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부터가 상당히 야심차서 과연 결론이 도출 가능한지 우려된다. 지역 공연장에서 이년 여 일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이것은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극장 포지셔닝을 할 때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기에 원론적인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지역 공연장의 발전 방안은 주지하다시피 극장의 미션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극장이 커뮤니티 시어터 성격을 가진 지역주민 밀착형 프로그램을 우선시하는 곳인지, 혹은 광역 지자체의 대표적 극장으로서 다목적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하는지, 혹은 기초 지자체 극장으로 행사 위주의 프로그램도 하는지에 따라서 그 발전 방안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은 자명하다. 지리적으로 본다면, 한국 극장은 수도권 극장과 그 이외의 ‘지역’ 극장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역’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이기에 절대적인 지역과 중심이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 글에서는 논의의 편의상 지리적인 위치로 구분해서 쓰고자 한다. 강동아트센터의 경우는 서울시에 위치하면서도 강동구의 ‘지역’ 극장으로서 이중적인 위치를 갖는다. 하지만 초기부터 야심차게 건립되어, 외관상으로는 친환경적인 건물 구조가 돋보이고, 콘텐츠 또한 지역 극장으로서는 예사롭지 않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도, 그 기대를 크게 저버리지 않을 만한 클래식과 무용 중심의 프로그램을 시즌별로 내놓고 있고, 특히 개관 시부터 무용 축제를 만들어 서울의 무용 축제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일단은 콘셉트를 가진 포지셔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는 차원에서 분석하기보다는, 과연 지역 극장에서 실현 가능한 프로그램 전략이었는지와 장기적으로 극장의 발전 방향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등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역 공연장의 프로그래밍 방식과 축제

수도권을 제외한 곳에 있는 지역 공연장도 일괄적으로 묶어 말하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같은 지역 극장이라도 강동아트센터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대전예술의전당은 포지셔닝이 다르고, 그 프로그래밍 방향과 극장 발전 방안도 다르다. 일단 편의상 이 세 극장을 주로 예를 들어 논지를 펴 나가겠다.

강동아트센터 ‘2014 강동스프링댄스페스티벌’ 개막 공연 <Arts of Evolution> 포스터

▲강동아트센터 &lsquo;2014 강동스프링댄스페스티벌&rsquo;
개막 공연 포스터

우선 &lsquo;강동스프링댄스페스티벌&rsquo;은 개관 다음 해부터 선보여 올해로 3회를 맞고 있다. 4월 말에서 5월 초에 걸쳐 국내 주요 무용을 장르별로 선보이고 있으며, 거기에 시민 참여 프로그램과, 대학 무용 경연, 전시, 이벤트까지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겨냥하고 있다. 첫 인상은 고유의 색깔을 가진 무용 축제를 지향한다기보다는, 무용과 연관된 모든 영역을 아우르려고 애쓴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조직위원회 위원이나 파트너 기관의 면면을 보면 국내외 주요 무용 인맥과 네트워크가 되어 있어서 그 외연의 광대함이 보이나, 성남무용축제나 부산무용축제 등에서 드러났던 지역 축제의 한계점이 우려되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지역 극장의(혹은 한국 대부분의 극장) 프로그램 구조가 아직은 프로그래머 중심이 아니라 대표의 인맥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극장에서 특색 있는 축제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의 청사진을 예상해 본다면, 축제가 전체 극장 프로그램 내에서 포지셔닝을 하고, 그에 맞는 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 극장이니만큼, 서울 시내에서 벌어지는 축제와도 차별성을 가져야 할 것이며, 지역 커뮤니티와도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것은 지역 극장이니 지역민을 단순히 참여시키는 프린지 류의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 지역의 관객 성향과 관람 형태 등을 분석한 이후에 그에 따른 단계적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영국 바비칸 센터의 바이트(BITE)나 호주 아들레이드 극장의 오즈 아시아 축제(OzAsia Festival) 축제 같은 경우는 극장의 시즌과 차별화한 축제의 예로 볼 수 있다.

대전예술의전당 ‘2014스프링페스티벌’ 포스터

▲대전예술의전당 &lsquo;2014스프링페스티벌&rsquo;

필자가 일하고 있는 대전예술의전당에서도 개관 초기부터 매년 4월은 지역예술가 중심(엄밀히 말하면 지역단체 중심)의 &lsquo;스프링페스티벌&rsquo;을 열고 있다. 지역의 대표 극장으로서 지역 예술 진흥의 임무를 갖고 있기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10년을 맞이하여 올해는 4월 한 달을 스프링페스티벌 기간으로 정하고, 지역 예술인만을 위한 축제를 열었다. 결과는 그 전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지역 예술인은 지역 출신의 예술인이었고, 대부분은 이미 서울에서 자리 잡고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을 초청하는 방식이었다. 혹은 지역에 기반한 예술인들에게 서울 예술인을 초청해서 조인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지역 예술인 진흥을 위해서 꼭 &lsquo;지역&rsquo; 예술인이라는 키워드를 고집해야만 하는가? 좀 더 다양하고 열린 방식으로 나아가는 게 장기적으로 지역 예술인의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쉽게 결론을 내리기엔 여러 가지 사안이 맞물려 있음을 알기에 녹록치 않은 현실을 확인하는 선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lsquo;서울댄스컬렉션&커넥션&rsquo;의 성과를 다시금 짚어보고 싶다. 그 시작은 아주 단순한 거였다. 당시 일본의 &lsquo;요코하마댄스콜렉션&rsquo;에 한국의 젊은 안무가들이 사비를 들여서 참가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국제적인 &lsquo;서울댄스콜렉션&rsquo;을 시작했다. 그리고 부상은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해외 무용 축제에 참가할 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갖고 있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독일 포츠담이나 프랑스 앙제에 레지던스를 보내기도 했다. 어떤 안무가는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더 넓은 네트워크를 만들기도 했고, 어떤 이는 한국의 도제식 방식에서 벗어난 자유를 힘들어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국내외 네트워크를 열심히 넓혀가면서 다양한 기회를 만들려고 애쓴 보람찬 프로젝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_인터파크 후기/기대평

▲201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개최한 제7회 서울댄스컬렉션 수상작.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우진의 <두 개 사이>, 진병철의 <공생>, 이상훈의 <조각이야기>.
(사진출처_2013서울국제공연예술제)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역 극장의 발전 방안에 무용 축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건 각각의 현실에 따라 다른 이야기이기에 단일한 결론을 제시하기는 처음부터 어림도 없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지역 극장의 미션에 지역 (무용) 축제가 일조를 할 수 있을지는 이상하게도 머리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반대로 서울 극장의 발전 방안에 서울 (무용) 축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로 바꾸어 물어도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지역 극장은 색깔 있는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모으기에는 더 열악한 현실이기에, 이중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상황은 역으로 해석해서 어차피 관객 모으기에 쉽지 않다면, 콘셉트 있는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지역 극장의 색깔을 단기간에 만들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궤변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손쉬운 프로그램을 벗어나서 관객과 접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단계의 꾸준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지역 관객을 위한 축제

그럼 지역 관객에게 축제란 과연 특별한 의미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특히 지역 극장에서 축제를 통해 시즌 프로그램 이외의 작품을 선보이고, 지역 예술인에게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는 많은 지자체 축제가 있다. 대부분은 공연 축제가 아니고 공연 축제라 할지라도 극장의 시즌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겨우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정도가 그 예가 아닌가 싶다. 그 경우도 예술감독이 바뀔 때마다 정체성이 다시금 바뀌는 예가 허다하다.

만약 대전예술의전당에서 특화된 축제를 한다면 어떤 모양새일까? 대전예술의전당의 경우 개관 초기부터 8월 방학 기간 야외에서 좀 더 대중적인 장르의 공연을 무료로 개최하는 &lsquo;빛깔있는 여름축제&rsquo;를 이어왔다. 주로 재즈나 뮤지컬 갈라 등의 대중적인 공연을 개최하여 젊은 층의 호응을 이끌어 왔었다. 작년에는 10년의 성공(?)을 기반으로 좀 더 야심찬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뉴욕 힙합그룹의 <오델로 리믹스>, 비빙의 국악현대음악,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의 <리골레토> 야외 상영, 현대발레 갈라&hellip; 일부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 냈으나, 가족 단위의 관객이나 기획자들은 낯설어했다. 난감했다. 그 극장의 프로그램에 익숙해 온 관객의 성향을 바꾸는 것은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했고, 새로운 관객층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획팀이 한 몸이 되어 치밀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런 요소들이 같이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좋은 공연이란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개개의 조각보에 머물고 만다.

지역의 관객 개발

제롬 벨 & 극단 호라 <장애극장>

▲제롬 벨 & 극단 호라 <장애극장>
(사진출처_2013 페스티벌 봄)

그렇다면 지역 관객은 어떤 식으로 개발될 수 있을까? 서울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뭔가 다른 비법이 있는 것일까? 관객이 없는 공연장은 얼마나 쓸쓸하고 초라하던가. 공연도중에 궁시렁거리며 극장을 나가는 관객이 있더라도, 꽉 찬 공연장의 열기만큼 기획자에게 보람된 순간은 없다.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지금, 지구촌에서 회자되고 있는 공연을 갖고 온다 한들 한낱 자기기만에 머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작년 4월에는 페스티벌 봄(Festival BO:M)에 초청된 제롬 벨(J&eacute;r&ocirc;me Bel) & 극단 호라(Theater HORA)의 <장애극장(Disabled Theatre)>를 서울에 이어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올렸다. 표가 안 팔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공연의 기획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객이 이해하지 못했다. 제롬 벨이란 이름 자체도 낯설었거니와 그가 하는 작업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에, 눈앞에 펼쳐지는 공연은 장애인의 제스처에 박수를 보내는 이상을 넘기가 힘들었다. 난감했다. 지역 예술인 역량은 그들에게 나눠먹기 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외 작품들을 다양하게 선보여 예술적인 자극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서 이뤄진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지역 관객의 다양한 문화향유 기회도 놓칠 수 없는 목표이었고. 하지만 섣부른 낙관주의가 불러온 결과는 치명적이어서, 올해는 국내외 작품을 제외하고 오로지 지역 단체만이 중심이 된 프로그램이 이루어졌다. 서울에서는 카셀 도큐멘타에서의 보증수표에 힘입어서인지 매표가 잘 된 것은 물론이고 관객이 즐거이 관람했다는 소문이었다. 이미 글로벌 브랜드가 되어버린 제롬 벨의 작품이 아직도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한 시간 거리의 대전 관객에게는 천국처럼 낯선 현실이 공존하고 있었기에 감히 그 질문을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하고 말았다.

지역 극장의 전망

지금 한국 공연계 활성화 방안 중의 하나가 지역 공연장에게 달려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대학로를 벗어나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연극계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리고 세종시로 옮겨간 문화체육관광부, 광주아시아예술극장 등의 몇몇 움직임만으로 이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칠까? 물론 대부분의 지역 극장은 이런 거시적인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에 따른 프로그램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공연예술계도 수도의 단일한 중심을 넘어서, 다양한 중심을 여기저기에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서울 시내의 구 단위의 극장들의 활성화, 경기도 지역 극장의 색깔 찾기, 그 이외 지역 극장들의 활성화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축제들이 시도되고 실패할 것이다. 지역과 글로벌이 만나는 지점에서 강동무용축제 같은 &lsquo;지역&rsquo; 축제가 그 색깔을 찾아가길 바라본다.

*편집자주

이 글은 필자가 2014년 5월 12일 강동아트센터에서 &lsquo;2014 무용축제 활성화를 통한 지역 문화공간 발전 방안 모색&rsquo;을 주제로 열린 제3회 강동스프링댄스페스티벌 학술행사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완한 것입니다.

필자사진_송현민 필자소개
성무량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화사 일을 거쳐 안착한 곳이 공연예술이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지만 국제교류에서 한국이 새롭게 조명되길 기대하는 기획자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8년간 축제기획을 해오다 제2의 고향 대학로를 떠나 대전으로 이주했다. 이제는 한국의 공연예술도 수도를 벗어나 지역에서 꽃필 수 있음을 굳게 믿고서 대장정 항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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