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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기 예술의 가치와 역할
[특집] 경기변동과 예술의 혁신 ①
지난 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한국 경제가 올해 경제성장율이 -4%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아 한국 경제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는 세계 경제호황과 맞물려 넘어갔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겹쳐서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IMF가 리세션을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시장의 경기 순환에 의해 발생한 리세션은 11∼18개월이 지나면 정상화 되지만, 금융위기와 맞물린 침체는 회복하는데 세배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나 본 미국인들의 반응도, 이러한 경기 불황이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올해 하반기 내에 호전되지는 않을 것이라 예측하면서, 이러한 경제 위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얼마나 더 악화될지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 변동에 따른 북미 예술계 현황
작년 11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국제 아트마켓인 시나르(CINARS, Commerce International des Arts de la Scene)를 찾은 공연예술 관계자들이라면, 경제 위기가 초래한 예술계의 불안이 전 세계적인 현실임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해외 프리젠터가 가장 많이 찾는 마켓으로서 공연예술마켓들의 부러움을 사던 시나르의 참가율이 예년의 2/3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는 몇몇 국가의 정부 및 기관에서 해외 출장에 대한 긴축 재정을 실시한 이유도 있겠지만, 작년 8월 캐나다 예술위원회에서 캐나다 공연예술작품의 해외 공연 시에 지원하던 항공비 등의 기금 지원 중단을 발표한 여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파는 시나르의 프로그램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원기금의 대체 방안을 주제로 한 포럼이 개최되고, 부스전시장에는 이례적으로 캐나다 예술위원회가 전시에 불참하는 한편, 기금지원이 중단되지 않은 호주, 유럽에서 참가한 부스들이 자체 경비를 절감하려는 각 국의 공연장과 축제 프로그래머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캐나다 공연예술관계자들은 지원금이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년처럼 시나르에 참가하여 해외 프리젠터들에게 자국의 공연예술 작품을 홍보하는 한편, 기금 지원 중단에 대한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과 함께 기금지원 중단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즉석 기자간담회를 개최하였다. 기자간담회도 자국 공연예술 관계자들끼리 조용히 치루지 않고, 각 부스에 전단을 돌리고, 장내 방송을 통해서 해외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석과 격려를 요청하였다. 이는 비단 캐나다 공연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위기에 따라 전 세계 예술계가 직면하고 있는 이슈라는 것을 시사한다.
한편 지난 1월 28일 미국 하원은 경제 회복을 위하여 8,190억 달러의 국고를 지원하는 경기부양법안(Economic Stimulus Act)을 통과시켰다. 이 중 미국 국립예술기금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에 5천만 달러(약 7백억 원)가 책정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만약 이 법안이 상원에서도 통과된다면, 이 국립예술기금에 지원되는 금액은 어디에 쓰이게 될까. 미국 CAG (Cultural Advocacy Group)가 오바마 정부에 제안한 내용에 의하면, 예술가들이 비정규직을 위한 고용보험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예술 인력 재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위해 책정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야당인 공화당은 국립예술기금에까지 재정을 쏟겠다는 부양안이 즉각적인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으며 이는 ‘경기부양안’이 아니라 ‘재정지출안’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백악관은 지난 2월 14일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경기부양 규모를 7,870억 달러로 책정하는 단일안에 합의하였으며, 2월 17일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 경기부양법안에 서명하여 최종적으로 발효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중 국립예술기금을 위한 경기부양 지원금이 어느 정도 책정되었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
미국 예술계, “예술의 경제적 가치를 강조하라”
올해 1월 뉴욕에서 열린 미국 최대 공연예술마켓인 APAP (Association of Performing Arts Presenters) 컨퍼런스 본회의에서는 TRF(The Reinvestment Fund, 미국 동부와 중부 지역민의 주택, 학교, 그리고 클린에너지를 위한 투자 기금을 운영하는 회사)의 대표인 제레미 노왁 (Jeremy Nowak)의 연설이 있었다. 그는 불황기에 예술계가 해야 할 일로, 협업의 필요성과 함께 “예술의 경제적 가치”를 강조할 것을 제안하였다.
최근 미국에서는 (제레미 노왁의 연설에서처럼) 예술의 가치를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한 보고서들이 발표되고 있다. 미국 CAG (Cultural Advocacy Group)는 현재 미국 내에 십만여 개의 비영리 예술 단체가 존재하며, 각각 소속된 지역사회의 경제와 고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비영리 예술단체와 관객들은 연간 1,662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 활동을 하고 있으며, 57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300억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이러한 예술 단체 활동에 연간 10억 달러가 추가로 사용된다면, 70,000여 개의 정규직에 해당하는 고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 NGA(The 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에서 발표한 『예술과 경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는 문화예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재능 있는 젊은 인재들을 지역사회로 끌어들이는 환경을 제공함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으로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오고 있으며, 문화예술을 테마로 한 관광산업을 통해 국가와 지역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일례로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2006년도에 문화예술 관련 노동자들의 임금과 소득이 주(州) 경제에 39억 달러의 이윤을 가져왔으며,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매년 문화 부문이 17.6%의 성장을 기록함에 따라, 42.3억 달러의 이윤을 발생시키면서 주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보고서들은 불황으로 인한 미국 문화예술계의 침체 현상을 복구하기 위하여,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하려는 미국 문화예술 관련 각 기관, 단체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일례일 것이다. 예술의 가치를 경제 수치만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예술이 인문사회학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시기는 지났다는 제레미 노왁의 연설이 뇌리에 남는다.
APAP가 헤머의 대규모 인터랙티브 시설물에 주목했던 이유
한편 올해 APAP 컨퍼런스에서는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작업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헤머는 멕시코 태생으로 캐나다 컨커디아대학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전자 예술가 (electronic artist)이다. 작년 가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있었던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에서 <국경의 리포터들>과 <폭발, 그림자 상자>를 선보여 한국의 미디어 아트 관객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공공장소에 로봇, 프로젝션, 사운드, 휴대폰, 센서 등의 전자 기기와 기술을 이용한 대규모 인터랙티브 (interactive) 시설물을 설치하는 작업이 주를 이룬다. 최근, 뉴욕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관객의 심장 박동을 기록한 뒤 이를 조명으로 시각화한 작품으로, 매디슨 스퀘어를 찾는 뉴욕 시민들을 가슴 뛰게 하고 있다.
미국 공연예술 격월간지인 『인사이드 아츠 (Inside Arts)』와의 인터뷰에서 헤머는 갤러리를 운영했던 어머니와 나이트클럽의 사장이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미술과 음악에 둘러싸여 자랐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 분야가 “뉴 미디어” 라고 불리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작품들은 1920년대 조명 엔지니어인 덴마크계 미국인 토마스 윌프레드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자신의 작품에서 과거와의 연관성을 발견할 때 더 큰 영감을 받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저는 저의 작품들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예전부터 이어져온 시도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제가 하는 작업이 새로운 것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테크놀러지를 사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이러한 작업이 독창적이라서가 아니라 필연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술 창조에 있어서 혁신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일 때 가치를 지니며, 독보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천재 예술가의 철학인 것이다.
그러면 APAP가 예술가, 아티스트 매니저, 공연 기획자, 예술 행정가, 프리젠터들이 모인 자리에서 헤머의 작업을 소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의 작업이 시각예술이라기보다는 공연예술에 가까우며, 관객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랙티브의 개념은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라고 그는 말한다.
아마도 헤머의 작품이 상호작용, 공동체 그리고 친밀함에 기반하고 있는 까닭에 이러한 불황의 시기에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예술가와 예술경영인들에게, 예술이 실업과 빈곤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사회에 대한 불신과 소외감을 치유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예술은 번민하는 삶들에 빛을 줄 수 있는가
언젠가 어느 외국의 예술가는 인간이라면 빈부와 신분의 격차를 막론하고 삶에 대한 번민과 고뇌를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 예술가는 그에 대한 해답을 가진 존재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문득, 번민과 고뇌로 가득 찬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예술, 그리고 그 예술을 창조해내는 예술가와 관객이 만나 삶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예술경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의 동영상은 작년 칸 영화제 단편영화 경쟁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멕시코 출신 감독 알론소 알바레즈 바레다의〈Story of Sign (Historia De Un Letr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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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과 뮤지컬영화, 그리고 <오클라호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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