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예술 현장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예술단체의 자립′이 갖는 의미, 방법론적 한계, 그 흐름과 대안을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올해 ‘예술경영 컨퍼런스’의 가장 큰 수확이다.

작년엔 재원조성, 조직경영, 인적자원, 홍보마케팅 4가지 분야를 통해 경쟁을 펼쳤지만, 올해엔 4가지 분야 중 인적자원과 홍보마케팅만 ′사업기획 및 수행′이란 묶음 항목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9개 단체의 발표내용은 거의 ′사업기획 및 수행′이란 분야에만 쏠렸다. 최종 심사평을 맡았던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올해는 응모자가 더 많았다면서도 이날 발표한 7개팀이 ′사업기획 및 수행′ 분야로 치우친 것이 조금 아쉽다고 평할 정도였다.

′공유와 이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문화예술분야에서 동반 성장하기를 바라는 수림문화재단의 후원이 일단 올해와 내년으로 이어진 것이 행사의 격을 조금 더 높였다. 100만 원에서 대폭 늘어난 500만 원의 상금, 수상팀이 2팀에서 3팀으로 늘어나는 등 규모도 커졌다. 현장에서 심사위원과 관객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3팀은 극단 하땅세가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상을, 인천문화재단이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상을, 사단법인 문화프로덕션 도모가 가장 큰 상인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전문예술단체인 ‘방타 타악기 앙상블’의 축하공연
▲전문예술단체인 ‘방타 타악기 앙상블’의 축하공연
▲(사)문화프로덕션도모의 ‘우물 안 마케팅’ ▲▲(재)인천문화재단의 ‘시민을 부탁해!’ ▲▲▲극단 하땅세의 ‘우리의 복지는 배우 훈련과 땅콩집’
▲(사)문화프로덕션도모의 ‘우물 안 마케팅’
▲▲(재)인천문화재단의 ‘시민을 부탁해!’
▲▲▲극단 하땅세의 ‘우리의 복지는 배우 훈련과 땅콩집’

문화예술 분야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베이징 798예술구, 인천아트플랫폼, 금천예술공장, 밀양 연극인촌처럼 다양한 집단창작공간에 대한 관심이 이날 컨퍼런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첫 발표를 맡았던 극단 하땅세는 전면에 내세운 땅콩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안정적으로 교육과 생활이 이뤄질 수 있는 하드웨어적 복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발표하였다.

최근 팟캐스트 ‘아트라디오’로 다양한 쟁점을 여과 없이 던져주던 사단법인 두들쟁이 타래는 누구나 인식은 하지만 관념화한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네 가지 질문과 대답을 들고 나왔다. 예술로 먹고 살수는 없을까? 로 시작된 질문은 지원금과 예술적 자존감 사이에 방황하면서 자립의 길을 모색하는 ′우리를 어떻게 알리고 지지하게 할까?′로 마무리 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깔끔하게 보여줬다.

작년에 이미 상을 받은 경험 덕인지 유창한 진행으로 사단법인 문화프로덕션 도모는 로칼리즘을 내세웠다. 이른바 ′우물 안 마케팅′. 경영전략수업의 가장 기본인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 분석을 통해 춘천이란 지역 기반을 활용하는 사례를 보여줬다. 춘천의 대학교, 병원, 공동체와의 네트워킹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소비, 생산자 협동조합이 선순환 구조 속에 녹아드는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창조적 파괴′로 도구화했던 문화예술교육 더베프처럼 결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단법인 와우책문화예술센터는 2012년 ‘어린이와우북페스티벌’을 시작했다. 관건은 재원. ′100인의 와友 벗′ 후원모집 캠페인을 통해 105명의 유료회원을 확보한 과정을 발표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로 확보한 기득권이 잘 녹아들었다.

일상생활에서 춤의 다양한 장면을 포착한 사진집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인의 인식이 점점 변화를 겪고 있다는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사단법인 트러스트무용단의 내세우는 커뮤니티 댄스는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에 걸맞게 흐름을 잘 타고 있었다.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수평적으로 나열되던 여러 분야의 경계가 사라진 작업물이 매년 늘어나고 있고, 상하관계로 얽혀있던 기관과 민간단체의 업무 영역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이날 마지막 발표한 지역문화재단 세 팀도 예외일 순 없었다.

아삭(ASAC)이란 기획프로그램의 브랜드화를 시도하고 있는 안산문화재단은 ′공모와 제작′, 그리고 이를 벌일 ′판′이란 세 가지 분야의 사례를 발표했다. ′염전이야기′가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지역 기관과 연계 및 염전 워크숍이 열렸고, 천일염 업체들을 후원하는 관객들이 생겨났다. ‘인접한 도시에서도 이런 성과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며 발표자는 한껏 고무된 음성이었다.

이날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팀은 인천문화재단이었다. 임팩트 있는 실제 사례들이 화면에 깔리는 가운데 쉬운 대화체로 발표를 이어갔다. 문제의식의 제기가 유연하게 이뤄졌다는 것이 우선 돋보였다. 비영리 공공기관의 특성상 단회성 프로젝트가 다수를 이루는 환경에서 지속성과 대등한 파트너십, 자발성을 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소금꽃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예술계의 문화적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 방법이 소개된 것이라든지, 지역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는 마을문화계획하기, 청년플러스 등의 사례를 발표하였다. 의미있는 질문이 심사위원석에 나왔는데, 지자체가 출연한 기관임에도 이런 유연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 의문이라는 물음에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예산 삭감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면서 이제 공공기관의 유연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컨텐츠 자체의 힘만을 놓고 본다면 마지막에 발표를 이어간 전주문화재단의 ′지역 문화자원에 브랜드를 입히다′가 좀 더 주목을 받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들었다. 올해 전라북도가 추진한 한옥 자원을 활용한 공연 사업은 서울 중심의 문화예술행정에 비켜나서 그렇지 올 한 해 공공기관에서 추진한 가장 돋보인 문화예술정책이 아닐까 싶은데, 이날 사례 발표에서 소개된 전주마당창극 ′천하맹인 눈을 뜬다′는 전라북도에서 선정한 7개의 한옥 자원 활용공연 중 하나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다양한 자원이 있는 전주가 이제껏 문화예술에서 메인으로 전면에 나서지 못한 아킬레스건이 어디 있는지 잘 지적해주었다.


예술단체의 자립과 기부금

▲2013 예술경영 컨퍼런스에 참여한 전문예술법인·단체 ▲2013 예술경영 컨퍼런스에 참여한 전문예술법인·단체’

2006년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설립된 배경에는 2000년 1월에 개정하여 전문예술법인단체 지정 육성조항을 둔 문예진흥법이 있다. 2004년 이후 문예진흥기금이 적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2016년에는 문예진흥기금이 고갈된 우려가 있다는 진단이 올해 국회 국정감사 질의과정에서 나오기도 했었다. 지원금에 의존하는 대다수 예술단체들은 공공재원에도 수명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고육책으로 나온 것이 ′전문예술법인단체′라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스스로 알아서 기부금을 모집해 재원에 충당하라’는 것이다. 2013년 8월 기준으로 590개 단체가 지정되었는데, 서울 및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제도활용률이 높지 않다. 이 제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세제 혜택′이다. 지정 단체가 세금을 감면받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은데, 실제로는 이 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기업이나 개인이 얻는 세제 혜택을 말하는 것이다.

조성재원 구성에서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2011년에는 4.5%, 2013년에는 3.7%에 불과하다. 감소한다기보다는 그냥 통계 조사상의 오차범위 내에서 들쭉날쭉한 값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 수치는 전문예술법인지정을 받았다는 단체조차도 진정한 활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문화프로덕션 도모‘도 작년에 상을 받은 덕분에 가족친화형기업 1호로 인증되었다는 것처럼 예술법인지정 제도의 원래 뜻은 사라지고, 지원금 제도를 활용하는 자격으로만 이용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후원을 통해 상금액 규모를 늘리고 잘된 사례를 컨퍼런스를 통해 공유하겠다는 정재왈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의 발언 행간에는 전문예술법인단체 지정 제도가 하루빨리 기부금을 통한 재원 조성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숨어 있다. 심사위원 세 명 중 한 명이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초창기부터 열성적으로 활동해온 김성규 한미회계법인 대표라는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기부금 비중이 커져야 한다는 것은 문화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당연히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기부금을 활용해서 스스로 재원을 확보하려는 원칙에 충실한 사례 발표가 올해는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

예술에서 자립의 의미란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하는 것도 자립이지만, 협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연결점을 확보해 상호 보완하는 것도 자립의 범주에 속한다. 결국, ‘예술경영 컨퍼런스’는 단체의 현주소를 통해 우주공간처럼 허허한 문화예술계에서 제 궤도를 찾도록 도와주는 상대좌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본질과 표상 두 마리 토끼를 다잡는 ‘예술경영 컨퍼런스’를 기대한다.

관련기사 및 참고
[통계짚어보기]「2012 전문예술법인단체 백서」전문예술법인단체 운영현황 조사(2011년 기준)
<2013 예술경영 컨퍼런스> 자료집 (다운로드)

  • 유춘오
  • 필자소개

    유춘오는 국악을 매개삼아 전통이 현대에서 갖는 위상을 탐구하는 잡지 [라라]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전통과 우주처럼 이질적 분야를 연결하는 작업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태어난 기계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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