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작가 미술장터 개설 지원' 사업은 미술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의 전시 및 판매의 장을 여는 것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2015년부터 매년 진행되고 있다. 청년 및 신진작가들이 주도적으로 전시·판매의 장을 기획하고 관람객들이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관람하며 중저가로 책정된 작품들을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올해의 '작가 미술장터'는 총 17건의 지원틀 통해 약 1천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9만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특히 장터를 통해 거래된 작품 수가 1만여 점으로 전년 대비 360% 증가했고 판매액 또한 약 60%이상 증가하였다. 새로운 구매층을 양산하고 중저가 미술시장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은 이번 '작가 미술장터'의 한 해를 들어본다.

지난 3년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작가미술장터’ 사업을 추진한 이래로 미술계에서는 ‘과연 정부지원으로 미술시장을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하는 의심어린 눈초리들이 있어왔다. 실제로 2015년 첫 해에는 신생공간들의 결집을 이끌어 냈던 <굿즈>를 제외하고는 많은 수의 미술단체를 지원하게 되면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렸던 <굿즈>는 지원 단체 중 제일 적은 지원(지원금 3500만원)을 받아 가장 큰 성과를 냈다. <굿즈>는 이후에 기획되는 많은 ‘작가미술장터’ 행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몇 가지 중요한 실험적 토대들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그들은 단순히 판매를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시장과 거래 행위를 플랫폼으로 가져와서 실험했다. 둘째, 그들은 그러다 보니 시장이기 이전에 새로운 미술의 매개와 중재를 위한 플랫폼이 우선되는 장소로서 미술시장을 만들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판매를 통해서 생산되거나 복제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과정으로 제시하면서 오늘날 미술품과 산업 생산품의 경계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굿즈>의 성공은 다른 신생공간들과 새로운 미술시장을 고민하고 있었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이듬해부터는 <굿즈>에 참여했던 많은 신생공간들이 앞 다투어 새로운 미술시장을 위한 ‘미술장터’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 중에 주목할 만한 행사는 ‘극동예술연합’의 <유니온아트페어>였는데, 한남동의 불루스퀘어를 활용해서 신진작가들의 중저가 작품들을 소개해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행사는 사진을 인덱스 형식으로 현장에서 바로 주문을 받아 판매하는 플랫폼을 제시한 <더 스크랩(The Scarp>이었는데, 용두동의 낡은 사무실을 프로젝트를 위한 플랫폼으로 꾸미고 참가자들이 사진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기이한 풍경을 연출하였다. 이 행사는 포스트-인터넷 이후에 미술 이미지의 생산 혹은 유통이 어떤 차원에서 변화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으며, 이와 같이 웹을 통해 공유되는 ‘미술작품의 이미지’가 인스타그램이나 SNS에 범람하는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이미지들과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지금여기’의 <더 스크랩> 전시장면 ‘지금여기’의 <더 스크랩> 전시장면 ‘극동예술연합’의 <유니온아트페어> ‘극동예술연합’의 <유니온아트페어>

2017년 ‘작가미술장터’ 사업은 미술장터의 형식실험이 극대화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2016년에 이어 ‘극동예술연합’의 <유니온아트페어>는 인사동 길에 위치한 ‘빠고다 가구점’의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재개관하는 행사로 기획되었는데,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해 전시 기간 동안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상당 수 의 작업은 기존의 미술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는 것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첫 해부터 드러난 유니온아트페어의 특성은 첫째, 중저가미술시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작가들의 직거래 장터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실험적인 미술시장으로서 판매 행위 자체에 대한 예술적 기획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시장은 아트페어나 화랑이라기보다는 파티장이나 공연장처럼 보였다. 아트페어 현장은 개장시점부터 문 닫기 전까지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입장확인용 팔찌를 두른 관람객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작품들을 감상하며 음악의 흥에 취해 있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13명의 한국작가들은 이후 지난 11월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출품작 100%가 낙찰되는 성과를 올렸다. 낙찰가는 175만 5천 홍콩달러(2억 4천 여 만원)에 해당한다. 청년작가들은 ‘작가미술장터’를 통해 기존의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는 아트페어가 아니라, 진정으로 미술을 이해하고 즐기며 소비할 수 있는 새로운 미술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퍼폼’의 <퍼폼 2017> ‘퍼폼’의 <퍼폼 2017> ‘화이트테이블 예술인 협동조합’의 <화이트테이블 아트페어> ‘화이트테이블 예술인 협동조합’의
<화이트테이블 아트페어>

이러한 청년작가들의 미술시장에 대한 도전적인 실험은 다른 미술장터에서도 눈에 띄었다. 동일한 사이즈의 전시 큐브 30개 안에 소량 제작한 신작 에디션 작품을 소개했던 ‘리사익(riversideexpress)’의 이나 일시적이고 무형적인 퍼포먼스 형태의 예술을 공연 형식의 티켓 판매로 제시하는 ‘퍼폼’의 <퍼폼(PERFORM) 2017>, 일상적인 카페 공간에서 지역의 새로운 컬렉터를 찾기 위한 부대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대일연구소’의 <연희동 아트페어>, 또 아트 상품에 집중해서 기획한 <화이트 테이블 아트페어>의 '화이트테이블 예술인 협동조합'은 ‘코트라(KOTRA)’가 기획한 <글로벌 아트 콜라보 엑스포>에 초대 되었다. 지역에서는 광주 대인 야시장이나 동해 빈집 갤러리 등 기존의 아트페어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생경한 장소들을 활용기도 했다.

최근 <유니온아트페어>를 필두로 해서 ‘작가미술장터’를 기반으로 성장한 청년작가들이 미술시장의 판도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미술계에 다시 퍼지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에 이어 규모 면에서나 질적인 성장이 뚜렷해 보이는 이들 ‘작가미술장터’를 바라보는 국내 화랑가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이들의 실험성을 수용해 보수화하고 있는 미술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생각은 못 할망정 여기에 참여하는 작가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6월 화랑협회 정책 세미나)은 시류에 역행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화랑들은 무명작가를 발굴하거나 청년작가에게 투자하는 것에 인색하고 블루칩 작가들을 중심으로 미술작품을 투기품으로 인식시키는데 기여했다. 여기서 우리는 미술시장이 왜 이렇게 침체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신생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은 무거운 사회정치적인 컨텍스트 기반의 미술에 싫증을 낼 뿐 아니라, 고리타분한 기성세대의 미술에 대해서도 거부한다. 이들은 아직 작가로서의 활동기반을 튼튼하게 구축하지 못했다.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재단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이들 작가들의 작업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환영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지금까지 이들의 상업적 노력이 ‘굿즈’를 만들고 판매해서 재료비나 작업실 비용을 보전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더 나아가 그들의 새로운 미술실험을 보다 적극적으로 매개하고 독자적인 소비자층을 확보하는 데에 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 백기영
  • 필자소개

    백기영은 1996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였다. 2002년 귀국 후, 한국 미술계의 대안적 제도정책을 위해 설립된 미술인회의 사무처장을 역임하고 2006년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에서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래로 2007년 커뮤니티스페이스 리트머스를 걸쳐 2009년 경기창작센터와 경기도미술관에서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지원팀(2013)과 북부사무소장(2015)를 걸쳐 최근에는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