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지금 작은 마을들,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리(里)에 ‘문화공간’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운영하는 ‘빈집프로젝트’라는 지원 사업 덕분이다.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공간 지원 사업인 빈집프로젝트는 시골에 놀고 있는 감귤 창고 등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시작되었다. 2011년을 시작으로 작년에 빈집프로젝트 3,4호가 문을 열었으며, 올해 말에는 빈집프로젝트 5호가 탄생할 예정이다. 4년 동안 특색 있는 문화공간 다섯 곳을 키워냈으니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제주도 문화공간의 활성화에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공공미술에 새로운 방향 제시 기대

화북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함께한 《바람마을 동화공방》,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화북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함께한 《바람마을 동화공방》,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화북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함께한 《바람마을 동화공방》,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 화북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함께한
《바람마을 동화공방》,
거로마을 주민들이 참여한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아직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사비를 털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거나 이러한 공간을 준비하고 있는 예술가들 또한 상당수다. 작업실 겸 전시장, 카페 겸 전시장의 기능을 하거나 소규모의 공연 등이 이루어지는 문화공간들이 많다. 건물 형태를 갖춘 문화공간은 아니지만 문화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場)도 생겨나고 있다. 하나둘 생긴 벼룩시장들이 점차 자리를 잡아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문화공간이 마을에 생겨나는 것은 의미 있는 현상이다.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소위 공공미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대다수 사업들의 한계로 지적되어 온 것은 지속성의 부재다. 물론 이것은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주고 회계연도 안에 사업을 마치라고 요구하는 지원 제도의 탓이 크다. 반면, 문화공간은 공간 자체가 갖는 지속성 때문에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서 기존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일회적 행사의 성격에 그치고 말았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문화공간 양에서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해 왔다.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화북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바람마을 동화공방》은 작년에 문화공간 양의 입주 작가들의 지도 아래 화북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동화책을 만들고 전시를 하는 사업이었다. 특히 학생들이 작가가 되어 전시를 하는 것에 대해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 모두의 호응이 높았다. 이를 계기로 올해는 화북초등학교의 요청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전시를 하는 2014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우리 모두 예술가》에 화북초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 현재, 학생들이 만든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문화공간 양에서 전시되고 있다.

약 8개월간 거로마을 주민 등 64명이 참여하여 정현영 작가가 제작한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또한 공공미술 그중에서도 공공 벽화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작업이다. 이 벽화 작업은 보존성을 고려한 재료와 제작 방법뿐만 아니라 마을 회의를 거쳐 지역 주민의 동의를 구하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에 큰 중점을 두었다. 당충대는 옛날 거로마을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장소였으나, 도로 포장을 하면서 소통의 장소라는 기능을 상실했다. 그곳에 마을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벽화를 제작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모색한 것이다. 문화공간 양은 벽화를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마을 곳곳에 삶에 필요한 것들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무엇이 문화공간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나

문화공간 양 전시 공간 정찬일 작가의 개인전 모습

▲ 문화공간 양 전시 공간과 정찬일 작가의 개인전 모습

프로그램의 지속성에는 문화공간의 지속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앞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문화공간의 지속성을 담보해 주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다른 공간과의 차별성을 갖는 것이다. 문화공간 양이 다른 문화공간과의 강한 차별성을 보이는 부분은 미술계 담론을 형성하고자 진행하고 있는 세미나, 강좌, 토론회 등이다. 얼마 전 문화공간 양의 감나무 아래서 ‘예술가의 인건비’라는 주제로 진행된 토론회는 문화공간 양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예술가에게 인건비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토론회는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이야기들이 논의되었다.

올해 문화공간 양에서 진행되는 모든 사업의 공통된 주제는 ‘공간과 기억’이다. 이 또한 마을 내 문화공간이 갖는 역할과 의미에 대한 담론을 풀어내고자 하는 시도다. 이러한 주제는 문화공간 양이 자리하고 있는 거로마을의 역사성에서 기인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거로마을은 화북공업지역을 마주하고 있어 개발에서 밀려났지만, 그로 인해 집성촌의 성격이 유지되면서 옛 전통들이 남아있는 장소가 되었다. 또한 점차 마을로 공장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주거 형태인 연립주택이 생기면서 옛것과 새것이 서로 불편하게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거로마을의 현재를 살피고 기록하는 것이 문화공간 양의 역할로 다가왔다. 이를 위해 만화, 사진, 영상으로 마을의 모습을 기록하는 《거로마을이야기》와 《화북문화지도》 등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문화공간들이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슬슬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문화공간들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임대 공간의 재계약 문제, 불안정한 수익 구조, 기획 인력 부족 등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재정과 인력 부분이다. 문화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운영비는 만만치 않은 반면 문화공간 내 활동으로 수입이 생기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작년과 올해 문화공간 양의 사업들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금으로 운영되었고, 공간 시설의 유지 및 관리 비용은 자체 자금으로 충당하였다. 개인 또는 기업 후원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주도 현실에서는 녹록지 않기 때문에, 결국 아직까지 재정 확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좋은 기획안을 가지고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는 것이다.

문화기획자 양성 프로그램

▲ 문화기획자 양성 프로그램 모습

기획 인력의 부족은 당장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기획 인력 양성에 대한 제주도 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문화공간 양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문화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작년에는 ‘시각예술 기획자를 위한 세미나’를 ‘삶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12강 걸쳐 진행하였고, 올해는 ‘문화 기획자를 위한 인문학 세미나’를 ‘공간과 기억, 장소’라는 주제로 8강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전시 기획자를 키워내기 위해 제주도에 거주하는 신진 기획자를 대상으로 1:1 이론교육과 실무 교육을 통해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하고 전시 준비 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할 예정이다.

‘르네상스의 시대’를 맞은 제주도

문화공간들이 생겨나면서 제주도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거리에는 벽화와 조각품이 생겨나고, 작가들이 꾸민 그들의 집과 전시실은 또 다른 예술 작품이 되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문화공간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면서 제주도민들의 풍부한 문화 체험 또한 가능해지고 있다. 이제 제주도는 아름다운 자연만이 아니라 문화라는 자산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 제주도를 ‘르네상스의 시대’라고 칭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화의 싹을 틔운 제주도가 문화의 전성기를 누리고 싶다면 민(民)도 관(官)도 이제 좀 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제주도와 자신이 속한 마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문화공간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주도 내 문화공간들 사이에 네트워크 형성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말은 제주도 내에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문화공간들이 생겼다는 것과 각 공간들이 크고 작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요성에 의해 문화공간 사이에 자발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면 이 또한 문화공간이 유지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관의 경우 제주도 문화공간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고 공간들의 요구 사항을 분석하여 문화공간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사진_김연주 필자소개
김연주는 2001년부터 (주)아트컨설팅서울 큐레이터로 근무하면서, 미디어아트와 공공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2003년 거리미술전 《거리의 회복》, 2005년 미디어 퍼레이드 《한일 미디어 아티스트 4인4색》, 2009년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서울시와 함께 일어서自!》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홍익대, 성신여대, 경원대 등에 출강을 하면서 미술사, 현대미술이론을 가르쳤으며, 2007년 ‘전시와 공연기법을 활용한 교사연수프로그램 개발 연구사업’, 2009년 ‘녹색환경 문화예술교육 연수 프로그램 개발 연구’ 공동연구원으로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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