIAF와도 개최 시기가 붙어 있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 개최 시기를 조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공연장상주단체 지원 단체인 푸른연극마을이 무대에 올린 ‘저 별이 위험하다’는 기존 단원들과 극단이 운영하는 청소년 연극교실, 주부교실 수강생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공연장상주단체 지원 단체인 푸른연극마을이
무대에 올린 ‘저 별이 위험하다’는 기존 단원들과
극단이 운영하는 청소년 연극교실, 주부교실
수강생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공연 예술단체들의 약진

광주 지역은 대형 행사인 비엔날레를 포함, 미술 분야가 강세를 보이는 지역인 터라 공연계 쪽 예술인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왔다. 그런 점에서 중앙정부와 광주시가 지원하는 각종 공연 관련 사업 가운데 지원 금액의 규모가 크고 예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공연장상주지원사업의 역할은 중요하다. 지난해 5억에서 올해 예산은 7억7400만원으로 늘어났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획재정부가 이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 내년 예산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공모를 통해 선정된 단체는 모두 11개로 사업의 긍정적인 효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3개의 단체를 받아들인 광산문예회관의 약진이 눈에 띈다. 이전까지 유치원생들의 학예발표회 등이 열렸던 공간이었던 광산문예회관은 광주여성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린발레단, 극단 원 컴퍼니 등이 지속적으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광산실내악단, 청소년 극단 등 다양한 퍼블릭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5000만원~1억 원씩까지 지원받는 11개 단체가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나 프로그램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단발성이 아닌,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고 실험적인 작품들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발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총 사업비의 30%를 지원받는 공연장들의 경우는 아직 마인드가 부족한 상태다. 상주 단체에 공간 제공, 프로그램 공동 개발 운영, 홍보 등 다양한 방안 등을 제시해야하지만 아직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2년 연속 공연장 상주단체로 선정된 푸른연극마을의 이당금씨는 "죽어있는 공간들을 살려보기 위해 새로운 곳을 찾아 들어왔는데 초창기에는 공연장 담당자와의 불협화음과 무관심으로 일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며 "단체들과 협업 파트너인 공연장 측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락, 메이홀…시민이 만든 공간

요즘 들어 지역 문화계의 가장 반가운 흐름은 자생적으로 생성된 문화 공간들이 많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이 중심이 돼 오픈한 공간도 있고, 문화 생산자들이 문을 연 공간들도 있다.

지난해 클래식 애호가가 문을 연 클래식음악 전용감상실 '다락'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클래식 음악 강좌가 주 프로그램이지만 지금은 하우스콘서트와 전문음악인들이 직접 렉쳐 콘서트를 진행하는 장소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열리는 하우스콘서트는 특히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를 갈망해오던 지역 클래식연주자들이 꼭 서고 싶어 하는 무대가 됐다. 또 피아니스트 조현영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이종만(광주시립교향악단 악장)씨 등은 매월 한차례씩 관객들과 직접 만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문화전당 인근에 문을 연 문화공간 '메이홀'은 예술인이 주축이 돼 오픈한 곳이다. '엉뚱하고 신기한 작은 공간'을 표방하는 메이홀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는 목사 임의진씨, 화가 한희원·주홍·고근호·김해성씨, 사진작가 리일천, 문화기획자 규랑씨 등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이들이 의기투합해 문을 열었다. 지난 7월 개관식을 치른 메이홀에서는 한희원 개인전 등의 전시가 열렸고, 포크콘서트, 월드음악 감상회, 영화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다.

"최근 문화재단 등 관이 주도하는 문화 공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민간에서 이뤄지는 자생적인 문화 활동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죽어가는 도시를 점거해서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창조했던 사례들에서 보듯, 예술가들이 뭉쳐서 먼저 시작을 하고 나면, 예술을 좋아하는 일반인들도 함께 어우러져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걸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임의진씨)

공공과 민간의 적절한 균형점 모색

지난해 설립된 광주문화재단은 지역 문화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당초 재단이 열악한 지역 문화발전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가 높았지만 지금은 공룡처럼 덩치만 커져 버린 '문화 권력'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현장 취재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원금 등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내놓고 비판의 소리를 높이지는 못하지만 불만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현재 문화재단의 직원은 25명에 불과하지만 진행하는 사업은 무려 50여개에 달한다. 8억 원 규모의 광주아리랑축전부터 몇 천 만 원짜리 콘서트 등 단발성 행사까지 수많은 문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아무리 광주시가 출연한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전문가들이 포진한 집단이면서도 지나치게 광주시에 종속돼 각종 프로젝트를 하도급 받는 입장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점은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할 문제다.

문화 현장에서 취재 활동을 하다 보면 문제의 본질에는 광주시가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고 결정자의 '의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힘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친 간섭은 본질마저 퇴색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역 문화계 인사 A씨는 "공공영역이 지역 문화계를 이끌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지역 문화인들을 후원하고 돕는 거름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자신들이 씨 뿌리고 거두는 역할 등 모든 것을 다 하려는 것 같다"며 "모든 문화행사를 직접 진두지휘하려하고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하고 시와 지나치게 밀착돼 관변문화가 만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거대해진 공공과 축소되어가는 민간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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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 필자소개
김미은은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92년에 광주일보에 입사, 사회부, 경제부, 월간 예향 등을 거쳐 2007년부터 문화부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공연과 예술행정 분야 담당기자로 일하며 문화부장을 함께 맡고 있다. 2011년과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분야 책임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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