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하면 대체로 공공의 영역에서 만들어낸 그만그만한 것이 다수를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국립000’, ‘시립000’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진 이러한 문화공간들은 그 위엄을 자랑하듯 규모도 크고 화려하기만 하다. 강원도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러 국공립 문화시설들이 주를 이루던 것이 최근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소위 ‘민간’이라는 타이틀을 단 사설 문화공간이 그것이다. 최근의 실험적이고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예술의 경향을 반영한 춘천의 ‘상상마당’이나 국립 문화시설 못지않은 규모와 예산을 자랑하는 원주의 ‘뮤지엄 산’, 그리고 정동진이라는 자연을 앞뜰에 둔 자연 친화적 문화공간인 강릉의 ‘하슬라아트월드’가 대표적이다.
‘KT&G 상상마당 춘천’은 홍대 앞을 시작으로 충남 논산에 이어 세 번째 개관한 문화공간으로 2014년 4월, 故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이었던 춘천어린이회관을 리모델링하여 문을 연 문화공간이다. 호숫가에서 예술과 함께 머무는 ‘아트스테이(Art+Stay)’라는 콘셉트하에 문화예술을 즐기기 위해 마련된 각 공간들을 통해 창작자에게는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향유자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개관 초기 조금은 지역에 생소한 실험적 예술을 통한 접근과 기존의 어린이회관이라는 시민들의 인식으로 쉽게 자리 잡기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양한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과의 협업과 꾸준한 예술 활동을 통해 점차 안정을 찾으며 춘천의 또 다른 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 상공에서 본 KT&G 상상마당 춘천
‘뮤지엄 산’은 원주시 지정면 산상(山上)에 위치한 종합 뮤지엄으로 1997년부터 운영해 온 종이박물관과 2013년에 개관한 청조갤러리로 이루어져 있다. 건축가 안도타다오의 작품이기도 한 ‘뮤지엄 산’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자연의 품에서 문화와 예술의 선율을 느낄 수 있는 전원형 뮤지엄이다. 넓은 부지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조형미 가득한 공간과 미술품들은 작품과 자연을 하나로 느끼게 한다. 백남준 선생의 작품과 제임스 터렐의 ‘빛’, ‘공간’, ‘지각’, ‘경험’의 키워드로 작업한 ‘지평선의 방(Horizon Room)’이나 ‘하늘공간(Skyspace)과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뮤지엄 산은 한솔오크밸리라는 리조트 시설과 더불어 휴식과 문화예술의 만남이 제법 어울리는 문화공간임에 틀림없다.
강릉의 하슬라아트월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강원도의 문화공간 중 하나이다. 고구려시대, 신라시대 강릉의 옛 지명인 하슬라로 이름 짓고 정동진의 푸른 바다를 가슴에 품고 2003년 개관한 하슬라아트월드는 ‘환경과 공존하는 예술’, ‘사람과 공존하는 예술’을 꿈꾸는 문화 허브이며 박신정, 최옥영 두 예술가 부부의 오랜 꿈을 실현해 주는 꿈의 예술 정원이자 자연과 문화가 주는 여유로움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건축과 조경과 길과 예술이 함께하는 풍경이다.
하슬라아트월드는 돌, 나무, 야생화와 같은 자연을 조형의 소재이자 배경으로 활용하며 그 자체가 작품인 ‘예술 정원’과 다양한 기획전이 열리는 ‘아트 뮤지엄’ 그리고 단순한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객실이 예술 작품인 ‘뮤지엄 호텔’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매년 참여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운영과 주민과 방문객을 위한 예술 체험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곳은 현재진행형의 살아있는 공간이다. 백두대간과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254,000㎡의 대지에 지금도 작품으로 채워 나가는 두 예술가의 캔버스인 셈이다.

▲ 정동진의 푸른 바다를 품은 하슬라아트월드
위에서 살펴 본 세 군데 문화공간은 모두 도심 근교에 위치하며 각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만큼의 건축적 의미와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과 더불어 숙박까지 제공하는 자연 친화적 문화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호수, 산, 바다라는 강원도의 특징을 잘 살려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으로 강원도를 대표한다. 대부분의 공공 문화시설이 부지 확보의 어려움이나 예산상의 문제로 주변 경관이나 주민의 문화적 활동 반경과는 동떨어진 곳에 생뚱맞게 위치해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민간의 투자 감각이 도드라져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끊임없는 자기 투자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유명 건축가의 예술적 건축물을 완성함으로써 그 자체가 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간은 단순한 문화시설에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 낸다. 다양한 기획전과 이벤트 그리고 교육 사업 등은 한 번의 방문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재방문의 이유를 제공하며 즐거움을 선사한다. 많은 문화시설들이 단순 대관이나 형식적인 연례행사로 공간을 채우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어디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또 다른 실험, 대안적 문화공간에 주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