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공연장이 문을 닫고, 공연 취소와 연기 사태가 잇따르자, 공연 담당 기자인 나에게 “요즘 할 일 없겠다.”라는 이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바빴다. 온라인 공연 스트리밍 기사를 매일 썼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공연 스트리밍 정보를 큐레이션하는 기사는 ‘집콕’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생활 정보이고, 공연 스트리밍 유행은 코로나19로 촉발된 ‘문화 현상’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오래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19 상황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고, 연재 기사는 5월 말부터 주 1회로 주기는 길어졌지만, 40회 돌파를 눈앞에 두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공연 기사를 쓰면서 나 자신도 수많은 온라인 공연을 봤다. 거의 매일 한 편 이상씩 봤으니 편 수로만 보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이 본 셈이다. 그러다가 ‘온라인 공연의 소비자’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었다.
사실 현재 나에게 온라인 공연의 소비자를 논할 수 있을 만한 ‘정보’는 별로 없다. ‘조회 수가 몇 만 뷰이므로, 공연장 1회 관객 몇 명의 수십 배에 이른다’는 식의 수사는 많이 접했지만, 온라인 영상 조회 수와 공연장 관람을 등가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고, 공연 스트리밍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인구학적 정보라든지, 체류 시간과 같은 구체적 정보는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글은 온라인 공연 기사를 쓰며 온라인 공연 콘텐츠를 다량 소비한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둔 주관적 소회에 가깝다.

온라인 공연 소비자는 누구인가? 아마도 오프라인 공연 소비자와 겹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평소 공연을 보던 사람들이 온라인 공연도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 종종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사 덕분에 온라인 공연 잘 보고 있어요.”라는 인사를 듣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원래도 공연 애호가였거나, 공연계에 종사하는 ‘업계 사람들’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오프라인 공연의 대체재로 온라인 공연을 찾아보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그룹에 속한다.
Show Must Go On! 공연장이 문을 닫아도 방법이 있구나! 담당 기자 이전에 공연 애호가로서, 보고 싶은 공연을 놓칠까 봐 매일 스트리밍 일정을 달력에 표시하고, 구형 TV를 화면이 큰 신형 TV로 바꾸기까지 했다. 물론 공연장에서 호흡하는 현장감, 온몸으로 느끼는 그 ‘아우라’는 부족하다. 하지만 공연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니 이거라도 어디냐! 게다가 평소 보고 싶어도 못 보던 해외 공연들까지 무료로 풀렸으니 반가울 수밖에.

또 다른 그룹은 ‘온라인’이라는 편리성과 무료라는 점에 힘입어 새롭게 공연을 본 사람들이다. 내가 온라인 공연 소개 기사를 쓴 가장 큰 이유도, 여러 이유로 공연장에 가지 않는(혹은 못 가는) 사람들에게,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주말이면 학연과 기타 인연으로 엮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 온라인 공연 소개 기사를 공유하곤 했는데, 평소 공연을 거의 안 봤지만, 이번 기회에 잘 봤다며 후기를 전해오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유튜브 채널 ‘The Shows Must Go On’에서 48시간 동안 공개된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실황 출처: 유튜브 ‘The Shows Must Go On’ 유튜브 채널 ‘The Shows Must Go On’에서 48시간 동안 공개된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실황
출처: 유튜브 ‘The Shows Must Go On’

뮤지컬 작곡가이자 제작자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48시간 동안 공개했을 때 전 세계에서 천만 뷰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 중에는 기존의 공연 관객층이 아닌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디지털 콘서트홀’의 유료 VOD 구독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무료 가입할 수 있도록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 반응을 보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공연장 가서 보려면 비싸다는데(베를린 필하모닉은 한국에서는 45만 원의 내한 공연 고가 티켓 기록으로도 유명하지 않은가), 온라인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고? 구미가 당길 만하다.
영국 국립극장의 NT라이브 역시 영화로 친숙한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화제작으로 관심을 끌었다. 평소 공연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NT라이브 <프랑켄슈타인>에 영화 <셜록>과 <닥터 스트레인지> 주연 배우인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을 갖고 봤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생전 처음으로 공연 단체에 기부까지 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렇게 온라인 공연 스트리밍으로 신규 관객이 유입되는 효과를 내 주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은 경험재이므로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공연을 접한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에는 표를 사서 오프라인 공연도 볼 거라는 기대가 있다.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과연 무료 동영상 소비가 얼마만큼이나 유료 공연장 관람으로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전에도 공연을 봤던 사람들은?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온라인 공연을 보면서 오프라인 공연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꼈다. 이는 오프라인 공연 소비를 늘리는 요인이 되겠지만, 온라인 콘텐츠 소비도 코로나19 이전보다는 더 늘 것 같으니, 오프라인 공연을 실제로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이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가용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볼 것은 너무 많다.

발레 <아나스타샤>의 한 장면과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게시한 라이브 공연에 대한 관객 반응 출처: 로열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 발레 <아나스타샤>의 한 장면과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게시한 라이브 공연에 대한 관객 반응 출처: 로열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
발레 <아나스타샤>의 한 장면과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게시한
라이브 공연에 대한 관객 반응
출처: 로열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

몇 달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봤지만, 제일 많이 본 건 해외 발레단 공연이었다. 언어 장벽 없이 즉각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도 꽤 봤다. 클로즈업이 가능한 영상으로 출연자의 표정과 몸짓을 세밀하게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클래식 음악회 역시 언어의 장벽 없이 즐길 수 있지만 가장 적게 본 장르였다. 영화와 비슷하게 서사가 있는 장르가 온라인 공연으로 보기에는 더 적합해 보였다.
음악회 중에서는 일반적 음악회 중계보다는 월드 피아노 데이, 도이치 그라모폰의 모멘트 뮤지컬처럼, 코로나 상황에 맞춰 새롭게 기획된 콘텐츠를 많이 봤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역대 실황 연주를 함께 보는 ‘클라이번 워치 파티’도 종종 봤는데, 페이스북에서 진행된 이 ‘파티’에는 바로 그 연주를 한 피아니스트 본인이 참여해 온라인 관객과 함께 연주 실황을 관람하며 채팅도 했다. 나는 역대 우승자인 선우예권과 장하오천의 우승 연주 실황을 보면서, 연주자 본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짧은 질문이나 인사 정도라 해도, 그냥 연주 영상만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온라인의 특성을 활용한 ‘실시간 피드백과 교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사실 온라인 공연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정말 제대로 본 공연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인 공연 관람은 공연장이라는 일상과 단절된 공간 안에 나를 자발적으로 고립시켜 무대와 대면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공연을 보다 보면 일상이 끊임없이 끼어든다.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건 장점이지만, 몰입감이 떨어지고 중단되기도 너무 쉬웠다. 주말이면 하루 몇 편씩 몰아보기도 했지만, 모두 집중해서 봤다기보다는 대략적으로 훑듯이 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보다가 화장실 가고, 고양이 밥 주고, 통화하고, 다시 보다 잠들고, 그렇게 끊어가며 며칠에 걸쳐 겨우 본 공연도 있다.

피아니스트인 조은아 경희대 교수가 최근 예술교과 수강생(208명)과 음악애호가 그룹(150명)으로 나눠 ‘온라인 공연감상 현황조사’를 진행했다. 정밀한 조사는 아니었지만, 참고할 대목이 많다. 조사 참여자 중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연을 본 경험이 있는 경우는 두 그룹 모두 90퍼센트 안팎이었는데, ‘잡념 없이 온라인 공연에 몰입한 시간’을 물었더니, 두 그룹 모두 ‘20분’이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러니 온라인 공연을 집중해서 못 보는 건 나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온라인 공연 소비자 데이터는 부족하지만, 온라인 동영상 소비 행태를 조사한 마케팅 리포트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2019년 메조미디어 타겟오디언스 리포트를 보면 온라인 동영상의 평균 시청 시간은 가장 길어야 20분에 그쳤다.)
내가 지난 몇 달간 본 온라인 공연 중에 ‘20분의 장벽을 넘어’ 가장 몰입했던 공연은 영국 극단 컴플리시테의 사이먼 맥버니가 연출하고 직접 출연한 1인극 <인카운터(The Encounter)>였다. 아마존 정글에서 미지의 부족을 만났던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2015년 초연된 이 공연은 헤드폰을 끼고 감상해야 한다. 치밀하게 설계된 내러티브와 입체음향 효과에 힘입어 나는 순식간에 아마존 정글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사이먼과 딸이 나누는 대화 한가운데로 돌아오곤 했다. 공연 시간은 1시간 반 가량이었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황이 계속돼 지루할 겨를이 없었다. 헤드폰을 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온라인 공연 관람에 자꾸 끼어드는 일상을 차단하고 공연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스트리밍이 시작되자 공연장 객석 중간에 등장한 사이먼 맥버니가 2020년에 이 공연을 다시 소개하는 방식도 상상을 뛰어넘었다. 온라인 스트리밍을 주목적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현 상황에 너무나 잘 맞는 콘텐츠였다.

LG아트센터에서 온라인 무료공개 한 <인카운터(The Encounter)> 출처: LG아트센터 공식블로그> LG아트센터에서 온라인 무료공개 한 <인카운터(The Encounter)> 출처: LG아트센터 공식블로그
LG아트센터에서 온라인 무료공개 한 <인카운터(The Encounter)>
출처: LG아트센터 공식블로그

해외 온라인 공연 콘텐츠를 보면 세심하게 구성한 데다,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 듯한 절박감이 느껴진다. 과거 공연 영상을 다시 틀더라도 현 상황에 맞게 새로운 영상을 추가하고, 공연과 관련된 각종 디지털 자료를 제공한다. 스트리밍 중에는 어려운 상황에 더욱 소중한 공연예술의 가치를 강조하며,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공연예술계를 돕기 위한 ‘자발적 기부’를 요청한다. 빈 국립오페라는 무료 스트리밍을 진행하는 동안 스트리밍 플랫폼 디자인을 몇 차례 바꿨는데, 지금은 기부 여부를 묻는 창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 이런 식이니 NT라이브를 재미있게 본 내 친구가 생전 처음 관람료 내는 심정으로 기부까지 했을 것이다.
물론 공연계 기부 문화가 한국에서는 정착되지 못했다는 점도 크기는 하지만, 국내의 온라인 공연은 대개 국공립 예술단체가 국민을 위해 하는 ‘공공 서비스’라는 측면만 부각된다. 국공립 단체들이 ‘대국민 공공 서비스’를 하면서, 공연장을 가동하고 공연계 종사자들에게 일감을 제공한다는 점은 좋다. 하지만 ‘대국민 서비스’ 홍수 속에, 공연 역시 업계 종사자의 노동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을까 걱정스럽다. 현재 국내의 온라인 공연은 비상 시국에 비상 대응한 것이라지만, 이 상태가 지속되는 건 곤란하다.

나는 코로나19 이전에도 해외의 유료 공연 영상 콘텐츠인 메트 온 시네마나 NT라이브를 종종 극장에서 유료 관람한 경험이 있는데, 오프라인 공연에서 누릴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해 돈이 아깝지 않았다. 지금은 무료이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현재 공개되는 국내의 온라인 공연 콘텐츠는 오프라인 공연이 없는 비상 시국이 아니라면 무료라고 해도 별로 볼 이유가 없는 게 많다. 무관객 라이브 중계는 종종 카메라 워킹이 단조롭고 음질이 떨어지고, 과거 공연 실황을 스트리밍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홍보나 기록용으로 촬영된 영상이라 감상용으로는 미흡하다. 국공립 단체가 진행하는 ‘공연 중계’보다, 차라리 예술가 개인이나 민간 기획사가 하는 소박한 ‘홈 라이브’가 더 생동감 있고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요즘 온라인 공연의 수익성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데, 국내에서 공연 스트리밍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경우는 현재로선 대중성 높은 일부 뮤지컬이나 전 세계에 열성팬이 포진한 K-POP 아이돌 정도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그렇다고 순수 공연예술계에서는 오프라인 공연만 잘 하면 된다는 건 정답이 아니다. 공연의 영상화와 온라인화는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젊은 세대들에게 이미 영상 소비는 ‘습관’이 되었다. 오프라인 공연을 지속하면서, 온라인 공연을 작품 홍보나 교육 등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더 나아가 틀을 깬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수익성 콘텐츠 개발을 고민할 필요도 있다.
온라인 공연 스트리밍을 두고 벌어지는 공연계의 논의를 보면서, 내가 종사하는 미디어 산업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뉴미디어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아직 뉴미디어로 수익을 내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예전 방식을 답습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다.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가 엉거주춤하고 있는 동안, 출발점이 완전히 다른 ‘미디어 스타트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미디어 산업이든 공연 산업이든, 이렇게 하면 된다는 정답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속 시원한 전망을 할 만한 능력은 없지만,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온라인 공연은 공연 그 자체와는 다른 영상 콘텐츠이며,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 김수현
  • 필자소개

    김수현은 SBS 정책문화팀 선임기자로 공연 분야를 담당해 BTS부터 조성진까지 취재하고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기자가 되었다. 보도국 문화부, 사회부, 정치부, 편집부 근무 외에 포럼 기획, 문화사업과 사회공헌 업무까지,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영국에서 문화정책과 예술경영을, 중국에서 중국학을 공부했다. 공연 취재기자 이전에 애호가이며, 피아노, 중국드라마, 고양이 키우기에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 『천재들의 유엔 TED』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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