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이후 외국 미술의 국내 전시는 1978년과 1988년 서양미술 소개의 홍수 속에서 열린 중국 작가 장다치엔(張大千)의 개인전과 2001년 상업 화랑 아트사이드에서 열린 중국 현대미술 5인전, 2002년의 근현대 5대가 전시, 2005년의 중국 현대미술 그룹전, 그리고 1981년과 1997년에 개최된 일본 현대미술전, 2009년의 인도 현대미술전 등 국내에서 소개된 아시아 미술에 관한 미술관급 전시가 전부이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식민지시기를 겪으며 경제와 문화 교류의 기회보다 자국의 정치와 경제 발전에 힘을 쏟아 온 것이 20세기 후반의 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현실이었다. 아시아 미술계가 작품의 거래를 통해 미술시장을 공동으로 형성,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은 중국이 개방을 선언한 1990년대 초반 또는 아트 페어와 경매가 활성화된 21세기 초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한국, 일본, 타이완 등 국내 아트 페어에 인접국의 몇몇 화랑이 작품을 소개하던 소극적인 시대에서 2000년대 국제화가 급진전되면서 이전의 동양화 전시 교류시대에서 서양화 교역 중심의 시대로 이행하였다.

아시아의 토종 아트 페어와 아트바젤 홍콩

2000년대 첫 10년간 아시아 미술시장은 유사 수준의 화랑 간 초대전과 순회전, 각국을 대표하는 아트 페어 참가를 통한 전시와 판매, 다국적 작품 판매를 하는 국제 규모의 경매 등을 통해 상대국의 미술시장을 학습하였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 홍콩과 싱가포르라는 통상의 용이성과 경제 자유도가 높은 두 지역, 그리고 서울, 베이징, 도쿄로 상징되는 세베토(SEBETO) 동북아 3국의 대표 도시가 아시아 미술시장의 플랫폼으로 발돋움하였다.

특히 홍콩은 30여 년간 기반을 다져 온 세계 유수의 경매 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여 최고가 경쟁을 벌여 온 바탕 위에 각종 이점을 활용한 아트 페어가 설립되어 아시아 각국 딜러들의 관심을 끌었다. 홍콩 아트 페어의 설립 이후 아시아의 부상을 예감한 스위스 아트바젤이 이 회사의 주식을 몇 년에 걸쳐 매입하면서 홍콩에 세계적인 경매 회사와 아트 페어 회사가 모두 입성하게 되었다. 그 후 세계 최강의 갤러리들이 홍콩에 지점을 설립하면서 홍콩 미술시장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아트바젤 홍콩은 전 세계에서 참가한 화랑들이 내놓는 작품의 수준, 40년이 넘는 오랜 경험에 의한 고객 동원력과 판매 전략, 아시아 대표 화랑과 서구 유수 화랑의 참가, 엄격한 심사, 아시아 각국의 아트 페어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은 판매액, 유럽-아메리카-아시아를 장악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명성은 아시아 아트 페어 시장에 공룡의 출현으로 비치고 있다.

10~20년의 짧은 역사와 크지 않은 시장 규모를 가진 아시아 국가의 토종 아트 페어의 국제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홍콩을 제외한 한국, 중국, 대만, 일본의 대표 아트 페어는 대부분 자국의 갤러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특히 인접국의 참가율도 매우 저조하며, 국제적인 수준의 갤러리를 확보하지도 못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의 대표 아트 페어들은 많은 면에서 아트바젤 홍콩과의 격차가 매우 큰 상황이다.

플레이스 막(place MAK)

▲ 아시아 주요 아트 페어의 해외 갤러리 참가 수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의 아트 페어들은 자국의 화랑만으로는 운영이 지속 가능하지 못하고 국제화해야 하는데, 거대 공룡이 앞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토종 아트 페어들이 국제화에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상호 경쟁을 통해 수준 있는 갤러리를 유치하여 규모를 키우든지 아니면 상호 협력을 통해 공동 발전할 수 있는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시아 아트 페어의 특수성으로 인해 상호 협력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국의 ‘키아프(KIAF, 2002년 설립)’와 타이완의 ‘아트 타이페이(Art Taipei, 1992년 설립)’는 각각 화랑협회가 아트 페어를 주최하면서 운영위원회나 집행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수의 자국 화랑을 기반으로 하고 나머지 국외 화랑들을 초대하고 있다. 일본의 ‘아트 페어 도쿄(Art Fair Tokyo, 2006년 설립)’는 이전의 ‘니카프(NICAF, Nippon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Fair, 1992년 설립)’를 매입한 ‘aTOKYO’라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데 일본 화랑 중심으로 고미술, 공예, 일본화, 서양화 등을 망라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아트 페어만 하더라도 이처럼 특색이 다르고 기반이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어 사실상 상호 협력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트바젤 홍콩과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의 서구식 아트 페어 출현으로 아시아 토종 아트 페어들의 위기감은 2~3년 전부터 매우 커졌고, 아시아 토종 아트 페어 간 상호 협력 체계를 다지기 위한 모임이 열리기 시작했다. 키아프는 2013년부터 한·중·일 3국의 관계자 모임을 개최하여 상호 연락 체계 구축에 대한 합의와 공통 관심사를 논의하였고, 2010년대 들어 아트 타이베이도 국제화에 박차를 가했으며, 아트 베이징에서도 2014년 한·중·일 3국과 대만과 마카오를 포함한 동북아 아트 페어 협력체 구성에 대해 논의했다. 2014년의 키아프에서 한국, 중국, 타이완, 일본, 마카오 5개국 대표와 예술 감독들이 모여 상호 공동 발전 방안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 포럼도 가졌다. 그 후 이러한 움직임은 아시아 주요 국가의 화랑 협회 모임으로 성격이 바뀌어 아시아-태평양 화랑 연맹(Asia-Pacific Art Gallery Alliance)이라는 단체가 결성되었다.

장-크리스토프 마이요(Jean-Christophe Maillot)의 로미오와 줄리엣(사진출처: 국립발레단) 테로 사리넨(Tero Saarinen)의 회오리(사진출처: 국립무용단)

▲ 키아프 2014에 모인 5개국 아트 페어 대표자들
(사진제공: 필자)



▲ 키아프 2011 갤러리 부스
(사진제공: 한국국제아트페어 키아프)



아시아 주요 아트 페어의 공동 발전 방안

이제 아시아 각국의 아트 페어들은 상호 협력과 공동 발전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가진 셈이다. 해법은 개별 화랑의 선택을 넘어 각국의 주요 아트 페어 주최자들이 앞장서서 상호 참가를 유도하고 자주 만나 공동 발전 가능한 사항들을 찾아 합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해 본다.

첫째는 가장 중요한 수요자인 컬렉터의 교류이다. 각국의 컬렉터들이 광범위한 미술품을 수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모든 아트 페어가 VIP를 보유하고 있고 정보와 편익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한 VIP 컬렉터들을 상호 초대해 숙박, 교통, 관광 가이드, 컬렉터 상호 간 초대 알선 등을 제공하고 편안하게 작품을 구매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시니어 컬렉터와 주니어 컬렉터 간의 미팅을 주선하여 세대 간 컬렉션의 전통과 변화를 느끼게 해 주는 것도 하나의 서비스가 될 수 있다.

둘째는 각 아트 페어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을 교환하는 것이다. 일본의 아트 페어 도쿄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고, 아트 베이징은 청년 작가 육성 프로그램을 매년 확대하고 있다. 키아프는 아트플래시를 통해 미디어전을 계속 개최하고 있고, 아트 타이베이는 사진작가가 특정 지역을 촬영하여 테마 전시를 개최한다.

셋째는 각국의 대표 작가와 미술시장 흐름에 대한 강연의 교환이다. 미술시장에서 자국의 인기 작가, 이머징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와 비엔날레 작가 등을 소개하는 특강을 각국의 강사들이 돌아가며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술시장과 평론이 함께 성장하는 것도 되며, 이를 통해 인접국 평론가들의 시각과 상호 작가 평론 교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결국, 이는 ‘Made in Asia’ 작가를 육성하는 길이다.

넷째는 아시아의 개념 확대와 실질적인 시장 확대를 위한 프로젝트의 공동 운영이다. 동북아와 동남아라는 영역을 넘어 인도, 유라시아, 아랍, 오세아니아를 포함한 광역 아시아로 미술시장을 확대하는 일이다. 또한, 현재 아트 페어가 개최되고 있는 도시 외에 제2, 제3의 도시나 개발도상국에서도 공동조직위원회가 아트 페어를 개최해야 할 것이다.

장-크리스토프 마이요(Jean-Christophe Maillot)의 로미오와 줄리엣(사진출처: 국립발레단) 테로 사리넨(Tero Saarinen)의 회오리(사진출처: 국립무용단)

▲ 아트베이징



▲ 아트페어도쿄




현대미술에서는 거대 화상이나 미술시장이 미술사를 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의 지원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투자와 공동 마케팅으로 아시아적 가치를 지닌 작가 발굴과 담론의 국제화를 통해 아시아 대표 작가를 다수 육성하고, 아시아의 훌륭한 작가를 상호 공유하여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 다수가 생존하는 방식은 협력이다. 협력을 통해 공통성을 찾고, 협력 가능한 사항들을 반복하여 발전시킴으로써 아시아 미술시장을 확대하는 기반을 조성한다면 언젠가는 아시아와 서구의 미술시장이 상호 협력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 이어지는 2부 기사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특집] 아트 페어의 새 유형이 가져올 한국 미술시장 변화 Ⅱ


필자소개 필자소개
서진수는 서경대 경제학과 이후 단국대 대학원에서 「고전학파 공황론에 관한 연구」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2002~2006년 러시아와 몽골의 알타이 암각화를 탐사하고, 일본, 중국, 대만 아트 페어에서 한국과 아시아 미술시장에 대한 특강을 했다. 현재 강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미술시장연구소 소장, 아시아 미술시장 연구 연맹 공동 대표,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UEA) 한국 수석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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