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3 어린이문화원 개관준비 세미나가 ‘어린이에게 문화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렸다(사진제공_아시아문화개발원)
|
광주광역시에 규모가 큰 어린이문화원이 설립될 예정이다. 완공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이미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진행되면 좋을지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필자 또한 어린이들과 관계된 일을 오래 해온 터라 어린이문화원의 설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어린이는 몹시 까다롭고 만족시키기 힘든 고객이다. 어린이문화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될 예정이지만, 이미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서 겪어본 여러 사례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프로그램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동안 어린이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필자가 보았던 씁쓸한 사례들을 몇 가지 소개하려 한다.
어린이 문화예술교육에 가장 큰 걸림돌은 부모
방과 후 교실과 사교육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수많은 예술문화 프로그램들을 직접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프로그램 진행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부모님을 상대하는 일이라 한다. 예술문화 수업은 인지교육과는 다른 교육방향을 갖고 있으므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보고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방법을 체험해보는 기회이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구체적이고 수치화된 교육 결과를 눈으로 보고 싶어 한다. 미술교실의 한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니가 아이 작품을 들고 다시 교실로 들어오는 순간이 제일 괴롭다고 한다. 왜 우리 아이가 이것밖에 못 만들었냐. 왜 이렇게 색을 칠하다 말았냐. 선생님이 완성되게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따지듯 다그치면 정말 그 작품을 만드느라 나름 애쓰고 즐거워하던 아이에게 몹시 미안해진다고 한다.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흉내 내고 무언가를 만들고 재미나게 놀려는 성향이 있다. 그 자연스러움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을 화가나 연극배우, 성악가나 작가 등으로 만들기 위한 직업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의 욕심은 자꾸 선생님들을 지치게 하고 교육방향을 흐트러뜨린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어린이문화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모님들 교육이 아닌가 싶다. 어린이문화원에서 어린이들 문화를 풍성하게 진흥시키려면 우선 부모님들에게 문화의 힘과 예술교육의 특징을 이해시키는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부모님들이 우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애호가가 되어야 아이들의 문화예술교육을 진정 뒷받침하고 응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

▲ 남산초등학교에서 기획한 ‘벌꿀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학교옥상에서 키운 꿀벌들을 관찰하고 있다
|
어린이의 지적, 감성적 특성 고려된 전시 되어야
어린이를 위한 대형 전시는 주로 방학에 집중된다. 오감만족 전시는 무조건 흥행에 성공한다는 신화가 있는지, 방학만 되면 어린이의 오감을 발달시켜 창의력을 향상시켜준다는 전시들이 이벤트 회사들의 기획으로 열리곤 한다. 전시장을 임대하는 입장에서 단기간 내에 열리는 전시에서 수익성을 확보하려니 치밀한 기획과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의 특성을 연구하고 제대로 기획하고 싶어 하는 전문가들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거나, 정당한 기획료를 받지 못하고 아이디어만 뺏기는 경우도 많다. 여러 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전시가 있었는데, 풀냄새를 맡는 코너라 해서 들어갔더니 화학 스프레이 향을 뿌려놓고 있어서 황당했다는 사례도 있다. 어린이와 부모 입장에서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전시를 보러 들어가지만 기념품 코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와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린이문화원에서는 충분히 연구된 테마로. 어린이들의 지적, 감성적 특성을 잘 고려한 연출 기법으로 구성된 전시를 제공하면 좋겠다. 그러려면 전시기획 관계자들이 충분히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연구하여 준비된 전시가 이뤄져야 하고, 전시 현장에서 교사와 어린이들의 피드백을 받아 모니터링한 자료들이 계속 축적되어 다음 전시기획에 반영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에게 가장 최상을 제공하자
어른들의 경우, 소극장 연극을 보려면 할인티켓을 챙겨도 최소한 1만 5천 원은 내야 한다. 어린이들이 유치원에서 단체로 연극을 보러갈 때는 4~5천 원을 낸다. 몇 년 전 열심히 인형극단을 꾸려가던 후배가 결국은 극단을 접었다. 사연을 들으니 입장료로 4천 원을 아이들이 내면 유치원 원장님이 1천 원을 수수료로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공연을 간신히 꾸려가다가 그것마저 한계에 다다라 허망하게 모든 꿈과 열정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물론 부모가 개인적으로 어린이를 데리고 어린이뮤지컬을 보러갈 때는 1~3만 원을 내고 구경을 한다. 그런데 왜 단체 연극관람은 5천 원을 넘지 못할까. 단체 연극관람은 지자체의 후원금을 받나?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냥 4천 원짜리 공연일 뿐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2만 원짜리 로봇은 사주어도 단체공연 보러 가는데 5천 원을 내라면 비싸다고 성토한다.
내 기억으로는 20년 전에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4천 원에 어린이용 연극을 보았다. 단체손님으로 유치원 어린이를 유치하는 공연 기획자는 그 가격에 맞춰서 여러 경비를 산출해야 할 테니 가장 저렴한 장비와 인건비가 가능한 조합을 구성할 것이다. 가장 최소의 인원으로 가장 저렴한 인건비가 가능하려면 잘 훈련된 배우와 스태프를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금 경력이 쌓인 배우는 어린이용 연극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본을 잘 써줄 극작가와 손잡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관객으로 왔던 어린이들은 조금 철이 들면 연극은 시시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연극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용 공연에 외롭게 꾸준히 힘을 쏟고 있는 극단의 고충이 어떠할지 상상이 간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문화예술을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해야 하는데 반대로 혐오감만 주게 될까 걱정이다.
일본의 어린이도서관들은 일정 기간이 지난 도서는 창고로 보내고 같은 책을 다시 구매한다. 책이 더럽혀지고 낡으면 어린이들이 그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므로 최상의 컨디션인 책을 아이들에게 보여줘 책에 대한 호감도를 더욱 끌어올리려는 전략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고 최고 품질의 사물들을 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미의식을 끌어내리는 저렴한 행위들은 없어져야 한다. 어린 시절에 길러진 심미안은 평생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린이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보게 하고 쓰게 하자.
|

▲ 다문화 어린이들이 만든 작품들
|
분리하는 배려?
모 기관에서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에게 미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 3개 반으로 각 반별 25명을 서류로 선발하여 한 학기 15주씩 2학기제로 운영된다. 수준 높은 강사들이 지도함에도 수강비용은 무료이며, 미술 재료도 제공한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나면 복도를 이용한 작은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여 일반 이용객들에게 여러 각도로 홍보를 하고, 어린이들에게 자부심과 성취감을 높여주는 효과를 얻고 있다. 또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위한 한국 전통문화 관련 무료특강도 제공한다. 완벽해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강사들은 저소득층 다문화 어린이들의 수업시간의 집중도 결여로 수업진행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무료 수강자들의 특성인 잦은 결석과 지각, 무성의한 태도뿐 아니라 욕설과 폭력이 다른 교실에 비해 자주 나타난다고 호소하고 있다. 친구들끼리 서로 보고 장단점을 파악하며 배워가야 하는 연령인데, 가정환경과 언어능력이 비슷한 어린이들만 모여 있다 보니 서로에게 자극을 줄 요소가 적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술 수준별 교육이 아닌 가정상황에 따라 그룹을 지은 것이라 같은 처지의 어린이들끼리만 관계를 맺게 된다.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들에게는 미술을 통해 새로운 환경과 접하게 하고, 다른 환경에 살고 있는 다양한 어린이들과의 관계 맺기를 경험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다문화가정 어린이들로만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또 한 번의 냉정한 분리정책이 될 수 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장르에 상관없이 문화예술 활동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어린이들을 친구로 만들어줄 수 있는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 기획자의 편리성만 고려한 프로그램은 다문화어린이들을 일반 어린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기회를 뺏어버린 결과가 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장애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에도 같이 적용된다. 어울려 살고 서로 돕고 사는 걸 배워야 할 어린이들에게 의도적으로 계층을 분리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교육철학이 없는 기획이다.
어린이를 도우려면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다
어린이 문화예술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우선 전문적인 연구자와 현장 경험이 많은 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창의적이며 효과 높은 프로그램을 계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사 한 명에게 모든 일정을 맡기고 정확한 평가나 피드백도 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수강생이 줄어들면 강사를 바꾸는 식의 안일한 운영은 어린이들의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강사라 할지라도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능력은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른들에게 하던 설명을 어린이에게는 문장만 짧게 잘라서 그대로 설명한다면 어린이들은 금세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어린이 문화예술교육에 투입될 강사들에게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어린이 발달단계와 심리, 인지능력 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적절한 수준의 지도와 응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 행복한 경험이 많은 어린이를 키우는 것이 어린이문화원의 활동이면 좋겠다. 그 어린이들이 훗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일꾼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보기
[특집] ① 국내- 어린이극의 현황 및 사례 (2013.5.9)
[특집] ③ 해외- 어린이극의 현황 (2013.5.9)
|
|
|
 |
필자소개
임정진은 동화작가이며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객원교수로 아동문학실습을 담당하고 있다. 잡지사 기자, 방송국 어린이 프로그램 구성작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등의 일을 했으며, 취재를 위해 각종 공연과 전시, 문화 체험, 답사 등을 열심히 다녔다.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지붕낮은집>, <나보다 작은 형>, <땅끝마을 구름이 버스>, <맛있는 구름콩> 같은 청소년 소설과 동화, 그림책 등을 썼고, 2013년 <바우덕이>로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페이스북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