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극에서 시작된 ‘드라마투르그’는 희곡과 관련된 리서치와 해석, 연출적 조언, 연출-배우 간의 중재, 관객과의 소통과 교육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이제는 국내 연극 프로덕션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이 되었다. 그런데 페스티벌의 드라마투르그는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매년 5~6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리는 공연예술제 빈 축제주간(Wiener Festwochen)의 드라마투르그 이리스 라펫제더(Iris Raffetseder)를 만나 그 역할과 의미를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제 이름은 이리스 라펫제더이고 빈 축제주간의 드라마투르그입니다. 연극, 영화, 미디어, 프랑스어를 전공했고 여러 컨템퍼러리 무용, 퍼포먼스 작품의 드라마투르그, 조연출 등으로 활동했어요. 빈에서 열리는 컨템퍼러리 무용 축제 임펄스 탄츠(ImpulsTanz)에서 드라마투르그로 일했고 2014년부터는 빈 축제주간에 합류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축제의 드라마투르그는 생소한 개념인데, 어떤 역할을 수행하나요? 빈 축제주간의 경우, 예술감독이 이끄는 프로그래밍팀 안에 큐레이터와 드라마투르그가 있어요. 지금 프로그래밍팀은 총 7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3명이 드라마투르그, 4명이 큐레이터죠. 간단하게 말하자면, 큐레이터는 바깥세상에 나가 좋은 작품을 선택하는 역할이고, 드라마투르그는 이렇게 선택된 작품을 빈이라는 도시로 잘 데려오는 역할이에요. 큐레이터들은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협의하고, 초청을 결정하죠. 드라마투르그는 그 해 선택된 작품이, 더 나아가 그해의 축제가 관객과 만나는 방식에 관한 모든 것을 고민해요.

축제의 전체 프로그램과 세부 프로덕션, 이렇게 두 가지 차원에서 역할을 수행합니다. 전체 프로그램 차원에서는 작품 간의 역학을 살피고, 여러 작품을 엮어 맥락을 만들어내고, 그해 페스티벌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파악해요. 한편, 프로덕션 차원에서는 작품에 가장 적합한 공연장을 찾고, 다른 작품과의 관계, 배치를 고려하여 공연 일정을 정하죠. 어떤 프로덕션에서는 작품 제작 단계부터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해서 내용에 관여할 때도 있어요. 작가와 사전 회의를 하거나 스카이프 통화로 작품의 내용을 가장 깊이 있게 파악하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의 소개 텍스트를 쓰고 프로그램북을 만듭니다. 작품 번역이 잘 되었는지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자막의 위치나 투사 방식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 중에 하나죠. 또한 빈의 관객이 작품을 더 잘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맥락이나 자료를 브로슈어 형태로 준비해서 공연 당일에 관객에게 배포해요. 공연 끝나고 있을 관객과의 대화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도 드라마투르그의 몫입니다.

2018년 빈 축제주간 웰컴 디너 현장 2018년 빈 축제주간 웰컴 디너 현장 기술감독과의 대화 모습 기술감독과의 대화 모습

축제에 드라마투르그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국제적인 규모의 축제의 경우 전 세계에서 작품을 초청해요. 관객은 전혀 다른 환경과 맥락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만나게 되죠. 그 나라에 가보지 않은 빈의 관객들도 작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 즉 한 작품이 빈이라는 도시에 잘 ‘이식’될 수 있게 다리를 놓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작품에 담긴 고민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유럽 축제에서는 드라마투르그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가요? 프랑스어권이나 영미권 축제에는 드라마투르그가 없고, 독일어권에만 있는 역할이라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어디에서나 모든 축제가 하는 일이에요. 그걸 따로 드라마투르그라고 이름 짓고 분리해서 운영하는 것은 아무래도 연극 프로덕션에 드라마투르그를 처음 도입한 독일어권의 전통에서 온 것이겠죠. 다른 축제를 보면 제 역할을 프로듀서가 하기도 하고, 조감독, 프로그래밍 어시스턴트, 홍보 담당자 등 여러 명이 나눠서 하기도 해요.

빈 축제주간의 경우 드라마투르그가 3명이라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작품을 분담하나요? 3년 전에 일할 때는 드라마투르그 간에 장르별 구분이 뚜렷하게 있었어요. 연극, 무용, 음악 등으로 나뉘었죠. 지금 토마스 치어호퍼-킨(Tomas Zierhofer-Kin) 예술감독 아래에서는 그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아요. 저마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프로덕션을 가져가죠. 예를 들면 저는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해서 프랑스어 작품은 제가 다 맡고 있어요. 시각예술 배경에서 온 드라마투르그가 대체로 시각예술, 영상, 설치 작업을 담당하고요. 각자가 흥미를 느끼는 작품, 그리고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을 좀 더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서 맡게 되는 것 같아요.

보통 드라마투르그의 업무와 페스티벌의 프로그래밍은 연간 어떤 일정으로 진행되나요? 작품의 규모에 따라 업무 프로세스는 천차만별이에요. 대형 오페라 작품의 경우 보통 2~3년 전부터 논의가 시작되고 협의, 계약 등이 진행돼요. 일반적으로는 6월에 축제가 끝나고, 그 직후인 7~9월은 큐레이터와 예술감독이 가장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프로그램을 확정하는 시기에요. 10월에는 다음 해 프로그램이 마감 됩니다. 보통 30~40개 정도의 작품이 결정되죠. 이때부터 저는 작가들과 연락을 통해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12월에는 작품의 소개 텍스트 작성을 완료해요. 공연 일정, 횟수, 장소, 부대 프로그램 등을 확정하는 것도 이때 입니다. 그 이후에는 프로듀서에게 많은 업무가 이관되어 초청 조건을 협의하고 계약, 항공, 숙박 등의 실무가 진행되기 시작해요. 1~2월에는 프로그램북이 완성되어서 전 세계로 배포되죠. 저는 그 이후에는 신작이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대본이 잘 번역되고 있는지 등의 여부를 점검해요. 그리고 나면 5월에는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됩니다.

이번 빈 축제주간의 프로그램에는 주목하는 이슈나 경향이 있나요? 대부분의 공연예술 축제가 그렇듯,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동시대를 다루는 작가들을 소개하다 보니, 그해 여러 작품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고민 같은 것은 분명히 있죠. 올해의 경우, 앞으로 도래할 미래를 생각하는 작업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문제의식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제기하죠. 료지 이케다(Ryoji Ikeda)의 처럼 과학, 기술을 통해 풀어내는 작가도 있고 처럼 감각적인 몰입형 체험으로 이야기하는 작가도 있어요. 올해는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여전히 유효한가?’, ‘변화의 가능성은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미래에 대한 공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같은 질문이 두드러졌어요.

료지 이케다 <마이크로 매크로> © Inés Bacher 료지 이케다 <마이크로 매크로> © Inés Bacher 김지선 <딥 프레젠트> © Youri Dirkx 김지선 <딥 프레젠트> © Youri Dirkx

올해 한국 작가 김지선의 <딥 프레젠트>*를 빈 축제주간에서 공동제작하고 선보였는데요, 위와 같은 프로그램 맥락에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뭐였나요? 빈의 관객에게 이 작품은 어떻게 읽힐까요? 김지선 작가의 <딥 프레젠트>도 위에서 언급한 다른 작품과 비슷한 맥락의 고민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우리에게 도래하게 될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죠. <딥 프레젠트>는 제작되는 과정부터 흥미로웠어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그 대화형 인공지능과 나눈 대화를 통해 공연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장치입니다. 쉬운 공연은 아니죠. 하지만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특히 공연이 끝나고 배우가 아닌 기계들에게 박수를 쳐야 하는 상황이 관객들에게는 어색한 경험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관객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하고, 스스로 성찰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특이한 공연인 것 같아요. 어떤 일관된 스토리를 전달하려고 하기 보다는 여러 부품이 종국에는 하나로 모인다는 점에서 내용과 형식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하고요. 아웃소싱이라는 오늘날의 현상에 관해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신문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질문을 발생시키죠. 하나의 메시지, 시각, 주장을 전달하는 대신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비교적 기술적인 발전이나 변화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한국처럼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관객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공유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직도 빈 사람들의 관심은 온라인상에서의 개인정보 유출, 이런 문제에만 머물러 있고 인공지능은 좀 먼 이야기지요. 하지만 아웃소싱은 세계 어디든, 누구나 대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빈의 관객들도 분명히 중요한 질문들을 많이 얻어 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김지선 작가(단체명 초현실미디어)의 <딥 프레젠트>는 ‘아웃소싱’을 오늘날 사회를 작동시키는 주요한 축이라고 보고 4개의 인공지능 캐릭터를 통해 이제는 인간의 사유마저 아웃소싱하게 된 위탁의 과정을 추적한다. 작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한 후, 올해 5월에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센터스테이지코리아’ 사업을 통해 쿤스텐페스티벌, 스프링페스티벌, 빈 축제주간 등 3개 축제에서 공연하였다.

  • 김신우
  • 필자소개

    김신우는 페스티벌 봄, 부산국제영화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을 거쳐 2017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원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공연의 프로덕션 매니저, 통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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