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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그 이후’가 가능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리뷰_한국미술 해외진출 전략 세미나 〈단색화, 그리고 그 이후〉지난 4월 27일(목),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한국미술 국제 담론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시 한번 단색화를 논의의 장(場)으로 불러왔다. 바로 한국미술 해외진출 전략 세미나인 〈단색화, 그리고 그 이후〉다. 한국미술의 해외진출, 그리고 이를 위한 담론화 프로젝트임을 고려하면, 이 지점에서 왜 다시 단색화를 호명한 것인지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있다. 현대 국제 미술시장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것이 단색화이며, 단색화를 뒤이어 그 열풍을 이어갈 또 다른 콘텐츠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색화가 시장에서 호가를 기록하며 해외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는’ 것과는 달리 이를 뒷받침해질 수 있는 담론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기에, 단색화로 촉발된 한국미술의 세계시장 진입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담론 확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첫 번째 토론에서 “단색화로 보는 한국미술 해외진출”이라는 주제로 단색화의 ‘현재’를 짚어본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라 본다. 심상용 동덕여자대학교 교수가 모더레이터를 맡고, ‘단색화’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며 단색화 관련 담론을 지속해서 생산해온 윤진섭 전 국제미술평론협회 부회장, 김찬동 전 경기문화재단 뮤지엄 본부장, 안미희 한국국제교류재단 KF글로벌센터 사업부장, 그리고 유진상 계원예술대학교 교수가 참여하여 단색화의 해외 진출은 물론 단색화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발언을 이어갔다.
단색화는 시장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이러한 풍요 속에서도 단색화와 관련된 담론은 여전히 빈곤하며, 존재하고 있는 담론마저도 한국의 정신성, 무위자연, 노자 사상 등 구체적인 논리를 상실한 채 70년대 만들어진 논리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안미희 한국국제교류재단 KF글로벌센터 사업부장의 말대로 단색화로 시작된 한국미술의 해외진출을 위한 생각과 태도, 전략이 필요하지만, 논의가 충분히 진행된 상황에서 국제화 된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촉발되어 역수입된 것은 지속성에 한계가 있기에 이론적, 비평적, 철학적 담론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김찬동 전 경기문화재단 뮤지엄 본부장의 언급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미술의 해외진출도 중요하지만, 예술은 K-POP이 아니지 않은가? 사실상 해외진출 모색을 위한 세미나 이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처럼 단색화를 둘러싼 담론 모색, 혹은 확장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안타까운 것은, 단색화와 관련된 이러한 논의가 최근에 생겨난 것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색화 용어를 둘러싼 논란은 처음 용어가 사용된 2000년 광주비엔날레와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윤진섭 전 국제미술평론협회 부회장이 기획한 《한국의 단색화》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단색화 담론의 부재와 관념적이고 애매한 비평 언어 또한 처음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던 것들이다. 단색화가 국제 미술시장에서 관심을 받으며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경매에서도 연일 호가를 기록하면서 담론적으로 지평을 확장시켜야 하는 타이밍에 시장적 가치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짚고 이를 공론화해야 하는 것은 단색화가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 ‘그 이후’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단색화의 문제를 인정하는 동시에 차후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두 번째 토론인 “한국미술 해외진출의 키워드”에서는 단색화에서 한 발 물러나, 현재 동시대 한국미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패널들을 모았다. 변홍철 그레이월 대표이자 2017 아트부산 아트 디렉터, 신보슬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장승연 아트인컬처 편집장, 정연두 작가, 정현 인하대학교 교수를 토론자로 초청해 모더레이터인 임근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의 진행 아래 토론을 이어갔는데, 한국미술의 ‘내일’을 위해 ‘오늘’의 현황은 무엇인지, 한국미술의 해외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각자의 활동 경험에서 나온 각론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이 각론들이 중요한 것은 귀납적인 방식을 통해 현재 한국미술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찾아 개선해나감으로써 보편성에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개인들의 경험치를 귀담아들을 수 있는 능력도, 시간도 너무 부족하다.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한국미술의 문제들은 이와 같은 환경에서는 풀 수 없는 ‘난제’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구 없는 난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문제에 접근하는 체질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들의 작은 몸짓들이 지닌 가치가 있다. 자율성, 자발성, 공동체 등의 개념이 앞으로 한국 미술의 해외진출 전략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정현 교수의 언급은 앞으로 한국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재고해보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전 토론 참여자들이 나와 박만우 플랫폼 L 관장의 진행 아래 종합토론 “한국미술 해외진출 전망과 향방: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어갔다. 총 12명의 인원이 90분이란 시간 동안 어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언급되는 문제는 바로 한국미술이 돌아가는 근간인 ‘제도’였다. 신보슬 토탈미술관 큐레이터가 현장에서 부딪히는 기금, 전시 행정 등 제도적인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로드쇼’ 등의 독립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기관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율적, 독립적으로 보다 창의적인 발상으로 활동을 모색할 때, 오히려 해외 큐레이터와 한국 작가들의 교류가 더 활발히 이뤄지고 결국 한국 작가의 해외 전시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은 더 이상 한국미술의 해외진출이 국가 주도, 관 주도의 일방향적인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중요하다. 그리고 지속해서 제도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개선을 끌어내야 하는 것도 바로 우리 모두의 몫일 테다. 늘 제도의 자장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불평불만을 토로하지만, 정작 제도를 만들어내는 자들은 현장의 목소리들이 담긴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도를 개선해나가기보다는 ‘행정을 위핸 행정’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현장성을 상실한 제도는 결코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없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이번 〈단색화, 그리고 그 이후〉 세미나를 주최하고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토론의 형식으로 듣고자 한 것도 보다 현실성 있는 제도 마련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 않을까 싶다. 그 노력이 공허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세미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하며, 다음 토론회에서는 실질적인 정책 입안자들도 참여하여 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방향의 토론이 진행되길 바라는 바다. 단색화 이후가 ‘포스트 단색화’니 ‘민중미술’이니 하는 것 이전에 근본적인 토대부터 뒤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장서윤은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월간 미술세계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늘 오독과 오역을 일삼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정확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기자’직에 적을 두고 있으며, 그런 아이러니마저 미술주변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