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순서: ① 이동


여행이란 낯선 세계와의 ‘조우’다. 그리고 다양한 이동수단들과의 ‘접촉’이기도 하다. 물론 도보여행이라면 두 발만으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히말라야 트래킹, 지리산 둘레길을 두 발로 걷기 위해 떠난다 할지라도 대문 앞에서부터 걸어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인류 역사에 ‘바퀴’가 등장한 후, 인간은 보다 더 빨리, 더 편하게, 더 멀리 이동하기 위해 오토바이, 자동차, 비행기 같은 이동수단을 발명해 왔다. 그리고 이들은 어느새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최근 도보여행이 각광 받으면서 엔진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여행의 핵심’에서 덜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수단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을 다르게 인식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지상과 상공에서의 동시상영관



“오너 드라이버가 뭐죠?”라고 묻는 사람은 이제, 없다. 가구당 한 대 이상의 차량을 소지하면서 자동차가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출퇴근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는 오래. 그러나 자동차가 진화를 거듭해온 끝에 외계에서 날아온 큐브와 접촉하지 않더라도 ‘트랜스포머’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은 많은 듯하다. 물론 ‘접촉’이라고 할 ‘정신적 감응’은 필요하다. ‘여행의 핵심은 목적지가 아니라 가는 길에 있다’고 믿는 것. 그런 믿음을 가진 운전자가 동해안 7번 국도나 서해안 일몰을 떠올리며 시동을 걸면 자동차는 동시촬영·상영이 되는 영화관으로 트랜스포밍 한다. 가속페달을 밟는 것과 동시에 필름이 돌아가고, 운전대 앞 사각의 투명 스크린 위로 ‘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것이다. 여행자가 좌우로 핸들을 돌리면 자연광 조명 아래 해안도로나 고갯길들은 우아하거나 혹은 위태로운 연기를 하고, 스피커에선 ‘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위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흘러나온다. 자동차는 촬영과 상영이 동시에 이뤄지는 ‘동시 촬영/상영 기능이 장착된 영화관’이다.

한국에서 타국을 여행하기 위해선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여객선을 제외하면) 여객기를 타야 한다. 지상에서 도약한 비행기는 순항고도(국내선의 경우 고도 5~9km, 국제선은 12~14 km)에 이르면 안정된 대기층을 따라 고요히 항로를 따라간다. 승객들은 지상에서 올려다봤던 구름이 발아래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모습을 감상하며 날갯짓 필요 없는 두 손으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기내식을 음미한다. 성경의 말씀대로,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면 인간의 두뇌도 신의 두뇌를 닮았을까? 여행자는 지상의 길과 도시와 풍광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아, 마치 내가 신이 된 것 같구나!’ 여객기는 일종의 ‘데미갓Demigod 반신반의 체험관’이다. 물론 체험 시간은 길지 않다.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직항로 구간으로 꼽히는 싱가포르 - 뉴욕 간 항로도 20시간이 넘지 않으니까.

대륙으로 가는 육로가 봉쇄된 한국을 벗어나면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각지에는 국경을 오가거나 장거리를 오가는 차량들이 정류장을 차지하고 있다. 여행자들은 목적지에 닿기 위해 10시간, 20시간, 심지어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란의 이스파한까지 60시간 동안 한 좌석에 머물러야 하는 장거리버스에 올라타기도 한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어쩔 수 없는 고역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여행자에겐 장거리 버스여행은 일종의 안거安居 출가승이 일정기간 동안 외출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무르면서 수행하는 제도이며 버스는 선방禪房이 된다. 세상을 떠돌던 여행자가 버스에 올라 착석하는 순간 입제入制에 들어간다. 가부좌를 튼 수행자마냥 오래 제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여행자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에 눈을 두기도 하고 추억을 더듬기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다 근원적인 질문 속으로 가뭇없이 빠져든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슬며시 수마가 달려들 때면 ‘덜컹’ 과속방지턱이나 차도의 움푹 파인 구덩이가 ‘죽비’처럼 척추 뼈를 내리친다. 일정 기간이 지나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해제解制를 맞이한 여행자는 문 밖을 나와 다시 만행을 떠난다. 어떤 여행자는 안거 동안 파고 든 화두의 답을 얻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여행자는 다음 안거를 기약해야 하리라.

인간을 바꾼다는 의무

동남아 대부분의 도시에서 쉽고, 저렴하게 대여할 수 있는 오토바이는 ‘길과 하나가 되는 체험관’이다. 영화 <이지 라이더>의 주인공이 타고 다니던 할리 데이비슨 같은 꿈의 오토바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대여하는 오토바이는 현지인들이 주로 타는 100CC 정도의 오토바이다. 비록 멋은 없지만 소형 오토바이는 동남아 일대를 마음 가는 대로 여행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이동수단이다. 시동을 걸면 “텅텅, 텅텅” 구부러지는 길의 저편으로 질주하라며 재촉하고, “부릉, 부다다당” 가속 레버를 당기는 순간 진동을 타고 길의 굴곡이 온몸을 휘감는다. 변화구 투수의 너클볼처럼 혹은 슬라이드처럼 굽어지는 길과 하나로 결합된 느낌이 온몸의 세포를 일깨울 무렵이면 이명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잠언 같기도 하고 후크송의 후렴구 같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길의 연금술은 하나의 길도 여행자가 언제, 어떤 이동수단을 통해 지나가느냐에 따라 천 길로 탈바꿈시킨다. 다비드 르 브르통이 『걷기예찬』에서 쓴 문장이긴 하지만 다음 문장은 굳이 걷기가 아니더라도 모든 이동수단에 의한 여행에 적용되리라.

‘인간을 바꾼다는 영원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길의 연금술이 인간을 삶의 길 위에 세워놓는다.’

 

 
노동효 필자소개
노동효는 천 개의 베개를 가진 사내. 방랑하던 중 민예총 웹진 [컬쳐뉴스] 편집장의 눈에 띄어 여행하고 글 쓰는 업에 발을 들였다. 저서로는 대한민국의 샛길을 떠돌며 기록한 여행에세이 『길 위의 칸타빌레』와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여행과 책을 접목시켜 한겨레에서 연재한 칼럼을 묶은 『길 위에서 책을 만나다』, 20세기말의 유라시아 대륙횡단기를 다룬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가 있다. 2010년부터 동남아시아에서 장기체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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