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면서 작가들의 창작 여건은 더욱 어려워졌고 이를 개선하고 극복하기 위해 창작지원 관련 정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 예로 1997년 광주시 중외공원내의 ‘팔각정 스튜디오’와 문화예술진흥원의 논산, 강화 창작스튜디오 개소 등을 시작으로 여러 유휴공간들을 이용한 창작공간들이 생겨났다. 이무렵 작업실 또는 화실이라 부르던 미술가들의 작업공간을 ‘창작스튜디오’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9년, 현재의 미술창작스튜디오는 창작공간지원 중심에서 벗어나 국제교류 프로그램, 오픈스튜디오, 학술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중무장한 채 작가들의 창작활동에 지원사격을 하며 작가, 평론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지역주민 등과의 징검다리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고양, 창동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스튜디오, 청주시립도서관의 청주스튜디오, 서울시 관리공단의 청계창작스튜디오 등이 이에 속하며 새롭게 구성되는 경기도미술관의 경기창작센터와 서울문화재단의 아트팩토리 사업이 한창 준비 중이며 전국 10여 개 이상의 국공립스튜디오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들이 활발히 운영 중이다. 한편, 각 스튜디오별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기능의 차별성, 국제화를 위한 네트워크 모색 등 중장기적인 계획 수립과 실천 등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각 창작스튜디오들이 비슷한 설립취지와 기대치(①예술가들에게 안정된 창작공간을 제공, ②지역주민의 문화향수 기회증대, ③낙후된 지역의 문화적 재생) 탓에 각 스튜디오별 프로그램 특성화 사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또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대한 설립기관의 인식 부족으로 인해 창작스튜디오 본연의 기능이 무엇인지, 해당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들의 창작활동에 무게를 둘 것인지, 지역 내의 문화시설로서 문화향수 제공에 무게를 더 둘 것인지 등의 문제 앞에서 두세 마리의 토끼를 쫒아야 하는 것이, 현재 대부분의 창작스튜디오가 가지고 있는 현실이다.
대부분의 창작스튜디오 사업은 1년 단위 예산의 구성과 집행으로 사업관련 평가가 정해지며 이에 따른 심리적 조급성 때문에 지원의 결과가 창작의 주기에서 한참 벗어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과 비엔날레 등의 행사를 통해 외국작가들의 국내 유입으로 자연스레 해외 주요 레지던스 프로그램 정보들이 넘쳐나 각 창작스튜디오마다 ‘국내외 교류 확대’, ‘국제교류의 거점’ 등을 목표로 설정했으나 관련 인력과 예산 및 노하우 부족 등을 이유로 ‘기획(안)’만 맴도는 현실이다.(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러한 비생산적 환경 아래, 새로운 미술 창작스튜디오가 생겨나도 지역성과 문화적 정체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아무런 여과나 비판 없이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라 조성목적과 시설운영계획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만 우선적으로 짓고 보자” 식으로 시설 조성사업만이 선행됨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게다가 결재권을 갖는 설립기관 해당부서의 담당자들의 잦은 이동으로 인해 사업의 연속성에 지장을 초래한다. 이는 다시금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기능에 관한 인식부족을 만들어 앞서 언급한 일들이 되풀이 되는 현상을 만들게 된다.
창작스튜디오 사업은 그동안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피상적인 논리에 입각해서 추진되어왔다. 창작지원 사업을 바르게 정의하고 그것이 작가지원에서 나아가 한국현대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루어진 적이 없다. 따라서 창작지원 방안이라고 할지라도 기존에 전개해온 관행적인 지원 사업의 수적 증대를 지향하는 수준보다는, 한국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구조를 진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따라 하기 식이 아닌 왜 필요한지 스스로 자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창작지원 사업을 수적 규모로 기관의 위신을 높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비전과 중장기적인 전략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인식의 재정립과 전문 인력 조직 구성, 예산 조성과 지출 방법 등을 다양하게 모색하여야 하고 계획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에 대한 중장기적인 비전과 실현가능한 단계별 전략 목표를 향해 전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
필자소개
심규환은 호주 RMIT Univ.에서 미술학 전공 학사 및 석사를 마쳤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프로그램매니저로 2004년부터 재직 중이다. 다양한 현장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서울, 인천, 경기 등 국내 주요 도시의 공사립 창작스튜디오 관련 사업에 자문 역할을 담당하며 한국형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새로운 변화를 목표로 활동 중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40주년기념 스튜디오특별전《공통경계》및 국제레지던스 업무 등 다양한 연계활동을 펼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