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세이션> 전 도록

▲ <센세이션> 전 도록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현실의 빈곤이 영혼-예술의 풍요로움을 채워준다’는 범주에 놓고 예술가를 상상한다. 경제관념은 제로이되 가난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비사교적이며 괴팍한 인간이지만, 창조에 대한 재능만큼은 신으로부터 선물 받는 천재들로. 그렇기에 대중매체가 전하는 예술가들의 성공담을 접하게 되면, 천재적 재능과 오랜 고생 끝의 대가라고 당연하게 여기며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예술가라는 이름에 품은 일종의 환상, 매스컴이 포장해놓은 허상일 뿐이다. 과거에는 예술가에 대한 가치 판단을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예술의 순수성으로 재단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인 오늘날 현대 미술가들의 성공은 그들이 가진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으로 완성된다.(물론 모든 성공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 형편없다고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단, 이 글에서는 단순히 그들이 예술성만으로 성공한 작가가 되지 않았음을 밝히고자 한다.)


스타 작가들의 비즈니스 전략

‘성공’ 혹은 ‘스타’라고 칭해지는 작가들을 둘러싼 배경을 살펴보면, 그들에게 자본과 관계된 문제만큼은 매우 중요했다. 실제로 자기관리는 물론, 후원자들과 고객들을 상대로 능수능란한 비즈니스 전략을 펼쳤으며 예리한 사업 감각을 십분 발휘했다. 당연히 이런 사업가적 기질 뒤에는 막강한 부가 뒤따랐다. 현대에 와서는 미디어라는 강력한 무기가 주어지면서, 영리한 미술가들은 재화를 축적할 수 있는 지름길을 재빨리 눈치 챘고, 동시에 ‘명성’ 또한 거머쥘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해 시장경제의 논리에서 예술가는 생산자이지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미술시장에 공급하는 유일한 생산자라는 순수 독점적 지위를 일찌감치 알아챘으며, 이러한 특수성을 대중에게 확실히 어필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적당한 타이밍에 활용했던 것이다.

물론 예술가의 명석한 두뇌만으로 성공이라는 단어를 등에 업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공정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미술관, 미술비평가나 큐레이터 등의 미술전문가들, 아트 비엔날레, 아트페어, 경매사, 갤러리, 컬렉터 심지어 저널까지 미술계를 움직이는 구성원들 모두가 공모자로 참여하곤 했다. 이들은 경매나 갤러리에서 작품가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개미 투자자들이 아직 검증조차 되지 않은 젊은 작가의 작품을 사도록 부추겼다. 즉, 작가들의 성공 이면에는 메이저 화랑과의 전속계약, 글로벌 비엔날레나 아트페어 참가, 작품가의 상승 행진, 공공미술관 컬렉션 진입, 미술전문가들의 주목, 대중매체의 호평이 패키지로 주어지는 문화산업의 시스템이 작동해왔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다 보니, 이제 미술품의 가치는 그것이 지닌 미적 우수성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얼마에 팔렸다는 화폐가치, 유명세, 미디어 친화력과 같은 문화 산업의 시스템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오늘날 예술이 아트페어나 경매에 의해 주도되고, 마켓 프로모션이나 블루칩 같은 주식시장의 용어로 표명되는 이유도 그러한 탓이다. 이제는 작품의 우수성을 가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예술성 없이도 충분히 그 지위를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5 베니스비엔날레 전경(좌)과 아트바젤 외관(우)

▲ 2015 베니스비엔날레 전경(좌)과 아트바젤 외관(우)


미술시장의 스타시스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세상에 알린 <센세이션>전을 두고 일어난 일련의 과정만 봐도 미술계의 구성원들이 스타 작가를 배출하기 위해 어떤 공모를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영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둘씩 사들이며 후원한 영국의 광고회사 사장 찰스 사치의 컬렉션으로 구성된 1997년 <센세이션>전은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1999년 동일한 제목으로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는 당시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술관에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로 18만 명의 관객이 이 전시를 찾았던 것이다. 대중적 인기와 스캔들은 전시 이후에 열린 크리스티 미술품 경매로 이어지면서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이 높은 가격에 낙찰되는 쾌거를 얻게 했다.

그런데 이런 성공적 결과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는 컬렉터와 경매사, 작가, 미술관이 계획한 마케팅 전략이었던 것이다. 당시 뉴욕시의 시장이었던 루디 줄리아니는 브루클린 미술관과 크리스티의 내부 문건들을 증거로 내세우며 그들을 부당한 혐의로 고발했다. 뉴욕시 측은 미술관이 스폰서인 크리스티와 사전 협의해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침과 동시에 사치가 소장한 컬렉션의 가치에 거품을 불어넣는 모정의 사취가 있음을 의심하며, 브루클린 미술관이 이 전시 이후 시장에서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즉 스캔들을 일으킴으로써 시장에서 반사 이익을 얻는, 처음부터 계획된 시장 교란행위임을 주장했다. 이러한 논거에 크리스티 측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들은 1997년 <센세이션>전이 런던에서 처음 열릴 때부터 중요한 후원자였고 뉴욕에서의 <센세이션>전이 열리던 시기에 사치 컬렉션에 포함된 몇몇 작가의 작품을 11월에 열린 ‘가을 대규모 현대미술 경매’에 포함시켜, 130점을 270만 달러에 팔아치웠다. 즉 애초에 짜인 각본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보통 전시 하나를 기획하는 데 대략 18만 달러가 소요되는 데 반해, 뉴욕에서의 <센세이션>전은 160만 달러의 예산으로 꾸려지는 비정상적으로 과도한 자본이 투입되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 거대한 액수의 조달을 위해 브루클린 미술관은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갤러리들을 대신 홍보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 대가로 각 갤러리로부터 1만 달러를 지급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금액은 전시 이후 갤러리들이 우선 판매권으로 얻게 될 이익에 대한 보증금 성격이었던 것이다. 또한 크리스티는 5만 달러를 후원한 덕에 가을 현대미술 경매에 사적으로 방문한 우량 고객들에게 전시 출품 작가들의 다른 작품을 권하는 데 이 전시를 이용했다. 16만 달러를 이 전시에 직접 전달한 찰스 사치는 이후 큰 광고 수익을 얻게 되었다. 고흐와 같이 화폐 가치가 미술시장에서 충분히 입증된 작가가 아닌, 미적으로나 시장적으로 아무것도 증명된 바 없는 새파랗게 젊은 작가를 프로모션하기 위해, 미술품 가격의 투명성을 재고하는 가장 유력한 사회적 기제인 유명 경매회사가 미술관과 컬렉터, 미술전문가, 언론과 협력해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것은 말 그대로 히트를 쳤던 것이다.


스타 탄생, 미술상의 권위와 미디어의 합작품

yBa로 대변되는 영국의 현대미술가들이 9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아트신을 뜨겁게 달구게 된 데에는 테이트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터너 프라이즈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1984년에 시작된 이 미술상은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있어 여러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현재 막강한 파워를 지닌 큐레이터, 평론가, 미술관 디렉터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4명의 후보 작가를 선정하고, 최종 수상자가 결정되기 전까지 그들의 신작을 3개월 동안 테이트브리튼에서 전시해 연말에 수상자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금은 총 4만 파운드(한화 약 7천만 원으로, 최종 수상자에게는 2만5천 파운드가, 다른 3명의 후보에게는 각 5천 파운드가 지급된다)로, 고가의 현대미술품 가격에 비하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터너 프라이즈의 수상자뿐 아니라 후보자라는 명성은 작품가 상승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 부가가치는 상당히 크다. 게다가 1991년부터 2003년까지 주요 지상파 방송인 ‘채널4’가 후원사로 합류하면서 예술가들이 슈트와 드레스를 입고 유명 팝스타들과 어울리며 시상을 기다리는 모습이 영국 전역에 생중계되는 대중성마저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작가들은 테이트라는 미술관과 터너상이라는 권위, 미디어의 포장에 의한 흥행이 어우러진 ‘미디어이벤트’ 속에서 터너프라이즈의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 명성과 부를 모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술가와 미술작품을 시장 가치로 평가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장치인 미술상에는 사회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효과적인 선택 체계가 작동한다. 예술가와 비평가, 기획자, 후원자 등을 한자리에 모아 소통의 장을 만들어 상호 호혜적인 거래가 일어날 수 있게 하고, 수상 작가들뿐만 아니라 미술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상의 주최 측, 기업을 포함한 후원자들에게 외적 권외와 제도적 인정을 부가해주는 것이다.

서정임 필자소개
서정임은 대학 시절 전시 기획을 하는 큐레이터를 꿈꾸다, 미술을 읽고 논하는 일이 좋아 미술기자 일을 시작했다. 미술전문지 《퍼블릭아트》와 경향 《아티클》에서 약 9년간 수석기자로 활동하며 책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현재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웹진 《weekly@예술경영》 에디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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