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적 측면에서 문화를 관찰하면, 19세기 산업혁명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표준화, 대량생산이란 요소에 적합한 문화 현상에 주목하게 된다.

1) 델 코랄(del Corral), 1996, 정기문, 「문화산업 논의의 전개」, 1999에서 재인용.

“창작과 산업, 문화와 시장, 원작과 대량의 복제품, 문화다원주의와 기호의 표준화의 관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문화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할 필요성이 커지게 되었다.”1)

20세기 중반부터 문화를 산업의 일부로 끌어들이던 외국 사례와 달리 국내의 문화 분야 특히 국악은 산업적 측면은 고사하고 상업적으로도 시장에서 제대로 유통된 적이 없었다. 조선 후기 가장 큰 시장 중의 하나였던 송파장의 상인들이 시장을 일으키려고 추렴하여 만들어진 게 송파산대놀이라는 사실에서 보듯 국악에선 관객이 입장료를 내는 관습이 없었다. 시장 상인회나 지역 유지들이 마련한 행사의 일부인 국악 공연에 관객은 구경꾼의 자격으로 낄 뿐이었다. 상인회나 지역 유지 같은 민간에서 국공립 기관으로 행사 주체가 바뀌었을 뿐 속성은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독립적인 공연장을 기반으로 한 현대의 공연문화 자체가 서구의 그것인 상황에서 그런 인프라를 가져본 적도 없는 국악이 현대에 와서는 상업성에 대한 요구를 받고 있는데, 국악 상설 공연이 그 예가 아닌가 싶다.

국악 상설 공연의 현황 및 기능

2) [라라] 주간 공연 현황 참조

2012년 들소리의 <월드비트 비나리> 상설 공연

▲ 2012년 들소리의 <월드비트 비나리>
상설 공연 (사진출처_들소리 블로그)

6월 둘째 주 전국에선 19개의 국악 상설 공연이 열린다.2)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립국악원, 시도립국악단, 국립극장 등 공공기관 주관이 13개로 50%를 넘는다. 나머지 6개 중에서도 1개 정도만이 민간에서 수익을 목적으로 올린 공연이고 5개는 반관반민의 형태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것이라고 하여 경영의 효율성이나 예술성을 무시할 것은 아니나, 치열함이 떨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공기관의 국악 상설 공연은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위한 성격이 짙다 보니 가격 문턱이 낮다. 예상하듯 공연의 수준 또한 높다고 보기 힘들다. 국악 입문자들에게 비교적 호평을 받는 상설 공연인 국립국악원의 토요명품공연도 매너리즘을 극복하려고 분기별로 새롭게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노력을 2년 전부터 보여주곤 있지만 &lsquo;명품&rsquo;이란 이름값엔 여전히 못 미친다. 국립국악원을 포함한 국공립 기관의 공연엔 가격 저항이 매우 높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에서 주최하는 공연이므로 국민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렸다. 하지만 현실에선 국악 상설 공연 관람객의 규모를 보면 한계가 뚜렷하다. 예를 들어 국립국악원의 대극장 격인 &lsquo;예악당&rsquo;에서 열리던 것이 소극장인 &lsquo;우면당&rsquo;에서 옮겨진 걸 보면 관객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누구도 제대로 누리고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국민 서비스 실적 차원에서 지속하는 이런 기이한 구조는 매년 여러 국악 토론회에서 공연 활성화에 대한 비슷한 푸념만 늘어놓다가 흐지부지된다.

2013년 공명의 대학로 상설 공연 <위드 씨(WITH SEA)> 포스터

▲ 2013년 공명의 대학로 상설 공연
<위드 씨(WITH SEA)> 포스터

민간단체에선 어떤 모습일까? 2013년 7월 28일 321회의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 <월드비트 비나리>의 들소리는 해외시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단체다. 1~2회 열리는 기획 공연으론 단체가 지속될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상설 공연을 시작했지만,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생력 있는 단체의 관문처럼 여겨지던 상설 공연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 사례다. 데뷔한 지 15주년으로 비교적 팬층이 두꺼운 &lsquo;공명&rsquo;도 대학로에서 2013년에 50회 장기 공연을 하는 모험을 감행했으나 마지막 공연에선 진행 과정에서 속상했던 소회를 잔뜩 늘어놓았는데, 유료 관객의 숫자에 민감한 공연을 만들어본 사람들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상설 공연은 고정 수익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공연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단원들 입장에선 꽤 좋은 조건으로 훈련을 받는 셈이다. 꾸준히 관객 유입만 가능하다면 관객 개발과 적극적 팬층을 형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긍정적 효과는 공연 단체의 단기적 운영에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상설을 통해 얻은 안정감은 신뢰로 이어져 관광이나 지역 브랜드 개발, 페스티벌 등의 다른 산업과 연계 효과를 증폭시킨다. 경주에서 출토된 수막새의 웃는 얼굴인 상징성을 이용해 정동극장이 한때 &lsquo;미소2&rsquo;로 경주의 지역 브랜드화하려는 작업도 있었고, 우리나라 방문 관광객의 절반이 넘는 중화권 손님을 관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여행사와 제휴를 맺기도 한다. 외국 단체 관광객이 고정 관객으로 유치되기 위해서는 대개 1~2년 정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또 상설 공연이 꾸준히 이어져 하나의 브랜드로서 자라게 되면 자연스레 뮤지컬이나 영화 등 인접 장르로 리메이크 버전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해외에서 러브콜도 많아질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긍정적 기대치들이 세금으로 유지되는 국공립 기관의 상설 공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재원과 구성원 수준에서 열악한 민간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인 국공립 국악 단체가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상설 공연은 서두에서 언급한 문화 산업적 요구에서 비롯된 상설 공연에 해당한다고 보긴 어렵다. 광고 수단의 발달로 깔끔한 홍보물과 세련된 포장 덕분에 국공립 기관이 문화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조직 생리상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정기 연주회의 현황과 명암

상설 공연의 느슨한 형태가 정기 연주회라고 할 수 있다. 정기 연주회 무용론은 국악 분야에서는 크게 이슈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양악계보다 덜 심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결국 누워서 침 뱉기가 되어버리는 상황이라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기획 공연에도 관객이 없지만, 정기 연주회는 더더욱 관객이 없다. 국악 정기 연주회는 대개 국악관현악단일 경우가 많은데, 연주자의 지인과 가족으로 채워지는 경우를 두고서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고 하기에는 낯이 뜨겁다. 1980년대 후반 국악관현악단이 지자체별로 생긴 이래 정기 연주회가 200여 회에 달하는 경우가 심심찮다. 매년 여러 차례의 정기 연주회를 하는 것은 단원들의 기량을 연마한다거나 연주 목록을 늘리는 효과가 제법 있다. 계약제로 채용하지만, 실제론 종신제로 운영되는 국공립 단체의 성격상 정기 연주회에서 연주되는 초연 곡이 없다면 단원들의 기량을 담보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 사정이 어떻든 정기 연주회를 통해 대부분 단체는 세력을 과시하거나 존재의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중요한 국악 공연을 꼽는 연말에 정기 연주회가 꼽혔다는 소식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큰 기관에서 발행하는 사보에 홍보용으로 자기 기관 작품을 선정한 것을 진정성 있다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도 버릴 순 없다

현대에 와서 상설 공연의 중요성이 난데없이 주목받는 데는 문화 산업이란 말을 태동시켰던 영화처럼 공연을 대량으로 자가 복제하여 대중에게 뿌릴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 이런 거래를 통해 국악 공연도 문화 산업의 한가락을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lsquo;자생력&rsquo;이란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 산업의 영역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문화와 문화 산업은 주체가 엄연히 다르다. 거의 모든 국악 공연은 국가나 연주자 개인이 마련하는 형편이다. 심지어 1년에 걸친 상설을 해낸 들소리마저도 연주자가 주체다. 그런데 이미 문화 산업의 영역이 공고해진 다른 장르에서 보듯 예술가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이미 500여 년 전부터 관객이 보고 싶은 공연에 관람료를 내는 관습이 정착되어 있었고 서구 기준의 공연 산업 인프라가 있었다.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공연장인데도 회전무대가 설치된 일본의 사례도 있을 정도다. 이 말은 산업적 측면에서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경우 공연을 구성하는 수많은 단계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다. 막내로 들어가서 감독으로 승진하는 구조가 아니라 조명, 무대미술, 홍보 등 각각의 영역 테두리 안에서 경력을 끝까지 쌓고 있다. 이런 이들과 같이 일하는 구조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본연의 영역에 집중만 하면 된다. 국경은 붙어 있지만, 공연 문화에 관해서 만큼은 서구처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문화 산업이란 말에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직 한번도 관객이 공연을 위해 돈을 흔쾌히 써본 적이 없는 국악계의 관습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장기 공연으로 가려고 몸부림치는 수많은 국악 단체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직접할 수밖에 없는 이런 구조에서 산업적 요구로 비롯된 수준의 상설 공연이 잘 안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여전히 지금처럼 혼재할 수밖에 없고, 그 나름으로 각각 부여된 의미에 충실하도록 장려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론 민간이 문화 산업에 가깝고 국공립 단체들은 문화에 가까운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 시너지가 생기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지만, 단기적으론 국공립 단체들이 애매하게 문화와 문화 산업에서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 민간단체가 어떻게든 견뎌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_유춘오 필자소개
유춘오는 국악을 매개 삼아 전통이 현대에서 갖는 위상을 탐구하는 잡지 [라라]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전통과 우주처럼 이질적 분야를 연결하는 작업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태어난 기계 수집에 열 올리고 있다.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