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기를 맞이한 단색화

2012년 3월에서 5월까지 열린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의 단색화전》과 2014년 갤러리현대의 《정상화전》, 국제갤러리의 《단색화의 예술전》, 페로탱갤러리(Galerie Perrotin) 파리에서의 《박서보전》과 블럼앤포갤러리 뉴욕의 《하종현전》 이후 한국의 단색화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국내와 해외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호텔아트페어, 아트부산, 아트바젤(Art Basel), 프리즈(Frieze), 피악(FIAC, 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 등에서의 단색화 특별전과 판매, 서울옥션과 K옥션에서 2014-5년간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정창섭 등 5명의 작품 판매가 413점에 총 461억 원에 달했던 것도 1차, 2차 미술시장의 총력전으로 단색화 붐에 크게 기여하였다.



페로탱갤러리 홍콩의 박서보 전시 ▲ 페로탱갤러리 홍콩의 박서보 전시

국내와 홍콩에서 일었던 씨앗을 심는 시기에 해당하는 2014년 단색화 시장의 봄을 시작으로, 김매고 피 뽑고 농부들이 땀을 가장 많이 흘리는 열정의 시기인 2015년 단색화 시장의 여름을 지나, 2016년은 결실을 보며 파종할 최고의 종자를 고르는 단색화의 수확기를 맞고 있다. 단색화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2016년에는 특히 세계 미술시장의 첨단을 걷는 뉴욕에서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경매회사들의 국내와 홍콩에서의 집중적인 프로모션과 홍콩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경쟁을 벌인 경매 강세인 아시아 미술시장, 프리즈와 피악 등 아트페어에서의 지속적인 단색화 작가 프로모션, 화이트 큐브와 페로탱 등 유수 갤러리의 초대전, 베니스 비엔날레까지 입성한 유럽 미술시장, 그리고 넓은 대륙의 좌우를 오가며 열리는 갤러리와 최고급 호텔에서의 전시 및 아트페어를 장식하고 있는 미국 미술시장에까지 단색화 열풍이 불고 있다.

단색화 열풍을 뒷받침할 자료화, 체계화

2015년 다수의 단색화 작가들이 세계 500대 작가 리스트에 오르고 정상화와 박서보의 작품당 가격이 10억 원을 넘으면서 단색화가 세계 미술시장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그 사이에 윤진섭, 조앤기, 이용우, 존 스테플링 등의 평론과 저술이 단색화에 관한 미학과 이론적 밑바탕을 받쳐주었고,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블럼앤포갤러리,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영문판 도록, 서진수 편저의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서진수 외 9명 저, 마로니에북스, 2015)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영문 자료집 「단색화의 공명」(2016) 등 대형 전시의 도록과 행사자료, 평론이 영문으로 다수 발간되면서 단색화의 자료화와 체계화가 급진전되었다.



단색화 섹션이 마련된 경매 도록 ▲ 단색화 섹션이 마련된 경매 도록

2016년에 들어서도 단색화 작가들의 전시는 런던, 홍콩, 도쿄 등지에서의 개인전과 서울, 베니스, L.A., 파리, 뉴욕 등지에서의 그룹전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뉴욕에서의 행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미 2014년 하종현의 블럼앤포 뉴욕전, 2015년 박서보의 페로탱갤러리 뉴욕전, 하종현의 티나김 갤러리 전시 등으로 터를 닦기 시작한 뉴욕에서의 단색화 붐은 5월의 뉴욕 아트위크 기간에 열린 뉴욕 프리즈의 단색화 출품과 K옥션이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개최한 《한국 추상미술: 12명 대표작가의 초기 작품전》으로 이어졌다. 4만 3천 명이 다녀간 프리즈 뉴욕에서 국제갤러리와 갤러리현대가 소개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 속에 단색화 작품이 자리하고 있었고, K옥션의 한국 추상미술전은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등 12명 작가의 초기 작품을 선보여 현지 미술관계자와 아트페어를 찾은 세계 미술시장 관계자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K옥션 한국추상전, 뉴욕 아스토리아 호텔 뉴욕 프리즈 갤러리현대 부스

▲ K옥션 한국추상전, 뉴욕 아스토리아 호텔

▲ 뉴욕 프리즈 갤러리현대 부스



6월에 열린 정상화의 뉴욕 전시는 뉴욕 갤러리 두 곳이 공동으로 주최한 것으로 도미니크 레비 갤러리(Dominique Levy Gallery)에서는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의 작품을, 그리고 그린 나프탈리 갤러리(greene naftali gallery)에서는 90년대 이후부터 최근에 이르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생존작가의 프리미엄으로 구작과 최신작을 함께 보여주며 보다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또 한편으로는 평가도 받아보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과 작가의 세계화는 가능한가

한국 현대미술과 작가의 세계화라는 과제를 실험한다는 점에서 단색화의 해외 진출, 특히 뉴욕 진출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단색화의 부활은 가능한가, 단색화는 서구의 모노크롬, 미니멀과 차별성을 갖는가, 한국 추상의 세계성은 무엇인가 등의 첨예한 질문을 던지며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며 스스로 답을 찾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할만하다.

2~3년 전만 해도 작가들조차 나는 단색화 작가가 아니다, 단색화라는 용어가 적절한가, 단색화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반문했으나 그 사이에 작가들도 단색화 작가라는 타이틀에 익숙해졌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설명하는 콘텐츠와 스킬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국내외 갤러리와 경매회사들이 국제 아트페어 및 해외 전시와 판매에서 지속적으로 작품을 선보이면서 이제는 세계인이 단색화 작가와 작품에 익숙해졌고, 어느덧 중국의 초기 추상, 일본의 구타이, 한국의 단색화와 추상이라는 삼각구도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첨단을 구분하고 있다. 또한 캔버스 위에 화선지나 닥지를 얹어 제2, 제3의 작업을 실행하고, 칸칸을 뜯어내고 메우는 작업을 반복하고, 캔버스 위에 그린다는 회화의 근본적인 문제까지 뒤엎어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 작업을 하는 등 독특한 기법, 소재, 형태를 보이고, 특히 가볍고 가벼운 SNS시대에 정신성을 강조하는 동양철학을 미학으로 내세우는 단색화 작가들에 오히려 주목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세계인이 단색화의 매력으로 꼽는 것은 작품 수준에 비해 국제 시장에서 가격이 좋다는 점이다.



홍콩 Art Central의 단색화 작품 ▲ 홍콩 Art Central의 단색화 작품

단색화 열풍을 통해 바라본 한국 추상미술

단색화 붐은 한편으로는 단색화 1세대에 이은 단색화 2세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추상미술이라는 확장된 개념으로 한국 현대미술사 전체에서 이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과 의의를 찾고 있다. 한국 미술시장은 단색화 프로모션을 통해 세계화의 중요성과 어려움, 세계적인 딜러의 가치, 작가와 작품의 정보화 및 홍보, 국가간과 분야간의 협업 시스템, 국내 시장의 성숙도, 그리고 자본력의 중요성을 실감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지금 미술시장에서는 단색화 이후에 시장을 이끌 포스트단색화와 단색화와 맞먹는 영향을 가진 작가나 화파가 될 넥스트단색화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할 정도로 단색화는 미술시장의 핫이슈이고 미술시장 붐의 본보기가 되었다.

최근에 미술시장의 확대로 몇몇 화랑과 경매회사들의 신투자 여력이 생기고, 정부도 미술시장 발전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며 단색화 저술의 영문판 출판을 지원하고, 한국 주요 현대작가의 디지털 자료화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무엇보다 해외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극심한 경기변동과 대형 악재가 없고 세계화에 필요한 조건들이 해소된다면 K-Art의 가지와 잎에 대한 관심만큼 뿌리도 튼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서진수필자소개
서진수는 강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술시장연구소(AMRI)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짜오리, 마쉐동과 아시아 미술시장 연구 연맹을 공동 창설하였고, 세계에스페란토협회(UEA) 한국 수석대표 및 2017년 에스페란토 세계대회(UK, 서울)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일본-중국-대만의 주요 아트페어에서 아시아와 한국 미술시장에 관한 특강을 하였으며,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편저자), [Resonance of Dansaekhwa](공저), [문화경제의 이해](저자) 등의 저술과 미술시장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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