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양성사업(NEXT),
다른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걸쳐 국악 이론을 공부했다. 그렇다고 국악에 대한 대단한 열정이나 애정이 있어 해당 분야의 일을 시작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이제 그만 국악은 접고 다른 무엇인가를 해보자 했을 때 우연한 기회로 키네틱국악그룹 옌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국악이라는 장르에 대해 그리고 공연 기획자라는 직업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한 셈이다.

▲ 키네틱국악그룹 옌 뉴욕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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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그룹 옌에서는 공연 기획 및 지원 사업 운영을 주로 맡았다. 국제교류 업무는 2009년 서울아트마켓(PAMS)에 처음으로 참가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국제교류가 무엇인지 심지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어떤 곳인지도 알지 못했다. 해외 인사들은커녕 국내 인사들, 심지어 다른 국악 단체 담당자들도 잘 몰랐으니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허둥지둥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냈었다.

하지만 서울아트마켓 참가를 계기로 국제교류라는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해당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얻고자 센터의 국제교류 아카데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마켓 참가 지원 사업도 신청하여 말로만 듣던 워멕스(WOMEX)에도 참가했었다. 옌의 남미, 미국, 호주 투어를 진행하고, 이후 직접 경험을 쌓아 보고자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해외팀에 입사하여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지원하고 페스티벌 현장을 운영했으며 2012년에는 아시안퍼시픽뮤직미팅이 첫 번째 문을 열던 순간을 함께했었다.

그러던 2013년 모든 일을 접고 프랑스행을 결심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프랑스를 선택하긴 했으나 그동안 국제교류 담당자로 일하면서 항상 마음에 가지고 있었던 ‘유럽 거점 한국 문화 전문가’로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결심이었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에서 쌓았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더 광대, 유희와 같은 전통 공연단체의 해외 투어 및 프로모션을 진행했고, 인디 레이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의 해외 프로젝트 및 해외 음원 유통 업무를 담당했었다.

▲ 더 광대 Finks Festival 2013 쇼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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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센터 홈페이지를 거의 매일 방문했는데, 어떤 사업들이 진행되는지 어떤 단체가 선정되어 해외에 진출하는지 등을 확인했었다. 그러다 본 ‘권역별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양성사업(NEXT)’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대상 국가들 가운데 벨기에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 공연예술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최적의 위치라 생각하여 지원하게 되었다. 또한 재외 한국문화원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기존에 했던 분야와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벨기에에 선보인 현대 국악

본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바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제문화교류 기획프로젝트 지원'이었다. 파견 인력에게 프로젝트 기획부터 사업 운영까지 전체 사업을 운영할 기회가 주어지고, 거기에 기금까지 지원된다. 물론 센터와 문화원의 사전 검토를 통해 타당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선정되어 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기회임은 분명했다.

주벨기에 한국문화원은 2013년 11월에 문을 연 신생 문화원이었다. 새로운 공간이기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했지만, 한편으로 아직 많은 공연이 소개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소 실험적인 공연을 선보였을 때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심스러웠다. 특히 국악 공연의 경우 한국에서부터 주로 맡았던 공연이 새로운 형식의 국악, 이른바 ‘현대 국악’이었고, 이를 소개하기에는 아직 전통 공연도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단계라는 점이 걱정되었다. 일반 공연장이 아닌 문화원이라는 공간이었기에 이런저런 더 많은 고민이 들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기획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 앞서 문화원에서 해당 장르의 공연을 기획할 기회가 있었다. 2014년 11월 문화원에서 있었던 한국음악 듀오 ‘숨’의 공연이 바로 그것인데, 한국에서 일하면서 구축했던 숨 연주자들과 그들의 해외 에이전트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 투어의 소식을 접하고 추진했던 공연이다. 숨의 공연은 문화원에서는 개원 이래 처음으로 ‘현대 국악’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파견 후 첫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긴장과 걱정 그리고 설렘이 함께했던 공연으로 기억에 남는다.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보다 뜨거웠다. 예상했던 것보다 젊은 관객들이 많았고 공연 후 늦은 시간까지 남아 연주자들과의 오랜 대화를 나눴다.

현대 국악팀 정가악회의 유럽공연 프로젝트 기획







▲ 정가악회 렉처 콘서트와 콘서트
(사진제공: Seulgi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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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국악 팀의 공연을 국제문화교류 기획프로젝트로 계획하게 되었다. 정가악회를 선정했던 이유는 전통에 기반을 두면서도 단체만의 음악적 색깔을 가지고 오랜 기간 활동해온 단체라는 점이었다. 특히 국악의 서양화가 아닌 모던화를 지향하는 단체의 이념과 해외 공연은 물론 워크숍 및 교육 사업에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생각하고 있던 팀이기도 했다. 단체와의 논의를 통해 공연은 물론 렉처 콘서트, 워크숍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국악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벨기에 관객의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공연의 콘텐츠가 정해지고 다음 단계는 공간을 찾는 일이었다. 국제문화교류 기획프로젝트는 2014년 9월에 파견되어 11월에 교부신청을 하고 2015년 4월 내로 사업이 마감되어야 하는, 시간적인 면에서 너무나도 ‘비유럽적’인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다음 해 후반기 사업이 논의되고 있을 시점에서 상반기 프로그램을 제안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더욱이 당시 벨기에 문화 예산의 대폭 감소로 협력 기관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관 공연이 불가피했지만, 센터의 기금은 연주자 7명의 서울-브뤼셀 왕복 티켓과 세 가지 프로그램을 소화하기 위한 최소 1주일간의 숙박비를 해결하기에도 빠듯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문화원에서 본 프로젝트를 파견자의 개인 프로젝트가 아닌 문화원의 기획 프로그램으로 함께 진행될 수 있도록 하여 공연장 대관 및 아티스트 개런티 등 센터 기금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원의 지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기획 단계 막판에 ‘Muziekpublique’이라는 월드뮤직 전문 공연장을 발견하게 되었고 협력 사업 체결까지 맺게 되었다. 문화원과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 번도 교류가 없었던 기관이었고, 월드뮤직 공연장이지만 아직 한국 음악이 소개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문화원과 기관 모두 본 협력 사업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다. 공연은 정가악회의 창작곡들이 주를 이루는 1부와 전통 민요곡이 주를 이루는 2부로 구성되었다. 많은 관객들이 전통 민요는 물론 단체의 창작 작업을 높게 평가했고 준비한 음반이 모두 매진이 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렉처 콘서트 역시 앤트워프에 위치한 소로다(Sorodha) 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프로젝트를 브뤼셀만이 아닌 타 지역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플랑드르 지역으로의 한국 공연 사업을 확대하고자 했던 문화원의 목표에 부합할 수 있었다. 워크숍의 경우 문화원의 기존 프로그램인 ‘스쿨 비지트 프로그램’(국제학교 학생들을 문화원에 초청하여 한글, 국악, 요리 등 한국문화 체험프로그램 제공)과 연계시켜 보다 높은 수준의 특별 워크숍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참가자들의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를 높였다. 또한 주변국 주재 한국문화원에 협력 요청을 하여 프랑스, 헝가리 공연이 성사되면서 본 프로젝트를 벨기에를 넘어 유럽 투어로 확대시킬 수 있었다.

▲ 정가악회 공연 포스터
(사진출처: 주벨기에 한국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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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가악회와 필자(왼쪽)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대한 아쉬움

공연을 정리하면서 아쉬움으로 남았던 점은 관계자 및 언론을 대상으로 한 홍보의 성과가 낮았다는 점이다. 장르의 특성과 신생 문화원이라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본 사업의 9개월이라는 매우 짧은 파견 기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파견 후 프로젝트에 선정되고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은 약 3-4개월 정도가 되는데, 이 기간 동안 관계자 및 언론사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접한 파견 사업의 공모를 처음 봤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이 한 장르에서 3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기획자가 갑자기 하던 일을 그만두고 9개월간의 해외 문화원 근무를 위해 떠난 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스스로도 본 사업을 지원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파견은 된다고 하더라도 9개월 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1회 파견이 끝난 후 파견자, 문화원, 센터가 모두 동의할 경우 최대 1회 연장의 기회는 주어진다. 하지만 이 역시 충분한 기간이 아니라 생각된다. 물론 운영적인 면에서 사업 기간을 무작정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연장의 기회를 늘리는 등 파견 기간을 좀 더 늘릴 수 있다면 2차, 3차에는 더 완성된 수준의 기획프로젝트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음악페스티벌, 한국 아티스트 유럽에 소개하고파

'권역별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양성사업(NEXT)'의 파견자로 일하던 중 올해 초 문화원 행정원 채용에 지원하게 되었고, 지난 5월부터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전문가로 파견되었을 때부터 담당했던 국악 공연을 중심으로 한 공연 및 문화행사 기획,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단기적 계획으로는 올 가을 문화원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한국음악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국악은 물론 클래식에서 인디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한국 음악을 소개할 예정이다. 공연 단체의 선정 및 섭외 단계부터 직접 참여하는 프로젝트라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계획으로는 벨기에를 중심으로 유럽권의 다양한 문화 행사 참가와 리서치를 통해 인적 네트워킹은 물론 유럽권의 문화 예술 흐름을 파악하여 전문성을 기르고자 한다. 또한 한국 아티스트들 특히 젊은 국악 단체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벨기에는 물론 유럽에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사진_김미린 필자소개
김미린은 국악 이론을 전공하고 키네틱국악그룹 옌의 기획자로 일을 시작하여 단체의 공연 기획 및 해외 교류를 담당했다. 이후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과 아시안퍼시픽뮤직미팅의 해외팀에서 근무했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권역별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양성사업(NEXT)'의 파견자로 주벨기에 한국문화원에서 9개월의 파견 기간을 거쳐 현재는 공연/행사파트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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