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지(이하 밎) 안녕하세요! 이렇게 저의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고 환영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늘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입니다.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 물론, 법정공휴일이 아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한 근로자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흑흑…. 이 대화방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오늘 무엇을 했을까?’라는 아주 단순한 궁금증에 의해 탄생됐습니다. 평범한 근로자들과 조금은 다른 삶의 패턴(?!)으로 문화예술계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먼저, 각자 소개부터 해주시죠!


김진희(이하 김)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램요’라고 불리는 김진희입니다. 수도권을 방랑하다가 현재 수원에 자리를 잡고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각예술과 관련된 일을 했었습니다. 대안공간, 문화예술교육, 축제, 공공미술과 관련된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다가 현재는 문화재단에서 예술가, 예술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여러 가지 문화 행사를 주관하기도 하고요.


박동광(이하 박)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서 지역 문화기획 협동조합을 하고 있는 ‘성북신나’의 박동광입니다. 동네의 공간, 이야기, 사람을 찾아서 여행, 학교, 매체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오경은(이하 오) LG아트센터 기획팀에 있는 오경은입니다. 주로 언론 홍보와 마케팅 업무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간혹 기획 담당 선배들을 도와서 기획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아마 공연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경계 없이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


문화예술계라는 공통분모 안에서도 서로 결이 다르신 분들이 모이셨네요! 이야기가 풍성해질 것 같아 기대됩니다. 혹시, 오늘 출근 하셨나요?


그렇습니다. 일을 했죠. 여느 도시에 가면 느낄 수 있듯이 5월은 축제의 계절이죠. 놀러 가기 좋은 때이니까요. 보통 지자체에서 이런 축제를 주최,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 시민과 관광객을 위해서 볼거리, 놀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공공영역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제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연극축제를 주관했습니다. 저는 축제와 관련된 부서에 있지는 않지만, 으레 대규모 축제나 주요 행사 때에는 모든 직원이 나와 일을 합니다.

저희 극장은 공연이 없는 주말 혹은 휴일엔 쉬는 편인데, 이번 연휴는 공연이 없긴 했지만 출장이 있어서 근로자의 날에 쉬지 못했습니다. 대신 4일이 징검다리 휴무라 3일부터 5일까지 사무실에 나가지 않을 예정이지만,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전화를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ㅠㅠ

저만 일을 안 했군요! 대신 4월 마지막에 마무리를 하느라 고생을 했어요. 그 덕에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들어는 봤다. 5월이 황금연휴긴 하다고

흔히들 5월을 ‘황금연휴의 달’이라고 하지만,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에겐 조금 다르지요. 여러분에게 5월은 어떤 달인가요?


글쎄요… 저도 여느 직장인처럼 새해가 되면 달력을 넘기며 올해 휴무일이 며칠이나 되는지 황금연휴는 없는지 쭉 보긴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이내 덮어버려요. 앞서 공연이 없는 주말이나 휴일은 쉬는 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공연은 남들 다 노는 주말과 휴일에 가장 많죠. 또한, 개별적으로 공연 전후 준비 및 정리 기간이나 별도의 업무가 있으면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요. 특히 저희는 1년 기획공연 라인업이 미리 나오기 때문에 연말이 되면 이미 다음 해 공연 일정이 모두 정해지게 돼요. 저 같은 경우는 새 다이어리를 사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다음 해 저희 기획공연 일정을 넣어요. (웃음) 그제야 한 해의 진짜 달력이 완성되고 거기에 맞춰 제 개인 일정을 짭니다. 때문에 황금연휴가 밀집된 5월이 사실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5월은 늘 공연이 많습니다. ^^


말씀하셨듯이, 주말과 휴일에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환경에 익숙해졌는데 올해는 단발성 이벤트식 행사를 줄이기로 해서 아주 오랜만에 5월의 다양한 축제를 시민의 입장에서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어는 봤습니다. 5월 황금연휴. 옛날에 이런 말이 있었지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웃음) 축제도 많지만 나들이하기 좋은 봄, 가을은 문화예술행사도 많습니다.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여느 때보다 성수기지요. 물론 지원 분야는 일 년 열두 달 농한기란 없지만, 연휴는 저에게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인지 오래라, 마음을 비웠달까요? 기다려진다기보다는 두려워진다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제 본연의 업무도 하고 축제지원도 하려면 업무를 잘 조정해야 하거든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저도 문화예술을 즐기는 사람인지라 이 시기에 많이 열리는 축제나 행사 중 가보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동료들과 정작 문화예술계에 일하는 사람들이 문화 소외를 받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그 속에서 짬짬이 좋은 공연이나 행사를 볼 수 있는 걸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가족들이나 또래 친구들과 삶의 패턴이 다르다고 많이 느끼시죠? 이런 것에 대한 불만은 없으신가요?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주도하에 따라가는 것은 능률이 높지 않으니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 같습니다. 임금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삶과 일의 경계를 둘 필요가 없는 즐거운 일이라 만족합니다.


보통의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는 완전히 다르죠. 매우 다릅니다. 주 5일 근무에 주말은 꼬박꼬박 쉬는 그런 규칙적인 삶이 아니니까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만 사실 공연 일을 하면서 일과 개인의 삶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끔 주변 사람들을 잘 못 챙긴다는 생각이 들 때,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때, 조금 속상하기도 합니다만, 상대적으로 덜 바쁜 여름이나 겨울에 휴가를 조금 길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는 좀 더 많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는 보통 직장에 다니는 친구나 가족들과 그렇게 다르다고 느낀 적이 많지는 않습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이 행사가 많은 시기에 개인적으로 주말이나 저녁을 즐기기 어렵긴 하지요. 그런데 요즈음 안 그런 직장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업무 특성상 공무원분들과 협조할 일이 많은데 흔히 ‘여섯 시 땡’ 하면 퇴근할 것 같은 그분들도 야근과 휴일 근무가 다반사인 경우가 많습니다.(물론 부서마다 특성이 있겠지만요)

오히려 예술가로 활동하는 친구들과 만나거나 이야기할 때, 제가 얼마나 몸과 정신이 매여 있는 삶을 사는지 느끼는 때가 많달까요. 그래서 어떤 날은 정말이지 쉬고 싶고, 놀고 싶지만 일정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을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회의와 불만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불만에 대해서 너는 그에 대한 급여를 그나마(!) 안정적으로 받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라는 의견도 있지요. 그럴 때면 ‘아… 나의 월급 안에는 내 여가와 건강, 내 정신의 여유, 영혼의 안식을 포기하는 값도 들어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전체적으로 문화예술계에서의 노동이 얼마나 비정기적이며 비합리적으로 보상받는지, 그러한 상황이 비교군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씁쓸하기도 해요.

“휴일에 일한다”는 연민을 뛰어넘은 삶의 의미

현재 나의 삶과 직업에 어느 정도 만족하시나요?


LG아트센터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공연장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우리 관객에게 소개하고 만나게 해주는 일은 매번 흥미진진합니다. 물론 그 과정이 하나도 힘들지 않고 항상 즐겁기만 하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는 꽤 만족하고 있고,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00% 만족한다고 하면 조금 거짓말 같지만, 제 업무와 그 대부분의 시간을 만족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제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면서 예술가들이나 그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만족감을 느끼죠.


제 일과 저를 필요로 하는 현장에서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장기적으로 하고 싶은 분야를 직간접적으로 배우면서 삶을 유지할 수 있고, 존경할 만한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반걸음 먼저 간 선배를 따라가면서 반걸음 뒤에 올 후배들을 위해 건강한 노동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현재 일을 하면서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요즈음 제가 많이 생각하는 것은 밸런스입니다. 일이 몰아치다 보면 아무래도 제 개인적 삶도 그렇고, 제가 하고 있는 일에서도 균형감이나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리기 쉽거든요. 그리고 이러한 균형감이나 객관적인 시각이 없으면 스스로를 소진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하면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지금 당장 실패해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단계들이 있다고 믿으면서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은데요. 음… 겉에서 보기엔 작아 보이는 일이라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놓치면 공연하는데 지장을 주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크고 중요한 일도 당연히 잘해야겠지만 보이지 않는 디테일한 일들을 챙기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움과 성장입니다. 일에서 사람에게서, 처한 환경을 돌파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배우고 있는가를 돌아봅니다.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둔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필드에서 몸으로 배운 것들을 이론화하고 정리하고 싶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도시재생이나 사회혁신 분야를 배우고 싶습니다. 영어 공부를 위해 연수를 가고 싶기도요.


글쎄요. 일단은 그냥 한량처럼 놀고 싶네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국 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잠깐씩 짬이 나거나 여름, 겨울에 휴가를 길게 쓸 수 있을 때 꼭 여행을 가려고 하는 편인데요. 만약 당장 일을 그만둔다면 한 일주일 동안 곰이 겨울잠 자듯 숙면을 취한 뒤 바로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어딘가에서 또 뭘 보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요. ^0^


문화예술계 분야에서 ‘취업’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혹은 ‘취업’을 위해 각오해야 할 것이 있다면?


너무 교과서적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취업’을 생각하기에 앞서 스스로 얼마나 이쪽 분야의 일을 하고 싶고 좋아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객석에 앉아서 공연을 보는 것과 백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정말 천지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공연 분야야 말로 정말 애정이 있고, 좋아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든 잡초처럼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정신력과 체력은 필수 조건입니다!


장르예술과 전방위 기획이 다를 것입니다. 취업은 기존의 시스템에 들어가는 점에서 비슷한 분야의 기관에서 짧게라도 일을 해본 경험이 많으면 유리할 거예요. 당장의 간판보다 10년 뒤에 실력을 키워줄 곳을 잘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를 위해 취업 희망 기관의 행사와 프로그램을 소비자로서 잘 찾아다니면 좋겠지요.


문화예술계의 ‘취업’이 다른 직종의 ‘취업’과 어떻게 다를까를 생각해보면. 큰 틀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문화예술계는 어딘지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노동자나 근로자로서의 권리는 쉬이 뒷전이 되기는 하는 것 같아요. 뭔가 근로자니 노동자의 권리니 운운하면 자유로운 예술가 정신이나, 열정이 없어 보이는 것 같고요. 때때로 선배님이나 선생님들께 예전에 얼마나 시스템이 열악했는지 이야기를 들으면 한가한 불평 같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취업’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용기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볼 만한 일인 것 같아요. 어딘가에 속해서 일한다는 것, 그래서 직업을 얻는다는 것은 결국 제 자신과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마주치는 세상의 여러 시스템, 조리와 부조리와의 만남, 투쟁, 협상, 화해 등등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그 시스템을 유영해 나가는 지혜와 끈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생각보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가슴이 마구 벅차오르네요.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는 게 있다면 해주세요!


음… 근로자로 일하는 분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근로자로 일하는 분들. 고지가 머지않았습니다. 다가올 7~8월은 날이 더워 많은 분이 산으로 바다로 피서하시니 그때는 우리도 아마 인간적인 휴식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여름에 하는 페스티벌에서 일하시는 분들께는 죄송…) 조금만 더 힘을 내어 우리, 이 황금 같은 봄을 이겨내 보아요. 피로야 가라!


지역 기반 문화기획과 사회혁신을 위한 기술에 대해 학습하면서, 건축가와 개발자들은 스펙과 전문성이 있어 보이는 데, 문화예술 분야는 왠지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것 같고 유난히 감상적이라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이론화하기 어렵고 방법도 다양하며 오랫동안 꾸준히 경험을 쌓아야 하는 아주 전문적인 분야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느낍니다. 트렌드를 읽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의 철학으로 몇 년 뒤의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위해 꾸준히 학습해야 함을 느낍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시대의 상처와 빈틈을 메우고 치유하는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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