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 빈 손짓에 슬퍼지면 /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산울림의 <청춘> 중)
‘젊음’에 대해 이야기해본지 오래다. 이 낡은 단어는 청소년기 교과서 속 <청춘예찬>(민태원)이나 사춘기를 동반하거나 사랑에 상처 받는 청춘들의 이야기, 혹은 신나거나 아주 침울한 대중가요를 떠올리게 한다.『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가 청춘의 심금을 울리고 산울림의 <청춘>은 왜 그리 음울했던지, 또 롤러스케이트장이나 고고장의 젊은이들이 고래를 잡으러 동해로 떠난 까닭은 또 무엇인지(배창호의 <고래사냥>).
그런데 ‘젊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꼭 ‘젊은이’에 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젊음과 젊음을 마치 양파껍질처럼 차근차근 감싸가는 늙음 또는 성숙들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젊음의 과정에 드러나는 것은 말 그대로 지나온 회색의 노스탤지어나 또는 빛나는 이야기일 수도 또 어떤 예기치 않은 이미지일 수도 있다.
수많은 ‘젊음들’의 닮은 꼴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젊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까? 젊음은 인생의 종착지를 향해가는 길의 어느 지점에 불과한가? 결국은 비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에 던져진 주사위처럼 되돌릴 수 없는 비장의 카드일까? 죽음을 향해 항해하는 노화의 과정에 몸을 맡긴 순간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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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꿈과 희망과 건강과 미래와 인접해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젊음은 또 얼마나 허황되고 허무하고 허약한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나 도스도옙스키의 ‘지하생활자’나 다락방이나 옥탑방의 젊은 시인이나 철학자들, 모두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향한 강한 열정 속에 있기도 하다.
젊음의 양가성(ambivalence), 이 이중의 뉘앙스를 지나면, 젊음의 담론은 젊음과는 무관한 소리들, 소란들, 관념들의 잔치가 된다. 이러한 젊음을 둘러싼 관행적인 담론들 중에서 젊음의 정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마치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닌 그리하여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무슨 의약품 광고처럼 들린다. 허구적인 젊음의 이미지, 유사젊음(pseudo-youth)들로 가득한 것이 또 현실이기도 하다.
20세기를 지나며 살아남은 가장 생명력이 질긴 또 가장 성공적인 이데올로기는 ‘젊음 이데올로기’이다. ‘젊음 이데올로기’만큼 성공한 또 다른 이데올로기는 아마도 ‘청결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이들 이데올로기들은 일종의 가족유사성을 보여주며 청결한 젊음, 건전한 젊음의 모습으로 동반하곤 한다.
인류학에서는 인간을 하나의 생물 종으로 여기어 인간의 문화를 연구한다. 이 입장에서는 대체로 젊은 예술에 대한 물음은 생물학적 젊음이라는 관념과 이웃한 관념들이 나열되기 마련이다. 이 유사논리와 유사개념이 우리 시대의 젊음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조력자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후기 자본주의시대의 첨단 산업은 전자정보산업만이 아니라 바로 ‘젊음산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반면 미학과 예술학은 인간을 일반 생물과는 뭔가 다른 특수한 존재, 즉 일종의 신적인 존재로 격상시켜 그 문화예술적 창조의 비밀을 탐구한다.
밀레니엄을 전후로 한국사회는 이런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얽히고 상호삼투하면서, 예술계는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중무장한 재기발랄의 젊음을 모색한다. 이 젊음에 대한 열렬한 구애는 청년예술가 또는 신예예술가들의 발굴과 지원과 그들의 놀라운 예술적 성공이 곧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높이 올려놓을 것이라 상상한다. 그리고 젊음과 예술의 만남이란 이 놀랍도록 성공적인 기획이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을 가리지 않고 외연을 확장하였다. 미술계 또한 국공립미술관들은 물론 많은 기업 미술관들이 또 개인 갤러리들이 젊은 미술가들을 찾는 대열에 합류하였고, 이 젊음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21세기 황금광 시대의 아이디어는 현재까지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젊음과 청춘을 독려하는 사회다.
그런데 젊음은, 또 젊은 예술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오리무중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늙은 예술이 있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그럼 늙은 예술은 또 무엇인가? 다른 사회보다도 더욱 드라마틱한 시기를 가로지르는 우리의 롤러코스터식 인생을 주위의 ‘젊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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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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