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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GDP는 관계가 있을까
사회자: 그렇다면 GDP와 예술에 상관관계가 있을까? 정헌일 위원의 이전 연구에서는 GDP를 종속변수로 보고, 총통화량이나 평균 가계 지출액, 지원 기금 총액을 독립변수로 보셨더라. 결론은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하셨다.
정헌일: 거시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는 그러했다. 당시의 문제의식은 GDP가 물질적 복지의 수준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있으며, 이것에 문화예술 활동이 영향을 줄 것인가를 밝히는 것이었다.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서 쉬는 시간에 집에서만 쉬지 않고, 공연예술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기분 전환을 하고, 창의적인 생각도 하고, 이렇게 힘을 얻어 일터로 갔을 때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을 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비즈니스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통해서 사회의 전체적인 소득이 증가한다는 자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시작과 끝인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경제적 부가가치가 증가하는가를 본 것이다. 그래서 매크로 데이터만 봤을 때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하다 정도지 계수가 상당히 크게 나오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자: 물론 위험한 부분이 있지만, 국가적으로 봤을 때, 대전제를 그렇게 잡고 시작할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씀드린 것이다. “창의력이 과학기술을 높인다.”라고 전제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헌일: 실증분석을 해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괜찮은데, 이론적 배경이 워낙 없다 보니까 이게 GDP가 올라서 문화예술 활동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인지, 문화예술 활동을 많이 해서 GDP가 오르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정철현: GDP가 올라서 예술이 조금 늘어난다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예술이 늘어나서 GDP가 증가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문화경제학 측면에서 봤을 때, 소득의 증가가 단기적으로는 예술 수요의 양적 증가로 이어질 뿐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질적 향상으로 연결된다. 즉 소득이 증가하면 단기적으로는 베토벤 음반을 몇 장 더 구매하는 것에 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베토벤 음악을 연구하거나 직접 연주해보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술 활동이 창의력을 신장시켜 기술혁신을 이루고 새로운 사업을 창출시키는 등 예술이 GDP를 상승시킨다는 것에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예술이 늘어나서 GDP가 상승된다고 얘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문화경제학자들의 몫이 아닐까?
정헌일: 연구 당시 실증분석은 안 했고, 이론적 배경만 정리를 해서 담았다. 경제학의 경제성장론 부분을 보면 과거에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 증가가 경제 성장을 이끌다가 어느 순간에 노동 투입과 자본 투입이 한계가 있는 단계에 와서도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선진국의 경우 노동 투입과 자본 투입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경제 성장을 이끄는 것은 바로 지식과 기술이더라는 것이다. 지식과 기술의 범주는 넓기 때문에 그 안에 예술을 포함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경제 성장을 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엄밀하게 어떤 모델을 가지고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취약하다.

공연예술을 산업적 관점에서 다룰 수 있을까
사회자: 요즘 많이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뿌리기식 지원 방식이라는 점에서 문화예술 분야와 기초과학의 지원 방식이 다소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 될성부른 떡잎을 골라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예술 분야에서도 지원받을 만한 가치를 스스로 어필해야 하는 때가 와버린 것 같다.
정헌일: 기초과학 기술 같은 경우는 기술의 성숙도, 향후 산업의 변화 전망 같은 것들을 통해 국가의 기술 개발 어젠다가 만들어지는데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이런 방식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과학기술은 나름대로 중요성이 있으면서 선별적으로 할 수 있는 단계가 형성되어 있다 보니 그런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지만 문화예술 분야에서 그런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공연예술 분야뿐 아니라 시각예술 분야 역시 고민의 대상이다. 관계자들이 함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고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계속해서 자료를 만들어 축적해 가며 새로운 방법이 나오면 구축된 자료를 통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길 것이다.
사회자: 방법론 차원으로 돌아가서, 조금 전 논의한 CVM(조건부가치측정법)은 공연예술 분야에서 단편적으로 연구되고 있기도 하지만 전국적으로 전체적인 조사·연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CVM은 소비자의 편익을 측정하는 방식이므로, 생산자 즉 예술가 관점에서 봤을 때 경제 효과를 분석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소비자 잉여 관점에서는 문화향유 같은 관점으로 분석을 한다면, 생산자 잉여 측면에서는 즉 예술가들의 편익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분석을 해야 할까?
정헌일: 생산자의 잉여라고 하는 것은 이윤이다. 지원을 해줘서 이윤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비용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므로 생산자의 잉여는 지원과 같다. 공급하는 측에서는 매출 증가나 고용 증가의 형태로 발생할 것이다. 이 부분은 산업연관분석을 통해서 도출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자: 예전에는 사실 공연예술을 시장이나 산업으로 부르지 않았다. 콘텐츠 산업이라고 했는데, 최근 1~2년 사이에 공연예술에서도 산업이라는 단어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헌일: 뮤지컬 분야 때문에 콘텐츠 통계 쪽에서 공연예술을 공연사업으로 독립적으로 분류한 것 같은데 공연도 계속 산업처럼 분업화되고 전문화될 것 같다. 대중들이 선호하는 장르인 뮤지컬은 산업 규모가 커지다 보니 효율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조금 더 잘하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하면서 산업화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생긴 지 몇천 년도 더 된 연극은 앞으로도 그렇게 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사회자: 그래서 ‘산업’, ‘시장’ 이런 얘기가 많다 보니 예술계에서도 이런 변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고, 이건 아니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다.
정철현: 두 가지 방향으로 함께 가야 된다. 시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하고, 그 외에는 정부가 아마추어를 위한, 예술인들을 위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국민들이 연극, 뮤지컬 등 어떤 예술 장르라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60세가 넘은 어떤 사람이 동네 극단에서 연극배우로서 연기 경험을 해 본 후 보는 것 이상의 감동을 느껴 다른 사람들에게 연극을 권하고 본인이 느낀 희열에 대해 이야기한다.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경험으로써 더 큰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 효과에도 관심 가져야
정헌일: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경제적 효과 외에도 사회적 효과와 같은 부가적인 지표가 활용되어야 한다. 직간접적인 공연 참여를 통해 나타나는 삶의 방식, 대인 관계 등의 변화와 같은 사회적 효과를 통해서도 사회적 자본이 생성되고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철현: 그것도 중요한 이야기다. 엘 시스테마의 사례처럼 불량 청소년들을 모아 교향악단을 만들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행동을 막은 것은 굉장히 사회적인 가치가 크며 경제적인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자: 사실 사례는 많이 있다. 그 결과를 집약해서 보여줄 수 있는 연구 모형이나 분석 틀이 있으면 좋겠다. 만약, 유아교육 분야에서 많이 시도하는 10년 이상 장기간 추적조사를 한다면 가능할까?
정헌일: 대를 이을 것까지는 없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다. 패널을 구성하여 10-20년 조사를 했더니 직간접적인 공연예술에의 참여가 사회적 이동성(mobility), 소득 수준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상당히 설득력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아야 한다.
정철현: 공연예술의 경제적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고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여러 학문 분야 학자들의 융합적 노력이 필요하다.
좌담회를 마치며
이번 좌담에서 다룬 주제는 상당히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주제이다. 이런 부분은 정부에서 장기적인 차원으로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과주의에 휩싸여 단기적인 결과를 내는 방향으로 접근하다 보면 예술의 가치라는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함께 논의하여 보다 나은 방법을 앞으로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사진촬영_박창현(Chad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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