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호 특집으로 ‘문화이주’를 마련했다. 최근 늘어난 문화이주의 배경과 흐름을 살펴보고, 현재 수도권을 떠나 지역에서 공연·전시·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문화이주자들의 문화이주 동기와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연재순서 ① 문화이주의 배경과 흐름, ② 문화이주자들이 말하는 ‘문화이주’

예술가보다 사람으로서 먼저 살고자-충북 제천

장창_미술작가

내가 시골에서의 생활과 창작활동에 기대한 부분은 ‘도시로부터의 이탈’, ‘소비로부터의 이탈’, ‘작업실로부터의 이탈’ 이 세 가지를 통한 대안적 예술 활동과 노동시간의 최소화였다. 그러나 시골에서의 삶은 도시에서의 삶과는 다르게 모든 것에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했다. 삼시세끼 밥을 해먹는 일부터 겨울에는 땔감을 준비하고, 봄가을로는 채전을 가꿔야 했으며, 여름에는 뒤돌아서면 금방 무성해지는 잡초와 해충과 씨름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시골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일상과 신변잡기를 위한 지출과 그 지출을 위한 노동의 시간이 줄어들었고, 창작과 사유에 투자할 시간이 늘어갔다.

문화이주를 통해 무엇보다도 기대했던 부분은 보다 많은 사유와 작업 시간, 사소한 관계로 부터의 해방이었으나 정작 시골의 커뮤니티라는 것은 혼자만의 시간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마을 대소사의 참여와 공동의 일들, 마을사람들의 이목,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방문객들로 인해 이주 이전보다도 혼자만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일과 작업으로 진행 중인 커뮤니티 관련 프로젝트의 진행도 주민들과의 관계 문제로 인해 쉽지만은 않았다. 어디에나 있겠지만 지역의 텃세와 경계는 어지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 모든 문제와 스트레스의 근원은 마을과 나의 관계를 예술가와 거주민의 관계로 규정지으려 한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마을에 사는 예술가는 철저하게 먼저 주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 하는 주민. 예술가로서가 아닌 사람으로서 먼저 살아가려 노력하니 앞에서 말한 문제들은 차츰 내안에서 희석되어갔다.

장창 필자소개
장창은 경희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한국화,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작가생활과 함께 2011년 상업갤러리를 시작으로 경향아트(공공미술연구소 간사), Project Space LAB39(큐레이터), DMZ국제평화레지던시(사무국장) 등에서 연구, 기획, 실무 등의 현장경험을 쌓다 지난해 (사)예술과마을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lsquo;마을이야기학교_제천&rsquo; 문화농활레지던시> 입주를 계기로 농촌에서의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 춘천-강원 춘천

최정오_(사)문화강대국 대표

고등학교 때 읽었던 어느 문학가의 책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lsquo;춘천에는 한집 건너 한집 예술가가 산다&rsquo;고.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 탓도 있었겠지만, 당시 나는 이 한 문장을 읽고 어떠한 황홀경에 빠진 듯했다. 마치 영화 &lsquo;반지의 제왕&rsquo;에 등장하는 엘프들의 마을, 바로 그것이 눈앞에 펼쳐진 듯 말이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춘천 가는 버스를 탔을 때, 내 마음은 꿈을 꾸듯 즐거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한집 건너 한집 산다던 예술가들이 당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한 다섯 블록 지나야 한 명(?)이었다. 천부적 기질을 가졌고 오래전부터 양질의 문화를 접했을지 몰라도, 현업으로 예술직종에 계신 분들은 많지 않았다. 이유는 생활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먹고살기 힘들어서였다. 연동되는 부분이겠으나, 그런 이유로 젊은 층의 예술계 유입 또한 점점 줄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역은 늙어 있었고, 젊은 예술가는 서울로 이주하거나 겁을 먹고 있었다. 더 참담한 것은, 문화예술을 소비, 향유하는 계층이 일정 수준으로 정해져 있었고, 사람들은 지역에서 생산한 문화예술 공연에 냉담했다.

지역에 내려온 지 10여 년 동안 여러 젊은 예술인들을 발굴해내고, 지역 내에서 &lsquo;어디서도 보지 못할&rsquo; 브랜드 공연들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아직 현실의 얼음은 풀리지 않은 실정이다. 다른 지역의 사정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의 정체기지만, 수도에 대한 문화선입견은 대중들 사이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그럼에도 이곳에 온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도 처음의 마음은 별로 변한 바가 없다. 여러 예술가들과 예술을 감성적으로 향유하는 열린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이야기나, 공연하고 공감하고 박수치는 모습. 내가 늘 상상했던 그 모습이었다. 문화의 중심지가 꼭 중앙일 필요는 없고, 이 모든 것이 지역에서 가능한 곳을 찾는다면, 춘천이야말로 예술가의 도시, 문화의 도시로 적합한 곳이다.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춘천을 중심으로 하는 &lsquo;문화강대국&rsquo;이다.

최정오 필자소개
최정오는 서울 출신으로 영화, 뮤직비디오, 다원예술극 시나리오 및 총연출, 작사가로 활동해왔다. 문화예술의 수도권 편중이나 자본력에 의해 좌우되는 문화시장에 대응하고자 2002년 강원도 유일한 다원예술단체인 (사)문화강대국을 춘천에서 설립하였다. 수년간 순수 창작 브랜드 공연을 다수 제작해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는 등 생각과 계층, 지역의 벽을 허물며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메일

고립과 단절을 위해 찾아온 섬-제주도

김세운_재즈뮤지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재즈피아노를 공부하고 귀국을 했을 때, 고향인 서울로 가지 않고 제주도행을 택한 것이 10년 전이다. 제주도행의 가장 큰 고민지점은 강과 숲 그리고 공원들이 많은 자연적으로 풍요했던 곳에서 대도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굳이 도시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했다. 나한테 필요한 것은 도시라기보다 자연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가들에게는 동료가 있는 도시가 더 유리하기 마련인데 음악을 창조하는 작업을 하는 내게는 영감을 위한 사색을 할 수 있는 자연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lsquo;예술과 여행과 삶이 하나 되는 거주지&rsquo;를 꿈꾸었다. 물리적으로도 제주도는 바다 건너 있기 때문에 약간은 먼 여행을 나온 듯, 또는 약간은 세상과 동떨어져 고립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분주하지 않게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립과 단절을 찾아 섬으로 왔는데 이곳은 내가 하고 있는 재즈뿐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 공연의 공급과 수요가 매우 제한적이고 다양하지 못했다. 음악 매니아들을 위한 공연은 당연히 없었고, 행사위주의 관에서 주최하는 공연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오히려 음악은 내 삶에 배경 어디쯤으로 가 있었다. 그래서 예술적 자극을 얻기 위해 주기적으로 서울을 올라가 요즘 일어나는 공연과 영화 등 문화기행(?)을 하고 와야 했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나의 문화에 대한 갈급함 때문에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면서 보고 싶은 공연들을 보고, 아는 연주자들을 불러서 우리 집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이 지금 &lsquo;카페세바&rsquo;의 하우스콘서트다.

김세운 필자소개
이화여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김세운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카렐 보에리에게 재즈피아노를 사사했다. 그 후 제주도에 정착하여 작은 중산간 선흘마을에서 문화예술공간 &lsquo;카페세바&rsquo;를 열고 매달 재즈와 클래식 공연을 기획하여 새로운 공연문화를 주도해가고 있다. 현재, the trio SEA , DUOfor, 이종혁재즈밴드 등으로 활동하며 한라대에 출강 중이다.

목적은 없이, 다양하게 노는 공간-충북 괴산

양철모_탑골만화방 대표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lsquo;밀려남 현상&rsquo;은 주변부를 맴도는 예술가들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이상한 잡일들, 이상한 종류의 일들이 문화예술계 주변에 떠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몇몇 작가들과 함께 공동의 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공동 일에 대한 수익금으로 서로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협동조합의 중간 단계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주거, 작업실, 개인의 공간, 공동의 공간 여러 이야기들을 오가다가 공동의 작업실, 공동의 주거 이야기까지 여러 가지를 꿈꾸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공간을 얻기 위해서는 수도권을 벗어난 사람들 관심 밖의 어딘가에 있는 마을이었다. 결국 괴산의 한 폐가를 얻게 됐다. 우리는 시간도 많았고, 집수리 기술도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공간으로 점점 바뀌는 상상을 했고, 즐거운 놀이터 같은 공간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10년 동안 천천히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다 마을에 만화 책방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유는 우리 모두가 만화를 참 좋아했기 때문이다. 주변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만화를 택배로 보내기 시작했다. 현재 약 2천 권의 만화책이 서가에 가득하다. 하지만 만화방은 표면적인 즐거움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우리는 목적 없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 주변 예술인들과 함께 공간을 채우기로 했다. 만화책이 가득하지만 만화방이 목적은 아니었다. 여기서 풍부한 문화적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다양한 움직임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마을학교도 만들기로 했다. 마을학교에서는 가르치거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품앗이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갤러리도 만들기로 했다. 한 달에 한 점만 전시하는 사방 5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상자 전시 공간이 만들어졌다. 아직 완전한 이주가 아닌, 반쪽짜리 이주이지만(우리는 한 달에 보름 정도를 탑골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마을 삼거리에 작은 문화공동체가 만들어지길 희망하며, 다양하게 놀고(?) 있다.

*만화책이 모아질 때쯤 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2013 시민 문화예술교육 대상 확대 사업>을 통한 지원을 받았다. 10년의 계획이 2년으로 짧아졌다. 2013년 10월 <탑골만화방>오픈식을 마을주민들과 함께 성대하게 치를 예정이다.

양철모 필자소개
양철모는 그룹 믹스라이스(mixrice) 멤버로 작업 활동과 문화기획을 함께 하고 있다. 현재의 관심사는 공동체 미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과 활동 그리고 의심을 하고 있다. 현재 아트스페이스풀에서 만난 미술작가들과 함께 비영리민간단체 공공미술삼거리를 만들어 충북 괴산군 웅각면 탑골마을에 탑골만화방을 만들어 놀이터 삼아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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