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없이 시각예술을 논할 수 없고, 작가 없이 작품을 논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은 작가를 중심으로 한 창작 활동 지원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시각예술 분야의 기획자들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많은 작가들은 여전히 창작활동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 이들에 대한 지원이 지속 확충되어야 하겠지만, 시각예술 생태계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때 지원 프로그램들이 보다 다양한 주체들의 고른 발전을 장려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들어 기획자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특히 신진 기획자를 위하여 기획프로그램을 공모하고 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그 결과로의 기획 콘텐츠 소식들이 간간히 시각예술계에 들린다.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시각예술을 통해 대중과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고 논의할 거리를 발굴하며,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각예술 분야의 기획자들은, 한정된 수의 미술관이나 갤러리, 혹은 대안공간 등에서 근로의 형태로 근무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독립기획자로 활동하며 힘든 여건 속에서도 연구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을 지속하기 쉽지 않은 여건에 의해 기획자 활동을 하며 버텨내는 이들의 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는 신진기획자들 대비 이들의 두세 발 앞선 이정표와 같을 중견기획자들은 너무 적고, 중견기획자를 찾는 곳은 많으나 정작 일할 기획자를 찾지 못해 곤란을 겪는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기획자의 주제를 공유하는 비아 살롱 기획자의 주제를 공유하는 비아 살롱

디뮤지엄에서 열린 비아 살롱, 열띤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디뮤지엄에서 열린 비아 살롱, 열띤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비아는 시각예술 분야의 기획자들 가운데서도 중견기획자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신진기획자에서 중견기획자로 가는 과정에 있는 기획자들의 국제적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의 지속적 지원을 통해 소위 시각예술 기획자들의 중간허리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지난 2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비아 살롱은 프로젝트 비아 프로그램이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지원된 프로그램인지, 또한 그 결과는 어떠한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200여 석의 좌석이 가득 찼고, 몇몇은 서서 발표를 지켜보는 등 프로젝트 비아에 대한 관심이 실로 높았다.

프로젝트 비아에 대한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막연하게 시각예술 콘텐츠를 생각하는 기획자가 아닌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토대로 본인이 하고 싶은 리서치나 잘할 수 있는 리서치를 지원받을 수 있기에 프로젝트 비아 수혜자의 발표 결과는 기획자를 꿈꾸거나 이제 막 신진기획자의 발을 디디려는 이들에게는 본인들의 푸른 앞날을 엿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고, 중견기획자들에게는 미술계 여러 다른 기획자들이 가진 주제와 고민들을 함께 공유하는 자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2월의 비아 살롱은 총 2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총 3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세션 1은 '리서치에서 프로젝트까지'로 프로젝트 비아의 다양한 지원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세션이었다. 파일럿프로젝트의 경우 '예술과 생태-대칭적 삶을 위한 예술실천들'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생태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라틴아메리카 작가들과 예술 공간들을 살펴보는 라틴아메리카 리서치 트립을 진행 후 이때 만난 여러 작가, 기획자들과 협력 또는 초청하여 워크숍, 전시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를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소개했다. 비아 살롱의 참석자 가운데 유사한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거나 혹은 해당 주제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져 나오면서 연구주제를 중심으로 기획자 간에 서로의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고리로 발전하기도 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강유미 독립기획자는 2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멘토 큐레이터 5명 하에 프로젝트 비아 참가 기획자들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이를 함께 연구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한 워크숍을 발표했다. 프로그램이 종료된 상태가 아닌 진행 중이었는데 이들의 관심사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국, 중국, 일본의 리서치 및 리서치 트립을 분담 진행하고 이를 모아 공동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획자들 간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과 그리고 다른 기획자와의 협력프로그램 과정에서 상호 영향을 받으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멘토링을 토대로 국제적 역량 강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효과가 분명하다 보니 앞으로 진행될 이들의 전시 또한 기대되었다.

영국으로 펠로우쉽을 다녀온 고원석 독립기획자는 영국의 리서치 사례를 통해 한국 미술계에서의 기획 프로그래밍에 대한 반성과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을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리서치를 진행 후 이를 소개하는 등 한국 미술계의 발전적 방안에 대한 고민 또한 이루어졌다.

발제 중인 제니퍼 프레이 FIAC 총감독 발제 중인 제니퍼 프레이 FIAC 총감독

뮤지엄 마케팅에 대해 발제중인 유니스 리 휘트니미술관 디렉터 뮤지엄 마케팅에 대해 발제중인 유니스 리 휘트니미술관 디렉터

세션 2의 경우 프로젝트 비아에서 진행된 프로그램 가운데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발표가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미술시장'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사를 프랑스, 미국, 홍콩 등 다른 국가의 사례를 들어 한꺼번에 소개를 하다 보니 나라별로 다른 지형도를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여기에 프랑스 FIAC 디렉터인 제니퍼 프레이가 초청되어 비아 참가자들의 발표에 더한 유럽의 미술 시장을 직접 소개해주는 시간을 마련했다. 프로젝트 비아에서의 리서치들을 토대로 청중이 비록 프로젝트 비아에 모두 참여할 수는 없지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2월 23일에 진행된 '세션 3. 기획형 리서치의 리뷰: 뮤지엄 마케팅'의 경우 특히 흥미로웠는데, 이는 시각예술 기획자가 전시 형태를 기획하는 소위 전시 큐레이터에 대한 지원을 넘어 시각예술 매개인력들로 확장되어 지원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뮤지엄에서 큐레이터(학예연구사)가 뮤지엄 마케팅을 담당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홍보 마케팅을 전공한 인력들이 이를 주로 맡아 진행하다보니 소위 학예연구를 토대로 마케팅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는 사례가 드물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세션 3은 미국 뉴욕에 있는 주요 미술관을 방문하여 프로젝트 비아 참가자들이 미술관 마케팅이라는 큰 틀 하에 각기 관심 있는 세부 주제를 정하여 리서치를 진행, 이를 청중에게 공유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아쉽게도 비아 살롱에 참석한 이들만 수백 명에 이르지만, 여전히 프로젝트 비아의 수혜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모든 미술계 기획자들을 지원할 수는 없겠지만, 미술계에 균형 있는 지원 프로그램, 다양한 형태로의 지속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비아 살롱을 찾은 많은 사람들과 비아 살롱이 진행되는 동안 느낄 수 있었던 열띤 분위기가 이를 증명한다. 적어도 프로젝트 비아가 오랫동안 지속 발전하여 보다 많은 시각예술 기획자들을 지원할 수 있고, 이들의 결과를 공유하는 비아살롱이 보다 활성화되기를 고대한다.

  • 변지혜
  • 필자소개

    변지혜는 2013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입사한 이래 미술관 언론홍보 및 마케팅, 문화행사 등을 맡고 있는 홍보 마케팅 학예연구사다. 홍익대에서 광고홍보학과 예술학을 전공하고 서울대에서 미술경영학 석사를 졸업하였으며 미술관 홍보 마케팅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행한 『예술경영길라잡이 문화예술분야 언론홍보가이드북』(2016)을 공동집필하였다.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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