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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가 말하는 뮤지컬 투자
2022 뮤지컬국제마켓 현장 스케치
‘K-뮤지컬 국제마켓’의 마지막 날인 지난 6월 23일, 세종문화회관 스퀘어홀에서 ‘투자자가 말하는 뮤지컬 투자’에 대한 좌담회가 열렸다.
뮤지컬 투자에 관심 있는 80여 명의 참석자들과 함께 ㈜펀더풀 윤성욱 대표가 회의 진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공연을 사랑하는 투자자로 손꼽히는 유니온파트너스 허인선 수석심사역, 다올인베스트먼트 이승호 전무, 일신창업투자 최지현 전무, 그리고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의 진솔한 이야기가 90분간 이어졌다. 본 고에서는 좌담회에 참여한 다섯 분의 투자자의 의견과 이야기를 정리하여 재구성해 보았다.
유니온파트너스 허인선 수석심사역
2020년~2021년 중 모태펀드 투자 현황은 공연 분야 총 25건에 180억 원 정도이다. 이는 뮤지컬 시장(약 3천억 원 추산) 대비 6% 수준으로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다수의 제작사가 정부 등 공공지원 사업의 지원금, 기업보증을 통한 융자, 티켓 플랫폼 사업자들의 선지급 등을 통해 제작비를 조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모태펀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중소벤처, 특허청 등 정부기관에서 책정한 예산을 한국벤처투자에서 관리·운용하는 구조이다. 2021년 모태펀드 자펀드 전체 결성 규모 약 4조 원 중 문화계정 결성금액은 2,150억 원이었다. 또한, 2021년 말 기준 벤처투자사(VC) 210개 중 최근 5년 간 문화계정 자펀드 운용사는 32개 사에 불과하다. 이 중 뮤지컬 투자가 가능한 공연펀드, 모험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운용사는 10개로 전체 투자사(VC)의 약 4.7%밖에 되지 않는다.
투자사(VC)에서 뮤지컬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뮤지컬 투자에 대한 명암이 극명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투자의 긍정적 요소로는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있다. 장르 특성상 다회(N차) 관람 비중이 높고, 장르·배우·제작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안정적 관객 수급이 가능한 독특한 장르이며, 수익성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작품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면(흥행 궤도에 올라서면) 외부환경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수익률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제작사는 출연 배우의 변화, 연출 변화 등으로 지속적으로 기존 관객과 신규 관객에 대한 유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반면, 뮤지컬 투자의 부정적 요소로는 영세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을 들 수 있다. 플랫폼 사업자, 대기업으로부터 제작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소수 제작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제작사가 규모가 작고, 영세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뮤지컬은 자금 조달 실패, 흥행 실패 시 기업의 존속이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공연의 특성상 작품(라인업)의 다양화 등의 방식으로 투자자산 보호(리스크 헷지, risk hedge)가 불가능하게 된다. 또한, 현재 ‘공연예술통합 전산망(KOPIS)’이 공연시장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나, 티켓 매출을 제외한 부가상품(MD), 2차 창작, 로열티 등 부가수익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뮤지컬 투자에 있어 확인 사항(체크 포인트, Check point)는 다음 5가지 정도이다.
▪ 투자 유치 목적이 분명한가
▪ 제작사의 재무 상태가 양호한가
▪ 예상 수익률 달성 실패 시 만회할 만한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가
▪ 지속적으로 IP개발이 가능한 시스템이 있는가
▪ 향후 IP사업으로 수익 가능성(업사이드 포텐셜, Upside Potential)을 기대할 수 있는가
사실 한국 뮤지컬산업의 특성상 오픈런(open run)은 극소수이다. 정해진 공연 기간과 객석 수에 대해 투자자는 수익률을 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앞으로 뮤지컬 투자의 과제는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재원 확대를 통한 산업 활성화이다. 2014년 뮤지컬 전용 펀드 결성 이후에 뮤지컬 투자는 지속해서 확대되었으나, 시장규모 대비한 재원이 제한적이며, 투자사(VC) 투자금 비중이 낮다. 때문에 초기 단계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독려가 필요하다. 둘째, 기관 간 연결을 통해 콘텐츠 흥행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정보 데이터들이 산재해있어 투자 판단을 내리는 근거가 부족하다. 때문에, 지원 사업 선정 대상과 투자사를 연결하고, 콘텐츠 가치 평가 데이터 및 프로젝트 데이터 공개 등의 정보 정리가 필요하다. 셋째,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방법이다. K-POP 아이돌의 해외 투어 투자 사례처럼 해외 진출 뮤지컬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여 제한된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 모색이 필요하다.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 일신창업투자 최지현 전무
뮤지컬산업은 매우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이다. 뮤지컬 프로듀서와 투자 파트너사가 처음 만나고 서로 신뢰를 얻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뮤지컬 프로듀서는 작품, 그리고 작품의 비전과 경쟁력으로 끊임없이 투자자를 설득하고,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수익을 예측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어쩌다 갑작스레 투자한 작품보다는 신뢰가 쌓인 제작사의 작품에 투자하려는 마음이 있다. 서로 거짓말하지 않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고 윈-윈(win-win) 하려는 파트너십이 생겨야 한다.
다올인베스트먼트 이승호 전무, 일신창업투자 최지현 전무
투자자들은 당연히 수익을 기대하고, 리스크(risk)를 우려한다. 뮤지컬 작품 투자에 리스크는 두 가지 정도로 구분된다. 첫째는 정산 리스크이다. 영화에서는 정산 주체가 CJ, 롯데 등 대기업이라 정산 리스크가 거의 없는 편이다. 반면, 공연 분야는 (영화에 비해) 중소규모의 제작사가 직접 정산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하고, 흥행에도 불구하고 간혹 악의적으로 정산을 안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금융기관 투자자들은 이런 경우 가장 큰 부담을 느낀다. 둘째, 약속된 공연을 못 올리게 되는 ‘딜리버리 리스크(delivery risk)’이다. 코로나19 등 특수한 상황에서는 공연 취소의 경우도 왕왕 발생했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자금 조달을 못하여 공연 자체를 못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제작사의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두 가지 리스크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정산 리스크와 관련하여 투자 정산은 손실도 받아들일 수 있다. 100중에 50의 수익이 났으면, 50에 대해서만 정산하면 된다. 딜러버리 리스크 관련 공연 예산 100 중에 80을 구하고도 20을 마련하지 못해 공연을 못 올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할 경우, 다음 작품부터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진행자 : 펀더풀 윤성욱 대표)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
뮤지컬산업이 확장되고 있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오던 방식들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그중의 하나가 뮤지컬 프로듀서(PD)의 역할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와 프로덕션 프로듀서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뮤지컬 프로덕션 프로듀서란 작품의 기획과 제작뿐만 아니라 법적인 문제, 자금 조달(펀드레이징) 등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절대로 예술적인 부분만을(아티스트적 마인드)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100% 펀드레이징 되어야 공연을 할 수 있다. 반면, 현재 한국은 10%만 있어도 공연이 가능한 구조이다. 그러다 보니 딜리버리 리스크가 생기는 것이다. 프로듀서는 자금 조달(펀드레이징)까지 책임져야 하며, 만약 100% 달성이 안 되었을 때는 공연을 시작하면 안 된다.
유니온파트너스 허인선 수석심사역,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
모태펀드의 주목적 의무 투자 대상은 창작 뮤지컬로 한정하고 있다. 물론 주목적 투자가 아니어도 투자할 수는 있지만, 투자사에서 현실적으로 그 밖의 투자를 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창작 뮤지컬’의 정의가 작곡·작사 등 국내 창작 작품으로 콘텐츠 저작권(IP, Intellectual Property)이 국내에 있어야 하고, 한국인 배우와 기술인력(기술 스태프)이 참여하는 작품으로 정의되고 있다.
만약, 오디컴퍼니처럼 한국 기획 제작사가 미국에서 공연할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프로듀서는 한국인이지만 해외 작곡가와 해외 스태프가 참여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작품은 국내 창작 뮤지컬인가 아닌가? 또,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의 경우에도 저작권료(로열티, royalty) 10~15% 지급을 제외하고, 공연권을 획득하고 모두 국내 한국 인력이 참여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드라마나 영화 등도 90년대 중반에 일본 드라마 열풍이 있었다. 외국 원작이라 하더라도 IP를 사서 국내에서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면서 작품이나 관객 수준이 높아졌다. 약 5~7년 전쯤, CJ, 롯데 등 대기업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에는 투자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업계의 오랜 요구로 인해 투자가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뮤지컬도 비슷한 상황일 수 있다. 시대 변화에 맞추어 이제는 ‘창작 뮤지컬’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모태펀드 투자에 있어서도 정부기관의 보다 열린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니온파트너스 허인선 수석심사역, 다올인베스트먼트 이승호 전무, 일신창업투자 최지현 전무
투자자들도 안정적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공연·뮤지컬에 투자하는 것에 부담이 있다. 일반적 상황에선 콘텐츠 분야에서만 봐도 드라마, 영화, 대중음악 콘서트에 투자하면 더 큰 수익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뮤지컬 투자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년 동안 드라마, 영화, 대중음악, 게임 등이 산업적으로 성장했다. 이런 분야 중에 아직 성장하지 않고 있는 산업은 공연, 뮤지컬로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공연시장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이 분야들도 산업적인 성장이 가능성이 충분해지고 있다. 즉 잠재력 있는 시장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작품 하나가 성공하면 생명력이 길지 않다. 반면 뮤지컬은 한번 성공하면 이후 매해 공연될 가능성, 즉 지속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큰 편이다. 즉 고위험 고수익(high-risk, high-return) 이기는 하지만 투자 대상으로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는 다른 산업에 비교해 볼 때 좋은 성공사례를 가진 기업(기획 제작사)가 아직은 없다고 본다.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꿈꾸게 하는 파트너, 좋은 투자 성공사례를 만들어갈 파트너가 되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소비자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애호가(마니아, mania), 얼리어답터(Early-adopter) 시장이 중요하다. 이들은 보통 전체 시장의 5~15% 정도이지만 이들을 얼마나 만족시키느냐가 고객 확산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은 애호가(마니아, mania)가 형성되어 있다. 장점과 잠재력이 있는 시장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작품의 완성도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뮤지컬 작품을 개발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투자를 받는 것이 어려운 구조이다. ‘투자’의 취지상 한국에서도 투자 받는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 외에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정부 지원이 늘어나면서 작품 개발 과정의 어려움을 해소할 길이 확장되고 있다. ‘K-뮤지컬 국제마켓’도 그러한 취지로 개최된 행사이다.
공연 장르에서 보면 뮤지컬이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지만, 전반적으로 공연·뮤지컬 투자가 가능한 펀드 자금 규모, 운용하는 투자사(VC) 숫자 등이 적다. 때문에 여러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좌담회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뮤지컬을 그저 ‘수익률 뽑는 투자처’로만 보고 있지 않은 점이다. 뮤지컬 기획 제작사 못지않게 뮤지컬 투자자들도 인생의 일부를 뮤지컬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성적 수치적 판단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애정과 관심이 존재한다.
투자자가 말하는 뮤지컬 투자란, 뮤지컬 산업의 성장, 뮤지컬 기획 제작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해 투자사도 함께 좋은 투자 사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머지않은 날에 모두가 동의하는 좋은 투자협력 사례가 성사되길 바란다. 그리고 ‘K-뮤지컬 국제마켓’에서 이러한 논의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