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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사적인 이야기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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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19-07-25~2019-11-30
주관 무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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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19-10-19 조회수 725 작성자 김종진
"우리는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온 말 같지 않은 말을 찾아 나섰다. 공인된 언술 행위의 범위에서는 제외된, 침묵이라든가 '아픔으로 말하기'라든가 '수다'라든가 하는 것들" - 조한혜정 <글 읽기 삶 읽기> 대전에서 여성주의 글쓰기 강연을 마치고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는 수강생들의 강연 후기가 첨부되어 있었다. 열다섯 개가 넘는 후기에는 글쓰기에 대한 각자의 고민과 다짐이 담겨 있었다. 뭉클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후기를 넘기다가 모든 페이지를 관통하는 고민이 눈에 띄었다. "사소하다고 여겨져 왔던 나의 감각과 이야깃거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인정해주는 일이 나에겐 너무 부족했다. 무언가 대단한 사건이어야만 쓰고 말할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점점 나에 대해 말하고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하고 멀리하게 되었다." "내 이야기도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야 하게 된 것 같다. 그 전에는 너무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물론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이제야 내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었다." 질문은 결국 하나였다. 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사소하고,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글이 될 수 있을까. 가치 있는 글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여성들 사생활과 글의 관계는 무척 복잡하다. 학교에서 처음 글쓰기를 배울 때, 선생님은 '나'라는 주어를 지우라고 했다. '내'가 안 보여야 좋은 글이라고 했다. 내 위치와 감정과 경험을 배제한 채 사회를 논평하고, '대두되었다' 같은 언어를 써야 글이 전문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적인 글은 혼자 보는 일기로 주로 가족, 연애, 성애, 감정, 몸 등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글이었다. 사형제 폐지 찬반 같은 주제를 논하는 게 아닌, 일상의 경험을 주제 삼아 써보라는 제안을 들은 적은 없었다. 글의 주제가 사생활과 멀리 떨어질수록 좋은 글이라고 주입받은 것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쓰는 일은 즉 사적인 존재가 되는 걸 의미했고, 그것은 글감으로써의 탈락, 공적인 작가로써의 탈락과 같았다. 과연 글감만의 문제일까. 의문을 갖게 된 건 글에 상관없이 사적인 존재로만 호명되어 온 어느 작가들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 김명순은 등단 이후 끊임없이 사적인 존재로 호명된다. 어머니가 기생이었다는 이유로, 결혼하지 않고 동거한 과거가 있다는 이유로, 심지어 성폭력 피해 경험조차 문란하고 방탕한 여성이라는 낙인의 근거가 되었다. 김동인은 어느 타락하고 어리석은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김연실전>을 발표했다. 그가 겨냥한 사람은 작가 김명순이었다. 김기진은 김명순을 "분 냄새가 나는 시의 일정"이라며 피부로 말하자면 "육욕에 거친 윤택하지 못한, 지방질은 거의 다 말라 없어진 퇴폐하고 황량한 피부"가 겨우 화장분의 마술에 가려진 셈이라고 했다. 일명 '〈개벽〉 필화 사건'에서는 익명으로 김명순을 비롯한 타인의 사생활을 캐내던 세 명이 밝혀졌는데, 그 세 명은 잡지 <개벽>의 주간 차상찬, 기자 신형철, 어린이날을 만들고 동화를 쓰던 작가 소파 방정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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