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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을 이끄는 주요 아트 스페이스들
[특집] 연대를 통해 예술적 정체성 찾는 아시아 문화예술 씬 Ⅲ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데에는 이 나라의 많은 예술가와 예술가 그룹의 활발한 활동에서 기인한다. 제한된 인프라와 기금 제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활동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는 반면, 자신의 고국을 넘어 스스로 혹은 집단적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중견 작가들은 종종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예술 행사 및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에 초대되곤 한다. 한편, 많은 신진 작가들은 다양한 국가 소재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며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과 네트워킹을 하고 해외 예술 커뮤니티에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선보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한다. 사회 기여 작품 창작을 독려하는 자유로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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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로.구에 전시 오프닝 장면과 야외 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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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가 자본과 문화 경제의 중심으로 전국에서 온 작가들의 쇼케이스 장이라면, 반둥은 예술과 최신 담론이 활발하게 생산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교육 기관인 반둥기술대학(Institute Technology of Bandung, 주요 전공 및 연구 분야를 비추어 보았을 때 한국의 KAIST에 해당)을 중심으로, 동 대학 순수예술 및 디자인 학부 졸업생들은 인도네시아 현대미술 현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 지역 예술 공간인 슬라사 수나리오 아트 스페이스(Selasar Sunaryo Art Space, 이하 SSAS)는 현대미술의 촉진, 인큐베이팅 및 전시 공간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젊은 반둥 기반 예술가들은 SSAS에서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할 뿐만 아니라 본 갤러리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을 넘는 활동에 지원받고 있다.
SSAS는 비영리 공간으로 1998년 설립되었다. 설립자인 슬라사 수나리오(Selasar Sunaryo)는 인도네시아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시니어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그의 설립 취지는 자국의 예술 문화 발전 및 대중을 위한 예술 교육 발전을 촉진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공간은 실내·실외를 포함해 다양한 기능을 갖춘 다섯 곳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전시 공간, 퍼포먼스와 비디오 스크리닝을 위한 원형 극장, 방문 작가 및 레지던시 거주 작가를 위한 대나무 하우스, 토론과 워크숍이 가능한 전통 지붕으로 지어진 다목적 공간, 상품 매장과 카페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공간은 주변 자연과 조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반둥의 경치를 관람할 수 있는 다고 언덕(Dago hill)의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 개관 이후부터 외부 지원 없이 자체적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전체 직원 서른 명 모두 각자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 공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좋은 시사점을 주는 공간이라 하겠다.
SSAS의 프로그램은 광범위한 예술가 그룹의 활동에 기여하고 있는데, 격년제로 치러지는 ‘반둥 새로운 출현(Bandung New Emergence)’이 젊은 지역 인재를 지원하도록 설계되었을 뿐만 아니라 반둥 현대 미술트렌드의 최신 지형도를 보여준다. 키즈 프로그램(Kids Program)은 다양한 지역 커뮤니티와 협업, 아동의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데 주목하고 있으며, 중진 및 시니어 작가들은 다수의 개인전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되짚어 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트랜싯(Transit)’ 역시 격년제 프로그램으로 레지던시와 전시를 포함하고 있다.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40세 이하의 작가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본 프로그램은 작가의 중간 점검이라는 특징이 있다. 거주 기간에 작가는 신작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고, 거주 완료 후 3~4개월의 준비를 거치고 나면 전시를 통해 개개의 특징적 발전을 선보이게 된다. 그다음 해에는 자카르타의 상업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순회전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미술 시장과 연결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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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사 수나리오 아트 스페이스 ‘반둥 새로운 출현’ 전시 준비 장면과 제1회 트랜싯 전시 장면 |
이슬람 왕인 술탄에 의해 지배받는 독립자치구 족자카르타는 예술, 문화, 공예, 전통과 종교가 혼합된 도시이다. 족자카르타의 현대미술은 국내 첫 국영 예술 기관이자 현재 인도네시아 예술 인스티튜트(Institute Seni Indonesia Yogyakarta)의 전신인 인도네시아 예술 아카데미(ASRI)에서 출발한다. ASRI의 학생들은 인도네시아의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한 의식을 갖고 그들의 예술로 문제를 표현해 온 동시에,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향한 실험에도 앞장서 왔다. 족자카르타가 수십 년간 수많은 예술 활동으로 활기를 띠게 된 것은 그들의 공헌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이 도시 소재의 많은 예술 공간 중, 갤러리 밀집 지역인 수리오디닝그라탄(Suryodiningratan)에 위치한 랑겡 예술 재단(Langgeng Art Foundation)은 족자카르타 현대미술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랑겡 예술 재단(Langgeng Art Foundation)은 데디 이리안토(Deddy Irianto)에 의해 2010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이다. 이리안토는 중앙 자바 마글랑이라는 도시의 랑겡 갤러리(Langgeng Gallery)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 단체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허브이자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설립 취지를 둔다. 독창적인 프로그램인 ‘쿼타 쿼타’는 ‘전시에 대한 전시’이다. 본 공간 큐레이터이자 재단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는 헨드로 위얀토(Hendro Wiyanto)가 창안한 쿼타 쿼타는 지난 2년 동안 전국에서 개최된 전시회에서 선보인 특정 예술 작품을 선별, 전시함으로써 적절한 평가 없이, 단순히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현대미술 관행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는 전시이다. 즉, 헨드로 위얀토는 전국에서 행해지는 예술적 행위에 거리두기를 제안하는데, 격년제로 개최되는 ‘플래시백’ 개념의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담론을 자극하고 다른 관점에서 예술의 의미와 메시지를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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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겡 예술재단 전경과 ‘쿼타 쿼타’ 전시 모습 |
족자카르타에서 현대미술의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자카르타와 반둥 같은 다른 도시에서 찾을 수 없는 족자카르타 현대미술 지도(Yogyakarta Contemporary Art Map)의 출판이다. 2008년부터 연례로 발행되는 이 미술 지도는 오래된 지역 예술 공간인 크다이 크분 포럼(Kedai Kebun Forum)에 의해 시작되었다. 현재 이곳은 활발한 활동을 하는 문화 예술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이 지도는 각각의 공간에 대한 기본 정보뿐만 아니라 공간의 비즈니스 형태도 함께 제시한다. 예컨대 문화 센터, 갤러리, 미술관, 레지던시, 아티스트 운영 공간, 작가 커뮤니티, 예술 경영 등, 50개 이상의 문화 예술 관련 공간과 각각의 목적이 표시되어 있다. 크다이 크분 포럼은 저명한 예술가인 아궁 쿠르니아완(Agung Kurniawan)과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였고, 2010년부터 족자카르타 비엔날레 재단의 상임이사를 맞고 있는 그의 아내 유스티나 네니(Yustina Neni)에 의해 설립되었다. 족자카르타 비엔날레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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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이 크분 포럼 전경(사진 출처: 브디 다르마완)과 크다이 크분 포럼이 발행한 족자카르타 현대미술 지도 |
상기의 각 예술 공간 관련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대부분의 현지 예술 공간이 재정 측면에서 유사한 운영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쉽게 목격되듯이, 많은 예술 공간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거나, 초기 계획을 변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상황은 각각의 공간을 지탱할 자신만의 전략을 만드는 데 일조하게 한다. 기금 모금을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공간을 운영하는 더 효율적인 방법을 강구하는데, 그 한 가지 방법이 다른 공간들과의 협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예술 공간들 사이의 제휴 프로그램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기서 예술 공간이라고 할 때, 반드시 물리적인 공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더 넓은 의미에서는 예술을 다루는 커뮤니티를 뜻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불모의 상태에서 떠오르듯이, 인도네시아 예술 공간은 자신의 현 상황을 새로운 기회, 새로운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위한 계기로 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밝은 미래가 보였다.
※ 본 기사는 현대미술 국제교류 플랫폼 더아트로에 게재된 원고를 재편집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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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전정옥은 현재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이자 아트매니저이다. 다양한 다문화의 경험을 갖고 있는 그의 현 관심사는 시각 예술 전시회가 어떻게 다양한 커뮤니티와 연계할 수 있고 그들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카르타 근교 수리아 대학 (Surya University)에 재직, 대학내 예술과 커뮤니티 매니지먼트 센터(ARCOLABS)를 운영하고 있으며, 테크노프레뉴어십(Technopreneurship)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