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국제무대에 한국의 공연예술을 진출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서울아트마켓(이하 팸스)이 벌써 12주년이 되었다. 출범 당시의 설렘과 우려가 아직도 생생한데, 내가 늙은 건지 마켓이 커진 것인지 세월이 쏜살같이 지났다. 지난 세월도 잘 해왔지만, 노파심에 올해 팸스를 미리 둘러보고자, 철 이른 버버리를 꺼내 입고 대학로에 내린다.

2016 서울아트마켓 포스터 2016 서울아트마켓 포스터

중동 포커스

2016년 팸스는 10월 4일(화)부터 8일(토)까지 5일간 아르코극장, 대학로예술극장, 홍익대아트센터 갤러리 등 대학로 일대에서 펼쳐진다. 색 바랜 대학로의 영광이 다시금 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등록을 마치고 나면 ‘안녕하세요’라는 마켓 소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니, 초행길이라도 어색하지 않다. 개막식 전에는 올해 포커스 권역인 중동 공연예술의 현황에 대해 들을 수 있는 ‘포커스 세션’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중동은 재스민 혁명에서부터 부르카 논쟁까지 다양하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그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사회의 공연예술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생생한 정보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다.

2015 서울아트마켓 행사 모습 2015 서울아트마켓 행사 모습
2015 서울아트마켓 행사 모습

팸스 초이스

둘째 날부터 마켓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팸스초이스’ 쇼케이스가 펼쳐진다. 세 단계의 심사를 거쳐 뽑힌 18개의 공연이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것이다. 올해는 연극 장르에서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 외 4편, 무용은 브레시트 댄스 컴퍼니의 <유도> 외 4편, 음악은 근동사중주단의 <패싱 오브 일루션> 외 3편, 다원은 몸꼴의 <불량충동> 외 3편이 국제무대를 향해 선보인다. 장르 면에서 어린이극과 야외극이 처음으로 포함되었다. 이런 장르 확장과 함께 젊은 예술가들의 약진이 여느 때보다 더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양손 프로젝트의 <여직공>, 최은진의 <유용무용론>, 전미숙의 <바우>, 이희문의 <오더메이드레퍼토리 '貪'>가 궁금하다. 하지만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의 리스트를 뽑아보길 권장한다. 몇 년 뒤 누가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지 미리 점쳐볼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해외 작품의 쇼케이스도 볼 수 있는데, 올해는 아시아·중동·캐나다의 컨템퍼러리 작품이 시연될 예정이다.

양손 프로젝트 <여직공> 양손 프로젝트 <여직공> 최은진 <유용무용론> 최은진 <유용무용론>

부스와 스피드데이팅

당신이 얼리버드라면,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100여 개의 부스를 훑어보며 다양한 국내외 참가자들의 현황을 스캔할 수 있다. 전날 보았던 쇼케이스의 단체 부스를 방문해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들을 수도 있고, 해외 기관의 부스를 찾아서 진출하고자 하는 나라의 지원금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좀 더 정확한 타깃이 있다면, 부스전시와 같은 시간대에 열리는 ‘스피드데이팅’을 미리 신청해서 원하는 단체나 기관의 담당자를 만날 수도 있다. 이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서서히 당신의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로비에서 지나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거나 커피를 마시게 된다. 이쯤이면 당신은 마켓에 절반쯤 몸을 담근 것이다.

2015 서울아트마켓의 스피드데이팅 2015 서울아트마켓의 스피드데이팅
2015 서울아트마켓의 스피드데이팅

학술행사

좀 더 아카데믹한 분들을 위해서는 다양한 학술행사가 행사 내내 준비되어 있다. 앞서 말한 중동 포커스 세션 이외에도, 4개의 ‘라운드테이블’이 매일 열리니 시간을 내어 참가해 보면, 좀 더 심도 있는 관련 분야 정보와 주요 컨텍을 만날 수 있다. 종일 부스 사이를 순례하다 지친 몸이라면 잠시 ‘팝업 스테이지’에 올라오는 공연을 가볍게 즐기거나, 아니면 체력을 좀 더 밀어붙여서 LIP 나 LTP에 들러라. LIP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파트너를 찾는 것이고, LTP는 이미 제작된 공연의 프리젠터를 찾는 것인데, 이런 장에 나온 프로젝트를 듣다 보면 최근 국제 작품 경향 등도 덤으로 파악할 수 있다.

2015년 서울아트마켓의 'LIP'와 '팝업스테이지' 2015년 서울아트마켓의 'LIP'와 '팝업스테이지'
2015년 서울아트마켓의 'LIP'와 '팝업스테이지'

팸스 링크와 팸스 나이트

혹은 공연을 더 본격적으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40여 개의 ‘팸스 링크’ 공연을 찾아서 볼 수 있다. 매일 저녁 서울 시내의 볼만한 전막 공연이 빼곡히 있으니, 저녁이 무료할 일은 없다. 슬쩍 봐도 국립극장의 <묵향>, 두산아트센터의 <썬샤인의 전사들>,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몸의윤리> 등 굵직한 공연들이 눈에 띈다. 공연이 끝난 가을밤이 아쉽다면 망설일 필요 없이 ‘팸스 나이트’로 향하면 된다. 힙한 바에서 군중 사이를 헤집고 와인 잔을 홀짝이노라면 나도 모르게 국제교류 근육이 성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것이다. 낮에 봤던 공연에 대한 솔직한 리뷰나 온갖 공연계 뒷담화들이 무성한 곳이니, 그곳에서 치열한 국제교류의 현장을 목도할 수 있다.

국립극장 <묵향> 국립극장 <묵향> 두산아트센터 <썬샤인의 전사들> 두산아트센터 <썬샤인의 전사들>

위에서 열거한 다양한 행사들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예술위원회와 함께 준비한 공식 이벤트들이다. 모든 흥정이 그렇듯 비공식적인 곳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실 이 모든 마켓과 거래에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온기와 열정이 만나서 어려운 펀딩도 만들어 내고, 힘든 프로젝트들도 해결점을 찾는다. 혜화동 마로니에 길 사이에서 재스민 꽃향기가 언뜻 난다면, 당신은 이미 서울아트마켓 덕후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당신의 가을을 대학로 극장 로비에서 마켓과 함께 시작해 보시길 추천한다.

  • 성무량
  • 필자소개

    성무량은 2005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팀장으로 시작하여, 대전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국제공동제작과 지역공연예술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향후 공연예술 환경에 일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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