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분야에 있으면서 몇 개의 국제공동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 세계 각지의 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예술가들, 이색적인 공연들, 알려지지 않은 축제들, 수많은 공연장 등을 보면서 앞으로의 국제문화교류에 대한 필요성과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권역별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양성사업(NEXT)의 가장 큰 매력은 재외 한국문화원이라는 안전한 현장에서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재외 한국문화원은 해외에 위치하고 국가마다 다른 업무 환경 때문에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한계점은 있겠지만,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실행하고 바로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예술단체만큼 살아 있는 현장이라 할 수 있고, 거기에 행정 실무까지 겸할 수 있는 곳이다.
파견 전에 나이지리아는 이미 보코하람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지만 나는 당시 나이지리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탓에 들어보지도 못했을 만큼 나이지리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아프리카로 가고 싶었다. 아프리카만큼 우리에게 단편적 이미지로 고정돼 있고 정보도 부족해서 교류가 필요한 곳이 또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마침 주나이지리아 한국문화원이 아프리카 대륙 유일의 문화원이라고 하니 더더욱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 주나이지리아 한국문화원
놀이워크숍, 주재국민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
한국에서 어린이 교육공연 전문가인 유홍영 국립극단 아동청소년극 부소장을 초청해 2주일간 어린이 및 교사, 공연 관련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나이지리아는 1억 7천만 인구 중 무려 40%가 15세 이하의 어린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 가까운 수인데 내가 본 아이들이란 문화원에 방문하는 아이들과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뿐이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검은 피부색과 대조돼 유독 눈에 띄는 하얗고 커다란 눈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두려움이 내비쳐졌다. 대부분의 가정은 인터넷도 안 되고 날씨가 뜨거워 놀이공원은커녕 실내 놀이시설도 거의 없어 학교와 집을 단체로 오가는 게 아이들 활동의 전부이다.
놀 데도 볼거리도 없는 이 아이들을 위해 놀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아이들이 또래들과 함께 몸을 부딪쳐 가며 놀면서 여기저기 뛰고 소리 지르고 깔깔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듯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았다. 프로그램 특성상 많은 인원이 참가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 향후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교사 워크숍도 진행했다.
▲ 주나이지리아 한국문화원 놀이워크숍
1주일간의 놀이워크숍을 통해 아이들이 결과물을 만들고 발표하게 하여 협동심과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는 ‘놀이 프로그램이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등의 티칭 기법을 전수하여 향후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였고, 공연 관련 아티스트들을 위해서는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아웃풋 연출 방법’의 실용적 내용을 구성해 한층 풍성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워크숍 진행 시 전 과정을 영상 촬영하였고, 현재는 프로그램 자료집을 제작하는 중이다. 이후 나이지리아 초등교육위원회(Universal Basic Education Board)를 통해 아부자 시내 초등학교 150군데에 배포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주 나이지리아 한국문화원에서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처음이다 보니 참가자 모두 신선하게 생각했고 결과물 발표회 당일에는 주재국 내 여러 신문 및 방송 매체에서 취재를 나와 호의적 기사들을 보도하였다.
한국 문화를 직접적으로 알리는 방식이 아니라 주재국민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찾아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한 것이 큰 호응을 얻었고 덤으로 자연스럽게 한국의 교육 문화와 문화원의 활동도 알린 계기가 된 것 같다.
▲ 주나이지리아 한국문화원 놀이워크숍
아프리카라는 지역 특성이 주는 어려움
아프리카 국가들은 인적, 물적 교류에 이동 경비가 상당히 많이 들기 때문에 공연 교류는 물론, 전시회 개최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 저개발 국가들이 그렇듯 나이지리아 대부분의 정부 기관들은 재정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공동 기획을 하더라도 예산에 대한 분담을 강요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적정한 역할 분담으로 효율적인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예상외의 변수 발생으로 예정된 행사가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작년에는 에볼라 발생으로 계획되어 있던 행사들이 줄줄이 연기되는 바람에 신규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없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통한 '국제문화교류 기획프로젝트'는 진행 과정에 있어 한국과 나이지리아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나이지리아 초등교육위원회와 공동 주최하였으나 초등교육위원회 권한에 속하는 공립학교 학생들을 행사에 참가시키기가 어려웠다. 치안이 좋지 않고 대중교통 여건이 열악하다 보니 개별 참가가 어려워 결국 가정에 차가 있는 사립학교 아이들이 주로 참가하게 되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집에서 매일 같은 시간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고 싶어 했지만 워크숍 특성상 참가 인원에 제한을 두게 된 것도 아쉬운 일이었다.
▲ 주나이지리아 한국문화원
'권역별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양성사업(NEXT)'의 발전 방향
재외 한국문화원은 문화기획자의 역할이 가장 필요한 곳이다. 전문 역할이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중요성을 홍보하고 각 문화원에 사업 취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협조가 필요하다. 파견자의 능력 발휘 여부는 전적으로 해당 문화원장의 배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양성 후 전문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류 업무는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로 상당 부분의 일이 이루어지므로 파견자들이 리서치한 각 국가의 문화시설 및 행사, 인물 등의 정보들을 한데 모아 전 세계 문화정보 맵을 구축하는 것은 문화예술 분야 정보 교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기획 프로젝트의 사례집을 구성해 문화원은 물론 유관 기관과 공유하는 등의 활동도 문화기획자 파견에 대한 효과성을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기존 프로그램의 효과를 측정해 발전된 프로그램으로 개선하는 내부적 노력 역시 파견전문가로서의 필수 역할이다. 방문객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리서치하는 것, 기존 문화원 업무를 통계화하여 홍보에 활용하거나, 현지 직원들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 지도, 타 문화원과의 정보 교류 및 공동 작업 추진 등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파견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 소통과 위기 대처 능력
국제교류에 관심이 있다면 영어 실력을 쌓는 건 기본이겠지만 실제 파견되어 전문가로서의 업무를 하자면 영어보다 중요한 건 주위 사람을 이끄는 소통 능력이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존중, 애정을 갖고 상대의 말을 진심을 담아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고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문화기획자에게 있어 절대적인 소양이다. 거기에 약간의 유머 감각을 가지면 언쟁을 줄이고 많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어 일을 수월하고 재밌게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현상들로부터 배우고, 여유 있는 자세로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는 습관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위기 대처 능력이다. 재외 한국문화원에서는 각종 행사가 열리고 만반의 준비를 하더라도 행사 현장에서는 언제든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에 당황하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에는 언제나 덜거덕거리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므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 주나이지리아 한국문화원 놀이워크숍
네트워킹에서 협력으로 나아가다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문화교류는 아직도 초보적인 단계이지만 한국문화원의 다양한 무료 문화 행사와 한국 각 대학의 외국인장학생 모집 증가로 유학 기회가 많아지면서 현지인들의 관심과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한국문화원에서 좀 더 특화된 문화 활동을 기획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국가 홍보와 함께 문화교류의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껏 교류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에 시간을 보낸 만큼 앞으로는 협력을 위한 적극적인 제안으로 기존 프로그램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현지 실정에 맞는 창의적인 예술교류 프로그램 기획이 필요할 것 같다. 향후 한국-나이지리아 교류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공동 프로젝트, 나이지리아 문화의 국제 진출을 위한 교류협력 활동을 도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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